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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프롤로그
작성일 : 19-10-04 22:07     조회 : 378     추천 : 0     분량 : 1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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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 애성, 창운.....

 여대의 캠퍼스 건물에는 어울리지 않게 긴장함이 흐르는 이름 때문일까.

 햇빛을 받아 투명한 유리창이 모자이크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건물들이 위엄 있게 자리 잡았다. 이 대학 전시라고 부르는 애성여학당은 수많은 보수공사의 흔적을 남기며 정문 앞에 있었다. 칡넝쿨이 서로 엉켜 건물 전체를 타고 올라가 스산한 느낌마저 주는 이 건물에서 얼마나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나와 목숨을 잃었는지, 5대 대통령 영부인이 이 학교 출신이었는지 정작 이곳을 다니는 학생들은 관심이 없었다.

 이곳의 학생들이 관심있는 건 외모와 연애, 스펙과 취업을 위한 학점뿐이었다.

 예체능관을 왜 낙산관이라 불리는지, 사회학부 건물은 왜 창운관이라 불리는지 의미 따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곳은 그저 그렇게 불릴 뿐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불리는 것에 ‘왜?’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끔 교육 받은 학생들의 집합소.

 이곳에서 ‘왜’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고 그런 의문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런 바보가 하나 나타났다.

 이곳에 왜 이런 이름과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졌으며 애성 여학당의 역사에 대해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설명벽판을 꼼꼼히 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자신이 걸어 다니는 캠퍼스가, 강의 듣는 건물이 왜 이곳에 서 있으며 의미가 무엇인지...

 시키지 않아도 쓸데없이 하나하나 근원과 이유를 파고들었던 바보는 자신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것인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는 골치 아픈 것을 알아보기 위해 바보 같은 우리의 주인공 윤아는 캠코더를 들었다.

 그렇게 애성 여대의 캠퍼스와 그곳을 이루는 학생들의 모습이 캠코더에 담겨 소개되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오는 여대생. 정아가 담겼다.

 정아는 윤아가 캠퍼스 내에서 절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같은 학과였으며 학년은 다르지만 나이가 같아 친하게 지냈다.

 정아는 학점 관리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매일 강의가 끝나면 복습을 위해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고, 시험기간이 되면 에너지 드링크를 심장 발작 오기 직전으로 마셔대며 밤새서 공부했다.

 그녀가 대학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학점 관리에 목을 매는 것은 장학금 때문이었다.

 사실 정아의 집안은 6개월에 한번씩 사백만원이 넘는 벅차는 등록금을 대줄만큼 넉넉하지 못했다. 아니, 당장이라도 정아가 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자 경리라도 해야할만큼 형편이 안 좋았다. 하지만 욕심과 악바리 근성으로 정아는 아득바득 우겨 대학을 갔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해갔다. 이런 정아에게 연애? 외모? 웃기는 말이었고 사치이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낡은 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로 공부하기 편하게 무장한 정아는 두꺼운 전공서적을 옆에 끼고 캠코더를 바라봤다.

 

 "평소 널 어떻게 생각했냐고? 음...."

 

 곰곰이 생각하던 정아는 한참만에 짧은 말 한토막을 내뱉었다.

 

 "착해.“

 "그게 다야?"

 

 윤아는 누군가 운동화를 던져 뒷통수에 정통으로 맞은 거 마냥 충격적이었다.

 절친이라 여겼던 정아의 입에서 그저 착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니...

 윤아는 자신이 친구라고 여겼어도 상대는 그저 ‘친한 사람’ 정도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 정아는 우정 따위에 신경 쓸 겨를 이 없었다. 한 집단에 있지 않으면 밖에서 마주칠 일이 없는 사이가 대학 친구가 아닌가. 정아는 지금 이 이곳에서 밀려날 것인가 버틸 것인가의 그 경계선에 서 있었다.

