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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무(無)의 아이
작가 : 천시령
작품등록일 : 2017.12.17

인간의 영생을 향한 욕망의 몸부림은 어디까지인가.
과연 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온갖 불법과 추악한 면모,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또 다른 생명체의 가치는 동등한가, 아니면 높고 낮음이 존재하는 것인가.

 
#1. 존재하지 않는 아이
작성일 : 17-12-17 01:05     조회 : 371     추천 : 0     분량 :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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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끼이익-

 오랜 시간동안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듯한 철제 문 안쪽의 어둡고 음습한 공간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혜림을 향해 무언의 경고를 하는 듯 했다.

 

 '무섭긴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어.'

 

 혜림은 떨리고 무서운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자신이 들어온 어둡고 텅 빈 것 같은 공간을 온 몸의 감각을 이용하여 천천히 더듬어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서늘하고 기분나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안그래도 두려움에 가득차 평소보다 배나 빠르게 뛰고 있는 그녀의 심장 박동의 리듬을 더욱 빠르게 재촉하고 있었다.

 

 혜림이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자신의 눈의 감각을 이용하여 그 음침한 공간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빠르게 살펴보고 있는데, 순간 그녀의 몸이 위험을 감지했다.

 

 자신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혜림은 순간 등 뒤로부터 발끝까지 찌릿 하는 공포의 감정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의 방향을 들어왔던 출입구 쪽으로 틀었다.

 

 그녀가 아까 열었던 철제문의 반쯤 열린 공간으로부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길고도 음침한 그림자가 죽 늘어져 그녀가 서있는 발치까지 다다라 있었다.

 

 그녀는 순간 숨을 헉 하고 들이 마셨다.

 

 꼼짝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여기를 찾아온 것은 결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그녀 스스로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람이라면 결코 그녀에게 호의적인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녀는 서서히 서서히 기분나쁘게 길고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림자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서서히 뒤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속도를 같이 하여, 문 앞의 수상한 인물도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뒷걸음질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숨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졌고, 심장은 이제 더이상 이보다 더 빨리 뛸 수는 없을 정도로 미친듯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저 의문의 남자에게 잡히기 전에 그녀의 심장이 먼저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뒷걸음질치던 그녀의 발이 더이상 뒤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발에 힘이 풀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로는 더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등을 타고 느껴지는 벽의 서늘한 감촉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아무 대책없이 벽에 바짝 붙어 서서 저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남자는 서서히 여유롭게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이 악몽같은 순간이 제발 꿈이길 바랐다.

 

 그래야만 한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 모든 끔찍한 비극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미처 다 알리기도 전에 자신이 죽음을 당해선 안된다.

 

 그녀의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그녀는 속으로 숨을 가다듬은 다음 침착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있는 곳에서는 남자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남자의 등 뒤에서 비추어 오는 불빛때문에 정확한 얼굴의 윤곽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어느덧 그녀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혜림은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녀는 남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하여 그 짧은 순간동안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은 곧 중단되고 말았다.

 

 "여긴 무슨 일이지?"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저음의 음색을 띠고 있었다.

 

 낮고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듣는 사람의 기운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무언의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

 

 혜림은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남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어라 말을 한들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를 이해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직감이 이 남자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저는 제보자로부터 무언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나온 겁니다. 믿음일보 성혜림 의학전문기자에요."

 

 그녀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말을 내뱉고 난 뒤, 저도 모르게 몸이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땅을 딛은 두 발에 힘을 주었다.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서 정확히 일격에 공격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빠져나갈 수 있어.

 

 그녀는 두 주먹을 조심스레 꽉 쥐면서 남자의 입을 쳐다보았다.

 

 "취재라... 무엇에 관한 취재지?"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이 남자에게 다 밝히는 순간, 그녀는 이 세상 빛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그녀는 그 다음 자신이 할 말을 차분히 생각한 뒤, 운동화를 신은 두 발이 양 끝 발가락에 온 힘을 실었다.

 

 '지금이다!'

 

 그녀는 날카로운 기합 소리를 내며 오른쪽 다리를 순식간에 치켜올려 남자의 얼굴 정중앙의 미간을 강타했다.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자신이 아까 열고 들어왔던 철제문의 열린 틈 사이를 향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문 밖으로 뛰쳐나가자 자신을 강하게 비추는 하이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셔서 순간적으로 손을 치켜들뻔 했지만,

 그러한 동작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는 사치처럼 느껴져서 그냥 냅다 불빛이 향하는 방향의 반대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 남자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을까.

 

 그녀는 두렵고 공포스러운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지만, 가장 강력한 본능인 생존욕구에 의거하여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미친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자신의 뒤에서 컹컹대며 개짖는 소리와 더불어 사람이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꿋꿋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자신을 쫓아오는 그 무언가의 위협적인 추격의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 다고 생각될 즈음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온 몸의 모세혈관과 정맥, 동맥으로 피를 미친듯이 펌프질해대는 심장의 몸부림을 느끼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그대로 길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얼마만큼 달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땅바닥에 드러누워 쳐다본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반짝거림이 이 순간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를 잠시나마 위안해주었다.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어둠을 느낀 순간, 긴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가 혜림의 입에 클로로포름이 묻어있는 손수건을 강하게 갖다댔다.

 

 혜림은 순간 너무 놀라 발버둥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고 온 몸에 힘이 빠진 채 그대로 길바닥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바바리코트의 남자는 한쪽 손으로 혜림의 눈꺼풀을 들어올려 그녀의 동공을 잠시 쳐다본 뒤, 이내 안심했다는 듯, 혜림의 어깨와 다리에 손을 넣어 혜림을 바닥에서 들어올린 뒤,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남자의 동작은 매우 신속하고도 정확한 것이어서,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는 기계와도 같았다.

 

 바바리코트의 남자는 혜림을 안고 서서히 걸어 자신이 왔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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