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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백제의 한
작가 : 바위
작품등록일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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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한 가능성 있는 허구, 그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백제의 한
작성일 : 17-11-29 19:31     조회 : 443     추천 : 0     분량 : 1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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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문화재청은 공주 공산성에 대한 ‘2014년 제7차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형 목곽고와 당시 저수지에 수장된 화살촉, 철모, 갑옷과 칼, 창, 마면주, 마탁, 깃대와 깃대꽂이 등 다량의 전쟁 도구들이 발견돼 백제 멸망 당시 나당 연합군과의 치열한 전쟁 상황이 추론된다고 밝혔다. 또한 저수지에서는 수상한 두개골 한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학계는 그 두개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문화재청이 공주 공산성에 대한 발굴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됐다. 위의 내용처럼 신문은 그 때마다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듯 기사화했다. 그 중 작가는 지난 2014년 9월 24일 각 언론매체에 일제히 보도된 위의 내용에 주목했다. 그리고 백제멸망시기, 그러니까 서기 660년 7월 10일 계백이 황산벌에서 김유신에게 패배를 하고 난 뒤의 역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는 계백이 패하고 3일 뒤인 서기 660년 7월 13일 밤, 웅진성(현 공주 공산성)으로 파천 내지는 피신을 한다. 그리고 5일 후인 18일 석연치 않은 항복을 하고 만다. 혹시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수집한 자료를 보면 의자는 황산벌 전투이후 사비성 남쪽으로 군사를 보내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의자는 그 전투에서마저 패하자 웅진성으로 피신해 지방군을 기다린다. 당시 중앙군보다도 훨씬 큰 세력이었던 지방군이 합세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의자가 단 며칠 만에 맥없이 항복을 한다. 당시 지방의 귀족 및 성주들은 일부나마 의자와의 합세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나당연합군이 웅진성을 강제로 함락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를 치르고 의자가 웅진성에서 항복하기까지 8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목이 잘려 수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두개골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작가는 이제부터 그 두개골의 주인공을 ‘국담’이라고 명명하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고자 한다.

 

 

 

 

 

 백제의 한

 

 

 제 1 부- 파 천

 

 계백의 패전

  서기 660년 7월9일, 황산벌에 잠자리들이 낮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의자는 당나라 군대가 신라군 없이는 섣불리 싸우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계백을 급파했다. 오천의 결사대를 이끌던 계백은 적당한 성을 보루로 신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려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백제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의자는 친고구려 반당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버티면 고구려의 원병이 곧 도착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자의 패착이었다. 나당연합군은 공성전을 택하지 않고 우회하려 했다. 중간의 방어성들을 무시한 채 곧바로 사비성을 치겠다는 작전이었다.

  - 적군이 많이 모여 있는 거점 성(城)을 점령한 후 주변을 평정하며 목표지점으로 차근차근 진군한다.

  나당연합군은 당시의 이런 보편적인 전술과 전투의 기본 틀을 깨버렸다. 목표는 영토 확장이 아니라 나라를 통째로 먹는, 즉 백제의 멸망이었기 때문이다. 신라군은 백제 땅 중간 중간에 있는 성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이 전술은 지극히 위험천만했다. 후방에 적을 남겨두고 한 나라의 심장부로 들어갔다가 포위라도 당하게 되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의 대군을 믿고 무리수를 두었다. 다급해진 계백은 성을 포기하고 황산벌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성충의 말대로 탄현(주석1)에 진을 치고 신라군을 기다렸다면 중과부적의 전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충은 죽기 전 의자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마디만 하고 죽겠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당군은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군율이 엄하고 분명합니다. 당군은 신라군과 함께 우리의 앞뒤를 견제하고 있으니 평탄하고 넓은 들판에서 마주칠 경우 적은 군사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지형을 잘 선택해야 하는데 백강과 탄현은 적을 방어하기에 가장 적합한 요충지입니다. 그곳에서 적을 방어한다면 한 명의 군사가 한 자루의 창만으로 수백의 적을 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충과 흥수를 싫어하던 백제의 신하들은 의자에게 이렇게 고해 올렸다.

