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1화. 네 사람
작성일 : 18-12-04 16:58     조회 : 372     추천 : 0     분량 : 420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눈부신 여름에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데 뒤로 젖힌 이마로 차가운 음료를 굴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라고 말하는 모닥불 위 마시멜로 같은 마음의 소유자, 스물한 살, 김 아현.

 

 그리고 그 옆 삼복더위에 질릴 대로 질려서 하드를 핥아 먹는 사막의 낙타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던, 스물한 살, 독고 선.

 

 “거짓말. 눈 떴을 때 잘생겨야 그럴 거잖아.”

 “넌 너무,”

 

 아현은 선을 흘겨보더니

 

 “나를 알아.”

 

 금세 웃으며 볼륨감 넘치는 가슴으로 선의 얼굴을 끌어당겨 파묻었다.

 

 “아이스크림.”

 “맞다.”

 

 그 짧은 찰나에 폭염에 버티지 못한 캔디바의 푸른 물기가 손을 타고 팔로 흘렀다. 작은 핸드백에 들어있는 게 별로 없는 아현은 휴지를 구해 오겠다며 높은 구두를 신고도 뛰어갔다.

 

 선은 그녀의 호의를 느끼며 앉아 팔을 아래로 내렸다. 바닥으로 고인 단물을 감지한 개미 한 마리가 재빨리 신호를 보냈는지 순식간에 우글우글 꼬여 든 개미들을 내려다봤다.

 

 “맛있니.”

 “개미가 뭐라 대답하는데.”

 

 위에서 울리는 대답에 선이 고개를 젖혀 올리자 이마에 찬 음료가 닿았다.

 

 검은 모자 아래 타고나길 전투적인 얼굴에 별 불만 없이 잘 투덜거리는, 스무 살, 한 우주.

 

 “이 날씨에 하드가 말이 되냐. 애도 아니고.”

 

 우주가 혀를 차며 가방에서 꺼낸 물을 그녀의 팔로 부었다. 찝찝함이 날아간 손과 팔을 보며 선은,

 

 “개미 학살의 현장이네.”

 

 우주를 비난했다. 너 도운 거잖아 하며 분노를 내비치는 그의 날카로운 눈을 외면했다.

 

 태양의 분노를 기꺼이 다 받는 세계는 시들고 지칠 만도 한데 푸릇푸릇한 자연을 보고 있자니 반성은 역시 인간의 몫인가 보다. 당연한 건가. 죄를 지은 자가 용서를 빌어야 하니까.

 

 “또 딴 생각했지?”

 

 우주는 대화에 금방 흥미를 잃어 버리는 선을 안다. 벌을 내리려는 건지 집중 시키려는 건지 그녀의 이마로 다시금 캔을 갖다 댔다. 아직 냉기를 뺏기지 않은 캔에 열기를 겨우 식혔다.

 

 “자. 이거 받아.”

 

 눈을 뜨자 시야에 흔들리는 종이 두 장이 잘못 본 게 아니면 요즘 더위만큼 뜨거운 힙합 레이블이 운영하는 공연장 티켓이다. 힙합 가수가 실제로 공연도 하고 파티처럼 즐길 수 있는 클럽은 하루에 정해진 양만큼의 표만 판매해서 구하려면 서너달 뒤나 암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와. 이제 주는 거야?”

 

 불쑥 나타난 아현이 표를 가로채자 우주가 진한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거 존나 구박 들으면서 가져온 거거든!”

 

 아현이 그의 수고와 노력을 다 안다는 자비로운 얼굴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 그럼. 우리 우주 훌륭해. 멋져. 내가 어떻게든 선이 끌고 갈게.”

 “오든가 말든가.”

 “꼭 가야지. 우주가 얼마나 수고했는데.”

 

 아현은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조금 늦는 감이 있지만.

 

 금세 다 말라버린 손아래의 개미들은 다 죽은 줄 알았더니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일 죽더라도 할 일을 하는 건 아무래도 인간보단 동물일 거다. 선은 더워,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현은 공연보다 입고 갈 옷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다.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섹시한 옷을 몇 시간이나 고르는가 싶더니 영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에어컨 바람 아래 늘어진 선을 일으켰다.

 

 “나 저번에 찜해 둔 옷 있는데 그거 살래. 나가자. 우리 선이 돈가스 먹을래?”

 

 먹이에, 아니 보상에 이길 자 있으랴. 살 옷을 골라 놓고 나와도 여자의 쇼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층짜리 편집샵에서 아현은 유유자적 둘러보더니 몸에 윤곽을 다 드러낼 만큼 붙으면서 허리 쪽이 시스루로 둘러진 검은색 원피스로 결정을 내렸다.

 

 돈가스를 우물우물 먹는 선 앞에서 아현은 샐러드만 집어 먹었다. 육감적인 몸매의 아현은 대학교에 올라오며 지독한 다이어트를 했고 지금도 하루에 두 시간씩 헬스장에 나갈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음식보다 자신이 성취한 몸매에 대한 애정이 컸다.

 

 선은 별 말 없이 먹는데 익숙하다. 아현은 그런 선이 오히려 훨씬 편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충고를 아무렇게나 뱉는 사람들보다.

 

 공연은 9시 시작이었다. 클럽 앞은 입장하는 사람 외에도 지나가는 연예인을 구경하려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입장을 확인 받자 2층 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아현이 흥분된 손으로 선의 팔을 흔들며 귀에 속삭였다.

 

 “여기 VVIP 석이야. 대박. 뒤에, 뒤에 모델 린다 있어.”

