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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오늘의 밤을 지새운다
작가 : 시금치파스타
작품등록일 : 2019.1.7

여자친구 은하에게, 별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지새우는 밤들을 계속 어둡게 지켜준 마하트마에게
그리고 당신께.

 
#1. 남겨지다 (1)
작성일 : 19-01-07 15:03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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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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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내 아들이면 좋겠어라고, 유진은 말했었다.

 

  당연히 나도 그녀가 내 엄마이길, 바랐던 것 같다. 엄마가 떠나가고 수개월이 지났다. 내가 버려졌다기보다는 엄마가 떠났다고 말하는 게 듣기에도 말하기에도 편할 것이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나를 비추는 별이 되려고 사라진다는 메모 앞에서 나는 한참을 굳어 있었다. 엄마는 나와 함께 빛을 받는 데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걸까.

 

  식탁 위에 두고 간 통장에는 정말 별 같은 것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들어있었다. 불안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얼마만큼을, 얼마만큼을 남기고 간 걸까. 내가 떠맡은 건 한 사람의 돈인가, 한 사람의 인생인가. 그녀는 얼마만큼을 자기 인생의 몫으로 가지고 간 걸까. 그런 걱정이 덮쳐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날은 여전히 선명하다.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삼촌은 엄마가 사라진 걸 알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시,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어련히,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것보다는 당장 내일의 일이 문제였다. 엄마가 없으면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다음 날 엄마 대신 투자자들 미팅에 참여한 삼촌을 보고 떼로 몰려든 기자들에게, 삼촌은 엄마의 건강이 안 좋다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의 포털 사이트에 수두룩한 우리 엄마에 대한 추측도 잊을 수 없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또는 회사 경영이 위기에 처했다는 헤드라인들이 무덤덤하게 줄지어 있었다. 아니, 심지어는 이미 죽…었다는 기사와… 또 어쩌면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세워 뒀을 댓글들도 하나하나 또렷하다. 드디어 후계자 바뀌는 건가. 잘 죽었네, 내가 투자업계에서 일하는데 저년 투자자들한테 몸 팔고 다녀서 저 자리까지 간 거 유명함. 진짜? 증명해보셈. 저년 아들 아빠 없는 거 보면 계산 안 나옴? 계산이, 나로서는 설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감히 내 손으로 꼽지 못했다. 저들이 바라는 건 우리 엄마의 죽음임에 틀림없었다. 왜? 왜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다. 유진이 한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는 건, 생각보다는 외로울지 모른다고. 누구나 내가 상대방에게 가지는 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에, 또 둘러싸인 사람이 그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를 소중히 여길 순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유진은 말했다.

 

  의미 없는 사람 하나의 죽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엄마의 실종은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의 실종은 밥을 먹는 자리에서 어색함을 덜기 위해 쓰이고 있었고, 막 싸우고 화해하는 커플이 무심코 이야기하다 웃고 떠드는 계기로, 무슨무슨 시험이나 공채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 엄마의 실종은 어느 틈에 죽음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뚝 떨어졌던 주가가, 실질적인 경영자가 삼촌으로 바뀐 뒤 금세 회복하는 것을 넘어 그전보다 상승할 때까지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를 비추는 별이 되려고 사라졌다는데, 달리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보다 엄마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삼촌은 그래서 어느 날 밤, 우리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와 나를 와락 끌어안고는 한참을 말했다.

 

  “나는, 나는 네 편인 거 알지? 걱정하지 마…. 나는 네 편이야….”