  - 성충과 흥수는 오랫동안 옥중에 있어 형세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옥에 갇혀 어라하와 나라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말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나당연합군에 백강과 탄현을 내주십시오. 백강으로 들어온 당나라 군사들은 강의 흐름에 따라 배를 나란히 하지 못할 것이고, 탄현을 넘은 신라군은 평지가 아닌 좁은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이 때 군사를 풀어 일제히 공격한다면 닭장에 든 닭이나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의자는 결국 신하들의 말을 따랐고, 당나라군은 백강(주석2)에 상륙하였으며, 신라군은 탄현을 넘었다. 탄현을 넘은 신라군은 구멍 뚫린 자루에서 메주콩 쏟아지듯이 밀고 들어왔다. 김유신은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황산벌로 진격을 명령했다. 뒤늦게 사실을 보고받은 의자는 의직에게 2만의 군사를, 의자에게는 5천의 군사를 내주어 나당연합군을 막게 했다. 의자의 방관으로 탄현을 빼앗겼지만 계백은 주군인 의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동증자로 불리던 어라하라고 변하지 말란 법은 없다. 어라하는 이번 전쟁을 통해 또 변할 것이다. 어라하의 변화가 바람직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리 될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나라와 어라하를 위해 바친들 아깝지 않으리라.' 성을 버리고 황산벌로 나온 계백은 모든 작전을 새로 짜야만 했다.

  “놈들이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쳐들어오면 우리도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방어를 해야 한다. 놈들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도록 죽기로 막아라.”

  신라군이 황산벌로의 집결을 시도하자 계백은 지형이 가장 험한 곳에 두 개의 진영을 전진배치 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신라의 주력군이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다. 계백은 잿빛하늘을 올려다보며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은 오천의 군사로 오나라 왕 부차의 칠십만 대군을 무찔렀다. 우리의 군사도 오천이다. 그러나 신라 놈들은 오십만도 아닌 오만에 불과하다. 일당백의 용맹을 가진 너희들이 겨우 열 명을 해치우지 못하겠는가. 놈들의 시체로 산을 만들어 다시는 우리의 고향땅을 넘보지 못하게 하라.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전략적 요충지인 탄현을 사수하지 못했다면 쉽게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하지만 백제의 군사들은 가족을 죽이고 전쟁터로 나온 계백의 비장함을 가슴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기개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

  너무도 쉽게 탄현을 넘어온 김유신은 김품일과 김흠순, 김인문, 천존 장군 등을 모아 작전회의를 했다.

  “품일장군, 적들이 이리도 쉽게 탄현을 내어줄 줄은 몰랐네. 적들이 만약 탄현에서 우리를 막아섰더라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네.”

  “대장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적들이 왜 이 탄현을 포기했을까요? 백제의 계백은 그리 녹록한 자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김품일의 말처럼 계백은 그동안 신라와의 전쟁에서 전승을 하다시피 했다. 김유신은 계백이 백제 최고의 요충지인 탄현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김유신 역시 백전노장이라 백제군의 교묘한 계략을 의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탄현을 넘었다는 것이다. 탄현을 넘었다면 열배가 넘는 군사력으로 일거에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오천도 안 되는 놈들, 그냥 쓸어버립시다. 지들이 무슨 수로 오만을 당해내겠습니까.”

  김흠순이 칼자루에서 칼을 뺏다 넣었다 하며 계백과의 전투에 특별한 작전이 없음을 주장했다.

  “거, 좀 가만히 있어 보게. 정신 헷갈리게 스리.”

  희끗한 귀밑머리를 배배 꼬고 있던 김유신이 지휘봉으로 탁자를 세차게 두드렸다. 귀밑머리 꼬기는 심사가 복잡할 때 하는 김유신의 오랜 습관이었다.

  “군대를 셋으로 나누겠다. 나는 흠순, 품일장군 등과 함께 주력군을 이끌고 곧바로 진격할 테니 천존과 인문 장군은 좌우로 흩어져 부대를 이동시켜라. 삼군은 황산벌에서 집결한다.”

  김유신의 명령에 따라 신라군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황산벌을 향해 진격했다. 계백이 아니었다면 한데 뭉쳐 거침없이 쳐들어갔을 것이다. 나당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소정방보다 먼저 집결지로 들어가려면 구지 군대를 나누어 시간을 지연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유신에게 있어 계백은 그만큼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김유신의 그 결정으로 신라군은 계백과의 전쟁에서 악전고투하게 된다. 또한 소정방과의 약속날짜마저 지키지 못해 연합이 깨질 위기를 맞게 된다.

 

 *

  계백은 곳곳에 척후병을 풀어 신라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계백의 척후병들은 귀신같은 솜씨로 신라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들은 자국의 지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틀림없는 정보들을 들어다 날랐다. 5천의 결사대를 세 개의 부대로 나누면서 계백은 충상과 상영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내가 김유신의 주력군을 맡을 테니 장군들은 다른 이동경로로 들어오는 놈들을 막아주십시오.”

  계급이 낮은 계백의 지시에 좌평 충상과 상영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투덜거렸다.