 

 표 위쪽에 다이아몬드 같은 표시가 있더니 그런 뜻이었나 보다. 맞은편 VIP 석과 구조상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체가 관람이 가능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VVIP 석 안은 들여다볼 수 없는 유리로 막혀 있다는 점이 달랐다.

 

 선은 유리가 얼마나 튼튼한지 궁금했다. 전혀 다른 관심으로 유리를 보던 선과 달리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현과 새침한 표정의 사람들마저도 진행자가 등장하자 유리쪽으로, 정확히는 유리 바깥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공연을 돕는 진행자의 재치 있는 이야기에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드디어 첫 게스트의 등장을 알렸다.

 

 “첫 무대 누군지 아세요?”

 

 관객이 같은 입술 모양을 만들었다.

 

 “와. 이 분 팬 요즘 진짜 많더라고요.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블? 여러분들이 아는 유니버스는 버려도 좋습니다.”

 

 아현이 팔을 더욱 흔들어댔다. 한순간 라이트가 꺼진 무대로 “아, 아.” 소리가 울리자마자 환호성이 울렸다.

 

 “Let me introduce my universe.”

 

 조명이 켜지며 무대의 중심에 선 표범 같은 사내는 그 환호에 질식될까 걱정될 정도였다. 사실은 호흡처럼 받겠지만.

 

 공연이 끝나고 땀에 젖은 얼굴로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열광적인 반응이 나왔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되는지 눈썹을 긁는 웃는 얼굴이 한순간 고양이 같아보이자 여자 팬들이 더욱 격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우리 우주 저렇게 보니까 또 멋있는데?”

 

 다소 놀리는 어투를 쓰지만 아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것도 그럴 것이 아현이 아는 우주는 매번 우유를 입에 달고 살고 잔소리도 많고 좀 어둑어둑한 불량 청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술을 잘 못 먹어서 빨개진 얼굴로 꾸벅 꾸벅 조는 모습이니 그럴 만도 했다.

 

 우주는 아직 정식으로는 곡을 두 개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열여덟 등장부터 언더에서 잘한다고 유명했고 최근 이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레이블 입성까지 마쳤다. 전도유망한 영재랄까.

 

 이어지는 다른 가수의 공연을 감상하는 와중 후드를 눌러쓴 우주가 잠시 얼굴 비추러 올라왔다. 아현이 장난스럽게 우주의 팔을 찔러대며 칭찬했다.

 

 “잘하던데. 누나 반할 뻔.”

 “뭐래.”

 

 그 손을 밀며 괜히 퉁명스럽게 구는 우주의 귀가 빨개졌다.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팬서비스도 하고, “목소리가 너무 멋있어요.”라는 말에 “얼굴은? 난 외모파 래퍼라 생각하는데.”라고 묻는 능글맞은 입담까지 보이는 다른 가수들처럼 언젠가 우주도 달라질까 라고 생각해봤지만 잘 상상되질 않는다.

 

 아현이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우주는 빤히 쳐다보는 선에게서 화제를 바꾸려 무대를 가리켰다.

 

 “이제 하이라이트야. 저 형 원래 무대에는 거의 안 서는데 특별히 나온 거라. 그래서 오늘 표가 역대 오픈 날 빼고 가장 빨리 매진됐어.”

 

 까만 무대에 빛처럼 탈색한 머리카락과 왼쪽 귀의 피어싱이 반짝거렸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숨죽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물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잘 봐. 열 받을 정도로 멋있으니까.”

 

 맹렬한 공격도, 처절한 방어도 아닌, 완전하게 굴복해버린 읊조림은 순식간에 이곳의 중력을 앗아갔다 돌려준다. 추락을 경험한 것처럼 얼어버린 사람들이 절벽의 바닥 대신 트램플린에 날려 보내기라도 하듯 곡의 변주가 일어나고 눈을 뜬 주인이 된 그에게 모두가 복종을 자처한다.

 

 소용돌이 같은 무대의 엔딩에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함성은 선에게 현기증처럼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선을 우주가 잡았다. 의외라기보다 예상했다는 얼굴로 우주는 저 역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처음 그를 본 자신의 반응도 비슷했다.

 

 “우리 사이에서 군주로 불리고 이름은 제로.”

 

 선은 그에게서 팔을 빼어내며 한 걸음 더 유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이름은 제로가 아니다.

 

 파리할 정도로 하얀 얼굴에 초연한 건지 처연한 건지 알 수 없는 말라붙은 눈동자와 대조적으로 연신 핥아 붉어진 입술이 뱀파이어의 증거라면, 기꺼이 피도 생명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스물여섯, 독고 온.

 

 4년 전에 집을 나간 제 오빠. 아무리 재회가 반갑기는 하지만, 이걸 깨는 건 무리겠지ㅡ라고 튼튼한 유리를 만지며 선은 아쉬워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10화. 호흡. 2019 / 1 / 4 231 0 5194   
9 9화. 가까워지는 중. 2018 / 12 / 27 228 0 5329   
8 8화. 좋아해요. 2018 / 12 / 24 200 0 4623   
7 7화. 쉽지 않은. 2018 / 12 / 17 214 0 4816   
6 6화. 위기의 남자 2018 / 12 / 15 221 0 5283   
5 5화. 운명의 수레바퀴 2018 / 12 / 15 243 0 4071   
4 4화. 이상형 2018 / 12 / 13 209 0 4136   
3 3화. 눈과 눈 2018 / 12 / 12 215 0 4100   
2 2화. 더 약한 쪽. 2018 / 12 / 10 214 0 3129   
1 1화. 네 사람 2018 / 12 / 4 373 0 420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해에게서 소년에
llena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