 

  알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삼촌이 굴려 놓은 회사는 관심도 없던 나였다. 그때쯤엔 이미 재산 상속 과정도 끝난 것이 아니냐는 기사도 마구 쏟아져나왔다. 더구나 내가 엄마가 두고 간 통장으로 차 몇 대를 충동적으로 사 버린 걸 들키고부터는 더 그랬다. 차를 타고 가는 건 항상 재미있었다. 물론 난 운전을 배운 적이 없었고… 차를 몬 것은 항상 명운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마다 나는 잠시나마 빽빽한 헤드라인 위를 짓밟고 달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명운은 막 이름을 날리던 검사였다. 오픈카를 타고 명운과 술에 잔뜩 취해 속도위반을 한 게 화근이었다. 검사와 재벌가의 철없는 후계자가, 한 사람이 평생 벌어도 살 수 있을까 말까한 차를 타고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스토리는 또 다른 헤드라인으로 줄지어졌다. 다행히 이곳저곳에서 인맥을 끌어다 써 법적인 책임은 벌금과 명운의 면허 정지로 끝이 났지만, 그 뒤로는 명운과의 드라이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냈다. 명운은 항상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무슨 특허 소송 중이었는데… 아무튼 그 녀석은 그때, 꽤나 유명한 검사 밑을 따라다니던 조무래기였다. 나 또한 큰 건을 해결하고 다니던 삼촌을 따라다니던 조무래기였다. 난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배가, 배가 고팠다. 울산으로 파견을 나갔다 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길이었고, 전날부터 뭐 하나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다.

 

  문제는 나와 동행한 사람들 중 누구에게도 배고프다는 투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껏 긴장된 분위기에서 재판은 진행되었고, 나는 그와, 그와 같은 처지의 조무래기들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니터로 재판이 보였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몹시,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얘들아, 우리 짜장면 시켜 먹자!”

 

  그 말 한 마디가 갖는 파급력은 엄청났다. 척 봐도 법대생들 같은 무리들이, 기다렸다는 듯 척척 움직이며 비치된 신문을 깔고 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한창 전화기에 대고 메뉴를 주문하고 있던 그놈이…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입모양으로 ‘혹, 시, 같, 이, 드, 실, 래, 요’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었지.

 

  갑자기 내 옆에 앉아 자장면을 먹으며 그는 내가 회장의 외아들이라는 것, 그와 같은 조무래기 처지라는 것을 작정한 사람처럼 캐냈다. 그는 분명히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떤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었다. 결국 우린 같은 처지라면서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했다. 원래 꿈은 경찰이었는데, 원서를 쓰려다 자기 인생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진로를 틀었다고 했다.

 

 

  “그 비밀이… 뭔데요?”

  “후, 놀라지 마세요. 정말 중요한 운명입니다.”

  “중요한 운명이라면…?”

 

  다시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표정으로 그 말을 하던 명운은 미친놈 그 자체였다.

 

  “그건 바로… 제가 돌잔치 때, 망치를 잡았다는 겁니다.”

 

  그 뒤로 호기심이 동한 나는, 외부 라인을 통해 그와 접촉해 연락을 주고받았고,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고, 생각보다 지독한 운명론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가 판단하기에 그의 운명이 비극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 그 운명을 바꾸는 인물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드라이브를 더 이상 못 하게 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지만, 어느 날 우리 집 앞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그에게 나는 어떤 경외심마저 품게 되었다.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는 확실히 더 나았는데, 우선 헬멧을 쓰면서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한 거냐는 내 물음에도 명운은 말했다.

 

  “이게 다 운명인 거지. 내가 라인 다 통해서 겨우 재판 받고 나오는데, 갑자기 우리 처음 봤을 때 짜장면 먹었던 게 생각나는 거야.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게 있더라고. 오토바이! 심지어 티도 잘 안 나잖아?”

 

  언젠가는 삼촌에게 불려 간 적도 있었다. 잔뜩 술에 취한 삼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네 엄마가 실종됐는데 넌 그 새끼랑 놀아나고 싶냐!”

 

  뭐라 대답할 이유도 없이, 삼촌은 엉엉 울어버렸다. 하긴 너도 얼마나 힘들겠냐는 삼촌의 말엔 조금 찔리기도 했지만, 이내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이상할 만큼 엄마의 실종에 대해서도, 밤하늘에 별에 대해서도 익숙해진 느낌이다. 그건 명운의 탓이 크다. 명운은 최대한 내 앞에서 언급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한참을 침울해 있던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야, 내가 가끔, 진짜 가끔 운명이 너무 비극이라 이건 뭐 나 따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겠다 싶을 때 하는 방법이 뭔줄 아냐?”

