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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BONDSMAN
작가 : 어름산이
작품등록일 : 2017.12.9

마법과 도술 그리고 괴물들이 나타난 가까운 미래의 지구.
괴물들을 비롯해 돈이 되는 것들이라면 해결해주는 ‘선수’들이 생겨났다.
선수로 생활하는 이리에게 오랜 친구 페이가 갑자기 나타나고,
기꺼이 그녀의 일을 돕지만 점점 위험한 일에 휘말려 가는데.

 
프롤로그
작성일 : 17-12-10 00:05     조회 : 403     추천 : 0     분량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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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DSMAN

 

 Prologue

 

 

 

 사방이 붉은 색이다. 달도 붉었고 달빛도 불그스레하고 바닥에 흐르는 피도 빨갛다. 붉은 달이 뜰 때마다 재수가 없다.

 

 “이제 좀 죽어라, 개 같은 년아!”

 

 부머가 손을 바삐 놀렸다. 그의 차의 트렁크며 자신의 주머니며 유리병은 충분하다. 유리 병 안의 보라색 액체가 찰랑이며 흔들린다.

 

 손에서 날아간 유리병이 저 멀리 떨어진다. 그 곳에는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온 여자가 있다.

 

 유리병이 바닥에 부딪쳐 깨져나갈 때마다 주변으로 화염이 솟구쳤다. 그녀의 주변으로 달려드는 괴물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폭발이 일어났다.

 

 괴물들의 살점이 터져나간다. 그리고 화염 속에서 공중으로 여자가 뛰어오른다. 그녀의 눈길이 부머 자신을 향해있다.

 

 괴물 같은 여자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 여자는 괴물이라고 느꼈다. 무심한 눈빛으로, 아무 감정도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부머를 쳐다봤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열기 속에서 여자가 다시 눈을 돌렸다. 그녀의 근처로 괴물들이 몰려든다.

 

 그래, 그거야! 죽여 버려! 부머가 소리를 지르며 계속 유리병을 던졌다.

 

 저 여자만 따라붙지 않았다면 지금쯤 다롄의 따듯한 여관방에서 여자를 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죽어준다면 도망칠 가능성은 있다.

 

 괴물이 여자의 머리를 노리고 자신의 앞발을 휘둘렀다. 그녀는 상체를 숙이며 바닥을 굴렀고, 총성이 울렸다. 괴물의 배때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여자의 옆으로 다른 괴물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이제 그녀의 몸뚱어리가 두 조각으로 나뉘는 일만 남았다. 부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부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여자는 괴물의 아가리를 밟고 올라가 주변의 다른 괴물들에게 총알을 먹였다. 괴물의 머리 위로 총알과 수류탄이 떨어진다.

 

 그녀가 다시 괴물의 머리를 발판삼아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허공으로 뜬 그녀의 발아래에서 괴물들이 죽어나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미친년!”

 

 신기에 가까운 저 움직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머가 연신 욕을 쏴붙였다. 모두 저 여자 때문이다. 재수가 옴 붙었다.

 

 자신의 계획은 먹혀들었다. 성공을 확신했다.

 

 위장 역시 훌륭했다. 비록 며칠을 씻지도 않고 수염도 길게 자랐지만 자신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위조한 신분증도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당당히 신의주를 지나려했다. 물론 그것도 미친 짓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현상금이며 괴물들. 저 크립티드라 부르는 것들을 사냥도 해주고, 사람도 죽여주고. 그런 놈들이 가득한 곳이니까.

 

 선수라 불리는 저치들이 죽치고 있는 곳을 지나가는 것은 허를 찌르는 발상이었다.

 

 저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다롄으로 가는 길목들이 엿 같이 막혀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계획은 철저하게 망쳐지고 있었다.

 

 부머의 손에서 날아드는 유리병이 폭발하면 불길이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얼리면서 얼음조각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괴물들의 끔찍한 괴성이 울린다.

 

 “사, 살려줘! 안 돼─!”

 

 아, 사람들도 있다. 법이라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나드는 자신과 같은 이들. 어쩌다보니 붙은 이 근방의 도적들이다.

 

 부머가 눈을 살짝 돌리자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눈길이 절로 찌푸려지는 장면이다. 지옥이 있다면 분명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 확신했다.

 

 사람들의 눈에 어린 공포, 얼음과 화염, 그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괴물들. 벌써부터 살을 베는 추위와 어두운 시야.

 

 그리고 그들 위로 묘기를 부리듯 괴물을 학살하는, 지금 이곳의 최상위 포식자로써 군림한 저 여자까지.

 

 “미치겠네!”

 

 붉은 달이 먹구름에 가렸다. 달빛이 사라지며 시야가 더 어두워졌다. 자신의 차와 도적들이 타고 온 지프의 조명의 주변으로 어둠이 깔렸다.

 

 어둠 속에서 괴물들의 눈동자가 더 역겹게 번쩍였다. 살육에 미친, 피 맛을 본 짐승들의 눈이다.

 

 설상가상으로 여자가 연막탄을 터트려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조명에 의지해 몸을 사리던 부머도, 총을 갈기던 도적들도 점점 움츠려들었다.

 

 짙은 연기 속에서 괴물들이 도적들을 물어뜯고 할퀴고 짓밟았다. 사람의 허리에도 안 오는 크기부터 사람의 키를 훨씬 상회하는 괴물들까지.