  “달솔주제에 감히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그러자 계백이 긴 칼을 빼들고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벼슬타령 하는 거냐. 어라하께서 이 결사대의 지휘권을 동방령(주석3)인 내게 주셨다. 지금 내 명령을 듣지 않으면 당장에 목을 치고 말리라.”

  충상과 상영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가, 가겠소.”

  계백을 따르는 군사들과 달리 충상과 상영은 비장한 각오가 없었다. 그들은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귀족으로서 의자가 급파한 중앙의 장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했지 칼을 휘둘러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계백은 충상과 상영의 부관들을 불러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불기둥 같은 연설로 오천결사대의 사기를 끌어올린 계백은 충상과 상영의 군대를 진격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2천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주력군을 막으러 나아갔다. 충상과 상영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계백 역시 방어에 가장 유리한 곳에 진영을 갖추고 신라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백의 군사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걸음 간격으로 떨어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지형지물에 은밀히 숨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이 검은 장막을 드리우자 대추씨같은 비가 쏟아졌다. 무성한 들풀들이 빗방울에 또닥또닥 꺾이고 군사들의 얼굴이 따가웠다.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계백의 명령이 옆에서 옆으로 전달됐다. 군사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굵은 빗방울에 눈동자를 찔린 소년병사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순간 병사의 동공에 어마어마한 구름떼가 가득 찼다.

  “저, 적이다!”

  소년병사의 다급한 외침에 결사대의 근육이 힘차게 수축됐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적들이 오고야 만 것이다. 계백은 활에 화살을 장전하라고 명령했다. 신라군보다 위치가 높은 곳에 있으니 시야는 충분히 확보되었다. 신라군은 백제군이 매복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전진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바위와 관목, 잡풀들이 뒤엉켜있는 지형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이동이 빠를 수는 없었다. 2만이 넘는 신라군 중 절반가량이 계백의 사정거리로 들어왔다.

  “이 때다, 쏴라!”

  계백이 벌떡 일어나 먼저 한 발을 날렸다. 쾌연하게 쏘아올린 화살은 포물선을 길게 그리며 김유신의 귓전을 스쳤다.

  “억!”

  신라병사 한 명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김유신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적이다. 모두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들어라!”

  하지만 한 번의 공격에 삼백 명이 넘는 군사들이 화살을 맞았다. 두 번째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높은 곳에서 쏘아올린 화살은 가속도가 붙어 방패와 갑옷을 뚫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군사들의 절반 이상이 쓰러질 것 같았다. 후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서라!”

  김유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군관들의 목소리가 범벅돼 사방으로 튀었다. 창졸간에 벌어진 참담한 패배였다. 백제군은 세 곳의 전쟁터에서 똑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화살로 이루어낸 승리, 자국에서 적을 방어하는 전쟁은 그래서 유리한 법이다. 백제군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신라군은 백제군의 일차 저지선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

  후퇴를 하여 진영을 갖춘 김유신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격 중인 다른 부대에서도 역시 패전의 보고를 보내왔다.

  “우리를 막아선 놈이 계백이라고?”

 상대가 계백이라면 숫자가 적다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김유신은 소정방의 얼굴을 떠올렸다. ‘긴 젓가락으로 음식들을 지범거리며 돼지같이 먹어댄다는 놈. 그 역겨운 놈이 비열하게 웃으면서 나를 조롱할 것이다. 그놈에게 약점이라도 잡힌다면 조롱을 떠나 국운이 위태롭다. 놈들을 이용해 훗날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해야 하는데 여기서 발목을 잡힌다면 내가 살아온 의미가 없다.’ 김유신은 서둘러 다친 군사들을 수습하고 2차 진격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갑옷에 보호대를 덧대고 방패를 앞세워 완전무장을 했다. 숫자가 많은 신라군으로서 기습화살만 피한다면 질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일차 후퇴를 한 신라군이 사태를 수습하고 개미떼처럼 몰려오자 계백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같은 작전을 또 쓸 수는 없고 전면전을 치를 수도 없다. 이럴 때 계백이 취할 수 있는 작전은 후퇴, 적당한 곳으로 유인해 기습을 하는 것뿐이었다. 신라군이 물려오자 계백은 통나무를 굴리는 작전을 쓰기로 했다. 바위도 굴리고, 돌도 던지라고 명령했다. 신라군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일차 전투에서처럼 엄청난 화살을 쏟아 부었다. 김유신은 이번에도 계백의 작전을 간파하지 못하고 후퇴를 했다. 다급해진 김유신은 이후 두 번이나 더 진격을 감행했지만 그 때마다 계백의 기습에 막히고 말았다.

