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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까마귀 혀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6

이 글은 고속도로에서 사는 까마귀(견인기사)들의 본성과 투쟁을 그린 것이다.

 
까마귀들의 시간
작성일 : 19-09-16 18:48     조회 : 353     추천 : 0     분량 : 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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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큐엠5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황중필은 이마트 사거리에서 적신호를 받고 멈췄다. 뒤따라오던 차들도 줄줄이 멈춰 섰다. 금세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졌다. 중필은 기다렸다는 듯이 옆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이는 것이 습관이었다.

 

 삼례나라슈퍼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였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3인조 강도가 오늘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진범이 자수를 했는데도 무시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차가 경음기를 울려대는 바람에 중필은 스마트폰을 다시 옆자리로 던져놓고 가속기를 밟았다. 이럴 땐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었으면 싶다가도 곧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뒤늦게야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반원을 그리며 교차로를 지나가는데 좌측 도로에서 신호를 받고 서 있는 레커차가 중필의 눈에 들어왔다.

 이십사오 년 전 자신이 끌던 것과 똑같이 5톤 마이티에 크레인을 장착한 레커였다. 낯이 익었다. 외부도 당시처럼 노란색 일색이었다. 요즘 레커차는 경기용 자동차처럼 크기기 작고 화려하게 치장을 한데다 다양하게 색을 칠하고 있어서 개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레커회사가 막 생겨나던 그 시절 레커차는 하나 같이 노란색으로 그 차가 그 차 같아 보였다. 정부의 통제 혹은 규제 때문이었다. 레커차를 구분해 주는 것은 차량번호와 양옆에 쓰인 회사 이름뿐이었다.

 

 레커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 또한 낯익었다. 무려 이십사오 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중부레커 성 부장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혈기가 끓어오르던 청년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의 얼굴엔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중년이 된 성 부장은 문득 좌회전을 하고 있는 중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중필의 차에 짙은 선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서로 눈이 마주칠 수 있을 거리였다.

 

 텅 빈 집 안에 들어서자 중필은 감추어두었던 과거지사를 태워버려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거리에서 우연히 중부레커 성 부장과 마주친 순간부터 서서히 되살아난 착잡하고 불쾌한 기분 탓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성 부장과는 별 다른 악연도 선연도 없었다. 레커를 타던 그 시절 자체가 추억하기 부끄러웠고 후회로 점철되어 있던 탓일지 몰랐다.

 

 사실은 평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될까봐 적잖이 불안했었다. 그 불안감은 갑작스런 것도 또 그렇다고 해서 일상적인 것도 아니었다.

 과거지사가 불현듯 중필을 괴롭힐 때가 종종 있었듯이 또 종종 중필조차 과거에 대해,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것에 대해 까맣게 잊곤 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중필은 무엇보다 망각이 두려웠다.

 

 중필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올라가 장롱 위에 숨겨둔 박스를 내렸다. 가끔 태울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었고 태우는 일이 귀찮게 여겨졌다.

 

 그는 먼지 뒤덮인 박스를 마당에 내려놓고 오랫동안 봉인 되어 있던 스카치테이프를 떼어냈다. 교정당국 마크가 새겨진 얇은 노트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권이 넘는 노트 뭉치를 꺼내어 마당에 던져두었다. 그 아래 숨어 있던 연필자국과 볼펜자국이 선명한 묶음으로 된 편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북이 쌓여 있는 그것을 잠시 들여다보던 종필은 결심한 듯 박스를 들어 마당에 쏟았다. 박스 바닥에 있던 몇 권의 시집과 몇 권의 소설 따위가 어둠속 생명체처럼 나뒹굴었다.

 

 종필은 시집 한 권을 들어 표지를 넘겼다. 그 안에 수번과 그의 이름이 적힌 누런 종이표가 붙어 있었다. 죄악의 징표, 수치의 징표처럼.

 

 책장을 넘기자 빈 공간 마다 빼곡히 적힌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있을 때 중필은 틈만 나면 자기 반성삼아 지난 일들을 여기저기 끼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이다음에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턱없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동기야 어떻든 그렇게라도 자기를 토해내지 않았다면 짧지 않은 수용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중필은 그런 생각으로 교정당국 마크가 새겨진 노트를 찢어 불을 붙였다.

 

 

  ***

 

 

 

 ‘이번 주말 내내 전국에 많은 비가 내려 오랜 봄 가뭄이 해갈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중부지역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때 아닌 집중호우가 예상되니 농가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밤 8시 뉴스가 끝난 뒤 간결한 일기예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까마귀 07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송신 마이크를 천천히 입 가까이 가져다 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창 밖으로 내리고 있는 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피로가 몰려오는 이 시간 뭐 상큼한 거 없을까 맞아 레모나 피로회복 기미 주근깨에 비타민C 레모나 음~ 상큼해 자기 전에 레모나 하나 내일 아침이 개운할 거야 경남제약 레모나 정말 상큼한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하지만 그의 귀에는 더 이상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피로한데도 레모나를 사먹을 생각을 못했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흠흠흠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그가 무심코 생각 없이 흥얼거리는 이 노래는 요즘 들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신인가수의 곡이다. 듣고 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중필은 무료해질 때면 어느새 머릿속에 새겨진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흥얼거렸다. 딴에는 손목을 살짝 꺾어 기왕에 들고 있는 송신마이크로 멋을 내고 곡조에 맞춰 고개도 약간 끄덕였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동작은 아니었다. 노래 중에도 그의 시선은 차창 밖 바람과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빗발을 향해 있었다.