 

 여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괴물들과 저 여자 하나뿐이다.

 

 부머의 눈에 후회의 빛이 서렸다. 핸들을 왜 이곳으로 돌렸을까. 자신의 유일한 실책이다.

 

 “길이 막혔어! 뭐? 산사태 때문에 길이 막혔다고 이 병신 새끼야! 여기서 내가 잡히면 물건은 없어!”

 [그럼 우회해서 오시죠. 그렇지. 펑청으로 차를 돌리십시오. 어지간한 선수들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니.]

 “미친 새끼들. 이번 거래 끝나면 당신들이랑은 거래를 끊겠어!”

 

 거래인의 말을 믿은 것도 실책이다. 그는 중국의 동북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다.

 

 러시아부터 중국의 동북부 대부분을 이르는 영역이 모두 파괴되었으니까. 그곳에 있는 것은 다 무너진 도시와 재 가루 그리고 크립티드라 망명된 저 괴물들뿐이다.

 

 하지만 저 여자는 어지간한 선수가 아니었다. 기어코, 끈질기게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을 추격해왔다.

 

 “시발!”

 부머가 고함을 지르며 유리병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의 일대가 초토화된다. 그러나 괴물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아니, 늘어나고 있다.

 

 괴물들은 불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지 쉽사리 그를 향해 덤벼들지 못했다.

 

 아니, 뭔가가 이상하다. 저들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불길에 비춰진 대가리도 그간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털이라곤 하나도 없는 피부에서 고름 따위의 역겨운 것들이 흘러내렸다.

 

 노란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저 여자도 아마 그간 봐왔던 괴물이 아닌 것을 알 것이다.

 

 그래. 저것들은 지금 뭔가를 재고 있다. 자신이 지치기를 기다리면서 진을 빼놓는 것이다. 비명을 질러대던 도적들은 이미 모두 죽고 없다. 이제 이곳에 사람이라곤 자신과 저 여자밖에 남지 않았다.

 

 “난 안 죽어! 안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괴물들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전부다. 부머가 유리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녀의 주변의 시체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었다. 그녀가 지닌 총에서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괴물들이 쓰러진다.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일대의 땅이 피로 물들었다. 그 근원지에 저 여자가 서있는 것이다.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소리치는데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입술이 멈추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덩달아 부머의 눈도 가늘어졌다.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데.

 

 “뒤?”

 

 부머가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래로 그림자가 짙게 생겨난 것이 보였다. 움직이려던 그의 몸이 굳었다. 유리병을 든 손이 발발 떨려왔다.

 

 아니지, 아닐 거야. 그의 목이 천천히 위로 향했다. 그의 얼굴로 걸쭉한 침이 한가득 떨어졌다. 하지만 고약한 냄새에도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그것이 끝이었다. 괴물의 커다란 아가리가 부머의 몸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의 몸을 씹어 먹는 소리가 피 냄새를 타고 날아와 귓가로 울리는 것만 같다.

 

 “아…”

 

 여자가 탄성을 질렀다. 그를 살리기 위해 서둘러 방아쇠를 당겼건만, 총알이 걸렸다.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은 살려가야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 어떡해서든 살려서 가려고 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멍청한 남자다. 계속 한 눈을 팔았던 것도 그렇고 이 길로 들어온 것도 그렇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은 더더욱 바보 같은 짓이었고, 이제는 죽었다.

 

 “내 돈.”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저 괴물들을 죽이고 나면 차 안에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다롄의 블랙마켓으로 향하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비싼 것을 가지고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가 숨을 내쉬었다. 그래, 손해를 메꿔 보자. 빠른 손길로 걸린 총알을 제거했다. 아직 수류탄도 남아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아직은 문제될 것이 없다.

 

 괴물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처리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녀가 다시 총을 들고 사격을 개시했다. 괴물로 만들어낸 작은 언덕을 내려가려고 할 때, 그녀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괴물의 아가리에서 뭔가가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부머의 상체를 먹어치우던 괴물의 아가리에서 팔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팔에는 손에 꽉 쥐고 있던 유리병 여러 개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괴물은 부머의 차 위에 서있다.

 

 안 돼! 여자가 외쳤지만 유리병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쳤다.

 

 유리병이 깨진 곳에서 불이 번지며 폭발했다. 화염이 차를 휩쓸고, 곧이어 차도 폭발을 일으켰다. 여자는 서둘러 괴물들의 시체 밑으로 몸을 숙였다.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불길과 얼음이 어우러져 더 큰 폭발이 일어나고, 주변의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잔뜩 그슬린 괴물들의 시체 밑에서 팔이 뻗어 나왔다. 더듬거리던 손 밑에서 여자가 괴물들을 헤집고 올라섰다.

 

 부머가 있던 자리를 비롯해 그녀가 있던 곳을 넘어 주변 일대가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괴물들의 살이 타들어가는 고약한 냄새가 여자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머의 차는 온대간대 없이 검은 재만 가득했다. 사방에 불똥과 재 가루가 날린다.

 

 여자의 기다란 속눈썹이 부르르 떨려왔다. 급하게 몸을 숙이느라 팽개친 총은 이미 고철이 되어 있었다.

 

 “손해 봤잖아.”

 

 한바탕의 소동이 끝난 후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왠지 모르게 붉은 달이 뜬 밤은 재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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