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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꽃구름처럼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재상여주/가인남주/달달과 가벼움을 지향/하지만 장담 못하겠음]


'눈 떠보았더니 글쎄 내가 소설 속 주인공!'
뭐하세요?
이란 소설이 유행하고 있대.
그래서요.
모름지기 유행은 따르라고 있는 법 아니겠어?
어디 계속해 보시지.
-잠깐만 책 사러 나갔다 올게.
이것들은 다 누가 처리하고요?
미래의 나! 부탁할게!
야, 서하령! 주인님! 아가씨! 거기 안 서!

>진짜 이렇지는 않습니다.

 
1화
작성일 : 18-12-10 15:13     조회 : 407     추천 : 0     분량 : 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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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른 물빛처럼

 

 유난히 조용한 정원을 따라 남자, 세류는 조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진 전에 귀가한 것으로 확인되는 자신의 주인이 아직도 식전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곽 아주머니의 애원이 귓가에 뱅뱅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 어쩐지 일찍 오셨다 했네. 보나마나 일거리 바리바리 싸들고 지금껏 식사는 거르시고?’

 

 수려한 얼굴에 어울리는 매끈한 미간이 그의 심정을 따라 구겨졌다.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방 안에 다다른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세류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

 

 한 시진 전, 세류는 퇴궐한 직후 자신의 집이자 또 다른 일터인 서가장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서고에서 짬을 내어 책을 읽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무관(武官)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을 보던 서가장의 주인이자 연의 재상인 서하령은 늘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문관은 본인이 아니라, 네가 되어야 했다면서.

 

 겹겹이 쌓여있는 책을 훑고 고르는 순간을 제외하면 미동도 없이 제가 고른 것에 푹 빠진 세류는 한참을 성현의 말씀에 홀려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기 전까지.

 

 “세류? 여기 있었네. 혹시 아가씨 못 봤니?”

 “‥아직 시간, 이 늦었군요. 아뇨. 못 보았습니다.”

 “이상하네. 문지기는 아가씨를 보았다고 하는데 아가씨 방에는 아무도 없거든.”

 “또 어디 정원에 계신 것은 아닐까요.”

 

 여름이면 푸르른 빛깔을 자랑하기에 퍽 아름답다지만 이 집 주인은 독특하게도 이제 막 새싹이 돋아나는 정원을 더욱 사랑하는 것만 같았다. 넌지시 그 사실을 상기시키자 마주한 이의 눈동자가 조금 커진 것이 보였다.

 

 “한 번 가봐야겠네. 세류도 식사 거르지 말고.”

 “그러겠습니다. 아가씨는 찾는 대로 밥부터 먹일 터이니 걱정 마세요.”

 

 내가 달리 누굴 걱정하겠어.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사라지고, 세류는 제 손에 들린 채 반도 넘기지 못한 책을 조심스럽게 책장에 되돌려놓았다. 고요한 정적에 차 있는 서고의 시간을 음미하듯 한숨을 내쉰 세류는 고개를 휙 돌려 구석진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 있는 것 다 압니다.”

 “허어, 무서워서 살 수가 있나.”

 

 세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낭랑한 음성이 세어 나왔다. 숨이라도 죽이고 있었다는 마냥, 주위를 휘 둘러보고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모습이 귀여워 세류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주인과 가인(家人) 위치가 바뀐 줄 알겠습니다.”

 “뭐 어때? 내가 너 들어와도 된다고 했고, 솔직히 너만 들어오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퇴궐을 하고 곧바로 서고로 들어온 참인지, 조금은 화려한 장신구가 검은 머리칼 아래 총총 수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안 힘드세요? 제법 길이가 되는 머리타래를 틀어 올려 고정시킨 비녀를 톡 건들며 묻자 곱게 정리된 눈썹이 하늘을 향해 휙 치켜 올라갔다.

 

 “간 큰 가인이네. 막 주인 건들고, 응?”

 “왜 그런 의미가 아닌데 그렇게 들리지?”