 윤아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지금 정아는 여유 있게 윤아의 쓸데없는 물음에 답해 줄여유 따윈 없었다. 잘 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을 망친다고, 정아는 기말고사 때 긴장감 때문에 답이 생각이 안 났다. 그 바람에 장학금을 놓치고 지금 등록금 때문에 자퇴서를 쓰러가는 중이었다.

 

 민지는 윤아와 한 두 번 조별 과제를 한 사이었다. 그때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토론을 할 때마다 민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민지는 숨결과 감정을 전달하는 직접적인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세상은 손바닥 안에 속 들어오는 작은 기계에서 다 이루어졌다.

 대화하고 싶을 땐 카톡으로 부산에 있는 절친과 시도 때도 없이 얘기하면 되었고,

 정보를 알아보고 싶으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었고,

 ‘소통하고 싶으면 인스타그램,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 북을 하며 상대방이 어떻게 지내는지 굳이 말을 섞지 않고도 쉽게 알아내었다.

 손 안의 세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에 민지는 귀찮게 사람과 엮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섞일 때가 조별 과제를 할 뿐이었는데 그 때도 꼭 필요한 말, 꼭 필요한 일만 할 뿐 웬만하면 가까이 하려 안했다.

 윤아가 인터뷰 하는 순간에도 민지는 카톡 날리는데 정신이 없었다.

 

 "널 잘 모르지만, 착한 앤 건 확실해."

 

 민지는 그 어느 때처럼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화면이 바뀌고 똘순이를 닮은 고연이 따박따박 따지듯이 캠코더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필기노트도 빌려주고, 니가 다 한 조별과제에 이름만 올려 달란 것도 들어주고."

 

 고연은 타고난 코러스였다. 극에서 주변을 말을 전달하는 수다쟁이만큼 극을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사건을 이어주는 역할은 없을 것이다.

 코러스는 타고난 기질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시기가 있었고, 훈수를 잘 두었다.

 고연은 윤아가 한 행동 하나가 문득 생각나면서 미간을 좁혔다.

 때론 한 사람의 친절이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얄밉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경우가 이에 해당 되었다.

 고연은 그 얄미운 대상이 생각나는 듯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리고 그녀는 윤아를 쏘아보며 대신 분풀이를 했다.

 

 "암튼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주희 그 얌체 같은 년만 좋은 일시키는 거라니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윤아였지만 고연이 생각하는 주인공은 달랐다.

 그년은 (말실수는 핑계고 고연이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지칭은 확실히 ‘그년’이다.) 주희라는 과대표였다. 주희는 늘씬한 바디라인으로 모델 뺨치고도 남았다.

 타고난 도화가 그년의 주위를 오묘하게 감쌌다. 그래서 남자들에겐 수컷을 본능을 불러일으켰고, 여자들에겐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시기와 질투는 조약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말들을 주희의 주변에 낳아 감싸기 시작했다.

 스폰서가 대학 등록금부터 명품 가방까지 싹 다 해주는 거라느니, 텐프로와 여대생이라는 묘한 이중생활을 즐기고 있다느니, 고등학교 때 엄청 추녀였는데 페이스오프해서 인생 폈다느니 어디서 때는 지 알 수 없는 연기들이 주희 주변엔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주희는 그런 소문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유명 스타가 악플에 시달리는 것마냥 여긴 주희는 여전히 깎은 듯 똑 떨어지는 얼굴로 사람을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내려다보며 노란색 긴 색머리를 휘날렸다.

 바비인형같이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다리를 싹 꼬며 브라운관의 여왕이 된 양 캠코더를 야릇하게 바라보았다.

 

 "여대엔 두 가지 부류의 여자가 존재해. 하난 나 같이 학점이든, 인기든 모조리 독차지 하면서 취직도 잘되고, 시집도 잘 갈 타입. 그리고 그 외."

 

 주희는 캠코더 뒤에 있는 윤아를 쭉 훑어 내려 보았다.

 

 "넌 어디에 속할 것 같니?"