 

  위험을 무릅쓴 김유신의 진격은 수많은 군사들의 희생을 담보로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덕분에 김유신은 위험한 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드디어 황산벌이었다. ‘이곳이 황산벌이로군! 광활한 벌판이라면 저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적지 않은 군사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김유신은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소정방을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소정방과의 약속은 지킬 수 없다.’ 초조해진 김유신은 귀밑머리를 배배꼬며 막사 안을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그 때 급보가 도착했다. 우군에서 승리의 기미가 보인다는 보고였다. 우군이 백제군을 무찌르면 측면 지원공격이 가능해져 매우 유리하게 된다. 내친 김에 좌군에서도 승리를 거둔다면 계백은 옴짝달싹 못하게 될 것이다.

  백제군의 좌군을 지휘하고 있던 충상은 1차전 승리에 도취돼 2차전에서도 같은 작전을 구사했다. 만약 계백이었더라면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백이 아니었고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 계백의 지시를 받은 부관이 아무리 다른 작전을 제시해도 충상은 막무가내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랫사람인 계백에게 무시를 당한 것이 옹이로 맺혀있던 차에 자신의 부관마저 계백흉내를 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충상은 지휘봉으로 무지막지하게 부관을 때렸고 견디지 못한 부관은 탈출해 계백의 진영으로 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는 탈영병이다. 당연히 목을 잘라 효수해야겠지만 너의 죄는 나중에 다시 묻겠다. 다시 돌아가 충상에게 전하라. 전세가 불리하면 전면전을 치르지 말고 후퇴를 거듭하며 기습을 하라고. 그래도 불리하면 아주 물러나 이곳 황산벌로 집결하라 명하라.”

  계백은 충상의 부관을 따끔하게 혼내 다시 돌려보냈지만 상영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충상의 군대가 저 정도라면 상영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나마저 쉽게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충상과 상영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어차피 이 전쟁은 시간을 늦추려는데 목적이 있고 패배는 기정사실이다.’ 계백은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김유신과의 전쟁에서 네 번을 싸워 네 번 다 승리했다. 연속된 패배에 신라군의 사기도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백전백패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김유신이었다. 그동안 김유신이 이끄는 군대가 연전연승한 것은 김유신이라는 불패의 명장이 버티고 있었고 군사들은 그런 김유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불패의 명장 김유신이 네 번을 싸워 네 번다 패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66세의 백전노장 김유신의 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하기는 처음이었다.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데 이렇다 할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돌격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 돌격명령을 내린다 한들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군사들이 죽기로 결심하고 싸우는 계백의 결사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에 구겨진 휴지들이 뒤죽박죽 들어차 있는 것 같구나.’ 김유신이 귀밑머리를 배배꼬며 고민하고 있을 때 군관 중 누군가가 막사로 들어왔다.

  “대장군, 지금 흠순장군이 그의 아들 반굴에게 엄청난 명령을 내렸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엄청난 명령이라니.”

  “흠순장군이 화랑 반굴에게 이르기를 ‘신하가 되어 충(忠)만한 것이 없고, 자식이 되어 효(孝)만한 것이 없다. 조국이 위태로운 것을 보고 목숨을 바치면 충효(忠孝) 모두를 온전히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그래서.”

  “아버지의 말에 반굴이 ‘삼가 명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니, 뭐라고? 애를 죽일 셈인가. 빨리 명을 거두라!”

  “이미 늦었습니다.”

  반굴은 아버지의 명령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의연히 계백의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백제의 군사들은 먹이를 쫒는 맹수처럼 달려 들어오는 신라장군의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계백이 이를 방관할리 없었다. 전쟁은 한 마디로 기싸움인데 말 탄 적장 한 명의 기세에 눌려 물러선다면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물러서는 놈들은 즉시 처형하겠다. 군관들은 선제방어에 나서라!”

  계백의 명령에 군관 열 명이 진영 앞으로 나가 반굴을 막아섰다. 하지만 가속도가 붙은 반굴의 말을 저지할 수 없었다. 백제의 군관 두 명이 날쌔게 창을 휘둘렀지만 반굴은 납작 엎드려 피해냈다. 백제 군관들의 일차 저지선이 순식간에 뚫렸다. 방심을 하고 일자진을 편 것이 실수였다. 군관들은 일자진을 쳐 반굴의 말이 멈춰서면 포위하여 생포할 생각이었다. 계백의 눈이 동그래졌다.

  “놈은 죽을 각오를 했다. 군관 스무 명이 나가 무조건 죽여라. 순식간에 해치워야 한다.”

