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
 1  2  3  4  5  6  7  8  9  >>
 
자유연재 > 현대물
너와 너
작가 : 52
작품등록일 : 2016.8.22

내가 아닐 너와 너의 시시한 일상 이야기, 또는 비일상. (주 2-3회 연재합니다:▷!!)

 
01 . 집, 그리고 너와 매미
작성일 : 16-08-22 23:48     조회 : 718     추천 : 4     분량 : 747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01 . 집, 그리고 너와 매미

 

 

 

 

 

  -

 

 

 

 

 

 "야, 히비키. 숙제는 다 했고?"

 

 "조용히 해. 지금 독서 중이잖아."

 

 

  코팅된 흑갈색의 나무바가지에 담긴 감자칩을 두어 개 겹쳐집으며 대답했다. 새벽의 달이 고요하게 비추는 지금, 분명 한여름임에도 창문 틈으로 살랑이는 바람이 서늘하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벽 구석의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네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를 묵시적으로 표현하고자 감자칩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삼켰다.

 

  숙제는 몰라. 눈살을 가늘게 찌푸리고서 책의 한쪽 면에만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머릿속에 담아낸다. 마치 경로당의 할아버지가 신문 읽는듯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은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책의 장르, 내용, 또는 흐름과 분위기. 그 어느 것과도 상관없지만 독서 중엔 항상 보이게되는 나의 좋지 못한 습관들 중 하나이다. 언젠가 학교의 담임선생님께서 '얼마나 진지한 책을 읽고 있길래'라는 말을 중얼이며 내 책상을 지나쳤던 일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뚜름히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기도 전에 다시 말을 걸어오는 네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제 옆의 솜 베개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게 무슨 독서라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 책, 읽어도 아무 쓸모없을 것 같은데."

 

 "쳇. 네가 뭘 안다고······."

 

 

  이미 비어버린 나무바가지 안에 남은 것은 연노랑색의 감자칩 가루들뿐이다. 왼손 검지와 엄지손가락에 묻어버린 기름이 미끈거려 몇 번 비벼보고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사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방금까지 읽고 있었던 책은 이름 모를 저자가 쓴 곤충도감으로 글자보단 곤충의 사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심지어는 중학교 시절, 현장학습으로 갔던 공원에서 기념품이랍시고 구매했던 책이라 그 두께도 매우 얇았기에 더 이상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있잖아."

 

 "응?"

 

 

  침대 위에서 시트로 깔린 하얀 천을 발로 죽죽 밀어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네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새미(セミ* 일본어로 매미.) 말야. 조금 불쌍하지 않아?"

 

 "아니, 별로."

 

 

  의외랄 것도 없는 단호한 대답. 아, 그래. 하고 짧게 대답하고선 꽃무늬가 그려진 갑 티슈를 몇 장 뽑아 손가락을 닦았다. 짧고도 긴 매미의 일생. 생물학적으로 매미과에 속하는 곤충인 매미, 하필이면 그의 한살이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약 7년 동안 땅속에만 있다 간신히 올라와선 그 짧은 2주가량의 시간 동안 알을 낳고 바로 생을 마감한다니. 바깥 생활에 대한 희망이 없는 걸까. 삶에 그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만을 묵묵히 행한다는 점이 꽤나 매력적이지만 정말 모든 매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책의 표지는 화려한 나비의 사진. 어째서인지 매미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어버려서 표지의 나비가 영 눈에 거슬린다. 아마 나는 놀랍게도 진정한 독서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까지 책에 열중하고 있던 나는 표지의 이 검은 나비가 곤충류 나비목 호랑나비과의 긴꼬리제비나비라는 것을 안다. 아까의 네 말대로 이런 걸 알아서 어디에 쓰겠냐만은, 적어도 나비의 그 화려함만으로는 이 책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정해진 주인공 따윈 없는 종류의 책이었지만 무슨 상관이람, 내 마음속에서만큼은 매미가 1등으로 기억될 텐데. 나처럼 이 도감의 주인공을 매미로 인식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분명 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잡생각을 뚝 끊어내고 어느샌가 구겨졌던 인상을 바로 펴본다. 책상 바로 옆 민트색의 3단 책꽂이 맨 아래 칸에 책을 거의 던지다시피 넣은 후 이어 네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너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다. 네가 발끝으로 마구 밀어놓았을 침대 시트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말끔하다.

