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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1
작성일 : 19-09-06 03:48     조회 : 340     추천 : 0     분량 : 7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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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겁에 질린 군중들처럼 뒤쪽을 향해 질서 없이 몰려가는 바람은 흠집이 가득한 고글 렌즈에 누런 빗방울 같은 모래먼지를 쉬지도 않고 묻혀놓았다. 이제는 그 먼지덩이 만큼이나 더러워진 군용 가죽장갑으로 하늘이나 땅이나 구별할 수 없이 누레진 시야를 한 번 닦아내고 나서, 선원은 아까부터 지치지도 않고 투덜거리던 주제에 관하여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끝이고 뭐고, 전 아직 그런 걸 생각한 만큼 인생에 신물이 난 게 아니라고요!”

 “그게 바로 자네의 문제야.”

 

  다시 한 번 뒤쪽으로 모래 섞인 침을 뱉어 내는 선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장은 안개와 같은 먼지의 구름에 휩싸인 뱃머리에 뒷짐을 진 채 우뚝 서 있다. 그 기품이 넘치는 자세는 모든 신체 부위 중 저 주둥아리만이 미술적 우아함을 이루길 거부하며 나불거리는 것만 무시한다면 제법 그럴싸한 선수상(船首像)으로 봐줄 수도 있을 거다.

 

 “끝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은 맡는 모든 일에 조건을 붙이고 약속을 붙이지. 그게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허나 정작 모든 것의 끝에 다다를 즈음에는, 그런 약속이나 부가 옵션 따위는 언제나 아무 가치나 의미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 일. 무려 3만 셀(Xel)짜리 단순 배달 업무를 그저 자네의 히스테리 때문에 내팽개칠 수는 없다는 거지. 라고 선장은 잔뜩 거드름을 빼며 거듭된 선원의 요청을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다는 듯이 물리쳤다.

 

 “그 3만이 우리 목숨 값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겁니까! 그 잘난 경험은 또 언제 몇 셀에 팔아먹은 거예요?”

 

  선장의 한쪽 손에서 반대쪽 손으로 캐치볼을 하듯 번갈아 올라타는 저 상자가 오늘 배달해야 할 화물의 전부다. 농담이 아니라 저것만 배달하면 오늘 하루치의 업무는 끝이라는 이야기다. 그건 선장이 직접 말한 사항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비록 저 선장이 아기 젖꼭지마냥 입에 달고 다니는 게 궤변과 헛소리이기는 하지만, 일의 시작과 끝에 관해서는 성경의 얇디얇은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도 야단맞지 않을 통찰력이 있다. 사실은 없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믿게 할 만한 배짱과 운은 있다.

  물론 그것이 지금 선원의 불안감을 더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루라는 시간을 통째로 쓰고, 거기에 지불하는 요금은 통상의 50배. 보통은 반색을 하며 소포를 받아들기 이전에 이런 일 자체에 무언가 의심을 하는 것이 상식과 눈치를 가진 사람의 보통의 반응이 아니겠는가.

 

  그래, ‘보통’은 그렇다.

 

 “젊은 사람이 몸 쓰는 일을 이렇게 귀찮아해서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비디오 게임이나 하니까 그래! 내려가서 팔굽혀펴기라도 하다 오게!”

 “아 예, 그 상자나 떨어뜨리지 마십쇼.”

 

  배달해야 할 물건을 받은 지 반 년은 되어 질려버린 장난감마냥 막 다루고 있는 선장에게 들어야 할 말인가 의구심이 드는 선원이었지만, 그 이유를 구구절절 떠드는 일은 없이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위험하건 간에, 지금 저 앞에서 먼지를 듬뿍 탄 더러운 공기로 폐를 채우고 있는 선장이 그를 자신의 무역선 <다 자란 웰시 코기> 아래로 던져버리는 편이 더 건강에 좋다고 여기게 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여겼으리라.

 

  한편, 더 이상 귀를 괴롭게 할 상대가 없어진 선장은 모래바람 속에서 위태롭게도 던졌다 받았다 하던 상자를 도로 두 손에 되돌리고는 다시 한 번 그 무게를 가늠했다. 지금 이 배가 나아가고 있는 메마른 황무지와 흡사한 빛깔의 종이로 싸여진 상자는 섣불리 집어 들긴 망설여지는 가격의 애견 백과사전 정도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고, 한 손으로 집어 들긴 버거운 웰시 코기가 들어있을 법한 무게였다.

