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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작가 : 강서진
작품등록일 : 2016.8.22

평범하게 일제 시대를 살아간 못난 한 여자 아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국가와 나라에 해가 되었던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재산은 교육을 위해서 쓰였던 그런 이야기.

 
인연의 실(1)
작성일 : 16-08-29 16:52     조회 : 573     추천 : 1     분량 : 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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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연의 실

 

 1854년의 서울, 그 안에서도 서소문의 어느 거리, 지게를 진 사람들이 초가집이 늘어선 골목 구비구비를 오가며 너스레를 주고받았고 모두가 움직이는 오후에 햇살은 저 혼자 졸린 듯 아스라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태양은 누군가의 탄생을 지루하게 기다리는 듯 둥근 몸을 틀어 다른 때보다도 더욱 자신 몸에서 빛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어느 초가집의 위에서 뭇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태양의 위압은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그 집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해를 한 번 보고, 바닥을 한 번 보고 다시 해를 보고 바닥을 보기를 멈추지 않았던 탓이다. 태양이 얼마나 초가집의 위에서 무심히 머물러 있었을까. 태양의 졸음을 깨우는 듯이 엄진삼의 작은 초가집에 커다란 울음소리가 짜랑하게 퍼졌다. 뜰 바깥을 서성이던 진삼은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방문을 벌컥 열었다.

 “다 됐소?”

 “성질도 급하우.”

 산파가 가자미눈을 하고 그에게 눈치를 준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며 던져지던 재촉에 대한 불만어린 대꾸였다. 그가 갑자기 들어와 재촉한 것도 이미 수번이 넘었다.

 “어째, 고추요. 어찌됐어!”

 “예쁜 딸이요.”

 “어허!”

 탄식이 퍼졌다.

 엄진삼은 여태 평범한 삶을 살아왔으며 재능도, 인물도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야심만은 대단한 남자였다. 그는 아들이 태어나면 어떻게든 출세시켜 이 모멸에서 벗어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의 낙담을 본 산파가 혀를 찼다.

 “여편네나 챙겨주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 했소.”

 “어허!”

 “첫째인데 뭘 그러우. 아직 젊디젊은 사람이.”

 커다란 탄식에 산파는 산모를 다독였다. 그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산모는 죄지은 것처럼 웅크려 누워있었다. 핏덩어리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쉬지 않고 애애앵 울고 있었지만 외로운 울음일 뿐이었다 아이의 구겨진 얼굴은 세상에 대한 아우성으로마저 들렸다. 엄진삼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살기도 팍팍한데 군입이 하나 늘었구먼.”

 

 조선의 세도정치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나라전반이 부패해가는 탓에 평범히 사는 엄순이네 집도 나날이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소소한 벼슬아치들이 들락거렸기에 겉으로 보아서는 어느 정도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엄순이네 집이었으나 진삼은 그들에게 바치는 뇌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진삼도 본래 그럴 작정은 아니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힘있는 자들과 함께 지내고 힘을 가지고자 한 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또한 양반들이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무엇을 내라, 무엇을 해라, 이것저것 쪼아대는 터에 평민으로서 어렵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르다하는 이들은 쉬이 진삼과 마주칠 수 있는 곳, 예컨대 기생집과 술집에 들락거리지 않았으며 진삼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진삼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은 웃는 얼굴 속에 탐욕을 감춘 이들이 대부분이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진삼이 가까이 지내던 이들은 교분이 깊어지자 어느 순간, “내가 자네를 보호해 주었으니 자네도 무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큼큼.”이라고 귀띔하게 되었고 진삼은 한해 두해가 지나며 다른 이들과는 교류하여도 괜치 않은 일이었으나 조참판과 교류하게 된 것은 큰 실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들 중에서도 몹시 탐욕스러웠다. 뇌물을 바치고 싶지 않았으나 바치지 않으면, 그의 눈에 찍힌 이상 파멸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진삼은 한숨이 늘었다.

 어느 날 진삼의 집에 별감이 찾아왔다.

 “진삼이, 요새 어렵다면서?”

 “어유, 형님이 어쩐 일이시오?”

 “내 자네에게 얻어먹은 술이 얼마던가. 자네 사정 들으니 마음이 편치도 않고.”

 별감은 갓을 고쳐쓰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진삼은 얼른 술병을 하나 내어왔다.

