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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박쥐
작가 : 사각
작품등록일 : 2018.10.23

"기왕 죽을거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
"타 죽고싶어."

 
1화
작성일 : 18-10-26 01:49     조회 : 352     추천 : 0     분량 : 7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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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3년 11월 20일

 

 

 

 까맣게 타 죽은 잿빛 하늘에 낀 고름같은 노을은 영상 기록으로 남겨진 백년 전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노을을 보며 감성에 들뜬 열병을 앓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노을은 긴 밤의 시작이자,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어린 소년의 북소리와도 같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빠르게 뭉쳤다. 우리는 곧 구를 이루었고, 곧 시를 이루었다. 우두머리도 생겼으며, 군대도 생겼다.

 

 

 

 아빠는 이 마을에서 작은 군대를 이끌고있는 부대장이었다. 아빠 소속의 부대원들 중엔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을 열 넷의 어린아이도 있었고 환갑이 넘은 아저씨도 있었으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무리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물론 그 오합지졸의 우두머리는 우리 아빠였다.

 

 

 

 

 

 

 "해 진다. 문 닫아라."

 

 

 

 

 아빠가 여러대의 장총에 총알을 채워넣으며 내게 말했다. 가만히 창가에 서서 그 고름같은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응.'하는 단조로운 대답과 함께 창문을 닫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리고 마지막 네 번. 그렇게 총 네 번의 안전 문을 닫고 뒤돌아서니, 아빠의 곁에 서서 한 알, 한 알 총알을 내밀고 있었던 김도휘가 다가와 한 번 더 문을 확인했다.

 

 

 

 

 "내가 애야? 잘 닫았어."

 

 "여러번 확인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 말을 마치며 김도휘가 모든 문이 다 닫혔는지 그 동그란 눈을 굴리며 확인했다. 김도휘는 아빠가 아끼는 부대원이자, 아빠의 친구 아들이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우리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무기를 수리하는 일을 하던 그가 본업을 접고 아빠의 군대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고,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도 딱 그때였다.

 

 

 

 그래서 김도휘는 병적으로 안전에 예민했다. 그의 눈 앞에서 '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아버지의 몸뚱아리를 보았을때부터 아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우리 아빠였고, 그 다음부터 김도휘는 아빠의 두번째 목숨이 되었다.

 

 

 

 아빠가 김도휘를 목숨만큼 아낀다는 뜻이 아니라, 김도휘가 아빠를 대신해서 대신 그들에게 찢겨 죽어줄 수도 있을만큼, 아빠에 대한 김도휘의 충성심이 극에 달해있다는 뜻이었다.

 

 

 

 

 해가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중, 삼중, 사중으로 싸맨 철옹성같은 요새에서 그냥, 그렇게 아직 죽지 않았음에도 죽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았다.

 

 난 가끔 그냥 죽고만 싶었다. 죽지 않았음에도 죽은 사람들처럼 밤을 지새울때마다.

 

 차라리 그들을 만나, 어둠을 깨고 태어난 순간 사방으로 흩어지는 햇볕처럼. 그렇게 죽고싶었다.

 

 

 

 

 

 

 ────────────The Bat─────────────

 

 

 

 

 

 

 

 오늘은 열흘마다 돌아오는 장날이었다.

 

 

 

 폐허가 된 이곳엔 더는 사진과 글로만 보았던 광고가 번쩍이는 슈퍼마켓도, 값은 비싸지만 우리는 활동하지 못 하는 밤까지 운영한다는 편의점도, 비싼 곡물을 으깨 구운 빵을 파는 베이커리까지도 없어서 사람들 모두가 열흘마다 돌아오는 이 장날에 열흘동안 필요한 식량과 부자재들을 사들였다.

 

 

 

 우습게도 이날 장을 지키는 사람은 마을 군인이었다.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총알이 장전된 장총을 어깨에 짊어진 그들은 사재기 하려는 사람은 없는지, 질서를 어기는 사람은 없는지 감시하는 일일 감시반이었다.

 

 

 세상 하나뿐인 용사들처럼 훈련을 받아놓고, 정작 힘 쓰는 일은 이렇듯 장에서 보초를 서거나, 일꾼들을 도와 위험지역으로부터 단단히 벽을 쌓아올리는 일을 하는 것들 뿐이었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야 그들을 치켜세워주었지만, 나처럼 젊은 사람들은 그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밤에는 아무리 무장군인이라고 한들 박쥐들 앞에선 한낱 고깃덩어리인 인간에 불과했고, 낮에는 그들이 활동을 하지 못하는 태양이 우릴 지켜주고 있어 할 일이 없었으니까. 아, 있다. 장의 보초를 서고, 벽을 세우는 일.