  허나 상자에 적혀 있는 주소야말로 그의 배에 타고 있는 유일한 선원의 심기를 건드린 원흉일 것이다. 이른바 ‘옛 주소’라 불리는, 지금은 재와 먼지 사이로 사라져 버린 폐허로 향하는 티켓. 어찌되었든 살아 보려는 생각이 있는 인간들이 모두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 틀어박힌 후, 그들이 살아가던 원래의 터전은 살갗을 녹일 정도로 짙은 오염과, 비슷한 각종 생물들의 놀이터가 된 지가 한참이다. 당신이 애완견을 데리고 그 동네에 산책을 나가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뭐가 어찌 되든 당신이 돌아와서 따질 일도 없을 테니까.

 

  건조한 바람과 모래의 바다에서 고철 더미 같은 어선을 끌고 달려가는 흰 악어가 일으키는 매캐한 안개 너머로 오늘의 화물이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래라면 화려한 빛과 소리의 바다인 도심으로부터 아주 약간 비켜서서 시간과 지갑이 여유로운 자들이 전원(田原)을 꿈꾸는 휴양지와도 같은 동네였을 것이다. 지금은 땅 위에서 바퀴를 달고 마차처럼 돌아다니는 이 웃기는 배가 잠시 정박할 쓰레기 섬일 뿐이지만.

 

  마치 오래 전에 죽어 흰 뼈만 남은 동물처럼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죽은 섬의 한가운데에서, 보는 이의 눈에 심각한 위화감을 일으키는 어느 정원(庭園)을 목격한 선장의 시선이 좀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늘어진다. 지금 갑판 아래에서 무슨 운동을 하는 것인지 쇠 부딪히는 소리만 열심히 내고 있는 선원이 저 풍경을 본다면, 더 극성스러운 소음을 내든가 아예 배 아래로 뛰어내리려 할지도 모른다. 허나, 아니 그러므로 선장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그것’의 정체만을 열심히 추정해 보았다. 최소한 그 시간동안, 선장은 비바람에도 적선의 포격에도 동요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기품 있는 선수상에 완벽하게 가까워져 있었다.

 

 *

 

  움직이지 않던 시간이 배에서 내린 후.

 

 “선장, 정말 이거 안 들 겁니까?”

 “이 바캉스나 다름없는 일에 웬 짐이 그리도 많은가? 마당에 기르는 강아지한테 종아리라도 물릴까 봐 겁나나?”

 

  지금 선원의 차림새를 보자면, 호들갑이라는 표현이 별로 호들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마 자기가 관리하는 것들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것들을 모조리 추려서 가져왔을 터이다. 양쪽 허리춤에 두 개씩 달린 홀스터의 권총과 양 손에 든 소총, 등에 멘 것은 두 개의 연료통으로 미루어 보아 화염방사기일 것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고는 하나-적어도 소총 한 자루 정도는 옆 사람에게 넘기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종아리요? 이런 데서 키우는 강아지가 종아리만 물고 넘어간 적 있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고 넘어갈 건, 이거면 충분하네.”

 

  아까까지만 해도 마구 던지면서 놀고 있던 상자를 이제는 양 손에 공손히도 들고서 선장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선원에게는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이 허물어진 마을을 걸어 나간다. 앞뒤 맥락을 생선 손질하듯 깔끔히 잘라내고 보자면 선장 쪽이 배달부로서 올바른 몸과 마음가짐을 한 것은 맞다. 맞기는 하나, 잘려져 바닥에 떨어진 생선 대가리도 이런 상황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꿈도 꾸지 말게. 비싼 거니까.”

 

  생선 대가리가 반론할 틈을 주지 않고 선장이 꺼내든 것은 한손으로 착 감싸 쥘 만한 사이즈의 검은색 원통. 겉에 쓰여 있는 글자로 보아선 아마 후추 스프레이인 것 같다. 이빨을 드러낸 개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인간을 퇴치하기 위해서 쓰는.

 

 “아, 네.”

 

  말문이 막힌 생선 대가리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지고 나니, 총이라면 조금 덜 챙겨 와도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그였다. 이만큼이나 들고 있으니 역시 무겁긴 무겁다.

 

  바다가 슬슬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그들은 상륙 당시의 그 상태인 채로 마을의 중심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한 명은 느긋하게, 한 명은 조심스럽게.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신속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모습이다.