 “모르지, 나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짓궂은 미소가 작은 얼굴 한가득 떠올랐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기색의 얼굴에 차마 퉁을 놓을 수 없었는지, 세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곤 제 주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단 가시죠.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밥은 못 드셨을 테고요.”

 “아, 어‥. 그래. 그렇지. 참, 도둑질 하는 것처럼 몰래몰래 들어올 필요 없으니까 좀 당당하게 와.”

 “그거 고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왜 숨어서 남을 훔쳐봅니까?”

 “우리가 남이니? 남이야?”

 

 세류 좀 봐! 사뿐사뿐 한 발짝 앞서 나가 휙, 몸을 돌린 하령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쫙 폈다. 당당한 눈빛은 덤이었다.

 

 “내가 너 책임지고 있잖아!”

 “컥, 크음! 아니, 뭔 말을.”

 “뭐, 왜. 뭐. 맞잖아. 왜 새삼스럽게 그런 반응이야?”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시는 거 아닙니다. 혼나요.”

 “어디 가서 이런 말 할 사람도 없단다. 가자. 너 배고프겠다.”

 “저는 뭐, 익숙합니다. 아가씨가 배고프시겠죠. 그래도 오늘은 일찍 퇴청하셨습니다.”

 “어어, 응. 좀?”

 

 어쩌다보니까? 그럼, 내가 그럴 수도 있지. 조금 횡설수설 나오는 말에 미심쩍은 눈초리가 뒤따랐다. 꿋꿋하게 시선을 외면한 하령은 행여나 자신의 가인에게 잡힐 새라, 걸음을 빠르게 하며 손을 휘적거렸다.

 

 “안 오면 놓고 간다?”

 “행여나. 갑니다, 같이 가요.”

 

 걱정 마. 나만 믿으라니까? 하령은 제 가슴을 퉁퉁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홀로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에 세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저 태도가 더 불안한 것을 아가씨는 알까. 스미는 불안감에 그 뒤를 따르는 세류의 눈매가 깊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박타박 걸어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는 밥상이 있는 곳까지 그를 인도한 하령은 먼저 들어가라며 배시시 웃곤 뒷짐을 졌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등을 훅 미는 손길이 다가왔다. 제 온 힘을 불어넣었던 듯, 속절없이 밀려들어간 세류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아 걸린 문을 부술 것처럼 힘차게 두드렸다.

 

 “아가씨!”

 “미안! 많이 먹어!”

 “문 여십시오!”

 “난 먹었으니까 걱정 말고!”

 “어디서 사기를 쳐!”

 “진짜라니까! 맛나게 먹어!”

 “야, 문 안 열어?”

 “어디 주인한테! 이번만 봐준다!”

 “야, 야! 서하령!”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에 잡히면 당장 머리끝부터 꼭꼭 씹어 삼킬 만치 소리를 지르던 세류는 턱턱 막혀오는 숨을 간신히 참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졸지에 밥상과 한 방에 갇힌 그를 놀리듯, 음식은 여전히 정갈하기 짝이 없어 절로 아파오는 머리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비는 접시를 발견하곤 실낱같이 이어지던 이성의 끈이 뚝 끊기는 것만 같아 결국 폭발하며 소리쳤다.

 

 “고작 만두가지고 되겠냐! 당장 안 돌아와!”

 

 찔끔, 무엇을 먹었기에 저리 울림통이 클까. 고용주한테 하는 버릇 좀 봐. 글렀네, 글렀어. 하령은 마치 제 뒤에서 부르는 것만 같은 외침에 어깨를 움찔 떨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자신의 방을 향해 총총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고용주라 하더라도 꼭 이기려 하는 이는 죽어도 자리를 비키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하령의 발걸음은 점차 날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에 문을 부수고 나와 자신을 홀랑 들어 어깨에 걸칠지 누가 알겠어. 속으로 중얼중얼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대해 읊던 하령은 조용해진 사위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용하니까 괜히 무서운데.”

 

 괜찮겠지. 바깥에 오래 있었는지 코끝이 시려왔다. 일이 너무 많은데 너무 늦게 오면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조금 희생해야지, 무어 어쩌겠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나서야 하령은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빠르게 하면 한 시진 안에는 끝나지 않을까?

