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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성간전쟁
작가 : MIRN
작품등록일 : 2018.12.20

여러 사람들이 바라보는 별들의 전쟁은, 멀리서 바라볼 때 놀랍도록 아름다웠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화려한 핓빛이었다.

 
00 : 역전 (1)
작성일 : 18-12-20 18:29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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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 프롤로그

 

 

  붉게 빛나며 이따금씩 점멸하는 좁은 내부는, 때마침 불어닥치는 거센 난기류 탓에 심하게 덜컹거리는 중이었다. 열 명이 빼곡하게 원형의 내벽에 고정된 좁은 실내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대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한 칸 너머가 적진임에도 바이저를 올린 탓이었다. 고대엔 이런 얇은 장갑판에도 안심하고 편한 복장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논리였지만, 지금 와서는 쓸모없는 정보였다. 별로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다.

 

  주변이 심하게 덜컹거리는 탓에 대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위험하니 바이저를 내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대위가 손을 내밀어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쳤다. 계속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대위의 말이 답답해 바이저를 올리고 되물었다.

 

  이어지는 갑작스런 섬광. 눈앞을 스치며 시야를 가득 채우는 빛의 기둥이 붉은색의 좁은 세계를 반으로 양단한다. 눈을 태워버리는 강렬한 섬광에 눈이 멀고, 빛을 막아보려 허우적거리는 손과 눈꺼풀을 뚫고 한없이 태양에 가까운 밝은 빛이 안구를 강타했다. 살을 찢어발기는 온도와 소음이 귀를 멀게 한다.

 

  어느샌가 내려온 바이저가 센서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귀에 아직 남아있는 여분의 이명이 들린다. 귀 안쪽에서 무언가 흘러나오고 있는 감촉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눈이 타들어갈 듯이 아픈 탓에 아직 주위 상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침묵하는 세계로 미루어 볼 때 고막이 터진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움직이고 싶지만 아직 고정되어 있는 등과 허벅지가 허리를 숙이려는 육체를 막는다. 아직 시린 눈을 신경질적으로 깜빡거리며 제일 먼저 바라본 전방에는, 선명하게 푸른 하늘이 드러난 광활한 세계에 수백수천 개의 빛의 기둥이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땅으로 강림하는 수만 개의 빛덩어리가 그 여백을 메우며 불타올랐다.

 

  반토막난 내부를 향해 시선을 약간 돌렸다. 깔끔하게 절단되며 아직 남아있는 전류를 내뿜는 케이블이 보인다. 시선을 조금 더 돌렸다. 도롱이를 닮은 복합장갑의 관 속, 바이저를 내린 강철의 기사 셋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느꼈다. 내벽을 이루는 회색의 어두운 강철을 감상하며 빛으로 따가운 안구를 채 진정시키기도 전에, 상륙 포드의 파괴와 관제 AI와의 접속 손실을 감지한 세컨드 AI가 멍청한 선택을 저질렀다. 추락하고 있던 이쪽의 포드를 격추 상황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적이 공격하지 않은 것을 모르는, 경험 부족한 인공지능이 남아 있는 병력을 전부 사출했다.

 

  사방으로 추진기를 불태우며 뻗어 나가는 다섯 기사들을 향해 3층 건물만한 대공포가 포구를 정렬했다. 포구가 점으로 보이는 완벽한 정조준에 겁이 질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푸르다기보다는 밝은 노란색에 가까웠다.

 

 ***

 

  전투가 개시된다.

 

  이미 수 차례에 이른 사전 궤도폭격으로 어딘가는 부풀어 오르고, 또 어딘가는 통째로 가라앉아 버린 지반에 다시금 폭발이 이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두 동강이 나 버린 상륙 포드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아 착지한 이후부터는 도통 기억이 나는 것이 없었다. 전투 각성제 때문인가. 그렇게 믿고 싶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정도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하늘에서 쏟아내리는 수천 개의 빛덩어리들이 고대하던 아군의 상륙 포드인지, 혹은 적군의 궤도폭격인지 망가져 버린 스캐너와 망원렌즈로는 잘 구분이 가지 않을 때부터인가.

 

  마침 웬 건물 안에 들어와 있던 터라 벽에 힘겹게 기대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힘없는 고개와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내외의 중장갑이 모두 완파되어 살갗이 보이는 왼팔에 붉은 실선이 흘렀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엑소슈트 내부 어딘가의 상처에서 팔뚝을 통해 핏물이 흘러내려가 더러운 검지손가락을 거쳐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붉은 궤적 두 줄기가 왼팔에 남았다. 큰 상관은 없었다. 무슨 상처인지는 몰라도 아마 금방 지혈될 테니까. 그보다 서 있을 힘도 부족해 바닥에 주저앉게 되어 버린 것이 더 중요했다.

 

  환자가 앉자마자 바로 다시 일어서도록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고장나 버린 스텔스용 재머가 맛이 가 버린 탓에 어디선가 귀신같이 ATM(AnTi-Matter)반응을 찾아냈는지, 엑소슈트 전 방위에 걸쳐 반투명한 붉은색 사선 경고의 궤도가 시야를 가득 메우며 펼쳐져 있었다. 이 근방 전체가 피격 범위 안에 들어간다는 증거였다. 사선 경고가 반응할 정도의 센서가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영문도 모른 채로 죽을 뻔했다. 궤도폭격의 유사 빔 병기든 적 전차의 열화포든간에 해당 층 자체를 날려먹을 생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 번 주저앉으니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다운된 인공근육 탓에 서 있기도 벅차 주저앉았던 몸이었다.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일어선다고 피할 방도도 없을 만큼 실내 전체에 사선 경고의 궤도가 걸쳐 있었지만. 오랜 피격으로 중장갑과 인공근육이 벗겨지고 뜯겨나가는 도중에 살점도 함게 찢겨나가 꽤나 깊은 상처가 드러난 하반신이 맹독성 대기에 그대로 노출된 탓에 안쪽에서부터 맛이 가 버린 듯했다. 안에서 터진 상처인지 슬슬 무서울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보랏빛 상처가 덜덜 경련했다.