 “집에서 담근 술인데 가서 한 병 자시시오.”

 “어허, 뭘 이런 걸 다. 흠, 아무튼 일석이조의 방편이 있네. 입을 하나 덜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한데, 흠, 여식도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내 알려주겠네.”

 붉은 옷을 입고 챙이 넓지 않은 갓을 쓴 별감이 마루에 턱하니 앉아 진삼에게 기밀이라도 알리듯이 어깨를 뻣뻣히 피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별감은 영의정과 의남매를 맺었던 제조상궁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녀가 몇 살 때 궁에 들어왔으며, 어떻게 승진을 하였으며 지금은 궐 내에 숨은 권력이 되었노라고 별감은 이야기삼아 말을 하였지만 그 속내는 진삼도 알아듣고 있었다.

 저 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여식이었다. 최근에 나라에서는 다시 궁녀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들어가게 되면 봉급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필요할 때는 돈을 주고서라도 여식을 사려 하였다. 별감은 여식을 궁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궁이라는 그 혹독한 곳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진삼은 별감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른 수는 없지.’

 진삼은 생각했다.

 그 말이 오간지 며칠 후, 진삼은 집으로 찾아온 어느 여자와 말을 나누었다. 진삼네 맏이인 순이는 어느새 거리를 뛰어놀 만큼 커있었다. 순이는 그 여자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요즘 아이가 부족하던 차였습니다.”

 순이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쩐지 모르게 그 대화를 반드시 들어야한다는 육감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순이는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최상궁이라 불린다. 아버지와 최상궁은 어떤 거래를 하는 듯이 보였다. 묘하게 자신에게로 주목되는 시선을 통해 순이는 그 어떤 거래가 자신에게 관련된 이야기임을 짐작했다. 순이는 자신을 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애닮아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애달픔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였을까.

 “입궁에 적당한 나이군요. 처녀인 것도 확실하고 가르치기에도 좋은 나이입니다.”

 “평민이지만 집안내력도 나무랄 데 없다는 것 이미 잘 알지요? 아주 오랜 조상님 때부터 집안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는 없었소. 애가 똑똑해서 말도 빨리 익혔지. 궁궐의 보탬이 될 거요.”

 진삼은 그렇게 말하며 담뱃재를 탁탁 털어냈다. 순이는 최상궁을 빤히 보았다. 주름이 고집스러웠다. 분위기는 딱딱하지만 전신에 기품이 서렸다. 나이는 마흔 쯤 되었을까. 순이의 초조한 시선이 거슬렸던지 진삼은 순이를 불렀다.

 “순이야, 나가서 놀다 오너라!”

 “싫어.”

 “어허, 어디서. 놀다 오라면 놀다 와!”

 진삼이 고함을 치자 순이는 이를 앙다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어머니는 순이의 눈빛에 불만이 가득찬 것을 보며 아이를 달랬다.

 “그래. 아버지 말씀대로 놀다와라.”

 결국 순이는 마음이 썩 마땅찮았지만 어머니에게서 엽전 하나를 받고 밖으로 나섰다. 어디서 놀까, 엄순이는 고민했다. 놀고 싶어도 놀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옆집의 끝순이나 말똥이 집에 가서 크게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오늘은 느낌이 좋지 않은 하루였다. 다들 못 논다는 대꾸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오늘은 안 좋아. 싫어.’

 순이는 입이 툭 튀어나왔다. 어제였다면 모처럼 엽전도 받았겠다, 신이 나서 돌아다녔겠지만 오늘은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일찍 돌아가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순이는 계속 걸었다. 걷다보니 어느새 옆동네였다. 옆 동네는 시장도 자주 열리는 곳이었다.

 “군밤 사려! 군밤 사려!”

 군밤장수가 김이 나는 밤을 가져다놓고 외치고 있었다. 순이는 담벽을 등 뒤로 하고 쪼그려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다. 걷다보니 발이 옥씬 아프다.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순이는 새롭게 알았다. 순이는 폭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한 아이가 다가와 어깨를 흔들었다.

 “너 어디 아파?”

 “아픈 것은 아닌데.”

 순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그러고 있지 않았어. 난 또 아픈가했지. 왜 그러고 있어?”