 

 그로부터 한 시진 후, 방 안에서 문을 부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던 이는 결국 문을 열어준 이에게 고맙다 말할 틈도 없이 뛰쳐나와 득달같이 하령의 방 앞으로 달려가듯 조급히 걸음한 참이었다. 자신임을 고했음에도 묵묵부답인 방에서는 은은한 불빛만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진짜 문을 부숴? 자신의 녹봉과 문 사이의 가격을 가늠하던 세류는 제 속을 달래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굳게 닫힌 창호를 반쯤 노려보았다. 불경은 아니 된다. 불경은.

 

 “나오세요. 아니면 문이라도 여세요. 식사 하셔야죠. 걱정하는 사람이 한둘 인줄 아십니까?”

 “…….”

 “아가씨.”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무렵, 방 안의 촛대에 그림자가 비추는 것에도 꿋꿋이 대답하지 않는 것은 대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이만큼 참았으면 많이 참았지. 문틀을 쥔 손의 손등에 핏줄이 슬 불거졌다.

 

 “그‥, 나 배불러! 괜찮아!”

 

 문을 열어젖히기 직전, 입에 무언가를 가득 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넘어왔다. 지금껏 들고 갔던 것을 까먹고 있다가 닦달을 하니 생각난 모양일까. 세류는 결국 참고 참던 화를 터뜨리며 다시 목청을 키웠다.

 

 “만두 3개 가지고 퍽이나 허기가 달래지겠습니다! 어서 나오시죠! 안 나옵니까? 제가 들어가서 들쳐 맬까요?”

 “야, 이 나이 때는 열정으로도 먹고 살아.”

 “열정은 개뿔. 하루 종일 누가 안 챙겨주면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있는 꼴을 못 봤습니다. 빨리 안 나와요? 진짜 문 부숴?”

 “네가 수리비 내니? 뭔 집을 맨날 부수려고만 해? 너 무관인거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아! 그만 자랑 좀 해!”

 “아가씨가 자랑하게 만드시지 않으십니까!”

 “아냐, 잘 알아. 아니까….”

 

 횡설수설 이어지던 대화가 갑자기 뚝 끊겼다. 설마 만두 먹다가 쓰러진 것은 아니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주위를 기웃거리던 세류는 문득 옆방의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곤 씩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아가씨가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시지. 사냥감을 모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기척을 죽이며 옆방으로 들어가자 하령의 거처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 머리털이라곤 눈곱만큼도 비치지 않았다. 기겁하며 중간 문을 통해 하령의 방에 들어오니 세류 자신이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에 난 창에 걸려 있는 그의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아가씨!”

 “힉!”

 

 암만 보아도 저건 탈출하려던 모양새다. 아무리 어린아이만한 높이의 창이기에 떨어진다고 다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잘못 떨어지면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 세류는 기겁하며 외쳤다. 저 아가씨가 미쳤나!

 

 빽 소리를 지른 덕에 놀라 발을 삐끗할 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땅에 안착한 하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가장의 뒷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으레 귀족가문의 정원이 그러하듯 서가장 역시 복잡한 동선을 그리고 나서야 자그마한 후문에 도달할 수 있었고, 아주 소수만이 이 길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그 문으로 등청하는 세류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열심히 쫓아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세류에 비하면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리는 하령의 뒤를 세류는 생각보다 느긋하게 쫓아갔다. 대강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하령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기 때문에, 네가 어디까지 발악하는지 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서가장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뒷문에 도달해 그 문을 벌컥 열어 재낀 하령은 제 손에 들린 두꺼운 장계를 반쯤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재상 때려 친다! 이 나쁜 당상관아! 장계 좀 제발 제때 올리란 말이야! 내가 당상관 덕에 무슨 취급을 받는지 일일이 알려줘야 합니까?”

 “아니, 내가 그러라고 했습니까. 본인이 먼저 말하기도 전에 일찍 들어가야 된다면서 낼름 퇴청하셔놓고. 장계는 자알 받았습니다.”

