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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작가 : 플용
작품등록일 : 2019.9.16

다른 세계에 끊임없이 소환되는 박희. 기억을 잃은 채 미션을 수행해야만 하는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람. 이 둘의 눈물겨운 이야기.

 
ep.1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작성일 : 19-10-29 13:45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7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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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

 

 

 

 

 

 " 이제 전 어떻게 되는건가요? "

 " 이 곳을 나가야 해. "

 " 나가고 싶지 않으면 어떡해요? 여기가 미치도록 행복한 낙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해요? "

 " 아가야. 여기 계속 있게 되면 넌 불타서 없어지고 말거야. 고통스러워질거야. "

 " …. "

 

 

 렌즈를 끼지 않아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다갈색 눈동자. 조심스레 묻는 그녀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약속했잖니, 그 아이와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고. 아가라 불린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꾹 물었다. 피가 났다. 아가야, 기억해. 라고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대꾸도 않고 조용히 움직여 그 남자를 지나쳐 걸었다. 사뿐한 움직임 끝에는 간절함이 가시처럼 숨겨져있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을까,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감겼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녀는 본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안개에 휩싸인 듯이 뿌옇게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암울, 잿빛 , 어두컴컴한 기억 뿐. 어떻게 오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처음 이 곳에서 눈을 떴을 때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기뻤다.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음에.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들이 마비되어 점멸하듯이 깜빡거리고 사그라드는 행위를 반복했다.

 

 

 아까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준 남자는 이 세상의 관리자 즉, 창조주의 하수인이었다. 그녀에게 이 곳에서 어겨서는 안되는 룰을 알려준 사람. 꽃돌이 세상. 처음 이 세상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하수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담배를 입에 물고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했었다.

 

 ​

 - 믿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네.

 - 제가 어떻게 믿어요. 꽃돌이 세상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 믿고 안믿고는 너의 선택지에 해당되지 않아. 룰을 모르면

 - … ,

 - 적응해야지.

 

 

 

 

 이곳이 행복하신가요? 기간을 넘기면 더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기간은 일주일.

 미션 3가지만 수행하시면 무사히 나가실 수 있습니다.

 

 1. 키스하기. 단,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2. 포옹하기. 단, 설레면 안됩니다.

 3. 같이 자기. 단, 정말 누워서 자서야 합니다.

 

 ​마지막 미션을 완료하면 해방되실 수 있습니다. 단, 미션 실패할 경우 당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뺏길것입니다.

 

 

 

 -

 

 

 공중에서 그가 손을 탁 치자 종이가 내려왔고, 그가 건넨 종이 한장엔 믿을 수 없는 규칙들이 쓰여져있었다. 아기자기한 글씨체와는 달리,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였다. 이 곳에서 나가기 위해선 꽃돌이 한명과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고 같이 자야한다고 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과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된다며 항변하는 그녀에게 하수인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네가 손등을 두세번 문지르면 언제든지 너에게 올테니, 잘해보라고. 그는 물고 있던 담배를 땅에 떨구고 구두 끝으로 짓이겨버리고서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

 온통 비정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것 투성이였다. 그래서 더 이질적이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서 뒤돌면, 가히 꽃돌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의 남자가 서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의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키스라 -. 한참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려버리면,

 

 ​

 

 

 " 나한테 키스하려고? "

 " 네? "

 " 너도 다른 애들처럼 할거야? "

 " …. "

 " 그리고 사라져버릴거야? "

 

 ​

 그의 목소리는 다소 화난 사람처럼 높았다. 그리고 슬픔이 깃들어져있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다갈색 눈동자와는 대조적으로 암흑에 휩싸인 검은 두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사라져버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와 미션을 다 행하고 난 뒤 다시 본인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버리는 것. 그리고 이 세계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리는 것.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사라지지 않을게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는 안정을 되찾은듯 입꼬리를 올리며 화사하게 웃었다. 마치 산화하는 별빛처럼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의 이름은 공이람이라 했다. 기억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이곳에서 생애를 보냈다고 했다. 그녀가 오기 전에도 이람에게 수많은 여자들이 내려왔고,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가 너무 가여웠다.

 

 ​

 

 " 내 이름은 … 강박희에요. "

 

 " 박희 , 너 이름 진짜 예쁘네. "

 

 " 박희가? 그런 말은 처음 듣네. "

 

 " 같이 걸을까? "

 

 ​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따스함의 온기가 그의 손에 가득했다. 둘은 손을 잡고 걸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만났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라고 그녀가 물으면, 그는 푸스스 웃으며 아까 처음 봤잖아 강박희야. 라고 말해온다. 갑자기 그녀의 손목이 따끔. 작대기 세개가 새겨졌다. 계속해서 속에서 불이라도 난 것 마냥 숨이 죄여와 헐떡이는 그녀를 끌어당겨

 

 ​

 

 