 순이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애였다. 얼굴은 순하게 생겼고 호기심이 많아 보이기도 했는데 웃을 때면 그린 것처럼 눈이 둥그렇게 휘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몇 살이야?”

 “5살.”

 “헤, 난 7살인데 내가 오빠네.”

 순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풀이 죽은 듯이 앞을 보았다. 앞에는 흙먼지가 이는 바닥이 있었고 그 바닥 위에서 군불을 지피는 군밤장수가 있었다. 사내아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짐작가는 것이 있다는 것처럼 무릎을 탁 쳤다.

 “너 배고파?”

 “배……?”

 “내 이름은 개똥이야. 잠시만 있어봐.”

 순이는 배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려고 했다. 별로 안 고픈 것같은데. 그러나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사내아이는 잠깐만 있어봐, 하고 군밤장수에게로 달려갔다. 군밤장수와 사내아이는 실랑이를 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여기서 여러번 샀었거든요. 두 개만 주시면 안돼요?”

 “예전에? 그게 몇 년 전 이야기야? 미친 놈! 안 돼!”

 “저기 애가 배고프다 그러잖아요. 딱 두 알만…….”

 “미친놈의 새끼가 안 좋은 것부터 배웠어!”

 “딱 두 알만…….”

 군밤장수가 돌아서자 개똥이가 군밤장수의 바지를 붙들었다. 그 순간에 군밤장수의 발이 개똥이의 배로 꽂혔다. 군밤장수의 우악스러운 주먹이 개똥이를 들어올리자 순이는 그제야 사태를 알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애새끼가 누구 장사를 말아먹으려 들어!”

 “돈! 돈, 여기 있어요!”

 순이는 벌벌 떨며 어머니에게서 받은 엽전을 내밀었다. 군밤장수의 발길질에 개똥의 가벼운 몸은 붕 떠서 날아가 버린 생태였다. 군밤장수는 그 돈을 받으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꺼져! 거지새끼들아.”

 순이가 개똥이에게 달려가자, 개똥은 기침을 했다.

 “그냥 부탁을 했을 뿐이요!”

 개똥이 주저앉은 채 외쳤다.

 “더 맞고 싶어서 지랄이냐! 쌍놈보다 못한 염병할 새끼, 네 놈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를 줄 아느냐! 내가 뻔히 다 안다. 아비가 구걸을 하니 자식도 구걸을 하는구나! 놀고 처먹는 애비한테서 배운 게 없으니 그 지랄이지!”

 군밤장수의 손이 개똥의 뺨으로 날았다. 찢어진 입술사이로 피가 흘렀다. 순이는 경기하듯 놀랐다. 개똥은 말을 하지 않았다. 순이도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이 계속 되자 군밤장수는 바닥에 침을 퉤 뱉어내고 짐을 챙겼다. 그는 구운밤과 장작을 들고 골목길로 사라졌다. 군밤사려! 소리가 골목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개똥은 고개를 흔들며 피를 닦아냈다.

 “나는 괜찮아. 근데 돈 있었어? 돈을 왜 줬어! 밤은 받았어?”

 순이는 고개를 저으며 소매로 피를 닦으려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집에 나올 적부터 나오기 싫었던 마음이 딱 들어맞았다. 낯선 아이는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순이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개똥은 닿이는 것이 따가워서 고개를 저었다. 개똥은 울분에 차서 소리 질렀다.

 “나쁜 놈! 돈 받아가고 밤도 안 줬어!”

 “미안해! 나 때문이야!”

 둘 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개똥이는 문득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가라앉는 동시에 개똥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거지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고 하기에는 주머니에 한 푼도 없었다. 아마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아버지의 주정이 없다면 그래도 다행일 인생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파락호의 아들……. 개똥은 순간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아버지는 우리가 왕족이라고 했다. 그러나 힘센 군밤장수에게도 발길질을 당하는 왕족이라니.

 개똥은 혼란상태에 있는 여자아이를 거리에 놔두고 뒤로 뛰고 말았다. 뛰는 동안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도 무시했다.

 순이는 “개똥아!”라고 크게 계속 불렀지만 개똥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순이는 한 동안 개똥이 사라진 골목길을 보았다. 해는 기울어져 노을이 되어 있었다. 번지는 붉은 색을 보며, 이제는 집에 들어가도 될까, 순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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