  마을은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세상,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편이 <최고의 분위기> 상을 받을 만 하다. 무엇이든 살아있지 않아야 할 상태에서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이었던 적은 거의 없으니까. 그나마 남아 있는 건물의 유리창들도 거의 깨져 있거나, 안쪽의 검게 뭉친 어둠을 담고 지상에 조용히 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매끄럽게 잘 마른 모래를 코 아래까지 끌어올려 덮고 있다. 세월이 충분히 그것들을 굽고 나면, 남아있는 것들도 곧 모래에 파묻히고 끝에는 모두 모래가 되겠지.

 

 “124번 도로! 이곳일세.”

 

  선장이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길을 안내했다. 그 표지판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 전에 떨어져 모래 속에 처박힌 후 가까스로 선장이 찾아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미덥지는 않았지만, 선장과 함께 하는 일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원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런 조리법에 따라 언제나 일은 올바르게 끝이 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둥글고, 붉고 달기 때문에 짜잔! 종이 개구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선장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것이 선원의 삶에서 몇 가지 없는 즐거움(또는 위로) 가운데 하나였다. 또는 선장에 관한 몇 가지 없는 진실이기도 하고.

 

  줄곧 귀청과 고글 렌즈를 괴롭게 하던 모래바람도 이 섬 안에서는 어째서인지 잠잠하다. 마을은 말이 없는 짐승이고, 따라서 지금 두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발소리와 송장 냄새처럼 귓구멍을 찔러 대는 정적뿐이었다. 아, 정정. ‘뿐이었었다.’

 

 “선장님.”

 “왜 그러나?”

 “혹시 이 근처에 잔디 깎는 집 있답니까?”

 “오늘은 없는 것 같네만.”

 “-그러면 아까부터 방귀를 좀 길게 뀌고 있습니까?”

 “오늘은 아닌 것 같네만.”

 

  선원은 한숨을 쉬며, 손에 들고 있던 소총의 노리쇠를 당겨 장전한다. 그나마 이곳의 온화함을 유지시켜 주고 있던 정적에 잔금을 내며 점차로 커져 오는 소음을 더 이상 무시할 만큼 선원은 온화한 성격이 아니다. 길고 느긋하게 방귀를 뀌는 사람도 아니고.

 

 “그 스프레이 유효 기간은 남았습니까?”

 

  선장은 대답 대신 스프레이를 위아래로 경쾌하게 흔들 뿐이다. 대답을 떠넘겨 받은 스프레이 또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남아있지 않은 게 유효 기간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을 확인해 보기도 전에, 시야가 닿지 않는 폐허와 잔해 뒤에서 기계 굴러가는 소음을 내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사람들이 저런 동물들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온 몸에 한 줌의 털도 없고, 남아있는 가죽도 마르고 뒤틀렸으며, 꼬리가 있건 없건 그걸 사람에게 흔들 생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체 어떤 주인이 먹여 기르는 것인지 송아지만한 덩치를 가진 저것들이 아마 이 동네에서 기르는 ‘개’들일 것이다.

 

  지금은 전혀 쓰다듬거나 함께 산책을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모양새지만, 선원은 그것들을 보며 공포와 혐오감을 느낄지언정 놀라지는 않는다. 이 글러먹은 세상에서 저것들은 굳이 신기해할 것도 없을 만큼 흔해빠진 생명체들 중 하나다. 그 기원은 ‘자연’으로부터는 대양 세 개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러므로 저들이야말로 지금은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지구 한 바퀴 돌아서, 이곳을 방문하는 이방인이든 관광객이든 친절하게 대할 생각이 전혀 없는 자연.

 

 *

 

 “앉아!”

 “장난치지 말고 좀 도와요!”

 

 *

 

  다치거나 없어진 곳이 하나도 없는 것은 간단히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나처럼 선장이 부리는 마법 중 하나라고 해야 할까? 이성적인 판단으로 금방 후자라고 단언해 버리는 선원이 조금 자괴감을 느끼든 말든 선장은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진 스프레이 통을 등 뒤로 그에게 던져주었다. 선장이 하던 것처럼 한 손에 들고 흔들어 보았지만, 안에서는 내용물이 흘러 다니는 소리도 무게감도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버튼을 눌러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선원은 등 뒤의 모래더미에 빈 깡통을 던져주었다. 평소처럼 선장의 언행 하나하나에 말대답하는 버릇은 방금 벌어진 소란에서 저 깡통이 개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쫒아낸 시점에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선장님.”