 -쪽.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감싸고 입술 위에 숨을 얹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커진 그녀의 눈은 이내 감겼고, 동시에 두 입술이 맞물렸다. 고개를 틀어 입술을 가르고 그녀의 혀를 얽었다. 입 안이 거칠게 헤지고 핥아지며 그녀는 엷은 신음소리만 연신 내곤 했다. 달콤했고, 정신이 아득해지리만큼 좋았다. 그녀의 속에 난 불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이내 헐떡이는 등을 그가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거짓말처럼 불이 사그라들었다. 숨이 다시 트였고, 그녀가 고르게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그는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

 

 "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

 

 ​

 그의 목소리가 하늘바람처럼 살랑살랑 너울거렸다. 두 뺨을 발갛게 붉히고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면 소란스럽게 이명처럼 반복되어 꽉 찬 불안감을 떨쳐주려 생긋 웃었다. 그러고서 그녀의 목을 다시금 끌어안았고 공ㅇ… 라 말하는 그녀의 말은 이내 그의 입 속으로 삼켜져버렸다.

 

 

 그녀의 손목의 작대기 세개중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

 

 둘의 첫만남, 그리고 키스를 한지 3일이 지났다. 둘은 서로에 대해 좀더 알아가며 한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팬케이크를 좋아했고,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위해 매운 요리를 능숙하게 만들어내 상을 차려주는 그였다. 그는 그날 이후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이 그의 얼굴에 닿으면 슬픈 눈으로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였다.

 

 

 왜 갑작스레 키스를 했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그는 머뭇거리다가 네가 아픈 게 싫었어. 라고 답했다. 이 세상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미션을 미룰수록 혹은 그에게 연민을 가질수록 속에서 불이 난 것처럼 아팠다고 했다. 해서, 차라리 그의 속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빨리 미션을 치루게 하고 보내버렸다고 했다. 그러니 여주 너도 어서 날 이용하고 여길 떠나 그는 말했다. 만지면 분이 묻어나올 것만 같은 어린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서 많은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겠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 드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놓여져 사람들이 오길 얼마나 간절히 바래왔을까.

 

 

 그녀의 뜨거운 입술이 그에게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떼면, 슬픈 표정의 그가 보인다.

 

 ​

 

 " 넌 어차피 떠날텐데 "

 " …. "

 " 더 깊어질수록 힘든 건 나야. 남겨지는 것도 나고. "

 " 이람아…. "

 " 혼자 너와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나야. "

 

 

 미안해. 미안해. 그녀는 섣부른 동정심으로 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를 배려하지 못하고 멋대로 단정짓고 혼자서 마음대로 해버렸다. 생채기 투성이인 그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내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꾹 참았다. 또다시 속에서 불이라도 날 것처럼 갈증이 일었다. 그녀는 그 갈증마저도 꾹꾹 눌러담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람이 더 빨랐다.

 

 

 

 " 잘못한 거 없어, 넌. "

 " …. "

 " 그러니까 그런 아픔 참지 않아도 돼. "

 

 

 

 그녀를 끌어당겨 제 품에 단단히 가둔 채 안아주었다. 간신히 참고있던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져내렸다. 괜찮아, 울지마. 라고 다독이는 그를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그녀가 참았음에도 속에서 불길이 일렁였음을 다 알았겠지. 그래서 그녀를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다가 바로 안아버린 것이겠지.

 

 ​

 " 너 울면 코 빨개져서 못생겨져. 쉿. 그만 울자, 애기야. "

 " 뭐야, 그게 "

 "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나도 있을게. "

 " …. "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위에서 따스한 햇살처럼. 그는 익숙하게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는 품에 다시 꼭 안았다. 심장이 고장난듯이 두근거렸다. 포옹을 할 때 두근거려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녀도 모르게 두근거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가 빙판길에 미끄러진 고양이마냥 쓰러졌다. 당황하여 사고가 마비된 듯 우두커니 서있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그를 흔들었다. 이람아, 이람아. 일어나봐. 숨을 쉬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속에서 불길이 일렁이듯이 텁텁한 갈증과 아득해지는 정신.

 

 

 - 정신 똑바로 차려. 네가 손등을 두세번 문지르면 언제든지 너에게 올테니, 잘해보라고.

 

 

 하수인이 말이 불현듯 떠올라 마지막 남은 안간힘을 짜내 그녀는 제 손등을 두세번 문질렀다. 그녀의 앞에 순간이동이라도 한 냥 하수인이 나타나면, 열리지 않는 입술을 애써 움직여 띄엄띄엄 말했다. 제발, 이람이를… 살려주세요. 그러고는 그녀는 관린의 옆에 쓰러지고 말았다.

 

 

 " 또 다시 이렇게 삶의 수레바퀴가 반복되는구나. "

 

 하수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 둘을 안아들고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

 

 " 그 아이는 어떻게 됐어요? "

 " 네 걱정이나 해, 지금 네가 누굴 걱정할 때야? "

 " 뭐라고요? "

 " 어쩌자고 설렜어. 작대기가 아예 증발해버렸잖아."