  계백은 신라군의 사기가 거슬렸다. ‘죽을 것이 빤한데도 불구하고 홀로 뛰어 들었다면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을 희생해 아군의 사기를 올리려는 수작이다.’ 전세가 비슷했으면 생포하여 신분을 확인하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했겠지만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던 계백이었다. 속전속결로 끝내 다시는 그런 무모한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백제군관 서른 명이 반굴을 포위했지만 쉽사리 제압하지 못했다. 반굴은 다리와 팔, 가슴 등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나 말에서 떨어지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굴의 칼에 백제군관 서너 명이 낙마하여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말의 다리를 잘라 떨어뜨려라!”

  계백의 명령이 추상같았다. 앞다리가 잘린 말이 쓰러지자 반굴도 말에서 떨어졌다.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반굴의 몸 여기저기서 붉은 피가 흘렀다. 반굴은 두 발에 잔뜩 힘을 주고 버티려 했으나 동공에 맥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몸에서 빠져나온 피의 양만큼 버틸 수 있는 힘도 빠져 나갔다. 백제의 군관 중 누군가가 반굴의 뒤에서 무자비한 무기를 내리쳤다. 뒤통수에 철퇴를 맞은 반굴의 머릿속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나른하게 날갯짓을 했다.

 

  계백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순식간에 적을 해치우지도 못했으며 죽인 것도 잘못되었다. 죽은 적장의 투구를 벗겨보니 전혀 뜻밖의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무시무시한 장군의 얼굴도, 건장한 장정의 얼굴도 아니었다. 반굴의 얼굴은 이제 갓 솜털을 벗고 청년의 테를 잡아가고 있는 미소년의 그것이었다. 반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계백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반굴의 죽음을 바늘 같은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던 김흠순의 심장은 새까맣게 쪼그라들었다. 반굴이 적들에게 찔리고 베일 때마다 심장에 소금이 뿌려진 듯 괴로워했다. 한편 반굴의 죽음을 면밀하게 지켜본 신라 군사들의 눈빛은 활활 타올랐다. 계백의 생각대로 반굴이 무시무시한 장군이었거나 건장한 장정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쟁 중이라 재빠르게 상황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김유신과 김흠순은 반굴의 시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계백은 반굴의 시신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처참하게 죽은 어린 화랑의 시신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대로 들이쳐 반굴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흠순이 유신에게 전면전을 요구했다.

  “장군, 아직은 아닙니다. 전쟁은 군사들의 숫자로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좌장군 김품일이었다. 품일은 열 배나 많은 군사력으로 싸워 연패한 원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적국에서 죽기로 싸우는 적의 결사대를 쉽게 이길 수는 없다. 더구나 적들은 자국의 지형지물을 교묘히 이용해 아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몇 번을 싸워 다 졌다면 아군의 사기는 바닥이다. 지는 싸움만 하는 군사들은 자신의 죽음이 코앞에 있음을 감지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그런 군사들에게 무조건 돌진을 명령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다. 반굴의 죽음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반굴의 죽음으로 꺼져가는 불씨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이제 그 불씨에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김품일은 전면전을 잠시 늦춘 뒤 자신의 아들 관창을 불렀다. 죽은 반굴보다 더 어린화랑이었다. 품일은 관창을 하얀 백마 앞에 세워놓고 웅장하게 말했다. 5만 신라군사들 앞에서 다짐을 받고자 함이었다.

  “내 아들은 나이가 겨우 열여섯이나 지기(志氣)는 자못 용맹하니 오늘 싸움에 있어 능히 삼군(三軍)의 표상이 되겠는가!”

  “그리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관창은 아주 짧게 대답했다. 앞서 반굴의 처참한 죽음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던 관창이었다. 관창은 머릿속에 모든 잡념을 떨쳐버리고 오직 화랑으로서 나라를 위한 명예로운 죽음만을 생각했다.

  드디어 관창이 말에 올랐다. 아버지가 준비해준 순백의 말이었다. 순백의 소년이 순백의 말에 올라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순백의 눈동자에 서글픔이 가득하다. 살아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헤어짐이 서글픈 것이다. 품일은 괴어오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매정하게 돌려 버렸다. 이에 관창도 고개를 돌려 적진을 쏘아 보았다.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매의 눈이다.

  “신라의 군사들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칼을 하늘높이 치켜든 관창은 5만 신라 군사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계백의 진영을 향해 죽창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눈부신 백마를 타고 누군가가 돌진해 들어오자 계백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렸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이제는 빤히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당군과의 연합을 지연시켜 따로 움직이게 하고자 했던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결국에는 신라의 대군에 패배를 하겠지만 이제 겨우 하루를 버텼을 뿐이다. 오늘만 버티면 신라는 당군과의 집결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오늘 전투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신라군의 사기는 회생불능이다. 잘하면 며칠은 더 버틸 수가 있다. 그런데 저들이 그 작전을 들고 나왔다. 앳된 아이를 희생시켜 떨어진 사기를 올리려는 작전. 그 작전이라면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신라군의 의도를 알아차린 계백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직감했다.