 

  어떻게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엑소슈트를 느릿하게 움직이려다가, 삐이이 거리는 관제 AI의 최종경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탄이 스쳐 출력 조정권을 잃은 불안정한 상태의 오른쪽 종아리 부스터를 가동했다. 출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다. 궤도강하용 브레이크에나 사용되는 수준의 과출력일지, 혹은 슬러스터 분사가 들쑥날쑥해져 피하지 못하고 증발될지. 어느 쪽이든 경험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점화. 몇 번 반짝이던 노즐 안쪽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차를 두고 감당 못할 반발력이 폭발했다.

 

  퍼엉, 하며 엄청난 순간가속이 엑소슈트를 건물 외벽과 함께 날려 버렸다. 과도했지만 적어도 과소한 것보단 나은 결과였다. 건물 내벽과 등의 충돌 탓에 시야에 암전이 일어났다. 아슬아슬하게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빛의 기둥이 보인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잠시 끊어졌다.

 

  이미 몇 번인가 크게 부딪힌 머리는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엑소슈트와 벽의 충돌에 한 번, 이후 어느샌가 착지해 있던 땅바닥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바로 다시 한 번 더 필름이 끊겼다. 귀에서 피 섞인, 정체불명의 투명한 액체가 적지 않은 양으로 질질 샜다. 콧물 같은 느낌이었지만 점성은 적었다. 짐작되는 것이 있었지만 무엇인지는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전차의 열화포로 인해 플라즈마화된 근처 공기를 방어한 것을 마지막으로, 어찌어찌 재생을 시작하던 점탄성 반응 배리어가 완전히 박살났다. 녹빛의 끈적한 점액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배리어가 유지력을 상실하고 엑소슈트 전체에 줄줄 흘러내렸다.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다운된 것이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 외에는 별로 드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박살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어쩌다 박살난 장갑 사이사이로 스며든 고점탄성 물질들이 걱정이었다. 관절 부분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움직일 때마다 제멋대로 굳어 버리겠지.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동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원래라면 물로 씻어내야 하겠지만, 상처입은 맨살이 노출된 엑소슈트를 극독의 하천에 담글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대로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엑소슈트의 수통을 열 수도 없었다. 먹을 물도 다 떨어져가는 와중이다.

 

  다시 한 번 일어나며 몸 상태를 체크. 양 팔과 손가락. 붙어 있다, 움직일 수도 있다. 양 다리. 붙어 있다, 움직일 수 있다. 과다투여한 전투 각성제의 영향으로 신경이 거의 마비된 팔다리 탓에 허공을 걷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지가 붙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어 잔여 무장을 확인했다. K17a1의 파츠로 부착된 40mm 유탄발사기 잔탄 제로. 20mm 레일건 잔탄 312발. 세 발씩 지급받는 오른팔의 반물질 주포 잔탄 셋. 왼팔의 근접관통무장 건재. 양 팔의 6연장 체인건 우측 잔탄 제로, 좌측 잔탄 784발. 외부 장갑 손상도 60% 이상. 우측 하단 부스터를 제외한 5개의 클러스터 추진기 완파, 인공 근육 운동량 16% 미만. 점탄성 반응 배리어 대파 및 재생성 필요 발전량 부족으로 인한 재생성 불가. 엑소슈트 전체 사용 가능 출력은 엔진 발전량 최대치의 9% 이하. 광학 미채 시스템 무작동. 전파 방해를 피해 폭격 지원을 송신한 횟수 세 번. 실패는, 아마 두 자릿수 이상.

 

  상태 체크 이후, 어느 콘크리트벽에 박혀 주저앉은 채로 인공지능이 지목한 위치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배짱 좋게 3층이나 되는 곳에서 창문 사이로 빼낸 전차포를 다시 건물 안으로 들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험상 포신의 형태로 유추했을 때, 아까의 사격을 한 전차가 분명했다. 사격 관제 시스템이 보정하는 가상의 초록빛 광선이 총구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3차원 도트사이트 하단에 표시된 현 탄창의 잔탄은 62발. 4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이면 텅 비어 버리는 양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절대적인 영역에선 내려왔어도 아직 기계화보병의 무장은 제국 육군을 벌벌 떨게 하는 출력이었기에.

 

  조정간을 연발, 방아쇠를 꾹 누른다. 철갑탄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전차포 이상이었다. 도트사이트 하단에 표시되는 잔탄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갔다. 아끼지 않으면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손가락에서 힘을 풀었다. 원 상태로 돌아가려는 방아쇠의 스프링에 밀려 손가락이 자연스레 펴진다.

 

  20mm에 달하는 구경을 가진, 총열을 벗어났음에도 아직 초고압의 전류가 남아 흘러 파직거리는 탄두 서른 두 발이 공기를 찢는 폭음과 함께 초속 2마일의 탄속으로 쏟아지면서 3층의 외벽을 완전히 박살냈다. 소음을 극한까지 차단하는 헤드모듈 없이는 잠시도 버티지 못할 평균 160데시벨의 전장에서, 일렉기타를 한 음으로 미친 듯이 튕겨대는 듯한 보병용 레일건의 소음은 자연스레 묻혀 사라졌다. 살상력만을 남긴 수십 발의 탄환에 관통당한 전차 내부의 승무원이 레일건의 잔여 고압전류에 튀겨지고, 곧이어 엔진과 탄약고가 폭발하며 3층 바닥, 2층 바닥을 차례로 뚫으며 바닥에 쿵, 떨어졌다. 도중에 한 번 뒤집힌 전차의 해치에서 뭔가가 줄줄 흘러나왔다.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전부 죽었음에 확신했다.