 " 이람이 어디있어요. 그아이 좀 …내 눈 앞에 보여줘요, 제발 "

 

 

 깨어나자마자 이람을 찾는 박희. 그런 그녀의 어깨를 지긋하게 누르며 하수인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를 보여줄테니, 두말않고 마지막 미션을 하고 사라지겠다고 약속해. 라고 말하는 하수인. 그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슬픔과 동시에 기쁨. 죽은 줄 알았던 이람이 살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는 할 수 있겠구나. 허나,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이 교차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떼며 이람에게 데려다달라 말하면, 그녀를 안아들고 어느 미로 속으로 향하는 하수인이다.

 

 ​

 한참을 걸었을까, 조그만 오두막이 있었다. 하수인은 그녀를 땅에 내려주며 그가 아직 깨지 못했다고 잠만 같이 옆에서 자고 나오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두막의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벽난로로 인해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그 한가운데에 이람이 잠들어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느리고 옅게 눈을 여러번 깜빡이며 그를 그녀의 눈동자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의 손목을 잡고 쪽, 입을 맞췄다.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이제 다신 그를 볼 수 없겠지. 그를 잊어버리고 싶진 않은데. 그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이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그가 깨지 않으면 긴장하지 않고 옆에서 잠만 자다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

 

 " 미안해, 이람아. 그냥 전부 다 미안해…. "

 

 ​

 그의 눈가와 코, 목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서 그의 품 속으로 파고들어 누웠다. 다부진 그의 품, 이제 다신 안길 수 없는 품. 수없이 만남과 이별의 휴우증을 홀로 감당해왔을 그의 품. 모든 긴장을 다 내려놓은 채 눈물을 적시며 그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또다시 이렇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의 곁을 떠나게 되어서 미안해.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고마웠어- 한참을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그녀는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흐릿흐릿해지는 시야. 점차 형체가 번져감에 따라 잠이 들고 말았다. 그녀가 잠이 들자마자 자는 줄 알았던 이람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품 속에서 잠이 든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주며 피식 - 메마른 웃음을 내보였다.

 

 

 " 뭐가 미안해…이제 나는 잊고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아. 너무 행복하진 말구,"

 

 

 애써 농담처럼 덧붙이는 말이 일렁여온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이람은 제 품에 안긴 그녀의 눈두덩이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그가 그녀의 손등을 두세번 문지르자 하수인이 나타났다. 작별인사는 했어? 라고 묻는 하수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의 작은 어깨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

 " 그녀를 기억해낸거야? "

 " … 잊고 싶어요. 그런데 잊고 싶지 않아요. "

 " … 가여운 것. "

 " 그러니, 그녀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세요. 현실에서도. 그냥 나같은 거 잊고 잘 살아가도록 지워주세요. "

 " 너의 목숨과 맞바꾼 일이니 반은 이루어지게 해주마. 그리고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기다리거라."

 

 ​

 고개를 끄덕였다. 하수인은 머뭇거리다 그녀를 안아들고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덩그라니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의 그녀의 따스한 온기따위 차가운 공기에 맞물려 사라져버렸다.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지금보다 좀 더 앳되어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찍은. 점차 흐릿해지는 이람의 몸뚱아리. 그녀가 쓰러졌을 때, 하수인은 이람에게 숨을 불어넣었다. 미션을 어겼으니, 소멸시켜버리겠다던 하수인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내가 사라지겠다고. 내가 소멸되겠으니, 그녀를 다시 현실세계로 돌려보내달라고. 그렇게 그녀의 작대기 두개와 그의 또하나의 목숨을 맞바꾸었다.

 

 

 삶의 수레바퀴였다. 아무리 지우려해봐도 굴레에 얽매여 그녀의 흔적을 그리워하였다. 이람은 20세가 되던 날 현실세계에서 죽어버렸다. 교통사고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여 산산조각 나버린 그는 그 당시 꽃다발을 들고 한 여자에게 고백하러 가던 길이었다. 어릴 적 함께 자라온 친구같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려 무스도 바르고 셔츠도 빼입었는데. 그의 셔츠는 손에 쥔 장미처럼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그 여자의 이름을 불렀었다. 박희야 박희야 ….

 

 그렇게 그는 이 세상으로 왔다.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곳에 혼자 덩그러니 그렇게 수십년을 끊임없이 상처받으며 살아왔다. 이제 그녀를 위해 눈을 감을 시간이다.

 

 부디 현실세계에서 박희 넌 행복하길 바라. 너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나도 공기, 바람 혹은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되어 널 따라갈게.

 

 

 하수인이 돌아왔다. 박희는 없었다. 진짜 갔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의 얼굴을 잠자코 보더니 하수인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여주었다. 알수 없는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이람.

 

 " 꼭, 돌아오거라."

 

 그와 동시에 그의 숨은 끊어져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이 세계를 태우고도 남을 듯 강렬했지만 고독하고 쓸쓸했던 태양이 져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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