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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평범한 근무자들
작가 : 작품표지올리는방법
작품등록일 : 2018.11.12

다양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묘사와 고찰

 
병가와 권리
작성일 : 18-11-12 13:06     조회 : 493     추천 : 0     분량 : 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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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가와 권리

 

 라니는 눈을 감았다 뜨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눈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 지루한 업무는 언제 끝날까. 퇴근 시간까지 몇시간 남았나. 밥먹고 살기 위해서 나는 일을 해야한다. 일을 해야한다. 그럼,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하지. 그렇지만 나는 음악이 더 좋아. 일은 수단일 뿐이야. 음악을 위해서 이런 단조로운 일을 하는 거지.

 

 "오늘 하루 병가 사용 부탁드립니다"

 

 라니는 소도시에서 잡다한 인력을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인력 관리는 제 맘대로 안 될 수밖에 없는 업무이다. 특히나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하는 인력은 골칫덩이다. 근무연장이라는 구렁텅이. 이 악의 구렁텅이를 멀찍이 바라보는 라니와 근무자는 모두 구렁텅이의 희생자다. 근무자는 모두 떠나고

 싶어. 물론 라니도 근무자를 잡아놓고 싶지는 않다.

 

 "병가는 증빙서류를 잘 챙겨주세요. 그리고 법에서 정한 일수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일수를 초과하면…"

 

 다 안다. 모두가 안다. 근무자가 잠깐씩 구렁텅이를 나가고 싶어할수록 더욱 구렁텅이로 빨려들어 간다는 것을. 이 근무자는 법으로 정한 휴가 일수는 모두 써버린 상태였다. 며칠 남지 않은 병가를 모두 써버린다면 이 근무자는 구렁텅이로 더 깊게 들어가겠지. 하지만 그것때문에 라니가 불안하고 초조해야 할 필요는 없다. 라니는 단지 법에서 정한대로 근무자를 관리하고 서류를 처리하면 될 뿐이었다. 라니는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자신 마음속에 서리는 찬 바람을 인정하기는 싫었다. 모든 근무자에게 공평한게 인간애라고 믿고 싶었다.

 

 라니 눈 앞에 있는 근무자는 다른 근무자들 사이에서 나이가 꽤나 많은 편이었다. 근무자는 옛날에 이미 근무를 모두 마쳤었다. 그런데 이 근무자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예전 근무시절 근무비리를 저질러 근무를 예정보다 1년 일찍 끝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근무를 끝낸 후 십년 안되는 시간동안 근무자는 개운한 마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자신이 남겨둔 양심의 재가 다시 자기를 덮칠 것을 모른 채. 근무자는 다시 근무 통보를 받았다. 근무자는 믿을 수 없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근무자는 화가 치밀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렇게 근무자는 다시 또 다른 구렁텅이로 오게 된 것이었다. 십여년 전, 구렁텅이에서 조금 더 빨리 나가고자했던 욕심. 더 빨리,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구렁텅이에서 나가려고 할 수록 더더욱 빨려들어가는 늪. 나가려는 마음은 결국 근무자를 구렁텅이의 늪으로 집어삼켰다.

 그래서 근무자는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했다. 과거를 반복하는 것같아 싫었다. 근무가 모두 끝났다고 그렇게 지내왔는데, 나는 모두 끝냈는데. 나는 왜 계속 근무를 해야하지? 이 사실은 인정할 수 없어. 난 충실히 근무하지 않을 거야. 날이 추웠다. 근무자는 휴가일수는 모두 써버런 상태였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상태로 이 근무지에 머무르는 시간자체가 자신에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분명 그것은 근무자를 짓눌렀다. 그것은 아마 부끄러움일 것이다. 그래서 이만 병가를 사용하고 이곳을 오늘만이라도, 잠시라도 빨리 뜰 참이었다.

 

 "서류는 내일 잘챙겨오겠습니다."

 

 라니는 거절할 수 없었다. 법에서 정하기를 증빙서류가 첨부된 병가는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라니는 근무자에 대해 감정을 가지기 않기로 마음속으로 결정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냥 법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을 차단한 것은 아니었다. 소규모 인력을 관리하는 업무를 처음으로 맡았을 때는 근무자들을 볼 때면 여린 마음에 연민이 일렁였다. 근무자들이 몇십분씩 지각을 할 때 모른척 눈감아주기도 하였다. 근무자들은 근무지에 자신들의 시간을 뺏기고 있었다. 그것 역시 법에서 정한 것이였다. 하지만 근무자들은 모두 남자였다. 라니가 소규모 인력관리를 맡았을 때 가졌던 약간의 두려움은 상상이 가는가? 그러나 법이 라니를 보호했다. 근무자들은 라니를 때리거나 욕할 수 없었다. 또 법에서 정하기로 남자들은 근무를 하게 되어있으니 이 또한 라니의 탓은 아닌 것이다. 사실 근무자는 처음에 라니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처음 만나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이 혼자 사는데 고양이를 키운다는 둥 이미 근무를 옛날에 마쳤었다는 둥의 이야기를 해대곤 했었다. 하지만 라니에게 더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근무자와 라니의 각자 위치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근무자는 근무지를 빠져나왔다. 남은 하루는 해방이다. 자유다. 남은 하루는 온전히 내 것이다. 그렇지만 내일은? 일단 오늘은 구렁텅이에서 나온 것같아. 잠시 담배를 피도록하지.