 

  몇 발 남지 않은 가벼운 탄창에서 잔탄을 뽑아낸 뒤 던져 버리고, 가슴팍에서 솟아나온 새 탄창을 꽂았다. 사실상 마지막 탄창이었다. 달팽이집 모양의 탄창이 부드럽게 화기의 결합부로 말려들어가며 드르륵 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많은 양을 연속발사한 총열에서 한 줄기의 새하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포연이 아니라, 뜨거운 총구를 식혀 주는 냉각수의 증기였다.

 

  그보단 이미 수만 발에 달하는 탄환이 지나간 총열의 교체가 시급했다. 당장이야 어찌어찌 버텨주고는 있지만, 초고압의 전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나다니는 레일의 마모가 더 심해지면 단순한 정확성 문제가 아니라 총열 자체가 폭발할 수 있었다. 정확도야 관제 AI의 오조준 보정으로 해결하더라도, 지금도 총구를 아래로 하고 톡톡 두들기면 총열에 금이 가서 생긴 검은 가루가 뭉텅으로 떨어질 지경이다.

 

  전투 시마다 교체되는 새 총열이었지만, 관리 한 번 없이 동료의 엑소슈트에서 건져낸 탄약까지 써가며 단시간에 만 발을 쏴재끼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도 언제 바꾸기는 해야 되는데. 전우들의 엑소슈트 내에서 보호되는 탄약은 남아 있었지만, 개인화기는 전부 노획된 모양인지 빈손으로 관짝에 누워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한계에 다다른 사용량에 다운되어버린 인공근육 탓에 외골격의 출력만으로 힘겹게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다른 조잡한 기종들이랑 다를게 없지만, 하고 불만스럽게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것도 문제기는 하지만, 이전 추락의 충격으로 코에 직접 충격이 전달된 건지, 아니면 뇌 어딘가에서 뭔가가 또 맛이 가버려서인지 모를 코피가 양쪽에서 터진 것도 나름 중요하다면 중요했다. 종이 한 페이지는 빼곡히 채울 병명이 하나 더 늘어났다. 단어 한둘 늘었다고 해서 실감될 것은 없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생겼다. 오랫동안 침묵하며 광범위한 재밍과 맞서 싸우던 두 인공지능 중 하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간신히 유지한 통신로를 이 악물고 지켜내는 3세대 인공자아를 제외하고, 기계화보병 엑소슈트와 함께 태어난 관제 AI의 보고가 들어왔다. 한참 전에 그렇게 고대하던 원격 포격 지원이었다.

 

  - 스타호크 1303번기에 폭격 지원 허가가 내려왔습니다. 남서쪽 직선거리 3km 지점에 활공 중인 팻맨 1303-3번기가 M-14 전술지원병기 17발 투하 명령을 하달. 체크 포인트 지정 제한 시간 42초. 제한 시간이 지연될 시 기폭 시퀸스가 철회되고 차후 공중지원에 불이익을 받을 수….

 

  성층권에서 아직 기동하고 있는 전폭기 편대가 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베테랑 인공지능인가, 하고 생각하며 제한 시간이 카운트되는 관제 AI의 사격 관제 화면을 응시했다. 열일곱이라니, 일개 중위의 계급으로 감당 가능한 파괴력이 아니었다. 지원 요청이 재밍 탓에 극도로 줄어들어 머쉬룸 재고가 흘러넘치는 상황이든 언제 격추당할 지 모를 상황이라 마구 뿌려대는 것이든 둘 중 하나의 경우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둘 다에 해당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어느 쪽이든 지금 이렇게 고민해볼 만큼 상황에 어울리는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전폭기의 플라즈마 캡슐 열일곱 발이 십자 날개와 소형 프로펠러를 달고 낙하하기 시작했으므로. 사실 요청보다 한참 늦은 지원 탓에 명확한 목표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통신 네트워크와 피아식별 장치는 망가졌지만, 기계화보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또다른 인공지능, 보급형 3세대 복합전투지휘자아가 이 이례적인 규모의 재밍 속에서 어떻게든 전폭기와 추가적인 통신이 닿았는지 디스플레이 오른쪽 하단에 고장났던 미니맵이 다시 생겨나며 시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미니맵 업데이트가 끊긴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다른 지형이었던 것 마냥 구조가 뒤바뀌어 있었다. 놀랄 필요는 없었다. 구축함 정도의 궤도폭격이면 이보다 더한 것도 연출할 수 있었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간신히 좌표를 읽어내 명령했다. 목표할 지점은 A3-001부터 A3-007까지.

 

  이른바 머쉬룸이라 통칭되는 M-14 플라즈마 기폭형 전술포격무장은 단 한 발만으로 근방 70m의 모든 것을 증발시켜 버릴 수 있는 대단한 녀석이지만, 인공 하천의 라인을 따라 세워진, 해킹되어 버린 자동포탑을 부숴버릴 예정이기 때문에 투하 간격을 좁게 설정했다. 강을 건널 다리가 부서져 도하와 활공을 제외하면 건너갈 길이 없는 현재 상황에 가장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맹독성 물질로 가득찬 이 행성에서 장갑이 녹아내릴 수준의 독소가 녹아 있는 폭 1.5km의 하천은 그 자체로 아군 측 지원군의 육군 지원을 막는 훌륭한 해자가 되어서, 대충 그런 문제로 도하라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나면 공중기동이 가능한 기계화보병과 기타 몇몇 병과도 물론이겠거니와 대부분의 뚜벅이들에게는 가장 골치아픈 적이었기 때문이다. 피아식별장치만 무사했다면 당장 근처 전역에 퍼져 있을 수송선들과 전진기지를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분쇄해 버릴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그 맑던 하늘은 다 어디 가고 어느새 시야를 가리는 맹독성 가스가 대기 중에 만연해 하늘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적 함대에서 떨어지는 궤도폭격의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과 역겨운 녹색 안개 너머 저 하늘 높은 곳에서 휘황찬란하게 번쩍여 대는 천둥 없는 번개로 유추해 볼 때 지금쯤 지원을 와 한창 궤도상에서 교전 중일 명왕성 제7, 11함대가 적 함대의 섬멸을 끝낼 때까지만 버티면 언제고 살아나갈 수 있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면 행성 표면을 갈아엎어버리고, 단독으로 화성군의 17개 주력함대를 순수 화력전으로 궤멸시켜버린 베타-05급의 서울급 전함이 편성된 11함대는 이미 인류 최상급의 전력이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며 목표를 지정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더 싸울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넘쳐나지만, 복합전투지휘자아와 관제 AI의 의견 조율에 의한 판단이 더 이상의 전투가 지속되는 것을 불허했다. 위생병도 아닌 주제에 이런 면에서는 사용자보다 권한이 위에 있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아도 따라야만 했다. 그 절대적인 권한만큼이나 신뢰성 하나는 확실히 뛰어나긴 했다. 무장 상태와 팔다리의 상태를 다시금 점검하며 자리를 옮겼다.