  계백은 군관들을 내보내지 않고 직접 나가 관창을 맞았다. ‘죽이지 않고 고이 돌려보내면 놈들이 분노할 명분이 약해질 것이다.‘ 솜털하나 다치게 하지 않고 사로잡아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계백에게 관창은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관창이 아무리 화랑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어린 아이에 불과한데 백전불패의 명장 계백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말에서 떨어진 관창은 칼을 빼들었다. 검을 다루는 기술이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절도가 있었다. 계백은 관창이 신라의 화랑임을 확신했다.

  “그만하고 항복하라!”

  관창은 계백의 말에 일언반구도 없이 계백을 쏘아보기만 했다. 계백을 쏘아보던 관창의 동공이 한껏 확장되었다. 순간 관창의 몸이 튕겨져 번개처럼 계백을 향해 날아 들어갔다. 관창의 검법은 일반병사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병사들의 검법은 좌우로 휘두르는 정도였지만 관창은 칼끝을 앞으로 똑바로 내민 뒤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다가 목표물에 가까이 가는 순간 현란하게 움직여 찌르는 검법을 쓰고 있었다. 칼과 몸이 일체가 되어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빈틈을 찾을 수 없는 검법, 화랑출신이었던 아버지 품일이 전수한 가문의 비기였다.

  계백은 관창의 검법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화랑이라고는 하나 어린 소년의 검법이 저 정도라면 건장한 화랑들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계백은 관창이 가까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긴 창을 불쑥 내밀었다. 거리를 두려함이었다. 관창은 순간적으로 계백의 창을 힘껏 밀어냈다. 힘이라면 태산을 옮길 정도였던 계백의 창을 받아낸 것이다. 계백은 다시 한 번 놀라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관창은 그런 계백을 보며 천하의 영웅임을 실감했다. 어린 화랑의 힘으로는 쉽게 이길 수 없는 절대고수였던 것이다. 계백은 단숨에 관창의 무릎을 꿇릴 수 있었지만 어린 화랑의 용감함을 사랑하여 두어 번 겨루어 주다가 제압했다.

  “나를 죽여라. 대신 반굴과 나의 시신을 돌려보내 다오.”

  계백의 입장에서 시신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반굴과 관창의 시신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빤했기 때문이다. 계백은 관창을 말에 태웠다.

  “너의 충성심과 용맹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구나. 살려줄 테니 돌아가라.”

  계백의 말에 관창이 뭐라 대꾸를 하려 했지만 말은 이미 신라군의 진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군의 진영으로 돌아온 관창은 곧바로 아버지인 품일을 찾았다.

  “아버지, 제가 적중에 들어가 장수를 베지도 깃발을 빼앗지도 못한 것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계백이라는 대단한 장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적진으로 다시 갈 것입니다. 돌아가 깃발을 빼앗지 못하면 반드시 죽어서 돌아오겠습니다.”

  관창은 말에서 내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말에 올랐다. 그러는 동안 품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창의 말이 다시 보이자 계백은 땅을 쳤다. 살려 보내면 관창은 또 다시 죽기위해 달려들 것이고 죽이면 5만 신라 군사들도 죽기위해 달려들 것이다. 선택이 어려운 상황에서 계백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계백이 고민하는 동안 관창의 말은 이미 백제군의 진영에 도착해 있었다. 관창은 백제군관 몇 명에게 작은 상처를 입혀 말에서 떨어뜨렸지만 결국 사로잡히고 말았다. ‘살리자니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죽이면 적들의 사기가 오를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계백은 관창의 머리를 베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는 백마에 관창의 머리를 매달아 신라군 진영으로 보냈다. 관창의 시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계백은 관창을 돌려보냈다. 계백은 그만큼 관창을 사랑했던 것이다. 계백은 관창을 돌려보내자마자 북을 쳐 신라군의 총공세를 경고했다.

 

  이불처럼 황산벌을 덮고 있는 검은 하늘은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를 쏟아 부었다. 품일은 말에 달려 돌아온 아들의 머리를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었다. 아직 굳지 않은 관창의 피가 품일의 소맷자락을 붉게 적시었다.

  “아, 아! 내 아들의 얼굴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구나.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너의 죽음이 위대하고 자랑스럽도다.”