 

 주희, 한껏 비웃음을 날렸다. 그년의 세상에 윤아는 속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바로 운동권처럼 인상이 강하게 생긴 선배 리진이 담겼다.

 리진은 생긴 것처럼 운동권자 이었다. 이 세상이 시궁창마냥 썩었다고 믿었으며 냄새나는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피켓을 들고 선봉대로 나섰으며 그 덕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학점에 따발총을 정신없이 맞아도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잔다르크나 유관순처럼 언젠간 수 많은 민중들을 이끌고 세상 변혁의 한 획을 그은 위인이 될 거라는 생각에 심장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한 때는 말이다.

 지금 남은 건 3차 세계대전을 맞은 듯한 초토화된 학점으로 유급을 한 것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대출, 그리고 세상을 바꾼다고 깝치고 다니더니만... 하고 무시하는 주위의 시선뿐이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건지 리진은 사춘기를 다시 겪는 것 마냥 혼란스러웠다.

 대학 내에서도 주변인이었던 리진은 마지막 자존심이라 여긴 자신의 직설적인 성격과 고집은 끝까지 붙들고 늘어졌다.

 

 "나 같으면 너 같이 못 살 거다. 무단횡단도 안 해, 담배도 안 펴, 화도 안 내.

 보는 사람도 숨 막히게 만드는 절정의 공중도덕자라고 할까?"

 

 절정의 공중도덕자. 윤아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 중 이보다 더 적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윤아는 무언가 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꽉 막혀 있는 듯 한 인상을 풍겼다.

 그것이 도덕이든, 가치관이든, 아님 사회 규범이든....

 사각 틀에 딱 잡힌 무언가에 갇혀 자신을 꼭꼭 감추고, 꾹꾹 눌렀다.

 여기까지.

 윤아가 다니는 여대의 친구(?)들이 윤아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한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두 가지 루트가 있다.

 친구, 또 하나는 사귀었던 애인들이다.

 지금부터 윤아의 남자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윤아는 밤의 술집에서 달콤한보다 씁쓸함이 더 남는 첫사랑을 만났다.

 무테안경을 치켜 올리는 차가운 인상의 20대 초반의 남자 지후는 코를 팽 푸는 것처럼 안면 근육에 경련이 왔다. 그러자 잘생긴 얼굴이 빙구가 되는 거 순식간이었다.

 지적인 이미지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윤아는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 찰나의 웃음을 캐치한 지후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웃어? 누구 땜에 이렇게 됐는데. 카메라 안 치워?!"

 

 지후가 손을 쑥 뻗어 캠코더를 빼앗아 가버렸다.

 그 덕에 캠코더에 담긴 화면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처럼 찍히게 되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술잔처럼 윤아는 그의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주었다.

 그러자 지후는 얼마 안가 술에 불콰하게 취했다.

 지후는 안 좋은 건 다 했다. 왼손에 자연스럽게 가느다란 회색 아지랑이를 피어올리는 담배를 끼고 깊게 들이켰다.

 

 "그때가 백일 기념이었지 아마. 에버랜드 가서 어찌 저찌 하다 키스해야 될 분위기였잖아.

 근데 입에서 단내가 졸라 나는 거야. 후-"

 

 윤아는 꽤 길게 짝사랑을 하는 편이었다. 사랑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자신에 대해 자신도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 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걸 처음 알아봐준 것이 바로 지후였다.

 처음에 윤아는 믿기지 않았다. 학생회장에 스포츠만능, 전교에서 노는 성적을 가진 지후가 자신의 고백을 받아줬다는 게 말이다. 윤아는 사랑 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매우 서툴렀다. 일 년 가까이 지후를 맘에 품고 가슴앓이를 해왔지만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수업 날 이제 못 본다는 애상에 잠겨 이메일로 고백을 했다.

 처음 본 순간 사랑해왔지만 지금까지 용기가 없어 말 하지 못했다고...