 

 

 

  그저 나의 침대 위에서 청랑하게 미소 짓는 너는, 넌.

 

 

 

 

 

 *

 

 

 

 

 

  첫 만남, 너와 처음 마주쳤을 때의 느낌은 자몽의 맛.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의 밤, 손목에 찬 금속 시계의 바늘은 열두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새카만 하늘에 옅게 퍼져있는 회색의 구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장난. 여름 특유의 눅눅함이 묻어난 그 바람을 나는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지만 바람이 나의 눈두덩을 가만두지 못 해서, 그에 따라 발걸음이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입구 땅바닥에 오돌토돌 깔린 그레이 벽돌의 느낌이 발에 스몄다. 다 왔구나. 이미 바람에 엉망이 된 앞머리를 손으로 대충 쓸어내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파랑을 품은 하늘아, 생명을 소원한다면 아름다운 그대는 분명ㅡ"

 

 

  향하고 있던 곳은 지나쳤던 아파트 입구. 되돌아가니 명확하게 보였다, 새파란 달빛에 흠뻑 젖은 너의 모습이.

 

 

 "······드넓은 마음을 가진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자유롭게 구름 위를 날아가리라."

 

 

  명랑한 반 여학생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쉬는 시간의 종이 울리면 재잘거리기 시작하는 여자 무리들과 다른, 그중 누군가 한 명의 고유한 목소리일 것만 같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한 번쯤은 봤을법한 가녀리면서도 매력적인 여배우의 목소리. 그런 목소리로 나의 시를 말했다. 언젠가 교과서에 나왔던 파랑새의 그림을 보고서 빈 노트에 끄적였던, 아무런 의미를 담지 못했으며 영감조차 없는 형편없는 나의 시 아닌 시를. 언뜻 생각하면 낭만적일 분위기를 자아낸 듯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달달한 뒤엔 씁쓸함이 따라오는 자몽의 맛, 그때 나의 기분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언제 본거야.'

 

 

  너, 그러니까 그때의 소녀는 은은한 코랄 빛을 머금은 오렌지색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미소 짓고 있었다. 깔끔한 생머리가 허공에서 곡선을 그려냈다. 나의 아파트 윗동에서, 철창 난간에 여유롭게 앉아 내려다보며 지어 보이는 그 웃음이 가뜩이나 묘한 분위기를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침만 꿀꺽 삼켰다. 달빛을 받아 뽀얀 피부는 휘날리는 하얀 원피스와 함께 반짝거렸다.

 

  그것은 분명 꿈이거나 환영이었을 것이다. 그랬어야 했고, 그것이 맞다는 것을 마음속에서는 인식하고 있었을 테지. 별이 내린듯 반짝이는 피부와 하늘하늘 휘날리는 드레스의 규칙적인 레이스 문양. 여유로움을 한가득 담고 있는 그 묘한 미소에 분위기까지.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기에 오히려 침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 너의 등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한 무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너도,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파트 옆에 세워진 수학학원 건물 간판 불이 팟, 하고 꺼졌다. 굵고 짧은 시곗바늘과 가는 시곗바늘이 서로를 끌어안아 열두시를 가리켰다.

 

 

 

  난간에 앉아있던 하얀 소녀는 사라졌다. 언제부턴지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던 검은 고양이가 '야옹ㅡ'하고 울었다.

 

 

 

 

 

  *

 

 

 

 

 

 "그으래서, 그 책 읽으니까 무언가 도움이 됐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언가를 얻었다거나."

 

 

  침대 위에서 죄 없는 베개를 발로 걷어차길 반복하던 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

 

 

  책꽂이에 던져 넣었던 아까의 그 곤충도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꼬리를 살 끌어올렸다.