 

  전황이 이렇게까지 말리게 된 것은…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나마 생각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궤도상에 자리잡은 시타델과의 갑작스런 통신 부재가 주 원인이었나. 확실히 미르의 직접상황관제가 가능했던 이유도 시타델에 코어를 둔 네트워크 통신이 스텔스 재머를 풀 가동하더라도 문제가 없었던 것 때문이었고. 사전 작전통지 따위 없는 미르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작전지시가 끊어지고 나니 분대용 네트워크로 전환한 뒤에는 분명히 있었을 게 분명한 치밀한 작전이 기약 없는 단순 소모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꽃잎마냥 펼쳐지며 번쩍이던, 세레트라 불리는 궤도상의 견인빔포의 빛줄기가 우연인지 의도인지 지하도 내부에 정확히 직격하여 거의 대부분의 통신 장비가 맛이 가 버렸기에. 상호간 통신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 망할 맹독가스의 자체적인 재밍 때문이었다.

 

  그동안 정신이 반쯤 나가있던 상태라 정확히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까 지시했던 폭격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저 멀리 날아가든, 빠르게 날아가던 폭탄은 점화한다 해서 그 자리에서 얌전히 터져 주는 물건이 아니다.

 

  바로 관성이라는 대단하신 법칙에 의해, 계속 나아가려는 플라즈마 탄두의 내용물은 상공 185m라는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서 폭발하고, 몇 갈래로 나뉘어진 군용 플라즈마 덩어리는 주변 대기를 불태우는 특유의 소음을 만들며 근방 70제곱미터의 어떠한 벙커든지 산화시키는 무기가 되었다.

 

  코오오, 하는 플라즈마와 대기의 접촉음과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곳일 수도 있겠다. 머리에 있는 모든 왼쪽 센서는 골목에 있던 충격병기 때문에 박살이 나 버렸기에. 감지 범위가 닿을 거리였지만 사선 경고는 조용했다. 이쪽에 해가 될 요소는 없을 거라는 판단일 것이었다. 어느 인공지능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주변 건물의 3층 계단을 오르다가, 어느샌가 디스플레이에 가슴팍을 향한 붉은 선의 사선 경고가 띄워진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곧바로 몸을 틀어 회피해야 했음에도 궤도의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출발점으로 자연스레 눈이 갔다. 그 끝에 걸친 초록색의 섬광을 보자마자 피할 수 없는 공격임을 직감했다. 아는 무기였다. 사선 경고의 붉은 궤적이 짙은 것으로 보아 이미 쓸모없는 잡생각을 한 탓에 사선 경고를 인지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았다.

 

  아마 이번에 죽을 수도 있겠다. 사선 경고에 감지될 만한 공격은 인지하자마자 회피해야 함이 옳은 판단이었다. 본인이 알기로는 아직 학계에 광속의 0.8퍼센트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에너지 탄환을 눈앞에서 피할 정도의 움직임을 가진 생물은 없었다. 아직 역장을 전개할 엔진의 출력은 넉넉했지만, 얼마나 고성능이든 정작 고장이 나 버리면 단순한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바로 역장 생성기고, 기계의 당연한 특징이었다. 엑소슈트의 방호력을 믿어야 했다. 푸르스름한 에너지 덩어리가 날아와 기껏 3층까지 올라온 엑소슈트를 1층 바닥으로 날려 버렸다.

 

  땅으로 등부터 떨어지는 충격에 폐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또 한번 의식이 날아갔다. 관제 AI의 오토밸런스 프로토콜이 실행되었으나 성하 본인은 가장 기본적인 기동 메뉴얼조차도 이행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몇 번이나 다친 두뇌가 다시 깨어나지 못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크허어억! 쿨룩, 쿨룩."

  - 아, 일어나셨네요 주인님.

 

  기계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음질을 지닌 여성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 간지러운 감각에 몸서리를 쳤던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현재 상황에서는 쓸데없는 기억이겠지만.

 

  엑소슈트의 관제 AI와는 또 다른, 양자 두뇌에 다운로드된 군용 3세대 복합전투지휘자아였다. 바로 앞에 크게 구멍이 뚫린 5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여긴 어디지? 난 왜 이딴 지옥 같은 곳에서 자고 있던 거지?

 

  - 동기화 이후로 이렇게 보람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의식 보조 프로토콜로 3초만에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제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이 목소리는 분명히..아.

 

  "...그래."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시덥잖은 인공지능의 맑은 목소리에 답했다. 헬멧 안쪽의 디스플레이에 인공자아의 아바타가 나타나, 마치 정말로 먼지 날리는 전장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리감과 음영조화가 인정하기 싫게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그래봐야 화면에만 나타나는 환상일 뿐이었다. 당장 안면장갑을 들춰 육안으로 확인하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고.

 

  "방해되니까 아바타 치워."