 

 일기예보가 나오기 전부터 어둠 속으로 흩날리기 시작한 비. 바람이 없을 때 빗발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비를 둔중하게 들이받자 빗발은 무력하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로 가장자리의 또 다른 바람은 비를 만만하게 껴안고 회양목 크기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도 빗발도 차량의 속도와 흐름을 무너트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흠흠흠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차량들은 여전히 대오를 이루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정지된 화면처럼 움직임을 멈춘 채 차창 밖을 노려보고 있던 까마귀 07. 그는 마침내 송신 마이크를 쥔 오른손을 천천히 무릎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쉬운 듯 송신 마이크를 쥔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톡 두드렸다. 초조감과 기대감이 그의 어깨 위로 보풀처럼 피어올랐다.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흠흠흠 오 그대 가지 마세요 흠흠흠 그는 다시 같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흥얼거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중필은 중얼거리며 송신 마이크를 다시 거치대에 꽂았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흠흠흠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그는 노면을 흥건히 적신 빗물이 질주하는 짐승들의 네 바퀴를 거미줄처럼 친친 휘감아 줄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놀라거나 겁먹은 짐승 한 마리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속도가 무너지고 흐름이 끊어진다. 순식간에 대오가 흩어지고 고속도로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흠흠흠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 까마귀 07, 여기 까마귀 11. 증평 나들목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창 근처 상행에서 대기 중이던 까마귀 11이 무전을 보내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에도 작고 소심한데 그나마 기운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이 새끼가 군기가 빠져가지고. 까마귀 07은 재빠르게 송신 마이크를 낚아채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여기 까마귀 07, 까마귀 11, 무슨 일이냐?

 - 하행에서 사곱니다.

 - 단독이냐!

 

 상행에 대기하고 있던 까마귀 11이 하행에서 일어난 사고를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증평 톨게이트에서 하행으로 바꿔 타려는 것인 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까마귀 11이 선착은 아닐지 몰랐다. 누군가 앞서 가고 있거나 하행에 다른 레커가 있을 수도 있었다. 까마귀 11의 맥 빠진 목소리가 그런 정황을 짐작케 해주었다.

 

 - 예. 단독 사곱니다.

 - 그런데!

 까마귀 07은 이미 대기하고 있던 남이분기점 간이휴게소를 빠져나와 동서울 방향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 중부레커가 제 앞에 가고 있습니다.

 까마귀 11의 풀죽은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 네 앞에 가는 놈, 뺀질이지!

 - 예, 사장님.

 - 내 그럴 줄 알았다.

 까마귀 07은 자신의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랐지만 불행하게도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적중했다.

 

 - 내가 그 새끼하고 붙어 있지 말라고 했잖아.

 까마귀 07은 송신 마이크를 대시보드 위로 내던지고 액셀을 바닥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밟았다. 속도가 증가하는 만큼 전면 유리창을 때리는 빗발이 거세졌다. 윈도브러시가 부러질 듯 거칠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빗물을 쓸어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빗물이 시야를 가렸다.

 

 - 까마귀 07, 여기 까마귀 09. 최고 속도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일죽 근처를 운행 중이던 09가 무전을 해왔다.

 - 여기 까마귀 07, 까마귀 09 어디냐?

 - 음성을 막 지나고 있으니까 현장까지 이삼십 분 걸릴 것 같습니다.

 까마귀 09에게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도 까마귀 09는 전 속력으로 달려 올 것이다.

 

 사고지점에서부터 차량 정체 혹은 지체가 시작될 것이 분명했고, 지체와 정체가 반복되다 보면 종종 크고 작은 추돌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지,정체 구간 후미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일어나는 추돌사고는 십중팔구 레커 신세를 져야했다. 까마귀 09는 그런 이 차 사고로 주저앉은 차라도 잡으려고 달려오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까마귀 09는 사고현장 후미에서 노견을 타고 후진을 계속하며 이 차 사고를 노릴 것이다.

 

 - 까마귀 11, 여기 까마귀 07. 앞에 가는 거 너냐?

 까마귀 07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경광등 불빛을 보고 무전을 날렸다.

 - 제, 뒤에 오신 겁니까?

 까마귀 11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뒤쪽 멀찌감치 경광등 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 중앙선 넘을 거냐!

 까마귀 07은 이미 모든 것을 단념한 듯 마지못해 천천히 달려가고 있는 까마귀 11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 ........

 - 까마귀 11, 중앙선 넘자.

 말해놓고 보니까 사고차를 잡으려면 달리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뺀질이 이승낙이 니 앞에 갔다면서.