 

 "지겹군 정말, 저 작자는 근무지에 붙어 있을 때가 있어야지."

 

 차사가 말했다. 차사는 라니 옆자리의 동료였다. 자세히 보자면 라니와 동등한 입장이나 좀더 오래 근무했기에 라니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기고 있었다. 사실 차사는 장애가 있었다. 다리를 약간 절고 귀를 좀 먹은 정도였는데 일상생활은 가능했다. 이런 차사에게 장애 전형으로 단조로운 일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쁜일은 아니였을 터이다. 차사같은 사람에게는 단조로운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일지도 모른다. 차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에 대한 사생활과 가족관계, 자신의 주변 것들.. 딱히 이유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세울 게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꺼내놓기도 하였다. 체코에 살다가 성인이 되어서 이 나라에 다시 돌아왔다. 그밖에 사회학적인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그렇지만 라니 앞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이내 그냥저냥한 옆자리 동료로서 이야기만 하는 둘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뭐. 병가는 권리니까요…"

 

 라니는 조용히 대답했다. 과연 사람의 말은 생각의 발현인가. 생각하는 그대로가 말로 나오는 것인가. 라니는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하고있다. 라니는 내면속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법에서 서류가 첨부되면 병가는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고. 규정되어있는 권리니까.

 

 차사는 가만히 듣다가 마음 속에 급격한 변동이 몰아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차사는 본래 예전에 자신의 장애가 있는 겉모습말고 내면이 얼마나 가득 차있는 인간인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내비쳤던 적이 있었다. 자신은 본래 역사와 철학을 좋아한다고,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분석하는 것이 취미라고, 법을 분석하는 것. 그 텍스쳐의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었다. 그렇지만 그 내면을 가득채우되 내비치는 것은 조심해야할 것이었다. 이내 그런 자신감, 자신의 우수한 내면을 비치고 싶어하는 욕구는 누를 수가 없었으며, 그 욕구는 내면에 대한 관심에 집중으로 나타나기 이르렀다. 사람들이 나의 내면에 집중해주었으면 나의 말에 귀기울여 주었으면, 나는 굉장히 철학적인 사람… 그랬던 탓인지 차사는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지는 않았다. 적어도 사람들이 자신을 은근한 눈빛으로 봐주는 것 정도는 바라고 있었다. 나만의 학식, 업무와 서류, 법에 대한 지식,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자리에서 일어나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손은 이리저리 휘저으며 자신이 알고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단정적으로 늘어놓기를 좋아라하였다. 나의 철학에 반대되는 것을 듣고 있을 수는 없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아가씨같은 라니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즉 나는 알 수 있지만 너는 모른다. 차사는 차갑고 싸늘하게 웃었다.

 

 "병가는 권리가 아니네."

 

 싸늘한 웃음과 던진 이 한마디는 차사 자신 스스로를 매우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이 행복해진 것같은 느낌까지들게 하였다. 내가 승리한 것 같은 기분. 자신의 승리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라니는 정신이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뭐라 취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하지? 따지고 들어야하나? 내 생각을 말할까? 법에서 정한 병가가 권리가 아니면 무엇이 권리이느냐고. 아니야 그건. 여긴 근무지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나와 상관없다. 나는 다만 법에서 정한 대로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이 구렁텅이에서 단조롭게 일을 하다가 정시가 되서 빠져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라니는 숨을 깊게 마셨다. 이 곳은 수단일 뿐이다.. 여긴 수단이야... 모두다..

 라니는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상대 모두다 어린아이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바꿀 처지가 되겠는가? 갑자기 마음 속 긍지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가 목소리를 이래저래 바꿔서 내는 소리일 뿐이다. 의미가 무엇이든 소리일 뿐인 것 가지고 나는 왜 이렇게 동요하는가? 못다한 서류작업을 마저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조한나 18-11-16 08:53
 
* 비밀글 입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바울 18-12-07 23:26
 
배경하고 잘 어울리는  문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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