 “…내가 당상관 덕에 수명이 주는 기분이야. 알아요?”

 “몰랐습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여 재상이 원하는 수명을 맞춰드리도록 하지요. 예쁜 부인도 있는데 일찍 죽으면 섭하지.”

 “누가!”

 

 귀족가문의 저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역은 뒷문의 위치는 서로 달랐으나 누가 보아도 뒷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숨기고자 하는 이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문 건너편에서 여유롭게 옷자락을 탁탁 정리하며 뱉는 말에 꼭지가 도는지 하령은 제자리에서 팔짝 뛰며 바락바락 소리쳤으나, 40대 중반으로 뵈는 당상관이라 불리는 이는 그저 시원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오네, 예쁜 부인. 빙글거리는 낯짝이 수려한 외모 덕에 더욱 얄미워 보이는 것을 저 이는 알까. 하령은 제 주먹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다가 뒤를 가리키는 손짓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몸을 휙 돌렸다. 엄마야, 나 좀 살려줘.

 

 “부인은 누가 부인입니까. 오랜만이십니다.”

 “재상께서 늘 책임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다 보니까.”

 “제발 좀 가주겠습니까? 가요, 제발. 가라고. 여기서 더 떠들면 나랑 같이 세류한테 혼나고 싶은 걸로 알아도 될까요? 응?”

 

 싸늘하게 식은 보랏빛 눈동자를 차마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하령은 자신의 말에 낄낄거리는 웃음을 터뜨리는 이의 등을 꾹꾹 밀었다. 그에 얌전히 밀려난 당상관, 적은 알겠노라며 웃어내곤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귓가에 잔상처럼 남은 웃음소리는 지울 것이 못 되었으니, 넘어가자. 잠시간, 후원에는 숨소리조차 잦아든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가씨.”

 “그‥, 미안. 미안해. 내가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대로 걱정하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일거리를 좀 싸들고 온 건데, 식사는 할 생각이었어. 그럼! 나 막 식사 거르고 하는 사람 아니다?”

 

 나 믿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세류의 옷자락을 잡은 하령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에도 길게 내리깐 눈빛에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아 울적한 표정으로 손을 내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하령은 굳은 결심을 한 듯 결연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세류를 향해 제 정수리를 내밀었다.

 

 “자, 때려! 차라리 시원하게 때려!”

 

 맞는 건 정말 싫지만, 내가 특별히 봐줄게! 잘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퍽 당당한 태도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것을 어찌 해석한 모양인지 어깨가 바짝 움츠리는 통에 세류는 무섭게 굳은 제 인상을 풀어내듯 미간을 문지르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제 앞의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탓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며 하령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세류의 판결을 기다릴 뿐이었다.

 

 “잘못하셨죠?”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 머리 위로 손을 턱 올린 세류는 그 나름대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감은 눈꺼풀 아래로 요란하게 움직이는 눈동자가 보여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엄청 잘못했어. 나 식사할 생각이었다니까.”

 “네, 그리고요?”

 “일거리 가져온 건 미안해. 아니, 정확히는 먼저 처리하는 통에 이게 이렇게 됐는데….”

 “좋습니다. 그리고요?”

 “어, 이제 앞으로 일 다 처리하고 집에 올게.”

 “그게 아닐 텐데?”

 “응? 또…. 만두가 식사의 전부가 아니다?”

 “네, 또.”

 “또 있어?”

 

 대체 뭐가? 나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번쩍 든 통에 세류의 손끝에서 걸린 머리꽂이가 헐겁게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묵직하게 떨어지는 머리칼에 놀랄 새도 없어 머리꽂이를 낚아챈 세류는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 한 줌을 손에 쥐고 제 입술에 묻으며 가벼운 눈웃음을 그렸다.

 

 “밥은 혼자 드시지 마세요. 아가씨는.”

 

 저랑 드셔야죠. 아셨습니까? 부드럽게 속닥거리는 말과 다정한 눈웃음에 얼이 빠진 하령은 한 번 더 생각할 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론이지.

 

 오늘도 서가장의 주인은 그의 절세가인인 가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홀린 참이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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