 

  목이 멘 대답이 돌아갔다.

 

  “뭔데.”

  “넌 기막힌 반전으로 끝나는 영화를 두 번 보고도 소름이 돋아?”

  “아니지.”

  “맞아, 아니지. 어차피 결말을 아니까 딱히 놀랄 것도 없는 거야. 가끔 두 번 보고도 어떻게 이런 반전이 있나 싶어 입을 틀어막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그 구성이 치밀해서 놀라는 거지 절대 반전 자체가 놀라워서는 아니거든.”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아니, 끝까지 들어봐. 이를테면 그 영화의 주인공은, 이미 그 영화를 한번 본 사람이야.”

  “주인공이 어떻게 자기가 나온 영활 봐.”

  “쉿. 끝까지 들으라니까! 어디서 본 영화가, 지금 본인한테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거야. 처음엔 의심하고, 결국 받아들이겠지. 그 다음엔 어떻게든 바꿔 보려고 할 테고, 완전히 다른 선택들만 골라서 할 거야. 그렇게 다른 선택을 하면서 결국 다다르게 되는 데가 어딘지 알아?”

  “어딘데?”

  “바로 이미 한번 본 영화의 클라이막스, 반전이 있는 부분이야. 주인공은 각기 다른 선택으로 구성된 영화를 두 번 보든, 세 번 보든 결국 그 순간에 도달하게 될 걸 알게 돼. 여주인공을 구하고 대신 죽을 것이냐? 내 친구들을 살렸으니 만족할 것이냐? 그 선택의 순간에 다시 놓인 순간, 주인공은 깨닫게 되는 거지. 결국 여주인공이 모든 것을 계획한 범인인 걸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선택은 항상 여주인공을 구하는 결말일 걸 말야.”

  “형, 난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돼. 왜 클라이막스로 돌아가는데? 왜 결말을 아는데 여주인공을 구해?”

  “그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하면 자기가 주인공이 아닐 걸 아니까.”

  “뭐라고?”

  “언젠간 너도 이해할 날이 올 거야. 어차피 비극으로 끝나야만 한다면, 차라리 당당히 비극을 맞이하고 관객에게 반전을 드러내는 역할을 선택해야만 해. 그게 그 영화의 상영 시간 동안 주인공이 가질 수 있는, 제일 큰 존재감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야말로 영화를 이미 한번 본 주인공이라는 생각이야. 앞을 내다보고 이런저런 선택을 하면서 짜잘한 ‘다른 선택’들을 하지만, 결국 클라이막스에 도달할 거고 반전을 드러내는 선택을 하겠지. 그 순간이 언제일 것 같냐?”

  “글쎄….”

  “뒤질 때.”

 

  그를 홱 돌아본 내 표정을 본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해진 선택을 하게 돼. 누구나 자기가 왜 죽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거든.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벼락에 맞아서 등등…. 심지어 전쟁터에서 한 순간 총을 맞고 죽은 사람조차, 전쟁터에 나갈 때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거잖아?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나, 그게 결국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걸 이해하게 되는 거야.”

 

  솔직히 그의 말을 모두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뒤로 나는 엄마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조금 일찍,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황당하지만… 차라리 받아들이고 주인공이 되는 그의 방법은 나에게는 확실히 먹히는 것이었다. 솔직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매일 밤마다 있는 삼촌의 울음도, 하던 업무를 다 중단시키고 쉴 시간을 준, 삼촌 나름의 ‘배려’도, 이 틈을 타 엄마를 찾았다며 허위 제보를 해온 미친년도, 그저 정해진 결말에 가는 조금 ‘다른 선택’에 불과했다. 그런, 생각이었다.

 

 
작가의 말
 

 월요일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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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남겨지다 (1) 2019 / 1 / 7 345 0 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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