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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용과 소녀
작가 : 이저녁
작품등록일 : 2018.11.2

우연히 용의 동굴을 발견한 소녀, 용은 소녀를 죽이기 않는 대신 조건을 제시하는데...

 
늙은 용이 사는 지하 동굴
작성일 : 18-11-02 01:49     조회 : 342     추천 : 0     분량 : 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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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줄기 빛도 닿지 않는 깊고 좁은 동굴, 그 지하에는 늙은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갑옷보다 단단한 비늘이 떨어지는 지하수를 맞고 있었으며, 뱀처럼 길쭉한 몸통은 똬리를 틀듯 둥글게 말려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돌바닥을 파고들었고, 채찍처럼 긴 꼬리 끝에는 납작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칼처럼 돋아나 있었다. 길쭉한 앞다리에 달린 날개는 그 넓이가 왕궁을 장식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휘장 못지않았으며, 단단한 뿔과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달린 거대한 머리는 용의 덩치에 비하면 오히려 작아 보였다.

 

 어둠 속에 잠긴 용의 거대한 몸뚱이는 얼핏 보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용의 몸은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비늘 사이에 고인 차가운 지하수가 작은 폭포처럼 졸졸졸 흘러내렸다. 오랜 세월 동안 불을 뿜지 않고 떨어지는 지하수를 맞아온 용의 피부는 한때 강철마저 녹아 흐르게 하는 화염을 뿜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차가워져 있었다.

 

 늙은 용은 수천 년 전 이 동굴에 자리를 잡은 후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용이 자리를 잡으면서 아가리 같던 입구가 무너진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용은 너무 지쳐있었다. 끈질기게 용을 괴롭혔던 전쟁이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용은 세상에 환멸만을 느꼈다. 그에게 승패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딱히 잃은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얻은 것도 없었다. 용은 그저 자신이 살던 북쪽 산맥 너머의 설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광기는 이미 머나먼 남쪽으로 내려온 용을 순순히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지상의 수많은 생명체는 용을 증오했다. 문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가 그가 가는 길에 화살을 쏘고 바위를 날려댔으며, 신과 천사들은 용의 막강한 화염에 질린 나머지 용들이 공격을 피해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용들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국경 너머 깊은 산 속이나 바다, 아니면 호수 밑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늙은 용은 아니, 당시만 해도 아직 젊은 편에 속했던 그 용은 동족들처럼 멀리 가지 못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날개가 심하게 찢어졌기 때문이었다. 오래 날 수 없었던 용은 인간의 영역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되는대로 인적이 드문 숲 속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동굴은 용에게는 무척 좁았지만, 그런대로 아늑했다. 지상에 내려앉은 용은 동굴 입구로 천천히 기어들어가 우선 차가운 지하수로 목을 축였다. 그런 다음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을지 모르는 종유석들을 박살 내며 지하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젊은 용은 늙은 용들에 비해 덩치가 작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지상의 생물들보다는 훨씬 거대했기에, 그가 지나갈 때마다 동굴과 산, 그리고 나무들이 요동쳤으며, 새들과 짐승들은 겁에 질려 사방팔방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둔한 인간들은 용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기에, 그곳 사람들은 그저 지진이 일어났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용이 동굴에 자리 잡고 수십 년이 지나자, 그저 변방 시골에 불과했던 작은 마을은 옆 나라와의 무역이 활성화되며 어느새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마을 촌장과도 다름없었던 영주는 수천 명의 병사를 휘하에 거느리는 권력가가 되었다. 마을을 둘러싼 넓은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세련된 벽돌 건물이 빽빽이 들어섰다. 그리고 넓어진 도시를 높고 튼튼한 성벽이 뱀처럼 휘감았다. 중심부에는 화려한 성이 우뚝 솟아 도시의 위용과 부를 자랑했다.