 반 애들의 짝사랑 대상인 네가 날 사랑해 줄 리는 없겠지만 고백한번 못해보고 끝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윤아는 지금도 그 생각하면 맨틀 밑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이메일로 하는 고백이라니. 아무리 용기가 없다고 서니 고백을 안 받아줄 거면 장난이라고 여기라는 구차한 변명까지 장문의 글로 보냈다는 것에 윤아는 아직까지 창피했다.

 밤새 한 숨도 못 잤었다. 수신확인을 했는지 계속 새로 고침을 하며 핏발 선 눈동자를 낡은 모니터에 고정시켰다. 의외의 메일이 왔다. 이런 얘기는 메일로 하기 그러니 내일 만나자고 했다. 이게 스팸 메일인가 눈을 끔벅이던 윤아는 이내 진짜란 걸 받아들이고 침대에서 소리를 지르며 콩콩 뛰어댔다. 수줍게 꾸미고 간 윤아에게 지후가 사귀자고 했다.

 다시는 만날 필요가 없을 때 둘은 계속 만날 사이가 된 것이었다.

 지후는 꽤 다정한 첫사랑이었다. 쉬는 시간 때마다 다른 반에 있던 윤아에게 찾아와 살뜰히 챙기며 대화해 나갔다. 주말에는 자주 놀라나갔다. 에버랜드, 수영장 등...

 윤아가 남자친구 생기면 꼭 가고 싶었던 리스트를 하나 씩 하나 씩 지워가며 세상을 다 얻은 행복감을 얻었다.

 지후는 술기운이 갑자기 올라오는지 테이블을 잡고 휘청거렸다.

 

 "그때 하필 포카리로 헹궈가지고."

 

 지후는 짜증이 치미는지 머리를 헝클였다. 백일... 연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둘은 용돈을 모아 에버랜드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으나 즐거웠다. 둘이 함께 기다리는 것이기에 지겹거나 힘들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갈 때 기념일의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더 아쉬워졌다. 벤치에서 다정한 말을 오고가던 지후는 갑자기 포카리 스웨트를 들이켰다.

 원샷을 하고 캔을 찌그러뜨린 지후는 윤아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 가득 자신의 얼굴이 가득 찼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달뜬 포카리의 향이 났다. 윤아의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가 깨어나 호들갑스럽게 분열 해댔다.

 온 몸이 뜨겁게 떨리면서 긴장감에 숨까지 저절로 흡 참아졌다.

 서서히 지후의 입술이 다가오면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려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를 기억이 났다. 반이 잘린 콘센트 줄을 호기심이 꽂고 드러난 구리선을 잡았다. 그러자 전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 온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놓고 싶어도 놓아지지 않았고 겨우 놨을 때는 꿈꾸는 것 마냥 멍해지고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지후의 첫 키스가 그랬다. 그는 윤아의 입술을 붙들고 온 몸을 떨어대다가 겨우 떼어내고는 정신을 잃었다. 몇 년이 지나도 아니 마지막 숨이 하늘로부터 거둬지는 순간까지 그 짜릿함과 오묘한 기분 나쁨은 입술과 정수리가 기억할 것 같았다.

 

 "여 봐봐."

 

 지후는 입을 크게 벌렸다. 윤아는 의도치 않게 그의 입술에 첫 키스를 잊지 말라는 문신을 남겼다. 지후의 입안 볼 쪽에 칼로 짼 듯 검게 탄 자국이 났다.

 지후는 버릇처럼 코를 움찔하고는 소주를 쭉 들이켰다.

 

 "너한테 키스 하는 게 바닷물에 피카츄 안고 들어가는 줄 알았음 포카리로 입을 헹구는 미친 짓은 안 했을 텐데."

 

 바닷물에 들어가는 피카츄. 윤아가 지후에게 남긴 키스의 흔적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만한 문자을 없을 것이다.

 지후는 그 때 생각이 나 억울해 미치겠다는 얼굴로 움찔거리는 코 가리켰다.

 

 "내가 이거 땜에 여자들한테 인기도 없고! 너 땜에 인생 조졌어."

