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작전대로였다.
“꼼짝마! 칼 내려놓고 손 머리위로 올려!”
연화가 속한 강력반 반장, 김성호가 총을 들어올리면 고함쳤다. 지금 그녀의 목에는 예리한 식칼이 닿아 있었지만, 그리고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 남자는 지난 4 개월간 무려 17건의 살인과 7건의 강간을 저지른 연쇄살인마였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깡다구 하나는 자신이 있었고, 애초에 이 모든건 그녀가 내놓은 작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인간쓰레기는 그녀가 파놓은 함정에 보기좋게 걸려들었다. 이 남자는 인질이 없어지면 자기는 그대로 체포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절대 그녀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멍청이가 눈앞의 총에 정신이 팔린사이에 힘으로 그녀를 붙잡는 팔을 풀고 이놈을 제압할 것이다. 아무리 연화가 여자라도, 그녀는 온갖 무술을 익히고 훈련을 받은 경찰이고 이놈은 그냥 굴러다니는 배나온 중년이다.
‘내가 이겼다,’ 그녀가 생각했다.
푹.
그 식칼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무참히 꽂히며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어?’
“이런 미친...!”
반장의 고함은 왱왱 울리며 잦아들었다. 고통보다는 충격과 혼란이 밀려들었다. 놈의 팔에는 어떤 불안정한 동작도 없었다-즉, 깜짝 놀라서 찌른 게 아니었다. 작정하고 인질을 죽이기로 한 것이다. 확실하게 체포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면 이 남자는 그런 것조차 모르는, 순전히 더럽게 운이 좋아 수사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간 바보였던 걸까?
‘뭐야 이거. 말이 되? 이게 대체 무슨...’
푹, 푹, 푹, 푹-
마치 본인의 안전 보다도 살인에 미친 것처럼, 남자는 연화의 몸을 무작정 찔러댔다. 혼란에 밀려있던 통각이 무수한 상처에 따라 제자리를 찾으며 끔찍한 감각이 밀려왔다.
“아, 아아아악...!”
그러나 그녀의 비명을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가느다랗게 흘러나온 신음에 가까웠다. 그녀의 손이 무작정 칼을 찾기 시작했지만 헛수고였다. 빌어먹을 살인자놈은 해부학이라도 공부했는지, 이미 중요한 동맥을 찌른 상태였다. 물밀듯이 밀려온 고통과 충격이 모두 서서히 가시며, 그녀의 눈이 감겼고 그녀의 정신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
“허어어어어억!”
연화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미친듯이 목과 상체를 더듬었지만, 어느 곳도 아프지 않았고 잠옷은 그저 땀이 살짝 묻었을 뿐 멀쩡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는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10월 23일. 그녀가 현재 악명높은 연쇄살인마가 현재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프로파일링에 맞춰 놈을 유인해 내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흐트러뜨리면서 짜증냈다.
“아이 씨, 바로 오늘 그딴 꿈을 꾸다니. 재수 한번 더럽게 없네. 액땜이라도 해야 하나. 기분 나빠.”
평소에 온갖 공포물과 무거운 놀이기구를 섭렵하는, 거의 ‘공포’ 라는 감정이 없다시피 할 정도의 담력을 가진 그녀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보다 수위가 훨씬 낮은 이 꿈은 그녀의 소름을 돋게 했다. 반장에게 욕을 들어먹고 하루 쉴까 할 정도로.
“아니야. 강력반의 에이스인 내가 고작해야 이런 악몽 때문에 미친놈을 잡아넣는걸 늦춘다니, 말도 안 돼. 정신 차려, 이연화. 이놈만 잡으면 휴가 내고 좀 쉬자고.”
그녀는 현관문을 닫았다.
“으음, 그래도 이놈이 미친놈인 건 맞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심은 할까.”
전자 도어락의 잠김 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