 - 예.

 - 그러니까 넘자고. 아니, 내가 넘을 테니까 너는 앞대가리만 조금 들이밀고 차량의 흐름을 방해 해.

 - .......

 까마귀 11은 룸밀러로 어느 새 따라 붙은 경광등 불빛을 봤다. 까마귀 07은 이미 중앙분리대 틈새로 머리를 내밀 태세였다.

 

 - 뭐해. 시간 없어.

 - .......

 가끔 차량 행렬이 끊어진 틈을 이용해 상하행선을 넘나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비가 와서 시야까지 흐렸다. 까마귀 11은 겁이 났다.

 - 뭐하냐고. 친구라는 놈이 맨날 니 뒤통수까고 등짝 후려치는데 그냥 앉아서 당할래.

 - ........

 까마귀 07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방위 받을 때부터 이승낙은 종종 자신의 잘못을 까마귀 11에게 뒤집어 씌웠다. 덕택에 까마귀 11은 영문도 모른 채 고참들에게 깨지기도 했었다. 제대 후에 나란히 등록해서 특수면허를 따고 또 거의 동시에 중부레커와 까마귀레커를 타게 되었다. 하지만 승낙은 항상 새치기 아닌 새치기로 사고차를 빼앗아 갔다.

 

 까마귀 11은 조금 전에도 이승낙의 레커에서 노닥거리고 있다가 당했다. 니가 내차로 와 새끼야. 이승낙이 언제나 그런 식으로 까마귀 11을 자신의 차로 불러들였다. 마음약한 까마귀 11이 항상 이승낙의 차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했다.

 빨리 내려. 사고가 난 것을 보자 이승낙은 옆에 앉아 있던 까마귀 11을 등 떠밀어버리고 혼자 내달았다. 까마귀 11이 자기 레커로 달려와 시동을 걸고 보면 이승낙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약은 새끼. 까마귀 11은 중얼거렸다.

 

 - 까마귀 11, 넌 그냥 방해만 해. 내가 넘어 갈 테니까.

 - 여기 까마귀 11, 알겠습니다.

 

 까마귀 11은 마지못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잇대어 만든 중앙분리대 사이 사이 이빨 빠진 것처럼 벌어진 틈새로 레커를 조금 들이밀었다.

 위협을 느낀 하행선 차량행렬이 상향등을 점멸하며 경적을 울려댔다. 그리고 더욱 속도를 내어 까마귀 11 앞을 스쳐지나갔다.

 차량행렬의 강한 저항에 가로막힌 까마귀 11은 중앙분리대 사이에 차머리만 겨우 들이민 채 그대로 멈춰 섰다. 빗발이 점점 사나워지면서 시야가 답답해졌다. 윈도우브러시가 빠르게 왕복하며 빗물을 쓸어내고 있지만 금방 눈앞이 흐려졌다. 때 아닌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 까마귀 11, 차들이 그대로 달려오고 있잖아. 조금만 더 들이밀어. 그래야 속도를 줄이지. 공간이 생겨야 내가 넘을 거 아냐!

 또 다시 까마귀 07이 무전기에 대고 까마귀 11을 닦달했다.

 - 예, 알고 있습니다.

 이어지던 차량행렬의 끝이 저만치 보였다. 까마귀 11은 송신 마이크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핸들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11은 사이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빗속을 뚫고 경광등 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커차였다. 레커차는 벌써 차량행렬 후미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중부 이승낙이 벌써 톨게이트를 돌아왔을 리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승낙도 기회를 엿보아 중앙선을 넘었을지 몰랐다. 이승낙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까마귀 11은 차량행렬 후미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차량 행렬의 마지막 승용차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까마귀 11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레커차가 까마귀 11의 진입을 막겠다는 듯 상향들을 번쩍이고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맹렬하게 따라붙었다.

 

 - 씨발, 누가 이기나 해보자.

 까마귀 11은 하행으로 뛰어들었다. 충돌의 위협을 느낀 까마귀 11의 어깨가 저절로 움츠려들면서 등골이 오싹했다. 경음기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까마귀 11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혹스러운 듯 눈을 크게 치뜨고 뭐라고 소리치는 레커기사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중부레커의 이승낙 같았다.

 

 까마귀 11은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았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엉뚱하게도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충돌 직전 이승낙이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이내 가드레일을 뚫고 고속도로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가드레일 아래서 굉음이 들려왔다. 씨팔, 좆 됐다. 겁에 질린 까마귀 11이 혼잣말로 외쳤다.

 

 - 까마귀 11,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와.

 무전기 소리를 듣고 앞을 봤다. 까마귀 07이 중앙분리대 사이로 빠져나와 하행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 레커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나갔습니다.

 까마귀 11의 목소리가 떨렸다.

 - 야 새끼야. 그냥 오라고. 너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 이승낙 같았는데요.

 - 그냥 오라고 했잖아.

 - 구조해야 되잖아요.

 겁을 집어먹은 까마귀 11이 울먹였다.

 - 이 새끼야, 빨리 오라고. 니 인생 종치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해. 넌,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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