 “왜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위화감으로 가득한 정원(庭園) 쪽에 말대답을 하는 쪽이 훨씬 시급했으니까.

 

 “저기, 아니죠?”

 “배송지 말인가?”

 

  이야기의 시작부터 반복되고 있는 모래, 먼지, 사막과 같은 단어들.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분류의 풍경 한 페이지가 눈앞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서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질적 묘사다. 반쯤 무너져 내린 집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마당을 꽉 채우며 싱그럽게 흔들리는 푸른 정원과, 부서진 집의 지붕을 뚫고 올라와 이 마을의 넘치는 햇살을 독식하는 커다란 나무. 좀 더 한가로운 이야기였다면 평화, 안식, 경외와 같은 단어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 이야기는 전혀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세상에는 예전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것들도, 그저 여기가 살 만해서 살고 있다는 한가로운 사정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정확히 이곳이네.”

 

  선장은 정확히 선원의 끔찍한 예감에 들어맞는 답을 돌려준다.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걸 보는 것. 그것은 대략 둘 중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위험하거나, 끝내주게 위험하거나.

 

  이제 와서 배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선장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익히 알고 있기에, 선원은 그저 선장이 마당을 지나 살짝 밀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현관에서 초인종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만 그만두게 했다.

 

 “그냥 현관 앞에 두고 가면 안 될까요?”

 “안 되네.”

 “달리 들고 갈 사람도 없잖아요?”

 

  아까 본 강아지-들이 그러진 않겠지. 아마.

 

 “돈은 괜히 받은 줄 아나? 바로 여기에 서명도 받아서 가야 한다고. 규정은 규정이야.”

 

  규정에 대한 교육 따위는 받은 적도 없었다.

 

  어쨌든 현관은 문을 여는 정도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상자를 선원에게 넘겨주고 나서 선장은 낮게, 마치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집주인을 겨우 깨울 정도의 인사말을 건네며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배달부의 도착을 반기며 차가운 레모네이드 두 잔을 권하는 집주인 따위는 없었다. 대낮에 불필요한 전기 따위 켜지 않는 집 안은 적어도 낮잠만 자기엔 더없이 아늑할 것 같았다. 보이는 모든 것에는 바깥의 것과는 다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밀폐된 시간에서만 쌓이는 모래가 두껍게 덮여 있었다. 마치 이곳의 시간 자체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부서진 천장에서 밝고 몸에 해로운 햇빛이 아낌없이 들어오는 부엌에 이르러서 선장은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그처럼 마냥 의도적 무지와 고의적 망상에 젖어 사는 사람이라면 지금을 아주 조금은 아름답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더없이 그 색이 바래, 희미한 무늬의 흔적만이 남은 바닥에 무수한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낸다. 부엌의 한쪽 벽을 벽난로 굴뚝마냥 타고 올라간 나무는 마찬가지로 모든 색이 닳아 없어진 하늘에 푸른 연기를 아낌없이 흩뿌린다. 그런 이유로든, 아니면 잠시 후에 말할 이유로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여긴 없는 것 같은데요.”

 

  애써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쓰며 선원은 능청스레 시치미를 뗐다. 아까의 이야기를 잇자면, 나무의 아래로는 이 집의 기반을 대체할 기세로 자라난 나무뿌리들이 바닥을 받치고 있다. 받치는 부분은 딱 두 사람이 부엌 입구에서 밟고 있는 부분까지. 방의 나머지 부분은 쏟아지는 지독한 햇빛조차도 바닥을 밟지 못하는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다. 원래 구멍이 있던 장소에 나무가 자란 것인지, 아니면 나무가 자라다 보니 구멍이 생긴 것인지 본인은 입만 벌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선원은 그러고 보니 지하에 방공호 따위를 짓고 사는 사람도 있다지. 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

 

  선장은 업무 중에 딴생각을 하면 안 되지. 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정정. 떠올리기만 한 건 아니다. 선원을 그 구멍 안으로 걷어차 떨어뜨리며 능청스럽게 한 말이 그것이었다.

 

 “서명은 꼭 받아 오게!”

 

  아직 선장의 말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선원은 다음에야말로 선장을 배 아래로 걷어차 주겠다는 다짐을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슴에 새겼다.

 

 “도장도 됩니까?”

 

 
작가의 말
 

 인생은 샌드 크래커와 같다.

 대부분 별로 먹기 싫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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