 

 용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며 인간들의 북적이는 소리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 용은 수십 년간 얕은 잠을 자곤 했으나, 인간의 도시가 결국 성벽 밖을 넘어서며 잠들었다 깨는 일이 잦아졌다. 도로 위를 달리는 마차 소리와 인간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용의 단잠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용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날갯죽지를 관통하던 거대한 화살은 인간들의 작품이었다. 상처는 오래전에 나았지만, 용은 아직도 그곳이 쓰린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그 작디작은 인간들의 눈빛을 용은 잊을 수 없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눈빛은 가장 오만하고 잔인한 용의 눈보다도 사악했고, 그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인간들이 동굴 안으로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용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시 수십 년이 지나고 도시의 발전이 정체되기 시작할 무렵, 인간들은 종종 용이 사는 동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입구는 무너졌지만, 용이 숨을 쉬게 해주는 작은 구멍들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 구멍들은 용에겐 그저 작은 숨구멍에 불과했지만, 인간들에게는 엄연히 동굴의 입구였다. 대부분은 도시를 드나드는 나그네였으며, 동굴 어귀에서 비나 바람을 잠깐 피하고 금방 사라졌다. 한 때 도적 떼가 자리를 잡은 적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깊은 지하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용은 뱃속의 남은 열기마저 식히고 그저 차가운 지하수를 맞으며 자신의 기척을 숨기려 애쓸 뿐이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도시가 쇠락하기 시작할 무렵, 기어이 인간들은 용이 사는 지하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도시는 다시 예전처럼 변방 취급을 받았고, 한 때 전쟁의 중심지였던 이 나라는 과거의 영광과 전설을 숭배하는 모험가들에게는 금은보화만큼이나 매력적인 장소였다. 모험가들은 오래된 지하 동굴이나 폐허에 환상을 가지고 유적이란 유적은 모두 찾아가 이 잡듯이 쑤시고 다니는 듯했다.

 

 인간 모험가 한 명이 최초로 지하에 내려왔을 때, 용은 잠자코 그를 지켜보았다.

 

 둔한 그 모험가는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식을 대로 식어버리고 석회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용의 몸뚱이를 그저 커다란 바위로 인식한 듯,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며칠 묵을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용의 꼬리 쪽으로 다가가 모닥불을 피우려 했다. 모험가가 불을 지피기 전, 용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천진난만한 모험가를 내려다보았다.

 

 석회가 갈라져 굴러떨어지는 소리, 비늘 사이에 고인 지하수가 조르륵 흘러내리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고, 그제야 인간 모험가는 뒤를 돌아보고 용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모험가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용의 한 입 식사거리가 되고 말았다. 빠르게 아가리를 닫으며 난 충격음만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용은 으깨진 인간 모험가를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사슬갑옷과 검 한 자루, 그리고 방패를 뱉어냈다. 근 백 년 만의 첫 식사는 입가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었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유희가 되었다고 용은 생각했다. 게다가 소량이지만 배낭에는 금화까지 찾을 수 있었다. 용은 아무리 미물들이라도 이렇게 한두 마리씩 찾아오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용의 바람대로 그 후로도 모험가들은 몇 번이나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때마다 용은 그들을 전부 씹어 삼키고, 침에 젖은 장신구를 뱉어내 다음에 찾아올 모험가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동굴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번영했던 도시는 점점 더 폐허가 되어갔고, 모험가들의 발길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굴 구석에는 이미 희생된 모험가들의 유품이 잔뜩 쌓여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은 이제 용의 뱃속이 아니면 숨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도시는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대신 신과 용의 존재를 잊은 괴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능에만 충실한 그들은 결코 지하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하로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지하 동굴은 그저 박쥐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불쾌하고 축축한, 게다가 먹이조차 없는 보잘것없는 서식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말하는 미물들이 너무 유별났던 것이다. 안전한 도시를 내버려두고 굳이 이 어두운 동굴까지 내려와 명을 재촉하는 짓은 그들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은 다시 고개를 바닥에 늘어뜨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용이 다시 눈을 뜬 건 수천 년이 지나, 전쟁이 신화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찾아온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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