 

 지후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흐느꼈다. 윤아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가 줄 수 있는 건 캠코더로부터 자유로운 한 쪽 손을 뻗어 지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위로하는 것 말곤 없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열심히 하라고만 가르쳤다.

 열심히 공부해라, 열심히 선생님 말 잘 들어라....

 윤아는 어른들 말씀을 참 잘 듣는 여자였다. 열심히만 하면 다 되는 것으로 여기고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여기에 연애도 포함된다. 윤아는 연애도 열심히 했다.

 첫 사랑에 실패한 이후, 대학 가기 전까지 공부에만 열중하던 윤아는 대학에 발을 들여 놓고 소개팅을 열심히 나갔다. 열심히 애정 표현을 했고, 열심히 사랑했다.

 연애에 열심이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운명을 찾아서였다.

 자신과 입술을 맞대고 타액을 섞고, 숨결을 공유해도 감전 되지 않는 사내를 계속 찾아가다보면 만날 주 알았다. 배운대로 열심히 하다보면 말이다.

 두 번 째 남자친구 세철은 스키니 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패션디자인과를 다녀 옷 입는 센스가 꽤 뛰어났다. 옷에 맞춰 체격을 만들 정도로 핏을 중요시 하였다.

 

 "진짜 너무해. 너. 만난 지 일 년이 넘었음 인간적으로 키스 정돈 해줘야 되지 않냐?

 니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비싸게 굴어?"

 

 윤아의 살짝 격양 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래서 바람 피웠어?"

 

 세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거야..."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윤아를 더욱 뻔뻔하게 노려보다 "니가 잘했으면 내가 바람이 났겠냐?" 라는 적반하장 멘트로 윤아의 속을 긁었다.

 

 세번째 남자친구 민국은 공대 공돌이로 윤아에게 한 없이 죄진 기분을 안겨준 남자였다.

 윤아가 실수한 것을 토시하나 안 빼먹고 기억해놨다가 싸우게 되었을 때 토시 하나 안 빼고 말해 곤란하게 했다.

 

 "이때껏 수많은 여잘 만나봤지만 너 같은 여잔 처음이야. 키스를 건너 띄고 다음단계로 넘어가자니. 나아는 여자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키스를 안 하는 건 사랑이 없는 거래.

 그때 난 널 진심으로 여겼는데, 넌 아니었구나."

 

 그는 마무리 하는 끝까지 윤아에게 죄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윤아가 이렇게 껄끄러운 사람들을 캠코더에 담는 이유는 자신을 소개 할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 여겨서이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 그리고 자기에 대해 자신도 없었다.

 자기 입으로 자신에 대해 얘기 할 만큼 그리 얼굴이 두껍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람의 입을 빌려 자신에 대해, 자신의 치명적 단점에 대해 소개하고 나서 윤아는 뒤늦게 카메라 앞에 섰다.

 자취하는 윤아의 원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과함은 모자란만 못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방이었다. 노란색의 의미는 명량, 활동, 기쁨, 희망, 영광, 부, 힘을 상징한다고 한다.

 노란색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특성이 있어 색의 의미와는 달리 우유부단한 사람이 많이 좋아 한단다. 노란색 벽지와 노란 침대 커버, 노란 무드 등....

 온갖 노란 것으로 가득 차 하얀 장롱과 검은 책상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윤아의 방은 “같이 어울리고 싶어요.”, “함께하고 싶어요.” 라고 열렬히 부르짖는 것 같았다.

 그녀는 면접 보는 사람 마냥 잔뜩 얼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의자 밑에 둔 소주병을 집어 무슨 생수 마시듯 꿀꺽꿀꺽 마셨다.

 입가에 맺힌 소주 방울을 손등으로 훑어낸 윤아는 다시 캠코더를 응시했다.

 윤아는 손을 들어 어색하게 인사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앞에서 사람들이 말했던 사람입니다. 성윤아라고 하고요, 나이는 스물 넷, OO여대 2학년 복학 했고....