 

 

 

 

 

 멀리 주렁주렁 껍질을 벗긴 돼지를 매달아놓은 곳에 우뚝 서있는 김도휘가 보였다. 나는 그곳은 최대한 나중에 가고싶어서 먼저 채소를 사러 들렀다. 종이에 적힌 것들을 다 사려면 집을 다섯 번은 왕복해야했다.

 

 

 

 아빠는 해가 뜨면 그 다음부터 연락이 거의 되질 않는 사람이었고, 객식구이긴 해도 같이 살고있는 김도휘는 저기 저 껍질 벗겨놓은 돼지들을 융통성 없이 제 목숨줄마냥 꼭 붙들고 서서 지키고 있을게 뻔하니 이 많은 짐을 운반하는 것은 다 내 몫이었다.

 

 

 

 친정에 간다고 나갔다가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돌아오지 않고있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에서 엄마의 몫을 이어하고 있던 나는, 벌써 웬만한 찌개나 반찬들은 할 줄 알았다.

 

 문제는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없을 뿐이었다. 섭섭하진 않았다. 내 음식은 딱히 내 입맛에도 맞진 않았으니까. 가물은 땅에서 자란 바짝 마른 채소나 살을 찌우려고 온갖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먹여 비계만 가득한 고기들을 가지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어서 나는 딱히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해주지 않는 김도휘나 아빠에게 섭섭해하지 않았고, 내 음식솜씨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잘 계시지?"

 

 "부대장님은?"

 

 "아이고, 이게 누구야!"

 

 

 

 

 

 아버지만큼이나 나는 유명인사였다. 그래서 나는 장을 보러 나오는게 싫었다. 이곳에 나오면 같은 말을 백번도 넘게 반복해야했다. '일하러 가셨죠.' '네 안녕하세요.' '잘지내셨어요?'하는 것들을. 아빠가 처음 부대장이 되려고 선거를 나갔을 때 장에 나와 하던 짓을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객식구를 포함한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유명인사였다. 아버지는 이러나 저러나 말은 많아도 얼마전엔 시장에게 표창까지 받은 인정받는 군인이었고, 김도휘는 죽을 운명을 간신히 피해간 행운의 사나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호는 도휘랑 언제 결혼을 하려구?"

 

 "에엥? 한 거 아니였나? 같이 집에 들어가기에 결혼 한 줄 알았건만."

 

 "이 할망구가 왜이랴? 우리 마을에 유일한 처녀가 지호인댜."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다.

 

 

 

 

 

 "…아니에요. 저 결혼 안 해요. 아줌마."

 

 "왜! 왜 안 해! 큰 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혁이아줌마가 호통을 치며 내게 줄 나물을 봉투에 담았다. 나는 그녀의 호통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들’은 아이 또는 여자의 피와 살점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자들 중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나 ‘애를 낳지 않은 여자’들을 더 많이 납치해간다는 소문은 이미 어른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 된 이야기였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나 여자들이 더 많이 피해를 입는 것 뿐. 남자도 잡혀가고, 노인들도 잡혀갈때가 있으니까. 물론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긴했다. 모르겠다. 인간도 채소는 싫고 고기만 좋아하는 편식을 하듯이 그놈들도 남자는 싫고 여자만 좋아하는 편식을 할런지도 모르지.

 

 

 어쨌건 그 놈들 때문에 몇 년간 대한민국 전역에 몇 개로 나누어진 안전지역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여자의 비율이 감소했는데, 운이 나쁘게도 우리 지역에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마을이 작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아빠는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김도휘와 나를 결혼시키려 했다. 실제로 청첩장 비스무리 한 것까지 마을에 뿌리고 다니기도 했지만, 내가 김도휘랑 결혼할 바엔 차라리 그놈들 중 하나에게 시집가버리겠다고하며 어느날 해가 져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위험한 가출을 시도해 기함을 한 아빠는 일단 김도휘를 우리 집에 들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 점점 정이 붙길 바라는 아빠의 생각이 눈에 훤히 보였지만, 나는 10년을 살던, 20년을 살던 김도휘와 결혼할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김도휘는…

 

 

 

 나는 몇 번을 집을 왔다갔다 하고나서야 김도휘의 앞에 섰다. 내가 온 것을 알면서도 나를 보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그 예민한 눈을 옆에서 흘겨보다 내가 가만히 김도휘를 불렀다.

 

 

 "김도휘."