 

 

 "나, 이 책 표지에 있는 나비 이름 알아."

 

 "그러게. 긴꼬리제비나비였나."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살며시 올라가던 입꼬리를 추욱 내렸다. 여전히 재미없는 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번 거칠게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제에 대한 생각은 이미 까맣게 지워버렸음에 틀림없다.

 

  침대에 가서 옆에 걸터앉으니 그제야 너도 몸을 일으켜 자제를 바로잡아 앉았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너의 지금 형상은 사람. 나와 같은 또래의 남학생의 모습을 하고서 히죽 웃고 있다. 이따금씩 모습을 바꾸기도,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네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다. 분명 염색은 아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조금 뜨는 검은 머리. 뽀얀 피부. 다크서클이 연하게 쳐진 나와는 다르게 항상 장난기 가득한 말똥말똥한 눈동자까지. 한 게임의 던전 입구에서나 나올법한 그때 소녀의 모습도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내가 간혹 그 묘한 분위기를 다시금 떠올릴 때면 네가 그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래도 역시 이 모습인 쪽이 좀 더 호감형 일지도.

 

 

 '왠지 친근한 동급생 같아서 좋ㅡ..'

 

 

 "야, 히비키."

 

 "하아, 또 왜."

 

 

 "숙제는?"

 

 

 

  아뿔싸. 완전히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나려던 불안한 찰나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나라에 오고 나서 많은 것이 변했다. 야간자율학습이라니. 이런 방대한 양의 숙제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이런 비효율적인 평일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자고로 말해두자면, 오늘은 화요일이다.

 

  잠깐의 대화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구나. 쯧 혀를 차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로 향할 운명이었던가, 나는. 내려앉는 무게로 인해 의자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살이 찐 게 아니다. 단지 의자가 낡았을 뿐인데. 앉았다 일어날 때면 이런 소리가 난다. 의자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일까. 그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책을 읽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의 내 표정은 모든 세상의 불만스러움을 한곳에 모아놓은 것만 같다. 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색의 가방 지퍼를 열어 수학 책을 꺼내들었다. 나는 분명 문과(文科)를 선택했는데, 어째서 이런 복잡한 수학기호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 의문점을 아직까지 끝내 선생님께 물어보지 못한 것은 나의 큰 실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너무 화내지 않아도 되잖아? 대화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걸."

 

 "조용히 해, 그냥 숙제하기 싫어서 그런 거야. 대화는 무슨.“

 

 

 “푸핫ㅡ.”

 

 

  그 웃음소리 후로는 사각사각, 뾰족한 샤프심이 갈려나가는 소리만이 방안을 채웠다. 내가 숙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네가 그것을 안다. 말 많은 네가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엄청난 배려심을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를 풀어내려 갈수록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답답한 기운을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귀차니즘이 그 답답함 위에 있었고 결론적으로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문제를 푸려는 순간, 뚝. 샤프심이 부러지고 말았다. 답답함이 가슴을 쳤다.

 

 

 ‘아아, 못 참겠어.’

 

 

  이젠 한계라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네가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반쯤 열어주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식은땀에 젖은 목을 스쳤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녹슨 철제 의자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

 

 

 

 

 

  거실은 인적 없는 골목과도 같이 한산하다. 일로 인해 한동안 떨어져 살게 되신 아버지의 사무실에 갔던 여동생과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간은 새벽 1시 37분, 너의 조용한 재촉으로 간신히 숙제를 끝내놓았다는 사실은 기뻐해야 하는 부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집에 있는 게 나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아니, 네가 있었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너를 불렀다.

 

 

 “뭐 하고 있어.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아, 히비키. 혹시 무서워서?”

 

 “그럴 리 없다니까.”