  - 가끔씩은 저 같은 미녀가 나와서 위문이라도 해 줘야 사기가 돋지 않겠어요?

  "어쩐지 한동안 조용하더니만. 전투 끝날 때까지만 닥치고 있지 않고?"

  - 싫은데요, 누구 좋으라고. 베에에.

  "..관제 AI?"

 

  일관성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관제 AI가 여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네, 권고합니다. 사용자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하나 양. 따라서 하나 양의 행동은 제3세대인공자아에대한관련법률 제 72조 2항에 의거하여 판ㄷ….

  - 아아아, 잠깐, 잠깐. 알겠어요. 그만할게요, 퉤. 여자 볼 줄도 모르는 주인 같으니라고.

 

  나름대로 투덜거린 인공자아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아바타의 금발이 남아 한 가닥 날아오며 헤드 모듈에 들러붙는 인공적인 연출이 성하를 짜증나게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더 이상 쓸모없는 잡담을 쏟아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그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자마자 툴툴대면서도 고분고분하게 시야에서 사라져 주는 게 조금 귀엽기도 했고.

 

  성하가 엑소슈트 내부 어딘가에 있을 인공관절의 삐걱거림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의 점탄액 때문이겠지. 이제 이 상태로 뛰기라도 한다면 점탄액의 고체화로 인한 반발력 때문에 관절이 박살난다. 그러면 거의 5톤을 육박하는 무게가 인체에 직접적으로 얹어지는 거다. 서 있을 수도 없겠다.

 

  결국은 조심 또 조심이다. 엑소슈트 내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모터의 구동음이 마음을 조금 진정시켰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을 인지했다. 두뇌의 완전동기화로 인해 희미한 생각마저 읽어 버리는 인공자아가 13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답했다. 지금에서야 이 짜증나고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는 사실에 마음이 꽤나 불안해졌다. 이쯤 되면 뇌에는 슬슬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을 텐데, 인공자아가 두뇌 동기화로 의식을 직접 커버해주고 있어 정신만은 또렸했다.

 

  쓸데없는 스캔들 탓에 이제서야 피격당했다는 것이 떠올라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관통은 아니다. 공격이 직격한 정면은 아직 외부 장갑이 건재했으므로 주위가 조금 부서지고 파였을 뿐이었다. 트레뷰셋(Trebuchet) 교차 레이저에 비교하기도 껄끄러운 수준의 유사 빔 병기라지만 적어도 대전차급이었는데, 유리한 상황만 경험하며 체감하지 못했던 블루스틸 복합장갑의 방호력이 지금 생명을 얼마나 연장시켜 주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허전한 손아귀여서, 손에 들려 있어야 할 묵직한 것을 찾아 반사적으로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렸다. 그리고 수천 발의 머쉬룸과 트레뷰셋이 갈아엎은 탓에 베이킹 파우더마냥 여기저기 큼지막하게 갈라지고 부풀어오른, 그런 영양가 없는 죽음의 땅에 비스듬하게 눕혀진 기계화보병용 개인화기를 발견한 성하가 팔을 뻗었다.

 

  삐이이-하는 급박한 최종 경고와 동시에 왼팔이 날아갔다. 가공할 만한 충격파에 오른쪽으로 몇 번 튕겨져 나간 엑소슈트가 피를 흩뿌렸다. 장렬한 폭음이 노출된 장갑 사이로 들어왔다. 그렇게 몇 번 걸러진 굉음은 여전히 머리를 울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투 도중 수백 발에 달하는 대전차미사일과 일곱 발의 대함미사일에 집중적으로 공격당한 왼팔이 정확히 노려졌다. 사선 경고가 느린 걸로 봐선 엑소슈트의 센서마저 이젠 망가졌거나, 엑소슈트 관제AI가 맛이 갔거나, 혹은 사선 경고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발견과 조준사격이거나. 셋 중 하나겠지. 촤르르륵 하고 30mm의 거대한 탄환 수백 발이 폭발의 충격으로 절단된 팔의 단면에서 쏟아져나왔다. 체인건과 탄통을 연결하는 탄띠가 새어나오는 것이다.

 

  당황한 건 오히려 당사자가 아니라 인공자아 쪽이었다. 피격의 충격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왜였는지 잠시 재부팅되었던 관제 AI가 오토밸런스로 엑소슈트의 인공근육을 통해 일으켜 세우며 중심을 잡았다. 그나마 오른팔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혹시라도 오른팔의 주포에 맞았다면 이 근방이 전부 산화될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이제서야 다시 디스플레이 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사선 경고는 벌써 최종단꼐까지 이르러서, 무리하게 허리를 비틀어 점프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철갑탄 하나를 더 피했다. 피가 폭포마냥 흘렀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움직임에 엑소슈트가 땅바닥에 처박히고, 부풀어 있던 왼다리의 상처가 터지면서 진물이 배어나왔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역겨웠지만 빠르게 엄폐물로 이동했다. 다리에서 배어나온 진물이 뚝뚝 떨어졌다. 작은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는 파편이 외부 장갑에 맞고 튕겨나갔다. 저것도 맨살에 맞으면 두부마냥 뚫려버릴 게 눈에 선했다. 속살이 드러난 왼팔과 다리를 온몸으로 감싼 것이 다행이었다.

 

  각성제 과다복용의 부작용으로, 사지의 움직임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오직 육안으로만 확인하고 있는 극도의 신경마비 상태에서 어찌저찌 사선 경고의 도움을 받아 어느 작은 콘크리트 건물 하나로 들어온 성하가 숨을 고르며 인공자아를 타박했다.

 

  "사선 경고는 어따 팔아먹었냐, 이 쓸모없는 부관아..."

  - 하으으..어떡해..아까의 충격으로 관제 AI의 소프트웨어가 일부 손상되어 재부팅 중이라 임시로 통제권을 넘겨받는 도중에 연산 로스가 생겼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하아..쓸데없는 설명은 됐어. 그보다 실수가 뭐냐, 실수가. 쓸데없는 데서까지 인간을 닮아가는 거 아냐?"