  품일이 통렬하게 울부짖자 군사들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북을 치고 고함을 질렀다. 잠시 후, 북과 고함소리는 더욱 커져 천지를 진동시켰다. 신라의 좌군과 우군이 합세를 한 것이다. 사기가 끓어오른 신라의 삼군은 김유신이 공격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야수처럼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김유신은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계백이 관창의 시신을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신라 군사들이 그렇게까지 끓어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인해 계백의 군대는 신라군에 대패하여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황산벌의 가장 중요한 일차방어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삼군으로 나뉜 백제의 결사대 중 주력부대인 계백의 부대가 대패하여 후퇴를 했다면 충상과 상영이 이끄는 부대라고 온전할 리 없었다. 아니, 그들은 계백보다 훨씬 먼저 패하여 황산벌 주변에 숨어 있었다. 숨어서 계백이 패하는 것을 지켜본 충상과 상영의 군사들은 분기가 끓어올랐다. 군사들은 충상과 상영에게 계백의 본진과 합류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태세였다. 충상과 상영은 하는 수 없이 궁지에 빠진 본진과 합류를 했다. 그나마 계백에게는 천군만마였다.

  계백의 결사대와 김유신의 결사대는 황산벌 끄트머리에서 대치했다. 백제군은 신라군에 패배하여 후퇴를 한 처지라 사기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특히 연전연승을 했던 주력군마저 싸울 기력을 잃고 계백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제군의 뒤로는 그만그만한 산과 골(주석4)이 있었다. 백제군이 산자락에서 싸우다가 골로 밀리면 꼼짝없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로 몰살을 피할 수 없다. 김유신은 백제군을 골로 밀어붙여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놈들이 배수진을 치고 죽기로 덤비면 어떻게 합니까?”

  김유신은 김문영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쥐새끼처럼 비실비실해진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 너는 지금 당장 달려가 소정방을 만나라.”

  전쟁에서 군기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어떠한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 계백의 결사대로 인해 김유신은 소정방과의 약속을 확실히 어기게 되었다. 몇 시간도 아니고 거의 하루가까이 늦은 것이다. 그로인한 소정방의 노여움을 걱정한 김유신은 김문영을 보내 양해를 구하려 했다. 유신의 명령에 문영은 허겁지겁 사비성 남쪽으로 말을 몰았다.

  *

  5만 신라의 대군과 5천 백제의 결사대가 집결한 황산벌. 군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북소리를 따라 하늘로 오르고 짓밟힌 잡풀들이 반질반질 해졌다. 방어를 하는 백제의 결사대는 이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사기가 끓어오른 신라 군사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들개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그들은 공격명령만을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명령이 떨어지면 눈앞에 보이는 사냥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갈 것이다.

  “일제히 쳐들어가 놈들의 숨통을 끊어놓아라!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드디어 김유신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궁지에 몰린 백제 결사대의 머리위로 억수 같은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화살을 맞은 군사들이 바르작거리자 멀쩡한 군사들마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계백은 물론 그 누구의 명령도 통하지 않았다. 두 번째 화살이 쏟아지자 결사대는 이곳저곳 은폐물에 숨기 바빴다. 백제의 결사대는 세 번째 화살에 삼분의 일 가량이 쓰러졌다. 화살을 날리는 동안 신라의 기병과 보병들은 백제군의 턱밑까지 쳐들어가 있었다.

  지휘력을 상실한 계백은 날랜 군관들과 함께 최 일선에 섰다. 하지만 충상과 상영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계곡방면으로 도망쳤다. 그들의 부대에 속해있던 군사들도 함께 도망쳤다. 결사대의 주력군이었던 계백의 군사들이라고 별 수 없었다. 그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계백과 군관들의 뒤편에 서서 창만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계백과 그의 군관들은 달랐다. 그들은 모두 일당백의 싸울아비들로서 칼과 창으로는 쉽게 무너질 사람들이 아니었다. 특히 계백은 삼국을 통틀어 용력이 가장 뛰어난 장수였기에 힘으로는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계백이 긴 창을 한 번 휘두르면 열 명이 넘는 신라 군사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그대로 두면 한 나절이 넘어서도 계백의 방어선을 뚫지 못할 것 같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유신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칼과 창으로는 놈들을 당할 수 없다. 화살로 제압하라!”

  김유신의 명령에 일선에서 싸우던 신라 군사들이 물러나고 전방에 궁수부대가 배치됐다. 온몸에 적의 피를 뒤집어 쓴 계백의 눈동자가 피로 물들었다. 아른거리는 눈을 비비자 손바닥에 붉은 피가 흥건했다. 계백은 번들거리는 핏빛 눈으로 신라의 궁수부대를 노려보았다. 이제 죽을 때가 된 것이다.