 

 "……"

 

 

 그 예민한 눈이 내게 돌아섰다. 한치의 틈도 없이 다물어진 입술에선 '응?'이라던가 '왜?'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부르면 쳐다보지만 말고 대답이라도 좀 해."

 

 

 

 하룻동안 장에서 겪은 스트레스에 묘하게 까칠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전기 켜져있어. 근무 중이야."

 

 

 

 내가 김도휘랑 결혼할수 없는 이유. 왜냐하면 김도휘는 지독히고 재미가 없고, 도통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였다.

 

 

 하루에 고작 나눠봤자 다섯마디. 방금 만난 시장 아줌마와도 열 마디를 넘게 나누는 마당에 한 집에 사는 김도휘와는 고작 많아봤자 다섯마디가 다였다. 김도휘는 원래도 말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 말이 없어졌다.

 

 

 처음엔 눈 앞에서 아버지를 여읜 녀석이 점점 더 말수도 적어지고 예민해지길래 나도 신경쓰여 많이 챙겨주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녀석이 묘하게 나를 밀어내는 식이라 나도 안타까워했던 마음을 싹 접어버렸다.

 

 

 게다가 녀석의 성격은 책으로 비유하자면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든 그림 한 점 없이 빽빽하게 글씨가 들어찬 두꺼운 사전같은 느낌이었다. 빽빽-한 사전의 글씨들을 떠올리다 고개를 마구 저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싫어.

 

 

 무뚝뚝한 아버지를 25년간 바라보고 산 나는 무뚝뚝하고 정적인 남자라면 신물이 났다. 그리고 나의 아빠와 김도휘를 꼭 닮은 나의 재미없는 인생에도 신물이 나고 있었다.

 

 

 박쥐들을 피해 살아가다보니 늘 같은 패턴의 연속이었다. 티브이도 안 나오고, 라디오도 안 나오는 곳에서 하루의 절반을 의무적으로 햇빛을 쐬러 나가고, 밤에는 박쥐들을 피해 요새같은 집에서 꽁꽁 숨어 살고. 날씨에 따라 옷만 바꿔입을 뿐 365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련하시겠어요."

 

 

 

 괜히 짜증이 나 녀석의 어깨에 채워진 무전기를 툭 손으로 친 내가 김도휘의 예민한 눈빛을 그대로 받으며 뒤돌아섰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데 '무겁겠다.'라던가 '힘들겠다.'라는 말 한 마디는 해 줘야하는 거 아냐?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내가 손에 쥔 봉지들을 고쳐쥐고 열심히 걸었다. 멀리 집이 보였다. 여기서 집까지 가는덴 무려 10분이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아무것도 없이 휑해 멀리서도 집이 똑똑히 보였다.

 

 

 

 아빠는 군 부대장이라는 직위의 힘으로 가장 외딴곳에 집을 가질 수 있었다. 보통 외딴 곳이라면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빽빽하게 집들이 군립된 곳은 그만큼 그들이 숨을 곳도, 햇볕이 들지않은 그늘도 많아 낮에도 그들이 활동을 할 만한 곳이 많았다. 물론 아직까지 낮에 나타났다는 겁없는 박쥐는 듣도 보도 못 했지만.

 

 

 아빠는 언젠가 누군가 살았었을 이곳에 나를 처음 데려온 날, 집 주변을 둘러싼 나무를 싹다 베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집은 가장 안전했다. 그늘이라곤 없고, 숨을 곳이라고는 없는 요새로써 가장 최적화 된 공간.

 

 

 

 물론 이렇게 열흘마다 한 번씩 나는 없는 뭐가 빠지도록 먼 거리를 걸어 짐을 날라야 했지만.

 

 

 힘이 든 내가 결국 바닥에 살짝 봉지를 내려놓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진짜 굴러가고 싶다. 걸어가기 너무 힘들어. 속으로 그런 투정을 하며 힘을 주어 봉지를 들어올린 순간, 투두둑 봉지 밑이 뜯어지며 스무개가 넘는 감자와 고구마들이 철창너머 도랑 밑으로 떨어졌다.

 

 

 

 

 "안 돼!"

 

 

 

 

 

 놀란 내가 얼른 철망에 달라붙었으나 데굴데굴 굴러가는 감자들은 멈추지 않고 결국 도랑 끝에 놓인 돌탑들에 우루루 부딪히고 나서야 멈추었다. 내가 주르륵 주저앉았다. 아, 어쩌지. 내가 철망에 이마를 철컹하고 찧으며 자책했다. 아빠한테 죽었다. 저게 다 얼마치인데.