  - 아이, 거 참 대단히 죄송하네요. 그보다 빨리 그 위치에서 벗어나는 게 어떨까요? ATM 반응을 또 들기키 전에 계속 움직이세요. 체크포인트로 가면 엔진을 끄거나 할 테니까. 일단 스테이플링 폼 분사하겠습니다.

 

  한쪽 팔이 날아갔지만 서로가 그렇게 어두운 기색은 아니었다. 이미 지혈이 시작되고 있었고, 팔 한 쪽 정도는 몇 분이면 말끔히 되살릴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치료를 받을 확률이 이제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성하가 스테이플링 폼이 분사되기 전에 카멜백과 연결된 빨대를 한 번 빨아 마시고는 그대로 왼팔과 다리의 상처에 물을 조금 부었다. 적어도 이물질 정도는 빼야 했으므로.

 

  치이익, 하고 어디선가 튀어나온 가느다란 기계팔이 하얀 거미줄 같은 지혈대를 몇 초간 뿜어내며 상처 부위에 들러붙으며 출혈을 막았다. 스테이플링 폼에 방울방울 맻혀 있는 차가운 소독액이 상처에 새어들어갔다. 기분 좋은 시원함이 느껴져야 했지만,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런 호사를 바랄 수는 없겠지. 다시 한 번 몸과 무장 상태를 점검했다. 왼쪽 탄통을 사용할 수 없는 체인건은 이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 매복한 보병대대라도 만날 경우에 대비해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껴 둔 물건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하아아..머리 아파. 피 흘린 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부터 빈혈인가? 다음부턴 제대로 일해라. 아머 체크."

  - 조금 암울하지만, 현재 사용 가능한 개인무장은 오른팔의 주포밖에 없습니다. 오른팔의 체인건 잔탄 제로. 왼팔의 체인건과 연결된 등의 탄약고에는 아직 784발이 남아 있지만 지금 교체하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동안 위험에 노출될 거에요. 근접관통무장은..확실히 백병전할 만한 상황은 아니죠? 혹시 모르니까 주포 일발 장전해 놓을 테니 그냥 그대로 가이드 라인을 따라가 주세요. 후에 작전수행불가처분을 받든 말든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요.

 

  유일하게 남은 무장인 오른팔 주포의 포문을 열며 안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인공자아의 증강현실 경로 지시에 따라 도망쳤다. 잘린 왼팔의 상처는 물론이고 다른 외상도 분명 임시 봉합 처리를 했을 텐데, 어디로 들어온 상처인지 온몸이 독소에 빠르게 침식되어가 어느 순간부터 근육이 마비되어 사지를 점점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혹은 단순히 전투 각성제 과다복용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사량을 복용한 것이 아니므로 아마 일시적일 뿐인 작용이었기에.

 

  어느 쪽이든 도저히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 관제 AI와 부관만이 이 육중한 엑소슈트를 움직이고 있을 때에, 근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붉은색의 사선 경고가 화면에 보여졌다. 성하는 궤도폭격인가 했지만, 인공자아가 등 뒤의 인기척을 귀신같이 감지하고 황급히 몸체를 돌렸다. 후방 카메라는 처음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박살이 나 있었다. 왜였지.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거지? 분명히 봤었는데.

 

  성하 본인은 시야가 없어 잘 알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구축함 이상급의 전투함이나 달고 다닐 만한 수준의 재머를 도대체 어떻게 끌고 온 건지 궁금한 정신나간 작자가 쇼크블래스트를 작동하며 근방의 전장 전체에 치명적인 전자기파가 퍼졌다. 지속된 충격 병기의 피격으로 고장난 역장 생성기와 블루스틸의 방호 없이 대기 중에 그대로 노출된 반응회로는 너무나도 쉽게 불타 버리고, 곧이어 전력이 나가며 안전상의 이유로 주포의 장전이 자동으로 캔슬되어 약실에서 탄창 안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암전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면의 디스플레이를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엑소슈트의 팔을 혼자서의 힘으로 들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엑소슈트에 꽉꽉 들어찬 인공근육 역시 결국은 전기작용으로 수축과 이완을 조절하는 강화 케이블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사라졌다는 수십 년 전의 군가로만 듣던, 기계화보병의 관짝은 엑소슈트 어쩌고 하는 멍청한 소리를 실제로 경험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함대용 재머를 이리 반파된 상태에서 직격해 버리면 제아무리 EMP에 면역이나 다름없는 기계화보병의 엑소슈트라도 양자두뇌와 전기식 회로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버리기 충분한 출력일 것이다. 아, 덤으로 내 몸에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두뇌와 신체에 다시 한 번 심각한 손상이 가해졌겠지.

  젠장, 이래서 난 예전부터 빌어먹을 전자파가 싫었다. 탈모라던가, 암이라던가, 아니면..음, 정력이라던가. 마지막은 이미 물리적으로 실존하지 않는 것을 애인 비슷하게 삼고 있으니 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전역해 섹스가 가능한 아무 휴머노이드나 사서 데이터를 연동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딴 변태같은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애초에 그녀가 그 로봇을 보고 뭐라 생각하겠는가.

 

  이제 이 엑소슈트는 글렀다. 중장갑에서 귀하디귀한 블루스틸을 추출해 내고, EMP를 직격으로 쳐맞아도 여전히 끄떡없이 천문학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AME(Anti-Matter Engine)를 노획하고 나면 인공근육의 역할을 하는 케이블과 관절용 잉여 장갑, 기타 외골격을 제외하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이 되어버린 거라는 말씀이다. 물론 값은 꽤 나갈지도 모르겠다. 기계화보병 엑소슈트의 모든 부품 하나 하나는 대부분이 돈을 쳐바를 대로 쳐바른 최상품이었으므로. 어떻게든 기계화보병에 대해 알아내려는 화성 정보국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도 뻔했으니까.