  “장군을 보호하라!”

  백제의 군관들이 계백을 겹겹이 둘러싸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군관이 아닌 백제의 병사들은 화살을 피하기 위해 멀찌감치 도망을 쳤다. 백제의 척후병 중 누군가는 말을 타고 잽싸게 사비성으로 달려갔다.

  “도망치는 놈들은 그냥 놔두고 계백을 향해 화살을 날려라!”

  계백을 뒤집어씌운 방패 우산 위로 수천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방패를 뚫은 화살들이 고슴도치의 등에 돋아난 가시 같았다. 화살은 끊임없이 쏟아져 방패들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방패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러자 백제의 군관들은 계백의 몸을 이불처럼 덮었다. 군관들의 등 위로 화살들이 꽂히고 또 꽂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마라!”

  계백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댔지만 대꾸를 하는 군관들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사람들로 만든 이불, 계백을 덮고 있는 군관들의 시체였다. 계백이 이불에서 나왔는데도 화살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화살은 계백의 온 몸을 뚫었다. 화살이 꽂힌 곳에서 검붉은 피가 찔끔찔끔 삐져나왔다. 하지만 아프지도 않고 감각도 없었다. 김유신이 손을 들어 궁수부대를 뒤로 물렸다.

  “그만 항복하시오!”

  “내가 항복을 하면 백제가 항복을 하는 것이오. 백제는 망할지언정 결코 항복은 하지 않소.”

  계백은 몸에 꽂힌 화살을 뚝뚝 분지른 다음 유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품일과 흠순을 비롯한 신라의 화랑들이 계백을 막아섰다. 계백이 휘두르는 칼과 화랑들의 칼이 부딪쳐 애절한 화음을 만들었다. 계백은 화랑들을 죽이려 하지 않았고 화랑들도 계백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계백은 더 이상 쓸데없는 살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조국을 사수하는 장수로서 명예롭게 죽기위한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살을 맞은 계백의 몸 이곳저곳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마침내 힘을 다한 계백은 무릎을 꿇고 서서히 바위가 되어갔다.

 

  김유신은 골짜기에 몰려있는 백제의 결사대를 완전히 소탕하고 계백의 시신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황산벌전투에 참가한 5천여 명 중 살아남은 자는 좌평 충상과 상영 등 20여 명 뿐이었다. 서기 660년 7월10일, 계백이 무너진 황산벌에 비가 내리고 짙푸른 초목위로 흩뿌려진 핏물이 씻기고 있었다. (계속)

 

 *주석*

 1)탄현(炭峴)이 지금의 어디냐에 대한 견해는 3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옥천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목인 자모리 고개, 둘째, 옥천에서 대전으로 가는 질현성이 있는 질티고개, 이상 식장산을 근거로 한 고개(이 주장은 신라군이 상주에서 집결해 옥천을 거쳐 대전과 연산→논산→부여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출발함). 셋째, 금산에서 진산으로 가는 백령산성이 있는 백령산 고개. 이상의 견해 중 작가는 경주에서 가장 빠른 직선 코스로 황산벌을 거쳐 논산과 부여로 가려면 경주→대구→성주→무주→금산→논산으로 이어지는 백령산고개(금산군 남이면)가 당시의 탄현일 것이라고 추측함. 하지만 각각의 견해에 대한 내용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볼 때 당시 신라군이 상주와 경주에서 각각 출발해 황산벌로 집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2)여러 설이 있으나 백강(기벌포)은 지금의 서천과 군산이 맞닿은 군산 하구둑 근방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편의상 이 소설에서는 지금의 금강을 백강으로, 부여의 도읍지 앞으로 흐르는 금강을 ‘사비의 강’, 공주로 흐르는 금강을 ‘웅진의 강’으로 표기하겠음.

 3)백제의 지방행정제도인 오방 중 하나. 당시 백제는 오방에 각 방성을 두었는데 서방은 임존성(도선성), 북방은 웅진성, 동방은 매화산성(득안성), 중방은 고사부리성(고사성), 남방은 남원성(구지하성)으로 추정되며 각 방성의 성주를 방령이라 불렀다.

 4)지금의 수락산(首落山) 가장(假葬)골로 추정. 수락산이 있는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일대는 백제의 결사대가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계백장군묘, 백제의총, 말무덤 등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4, 50년 전 묘가 노출되었을 때 각종 철제무기가 나오기도 했다. 전란이 끝난 후 백제 유민들이 계백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매장했다고 전해온다. 수락(首落)이란 머리가 잘렸다, 가장(假葬)이란 임시로 장례를 치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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