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여름이었다..
어느 날 단추 자체가 없는듯한 교복을 입은 한 녀석이 강물이 바닷물과 맞닥뜨리는 울산 태화 강 다리 위를 꽁지에 불이 날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육상 선수가 100미터 골인 지점 바로 5미터 앞에 까지 달려 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숨도 곧 넘어 갈 정도로 헐떡이며 시내로 진입 한 이 녀석 앞에 신호등이 있기는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신호등 앞에 서 있던 경찰도 이 녀석 안중에는 없었다. 쏜살같이 무단횡단을 범한 이 녀석이 몇 발짝 더 뛰어 오른 쪽 귀퉁이부터 시작되는 시장 진입로 방향으로 발길을 획 꺾어 들어가는 찰나에 딱 걸리고 말았다.
“야! 임마! 수리! 너 거기 서”
전혀 깜짝 놀라는 기색도 없이 잠시 멈칫하던 이 녀석이 복잡한 시내에서 들리는 수리가 어디 내뿐인가? 이름도 하필이면 수리가 뭐야! 어이 씨!
이런 판단 속에 구시렁거리며 부르는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제 갈 길인 시장 진입로로 무슨 도둑놈이나 쫓아가는 형사마냥 헐떡이던 숨을 잠시 고르고 다시 전력질주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발하는 그 순간에 또 들리는 같은 이름을 듣고서야 급 브레이크가 밟힌 자동차마냥 탄력이 붙은 전신이 비틀대댄다. 하마터면 용수철처럼 탄력이 붙은 몸이 시장 한 귀퉁이로 튕겨 나가 떨어져 나뒹굴 뻔 하기도 했다. 겨우 멈춰 서서 갈길 바쁜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사람의 소리에 약간은 짜증과 화가 난 붉어진 얼굴을 이마에서 흘러내린 비지땀으로 닦아 내며 쳐다보고 있다.
“수리 너 이리 와! 이 놈이 지금이 몇 신데 여기에 있어? 지금 수업 시간 아냐?”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 두 사람 쪽으로 한 순간에 집중돼 있었다.
그 시선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시내를 배회하는 동생이 형님에게 딱 걸려 ‘너 이놈 혼 좀 나야겠다’는 엄벌을 기대하는 안쓰럽다던가 매섭다던가 그런 눈초리가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리의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이 씨! 형님! 지금 나 늦었어. 빨리 가야 해”
눈살을 잔뜩 찌푸려 짜증만 내고는 다시 전력 질주를 시도하는데 다시 고함소리가 길거리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렇잖아도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는 인파들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넋을 잃고 있었다.
“어디 가는 데?”
“도장에! 오늘 내가 애들 가르칠 차례야. 그럼! 다음에 봐”
“너! 아제한테 일러준다. 공부는 안하고 도장에 다닌다고 오늘 당장 얘기한다. 당장 뒤로 돌아. 학교로 복귀”
마치 제식 훈련 시키는 교관 명령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손가락을 치켜세워 학교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서야 인파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 같았지만 경계의 눈은 여전했다.
“아버지도 알고 있어. 나! 체대 가기로 했어. 허락 받았어. 그럼 형님! 다음에 봐”
아주 가소롭게 쳐다보는 눈빛을 수리에게 보내고는 손가락을 학교 쪽으로 까닥거렸다.
“야! 웃기는 소리하고 하지마. 거긴 태권도 도장이 없잖아. 합기도 도장 밖에 없는데 누굴 속이려고. 이 동네는 내 관할인 걸 잊었어? 그리고 체대에 합기도 과가 어디에 있어? 괜히 아제 속이지 말고 학교로 돌아가. 안 가면 내가 저녁에 바로 집에 찾아가서 아제에게 다 일러 바친다”
시장 입구에 서서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오가는 대화만으로는 동생을 걱정하는 친척 형님의 따뜻한 정이 베인 꾸중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웬일인지 인파들이 주눅이 들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총칼을 든 적군을 향한 방어자세로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유는 먼저 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두 사람 모두 해병대 일병 정도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이 두 사람의 키와 등치였다. 의장대 의장 행사를 마치고 위로 휴가를 나온 군인처럼 키가 컸다. 오가는 대화상에 동생인듯한 녀석의 단추가 없는 교복 사이로 살짝 비치는 젖가슴은 웬만한 글래머 여자들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단추를 채우지 않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젖가슴이었다.
야단을 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칼로 찔러도 칼날이 꺾어졌으면 졌지 이 사람 몸에는 어떠한 상해도 입지 않고 칼 자국 흔적조차도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야단치는 사람 뒤로 비슷한 덩치를 가진 청년들이 이발 비와 옷값을 아끼려고 머리카락은 아주 짧게, 그 나이에 어울리는 화려한 옷 대신에 어깨에 간단한 무늬만 새겨 넣어 치장만 해 있었다. 검소하기 그지없는 청년들도 고함을 지르는 형님처럼 가출한 동생을 보듬어 달래 집에 보내듯이 어깨를 두드리며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 수리야! 우리 회사가 백년대계를 보려면 한 놈이라도 대가리에 먹물을 묻혀야 하지 않겠어. 힘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뒤로 돌아! 학교로 직진”
형님과 달리 약부터 먼저 먹이고 병을 주는 거처럼 절도 있는 호령으로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형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이 알아서 대학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요. 그러니까 저는 공부를 안 해도 대학을 갑니다. 정말 걱정 마십시오”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친척 형님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터진다.
“야 임마! 내가 등록증 지원해준 댔지 대학 보내 준 댔냐? 그런 능력 있으면 내가 가겠다”
“어! 말이 틀리잖아요. 알아서 보내준다고 했잖아요?”
인상을 잔뜩 찌푸려 억울한 눈망울을 만들고는 머리를 만지다가 길 건너에 뭔가가 눈에 들어 온 것 같았다.
갑자기 눈을 부릅떠 길 건너를 보고는 차를 피해 쏜살같이 달려 가고 있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친척 형과 일행들도 뒤를 따라 쫓아갔다.
그러나 벌써 모든 행위는 종결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빨리 튀어!”
“내가 왜 튀어. 이 놈이 잘못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리가 쓰러진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얼어서 굳어 있는 것 같았다. 쓰러진 사람은 서서히 녹아지는 얼음처럼 보였다.
축 늘어지고 있었다.
수리 눈이 이 사람 눈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영혼을 인수인계 의식처럼 엄숙하게 무릎을 꿇고 쳐다 만 보고 있었다.
눈알에 초점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쓰러진 사람이 수리 눈을 놔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 새끼! 정신 차려! 임마! 너 왜 이래? 너 잘못 아냐. 정신 차려. 이 새끼 눈이 왜 이래”
형님이 수리 눈을 막았다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뺨이 떨어져 나갈 정도 세게 후려치며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를 돌려 일행들에도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이 놈 데리고 빨리 도망가.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튀어. 야! 뭐해. 이 놈 엎고 튀어.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