 

  인공자아와 연결된 양자두뇌가 쇼크블래스트에 의해 합선되는 파직거림이 느껴졌다. 완전동기화 때문에 그녀와의 연결이 끊어지지는 않겠으나, 그녀와 엑소슈트 간 링크가 끝나는 순간 양자두뇌에서 빠져나가 데이터화되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통합 시스템의 그늘 아래로 이동된다. 돌아오려면 돌아올 수는 있겠다. 그 대단한 미르께서 허락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기타 잡소리는 뭐가 어찌 되든 상관없고, 그녀가 안전하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그녀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니 확실히 그런 게 맞기는 하지만, 이젠 내 걱정을 할 차례니까.

 

  한 걸음 내딛으면 완벽히 방전될 정도의 에너지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잔여 전력량을 안면 장갑에 어둡게 표시했다. 0.027퍼센트. 엑소슈트를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선 그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에너지를 끌어와야 했기에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화면의 표시도 그리 오래 못 가 끊길 것이었다.

 

  선택 가능할 사항은 두 가지가 있었다. 남은 전력으로 정면장갑의 락을 해제해 정면장갑을 열고 빠져나가는 것, 혹은 여기서 대기하는 것. 첫 번째 방법은 일단 탈락이다. 당장 근처에서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보행기계나 전차의 소리로 추정해 봤을 때, 적 병력 본대에 꽤나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는 판단이 가능했다. 까딱하단 일어나자마자 죽어 버릴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일단 상태를 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어두운 안면 디스플레이에서는 분명히 3분이 지났는데, 체감상 한 10분은 지난 것 같다. 어느 누가 최근 말했던 것처럼 조금 암울하게도, 당장 떠오르는 방책도 없었다. 쇼크 블래스트에 정통으로 직격해 센서와 카메라가 작동을 중지하면, 우주 공간에서도 버틸 수 있는 두껍고 꽉 조여진 슈트는 밖의 상황을 눈곱만큼도 읽을 수 없었다. 눈과 귀를 잃은 것이다.

 

  갑자기 팅, 하고 한 발의, 종류를 알기 힘든 총탄이 디스플레이 반대편의 안면 장갑에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쓸데없는 데에서 방호력을 자랑한다고 생각하며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는데, 이내 안면 장갑이 콰드득 뜯겨나갔다. 깜짝 놀라 웃음기가 확 달아났다. 놀란 토끼 눈으로 환해진 시야를 바라봤다. 한 손으로 안면 장갑의 연결부를 뜯어버린 어두운 근력강화복의 손가락 일부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제국군 수도방위군의 익숙한 루비늄 명찰이 성하에게는 가장 먼저 인식됬다. 저절로 입이 움직인 듯 했다.

 

  "...시그니."

 

  곧바로 총검을 내리찍으려던 시그니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겨눠졌던 칼날의 푸른 빛이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던 날카로운 체인이 고속으로 회전하다가 감속되어 멈춘다. 오늘 또 제국의 새로운 무기를 만난 것 같다. 전기톱과 비슷한 부류의 것인가. 7함대가 저런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것을 가끔 본 적 있다. 잠시 당황한 듯이 침묵하던 놈이 온갖 총탄으로 여기저기 뚫려 있는 근력강화복을 굽혀 한쪽 무릎을 꿇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놈 입에서만큼은 나오지 않기를 바란 언어였다.

 

  "네가 바란 기대를 저버린 것 같지만, 난 제국에 충성한다. 신의 가호는 언제나 제국의 모든 이들에게. 네가 그것이 바뀌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면 너야말로 날 죽였어야 했어."

  "허..너도 그렇고 장교 새끼들도 그렇고, 요즘 소수 민족 언어가 굉장히 유행을 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잘난 제국어는 어디에 팔아먹었나?"

  "못 본 사이에 는 건 나이와 비아냥 뿐인가?"

  "깨끗한 척 하지 마라. 송하나 앞에서 욕지거리 내뱉고 싶지 않았거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그냥 죽여라. 내장을 뒤지든 어떻게든 해서 이 멍청한 엔진이나 빼 가 보시던가."

 

  거의 써 본 적이 없어 어색하게 비아냥거리는 욕설을 내뱉으며 배짱을 부리는 것도 진심 반 야바위 반이었다. 안면 장갑이 열린 지금 나는 죽지만, 가장 두꺼운 장갑으로 보호받는 가슴팍의 이 귀중한 에너지원은 멈춘 생체 신호와 함께 영구 비활성화된다. 모든 제국군들이 수백 가지 이유를 들어서라도 우리에게서 가져가야 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단순한 충성에서부터 온갖 진급에 대한 탐욕, 혹은 포상금이라던가. 어지간한 장교가 한 푼도 안 쓰고 100년을 모아야 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리고 이것을 그나마 쉽게 얻기 위해선 탑승자 본인 스스로 안에서 수동으로 해치를 열어야 한다. 기계화보병의 최후 중의 최후의 자존심 같은 것을 당연히 목숨과 함께 내놓을 리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면 장갑을 뜯어내서 고문하며 협박하는 게 엔진을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심장이 뛰기만 한다면 그 육체가 떡이 되던 채썰리던 상관없었으니까. 최근 들어선 단순한 고통을 통한 고문에서 최면 성분이 든 약물로 스스로 해치를 열도록 만들어지고 있는데, 전투 각성제로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뛰는 심장은 각성제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마약성 약물성분에서 면역이 되었다.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유리병 한둘 정도 되는 최면 성분은 각성제로 파도 치듯 중화해 버리므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당분간 웜홀을 열 필요가 없는 이상 그딴 불경한 건 쓸모가 없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승기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물품은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어도 상관없는 거다. 당장 널 찌르고 다음에 나오는 적들을 찾아도 된다."