 제가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선 이유는 운명의 짝을 찾기 위해에요. 저는..."

 

 윤아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저는 키스를 하면 상대방이 감전당해요. 왜 그런 진 알 수 없어요. 누구한테 물어보겠어요, 제 상태를..."

 

 윤아는 입이 바짝 타는지 입맛을 다셨다.

 

 "세번째 남자친구까지 바람나서 떠나버리고, 결심했어요. 다신 사랑 같은 거 안 하겠다고.

 이 세상에 연애에 시간 쏟는 거 말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시간 뺏길 때 차라리 학점에 더 신경 써서 좋은 곳에 취직도 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모으고, 봉사 같은 뜻 깊은 일도 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도 나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

 

 윤아는 말끝을 흐렸다. 압정이 들어간지 모르고 신발을 신은 기분이었다.

 여린 살결을 뚫고 고통의 파장을 일으켰다. 머릿속은 철철 슬픈 기억의 피를 쏟아 냈다.

 윤아에겐 대학에 유일한 절친 수경이 있었다. 내성적이라 사람에 쉽게 다가갈 수 없던 윤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쾌활한 호기심을 보여주었다.

 둘은 시험이 끝나면 알바한 돈을 모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둘은 첨예하게 다른 성격만큼 다른 행동을 보였다.

 수경은 핸드폰을 윤아의 얼굴에 들이밀면서 동영상으로 장난을 쳤다.

 카메라 속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찍히는 것 같아 윤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만 찍으라며 투정을 부렸다.

 장난 끼 많은 수경은 그럴수록 카메라를 더 들어대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고속버스가 뒤집어지면서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서지고 깨지는 버스에 이리 저리 휘둘렸다.

 파편이 여린 살을 뚫고 박혔고, 손잡이와 짐 같은 평범한 물건들이 가속을 받아 흉기를 변해서는 갈비뼈를 부수고 두개골을 내리쳤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온 몸에 내려앉는 깨지는 고통에 날카로운 비명들을 질러댔다.

 차가 부서지고, 깨지는 혼란스러움이 화면에 그대로 담겼다.

 그 날의 고통이 생생하게 상처로 박혀 있었다.

 윤아는 윗옷을 살짝 올려 그 상처를 감추지 않고 보였다. 갈비뼈부터 배꼽 근처까지 쭉 찢어졌다. 몸의 상처는 수십 바늘을 기워 슬픔의 피를 멈출 수 있었고, 새살이 상처를 단단히 감싸 딱딱한 흉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날의 상처는 쓰다듬어도 더 이상 윤아에게 고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찢긴 마음은 여전히 진물을 토해놓고 있었다.

 상처를 볼 때마다 쓰다듬을 때마다 상처는 비명과 공포를 질러대어 윤아의 귓전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날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끔직한 고통과 기억이 떠올라 울먹였다.

 윤아는 들췄던 옷을 내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 때의 사고 기사를 내밀었다. 고속버스 전복 사고, 3명 사망, 38명 중경상이란 활자가 아프게 망막에 맺혔다.

 

 "수경인 3명 안에 들었고, 전 38명 안에 들었죠."

 

 윤아는 수경이에 대한 생각에 눈물이 흘렸다. 수경이의 장난, 목소리,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추억이 되어 윤아의 가슴에 그리움과 죄책감을 낳았다.

 

 "버스가 구르는 그 짧은 순간에 생각나는 건 하나였어요. 이렇게 죽으면 억울해서 처녀귀신 되겠다. 생각해 보니까 전 제대로 해본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두 달 만에 깨어나고 다짐했어요. 다시는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늘이 장난으로 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면, 나와 똑같은 이유로 키스를 못하는 남자가 지구상 어딘가에 있겠죠? 그래서 제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용기를 내 전 세계 사람들이 본다는 여기에 올립니다. 이 영상을 보신 분들 중 저와 같거나, 저란 여자라도 사랑해주실 분 있음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작가의 말
 

 입술은 안돼요.... 다른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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