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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55년생 순자씨
작가 : 춘자
작품등록일 : 2019.10.16

82년생 김지영의 부모 세대 이야기.

 
극장에 간 조폭
작성일 : 19-10-16 07:17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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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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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후의 서울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도시였다.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이 도시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다독이는 대신, 당시 정부가 민심을 잡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정치깡패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명령에 따르면서 본인들의 부와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조건으로, 기꺼이 권력의 하수로 살아줄 조직폭력배 집단이 사회 뒷골목 질서를 바로 세우는 셈이었다. 동시에 정치권에서도 어느 선까지는 정치깡패들의 폭력 행사를 눈감아 주었다.

 

 한 정치깡패 두목이 부하에게 제거해야 할 인물 리스트를 주면서 암살을 지시하자, 부하가 시경에 신고한 후 이 리스트를 폭로하고 잠적했다. 잠적했던 부하는 평소 좋아하는 장르 서부 총잡이 영화가 개봉하자 극장을 찾았고, 영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두목의 심복이 부하를 저격해 중상을 입힌다. 극장 스크린에서나 볼 법한 총격 사건이 백주 대낮에 벌어진 것이다. 관련자들은 즉시 시경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고, 사건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다.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 지방까지 전달되기까지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내용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총을 맞은 사람은 부하인데 두목이 총에 맞아 즉사했다는 둥, 극장에서 서부 영화를 상영할 때 효과음 때문에 실제로 총을 쏘는데 그게 오작동 되어 사람이 맞았다는 해괴한 소문도 돌았다. 사건이 발생한 날이 1월 29일, 그로부터 일주일 뒤 종의와 충희의 다섯 번째 아이, 순자씨가 태어난다.

 

 1남 2녀 중 맏딸인 종의는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 자식이 없던 고모 손에서 자라났다. 오빠인 종호는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나 집안의 유일한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던 어른들 때문에 읍내에 있는 소학교를 다녔고, 종의와 동생인 종숙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집안일을 도왔다. 당시 옆집에 살던 영희라는 처녀는 소위 글깨나 쓴다는 신여성들하고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없을 때 은근히 종의를 챙겨주었다. 말수가 적고 어른들이 시킨 일만 열심히 하던 종의는 눈치가 빠르고 호기심이 많았는데, 이를 알아본 영희가 글을 배워보겠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명산동에는 집창촌이 들어서 있었는데, 종의의 고모는 유곽의 삯바느질을 맡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이불이나 옷가지가 너무 많을 때는 인력거를 불러서 실어 보내곤 했는데, 어린 종의를 혼자 보내기 좀 그랬던 고모의 마음을 읽은 영희가 종의와 나란히 인력거를 타는 일이 가끔 있었다. 혹시나 남이 보고 괜한 트집을 잡을까 몰라서 영희가 글자를 미리 써온 것을 보여주고, 종의가 흰 바탕에 손으로 따라 쓰는 것으로 글을 익혔다. 소리와 글자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너무도 신기하여, 종의는 가끔 혼자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면서도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바위에 글씨를 써 보았다. 읍내에 나가면 바닥에 떨어진 연초를 몰래 주워다가 가끔 뒷산에서 피우고 내려오던 영희가 시냇가에 들러 복습시켜 주기도 했다. 고모에게도 차마 말 못할 일이었지만, 읍내에 나갈 때 간판도 읽고 따라 쓸 수 있는 자신이 너무 신기하고, 영희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오빠 종호가 소학교에 다녀와서 팽개쳐두는 가방을 몰래 열어보고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있는지 찾기도 했다. 대부분이 일본어였지만, 가끔 읽을 수 있는 게 나오면 너무나 기뻤다. 읽고 나서 가방을 잠궜다가, 다시 보고 싶어서 오빠가 오지 않는지 눈치를 보며 가방을 다시 열고는 책을 펼치기도 했다. 붓을 쥐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아는 글자가 나오면 열심히 손끝으로 그리며 따라 익혔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왠만한 글자는 다 읽고 쓸 수 있었던 종의는 아궁이에서 남은 재를 모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물에 갠 후 안 쓰는 달력 종이 뒤에다가 손 끝으로 '영희 성 참말로 고맙당께' 라고 써서 영희네 대문 밑에 두었다. 뿌듯해 할 영희 표정을 생각하면서 종의는 묵묵히 일하다가도 볼이 발개지며 어깨 끝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그날 이후 종의는 영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러 말이 돌았다. 먼 친척의 빚을 갚아야 해서 다른 도시로 갔다더라, 신여성 글을 쓴다고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순사를 만났는데, 순순하게 굴지 않아서 혼자 잡혀갔다더라, 쌀을 수탈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다가 같이 끌려갔다더라, 천방지축이라 멀리 살던 집안 어른들이 결혼시켜 일본에 보냈다더라 등의 설이 돌았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은 아직까지는 늘 챙겨줘야 하는 대상이라서, 비로소 벗이라고 느꼈던 영희를 못보게 된 종의의 아쉬움은 컸다. '영희 성, 우째 말도 않고 그리 갔을까잉.' 종의의 나이 불과 열 두살이었다.

 
작가의 말
 

 1982년생인 제가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열심히 들었던 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현재까지의 여자 어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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