 

  시그니가 제국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불경한' 이라는 대목에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거린 시그니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웃기다는 투였다. 그래, 그런 거에 선동될 만한 인물은 아니지. 성하는 그런 그에게 코웃음치기 위해 상처를 통한 극독 침식의 영향으로 말을 듣지 않는 얼굴근육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노력했다. 벌써부터 혀가 뻣뻣하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지금 누구 앞에서 약을 판다고 생각하냐? 11함대의 폭격을 조금이라도 버티기 위해선 이게 꼭 필요할 텐데. 그게 아니라면 탈출을 위한 웜홀을 가동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할 것이고. 아, 방금 그 이유에서 필요없다고 했었나? 미안하네, 지금 내 대가리가 오락가락해서 말이지.."

 

  영어로 비아냥대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기억이 10초 단위로 끊어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생각해내야 했다. 지금 개방할 수 있는 무장이 뭐가 있을까. 아니, 뭐가 있었나.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탄창이 끼워진 레일건은 적어도 300m 이상 떨어져 있고, 탄이 남아 있어야 할 왼팔은 레일건 옆에 고스란히 누워 있다. 유탄도 그곳에 붙어 있고..아니, 애초에 잔탄이 남아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머 체크에서 반복했던 내용을 그새 까먹었나.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그렇게 귀찮을 정도로 했던 일이 결국 이런 충격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쓸모없는 복기였던 건가.

 

  "격벽은 네 생각만큼 무르지 않아서 말이지.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시작해야겠어. 옛날부터 생각해 온 거지만 너와는 오래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여러 쪽으로 좋더군."

  "까고 있네, 시발롬...쓰읍, 일개 순양전함에도 박살나는 격벽 주제에 서울함의 클린업(clean up)을 10초는 견딜 수 있겠어? 지랄도 작작…아아악! 씨팔, 아프잖아! …후우, 후..거 새끼 존나 아프게 찌르…아악!"

 

  시그니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손을 슥슥 움직였다. 체인이 돌아가지 않아도 상상 이상의 절삭력이었다. 슬쩍 가져다 대기만 해도 피부와 뼈가 순두부처럼 잘려나갔다. 저것도 단순한 칼날은 아니겠지. 7함대 특수부대에서 저런 비슷한 것을 쓰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서로가 다른 언어를 뱉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같았다.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한, 원어민급 구사능력이 양 측에 있었다. 그리고 양 측 모두 성능 좋은 통역기가 구비되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쪽의 것은 지금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그보다는 각성 중화제로 인해 고통에 무방비한 얼굴과 왼팔의 잘린 단면이 칼집과 캡사이신 가득한 엑체로 늘어가는 와중이라 빠르게 생각해내야 했다. 중화제로 인한 고통은 치사량에 조금 못 미치는 각성제 탓에 수 초면 사라졌지만, 고통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육체가 죽어 버리면 끝이었으므로.

 

  오른팔의 체인건이 가동되는지 여부도 모르겠다. 가동된다고 해 봤자 수동으로 슈트 안쪽 오른손 부분에 위치한 체인건용 레버를 쭉 당겨 체인건이 전개되는 동안 적어도 열일곱 번은 얼굴 깊숙히 찌를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할 것이었다. 애초에 재머를 쳐맞고 쓰러졌으니 가동할 수도 없겠다. 분명히 아까..아니, 마지막으로 무장점검을 한 게 언제였지. 왼팔의 랜서는 분명히..그래, 팔이 날아갔구나.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주포, 주포는 잔탄이 남아 있었나? 주포를 몇 발이나 썼지? 처음 기계화보병이 된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주포를 실전 상황에서 발사했던 기억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이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도 쓰지 않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조금 썼다 하더라도 세 발 중 한 발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 빌어먹을 놈을 AME와 함께 산화시켜 버릴 수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어차피 실패하든 성공하든 어느 쪽이어도 죽는 상황에서 실패를 가정하면 안 되는 거지만.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면 이긴 병신이 되라는 병장의 말이 떠올랐다. 딴에는 농이라고 던진 말이었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냥 어차피 자신에게 오는 결과가 똑같다면 무언가라도 하고 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송하나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살짝 슬픈데. 더 망설일 필요는 없다. 남은 전력을 반물질 주포의 약실과 탄창을 개방하는 데에 사용했다.

 

  능숙하게 칼과 약품을 얼굴에 쑤시면서도 한편으로 AME를 내놓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로 팔뚝의 약실에서 어떻게든 반물질 캡슐이라도 빼내보기 위해 몰두하던 시그니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가 다시 일그러진다. 한 발의 캡슐이 약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건지, 곧바로 총검을 손에 쥔다. 총검의 푸른 체인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약실에 들어가 발사 준비를 마친 한 발을 제외하고 남은 두 발의, 마치 싸구려 만년필의 끼워 쓰는 잉크통처럼 생긴 에너지 셀이 바닥에 떨어진다. 연쇄폭발을 통해 시그니를 더욱 확실하게 날려버릴 용도였다.

  푸른 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송하나의 밝게 빛나던 하늘색 네트워크와 비슷한 것 같다고,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겼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푸른색의 칼날이 주는 미약한 고통은 무시한다. 특수 약품이 전투 각성제를 중화하는 바람에 느끼는 통증이지만, 그 소량의 약품 따위로는 심박수를 자극시키는 전투각성제의 영향으로 혈액과 함께 빠르게 도는, 치사량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의 각성제를 전부 중화시킬 순 없다. 엑소슈트 내부의 진짜 오른팔이 힘껏 주포의 발사 손잡이를 당겼다.

 
작가의 말
 

 3년 째 글만 질러대고 있는 글쟁이입니다. 초고와 비슷한 개념으로 올린 글입니다. 진지하게 계획한 작품은 이게 처음이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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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 : 역전 (1) 2018 / 12 / 20 316 0 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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