 

 

  거실의 커다란 베란다 창을 가리고 있는 연한 노란색의 커튼 뒤에서 네가 불쑥 튀어나왔다. 놀라지 않았던 이유는 네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장난이라고 칠까 싶었다는 표정을 하고서 손에 잡힌 커튼을 유명 여배우의 드레스처럼 몸에 휘감았다. 커튼 끝자락에 매달린 보석 모양 유리 장식품이 짤랑이며 요란하게 흔들렸다. 물론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 도라지꽃 색과 비스름한 게 꼭 애머티스트 같아서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다.

 

  잠은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다큐멘터리를 보겠다며 소파의 자리를 차지하는 나와 여동생과의 리모컨 싸움을 은근히 즐겨왔던 내가 지금 리모컨에 손조차 뻗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지금이야말로 아까 하지 못 했던 너와의 대화를 할 시간이지 않을까. 카메라맨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드레스 놀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너를 보며 손바닥으로 소파 옆자리를 톡톡 두르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휘감았던 커튼을 놓고 소리 없이 걸어오는 네가 옆자리에 앉았다.

 

 

 “워후, 히비짱. 지금 나름 진지해?”

 

 “그렇게 부르지 마. 정말 여자애 같잖아.”

 

 

  히비짱이라는 호칭에 간만에 형성했던 진지함이 와르르 무너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거부를 표했다. 물론 너는 더 이상의 장난을 치지 않았다. '히비키' 라니. 그런 여자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된 건 분명 어머니의 영향이다. 예쁜 단어를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 첫 자의 '히'를 따와 무작정 단어를 나열해 선택한 것이라고. 여기 와서는 새 이름이 생겼지만 너는 언제나 보란 듯이 그런 이름을 외치고 만다. 하지만 ‘짱‘을 붙이지 않았을 때는 그다지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이름이 얼마나 익숙하게 다가오는가를 처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때쯤이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고 꾹 닫았던 입술을 열었는데 곧바로 문이 열리는 전자음이 귀에 들려왔던 게.

 

 

  '삐리리ㅡ'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여동생을 업은 채 힘겨운 걸음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양손에 가득 들린 종이가방을 툭 문 앞에 내려놓고서 인사도 할 틈 없이 방 안으로 사라졌다. 여동생을 눕히러 갈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를 저 종이가방을 부엌의 큰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 종이가방에 들어있었던 건 내가 좋아하는 센베이(*전병)였다. 나와 같이 센베이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챙겨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부엌 찬장에 통을 쌓아놓고는 나도 다시 나의 방으로 향했다. 밤이 깊었으니까, 여동생의 방에서 같이 잠들어있을 어머니와의 인사는 아침에 해도 충분하다.

 

  방에 다시 돌아왔을 때 너는 다시 내 침대에 올라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새하얀 침대 시트는 여전히 깔끔하게 펴져 있었다. 네가 해놓았을 리 없지만,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네 곁에 가 웃었다. 너도, 아무 말 없이 따라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미소가 좋았다. 내가 이불을 덮고 누운 후에야 너는 일어나서 방 형광등의 스위치를 껐다. 방의 불을 끄고 천장을 바라보면 검은 점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것조차 너와 함께라면 싫지 않다.

 

 

 

 “저거 봐. 저 점들 보여? 귀신같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 모호하고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자극에서 일정한 패턴을 추출해 연관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현상. 예로 구름을 보며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의 형태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역시 재미없는 놈이네.”

 

 

 

  이불을 덮고서 눈을 감았다. 열어놓았던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구름 위에서 너와 고양이, 그리고 다리 달린 센베이와 뛰어노는 꿈을 꾸었다. 듣지 못할 참매미의 소리가 어둠 위로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며 너는 사라졌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에이바 16-08-25 14:31
 
제목을 처음에는 너와 나로 잘못 보았습니다. 호기심을 끄는 제목 처럼 좋은 글 쓰시길 바랍니다. 선작,추천 하고 갑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 (2) 2016 / 9 / 2 367 0 854   
2 02. 투명, 투명 2016 / 8 / 24 324 3 7260   
1 01 . 집, 그리고 너와 매미 (1) 2016 / 8 / 22 719 4 747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