 

 

 감자는 현재 이 세계에서 쌀 다음으로 가장 귀한 작물 중 하나였다. 우리 동네에서 감자농사를 짓는 욱이네 아저씨가 아줌마와 함께 밤새 텃밭을 번갈아 지키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서리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

 

 

 그렇다고해서 철망을 넘어 감자를 주우러 갈 순 없었다. 철망 너머는 금지구역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들어가면 절대 안전할 수 없는, 非안전지대.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이 철망 너머엔 그들이 가득하다고 했다. 넘어가는 것 자체로 자살행위였다.

 

 

 

 얼마 뒤면 이 철망도 무너지고 저 멀리 짓고있는 저 성벽이 이곳에도 세워져 더 안전해진다고 아빠가 그랬다. 이미 다 완공이 된 성벽은 아주 멀리서도 잘 보였다. 그만큼 높고 웅장했다. 아빠는 군인이면서 그 성벽을 쌓는 것에 아주 큰 욕심을 내고 있었고, 본인이 그 일을 지휘하는 것을 아주 영광으로 생각했다.

 

 

 

 

 저걸 … 주우러 가는 건 진짜 자살행위겠지? 평소 자주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특별히 계속 살아도 좋을 것 같은 날이어서 나는 결국 감자를 포기하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두 봉지중에 그래도 한 봉지를 잃어버린거니까 감자값이 올라서 이것밖에 못 샀다고 하지 뭐. 어깨를 으쓱하며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턴 내가 순간 가벼워진 손을 느끼며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아악!!"

 

 

 

 

 

 남은 감자마저도 봉지를 뚫고 탈출해 데굴데굴 도랑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철망은 기껏해야 3미터뿐이어서, 넘는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이래봬도 나는 군인의 딸이었다. 성벽과 철망 위에는 인간에게는 아무 해로움이 없는 자외선압축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낮동안 충전된 자외선을 밤에 내뿜으며 철망 위로 그들이 못 기어오르게 했다. 그들은 이름이 박쥐로 불리는 것에 비해 날 수 있는 능력은 없다고 했다. 만약 그들이 날 수 있었으면 진작에 인간은 멸종되고 없었을 테지.

 

 

 

 위험지역이라고 팻말이 걸린 무너진 단통교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 김지호. 지금은 낮이다. 그들은 없어. 게다가 감자가 떨어진 곳은 그늘 한 점 없는 완벽한 햇빛 아래여서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랑 밑으로 내려온 내가 겉옷을 벗어 네 곳을 한데 묶어 주머니를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약 40개가 넘는 감자들을 주섬주섬 주워담던 내가 순간 멀지만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그대로 몸을 멈추었다.

 

 

 

 

 

 "………"

 

 "………"

 

 

 

 

 뻣뻣하게 돌아선 나의 고개가, 떨리는 내 눈동자가 향한 곳은 인기척이 난 부서진 다리 밑이었다.

 

 

 

 

 반쯤 붕괴된 다리 밑은 밤과 같은 지독한 어둠은 아니었지만 분명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둠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다. 키가 아주 크고, 짙은 색의 옷을 입은 …남자였다.

 

 

 

 

 

 햇볕이 드는 경계선과, 다리의 그림자 사이에 가만히 서있는 누군가는 내가 서있는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분명, 분명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머니에 손을 꼽고 서 있는 그와 쭈그려 앉아 고개만 돌리고 굳어버린 내가 대치한지 몇 초가 되지 않아 해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의 발과 무릎이 햇빛으로 나왔고, 분명 시커면 연기가 나고 있었으나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햇빛에 나오는 그 1초의 순간 100도가 넘는 끓는 물에 담겼다 나온 토마토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화상을 입고, 1분안에 뼈가 드러나며, 5분안에 불에 타 재로 변한다고 배웠는데. 분명 그렇게 배웠는데, 그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김지호!!"

 

 

 

 

 

 김도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망이 덜컹거리는 소리도,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도, 달려오는 소리도, 내 앞을 가로막고 이 겨울 관자놀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김도휘의 얼굴도 분명 저 다리 밑의 그 남자보다는 더 가까웠는데, 어쩐지 나는 못이 박혀버린 듯 그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어깨를 흔들던 김도휘가 재빨리 매고있던 총을 앞으로 돌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리 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 순간 보았다. 그 남자의 빛나는 눈을. 나를 향한 아주 매섭고 …날카로운…

 

 

 

 

 탕 하는 아주 큰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의 발을 태우던 시커먼 연기도, 그도 사라져버렸다. 힘이 빠져 놓쳐버린 감자들은 이제 더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굴러가버렸고, 나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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