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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1.
작성일 : 17-11-05 22:19     조회 : 543     추천 : 0     분량 : 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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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나 대학 떨어졌어.”

 

  새하얀 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흩어질 것 같은 그 모습에 꽃다발을 꽉 쥐었지만 꽃잎은 하나, 둘 바람을 따라갔다. 나름 꽤나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데, 사진 속의 녀석은 그저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이게 뭐냐? 넌 목적을 이뤘는데... 나만 바보같이 떨어지고.”

 

  꽤나 밝게 말했지만 질식할 듯이 목이 메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애써 입술을 꾹 다물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근데 너 때문에 떨어진 거 알지?”

 

  일부러 타박을 해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여기서 무언가를 더 말한다고 하더라도 녀석은 절대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잠깐 내렸던 빗물이 아직 고여 있었는지 툭툭 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두들겼다.

 

  아... 그래... 넌 지금 가는 거구나. 결국 건너는 거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영롱하게 빛났다.

 

  톡톡... 그래, 이 소리. 언젠가 네가 알려주었던 그 소리. 나는 이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들리지?”

 

  나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언젠가 들었던 녀석의 물음에 가만히 답했다.

 

  “응. 들려.”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하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무지개의 소리』

 

 

 

 

 

  사람은 만남의 순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벚꽃이 휘날리는 따사로운 봄날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을, 잊고 있던 하지만 그 마음에는 품고 있던 첫사랑과의 재회,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와의 만남을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품고 있다. 그 어떠한 만남이든 아름다우며, 추억에 간직될 개인의 역사가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과도 같은 숭고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와 녀석의 만남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만남 혹은 재회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나는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어마 무시한 소나기가 땅을 향해 난타를 치던 그 날, 나는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 때, 그 말을 들었다면 난 녀석과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 날, 우산을 갖고 나왔어야 했다.

 

  “으~ 춥다!”

 

  죽어라 야자와 모의고사에 시달리던 치열했던 내 고등학교 3학년 여름, 우산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나온 그 날의 형벌은 과했다.

 

  신나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지어진지 100년은 되어 보이는 낡고 허름한 도서관으로 비를 피한 나는 젖은 몸을 덜덜 떨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냥 친구들이랑 PC방이나 갈 걸...

 

  후회한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툴툴거렸다. 우산을 갖고 나오지 않은 것은 나인데 괜히 내 잘못이 아닌 것처럼 하늘을 원망했다. 조금만 늦게 내리지...

 

  나는 그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도서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속 기다린다고 해서 쉽게 비가 그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되게 오랜만이네.”

 

  책을 꽤나 좋아했던 난 어렸을 때, 줄곧 이 도서관을 방문했었다. 사실 책을 좋아 했다기 보다 그 책 안에 그려진 삽화를 좋아한 거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삽화가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삽화들이었다. 각기 다른 책 속의 앨리스들과 토끼들, 그 외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내 손을 근질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림을 선물해준 아주 고마운 책.

 

  오랜만에 앨리스의 삽화가 보고 싶어졌다.

 

  열람실에 들어서니 이미 수명이 다 된 것처럼 보이는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그 깜빡이는 형광등은 낡은 도서관의 열람실을 을씨년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조명이었다. 아... 그냥 나갈까?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열람실 안에 들어섰다. 열람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낡은 책 향과 오래된 책장 나무의 냄새가 코끝을 근질거리게 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나이가 이런 걸 무서워해서 되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많은 내가 그 열람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평생 다시없을 어마어마한 용기였다. 다시금 그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몇 걸음 더 옮겼을까. 번개가 쳤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창가에 서 있는 검은 긴 생머리, 하얀 원피스의 귀신을!

 

  숨이 턱 막혔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바로 가위?!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멀쩡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가위에 눌릴 리가 없을 텐데.

 

  “너...”

 

  귀신이 무어라 말했지만 타이밍 좋게 천둥이 쿠르릉 거리며 하늘을 울렸다. 그리고 다시금 내리치는 번개.

 

  아마 귀신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내가 보이니?」

 

  십중팔구. 뻔한 말을 내뱉을 것이 분명한 귀신을 버려두고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필사의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열람실에서 뛰쳐나왔다.

 

  자기가 보이냐며 다가오는 귀신에게 ‘네! 아주 잘 보여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너무나도 무서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짧은 외출 후 돌아오는 사서에게 혼이 난 것은 접어두자. 오히려 혼나더라도 사서를 만나 너무 기뻤으니...

 

  사서의 꾸지람을 들은 후, 그치지 않는 빗속을 뚫고 기어이 집까지 뛰어갔다. 가방 속 교과서가 축축하게 젖을 것이 눈에 선했지만 귀신을 떠올리면 교과서를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다.

 

  물론 그 후에 지독한 여름감기에 걸리고 말았지만.

 

 

 

 *

  귀신 소동이 있고 나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학교를 쉬었다. 잘 떨어지지 않는 열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엄마도, 할머니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두 번 다시는 귀신을 만나더라도 비를 맞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다시는 귀신을 만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부럽다.”

 

  오랜만에 나간 학교에서 친구라는 놈의 입에서 처음으로 튀어나온 말은 ‘괜찮니?’가 아니었다. 물론 이 망할 놈이 나를 걱정해 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노느라 빠진 것도 아니고 열 펄펄 나서 누워있던 게 부럽냐?”

 

  “누워서 그 동안 잠 좀 잤을 거 아냐.”

 

  정환을 똑바로 바라보니 다크써클이 5cm는 내려온 것 같아 보였다. 그 동안 얼마나 잠을 못 잤는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괜히 멋쩍어졌다.

 

  “왜 그래? 우리 여름이도 그 동안 아파서 그런지 핼쑥해 졌는데!”

 

  건우가 옆에서 갑작스레 헤드락을 걸어왔다. 물론 가볍게.

  장난스런 그 제스처에 나는 서둘러 건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친구들과의 짧은 장난 후, 찾아온 수업시간.

 

  선생님의 목소리는 자장가 같았다. 낮은 톤의 목소리와 느릿한 속도는 더운 여름날 가뜩이나 꾸벅꾸벅 감겨오는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 눌렀다.

 

 -딱!

 

  “니 퍼뜩 안 인나나!”

 

  모든 선생님의 공통점은 아마 학생을 깨울 때에만 톤이 높아지며 발라진다는 것 일거다. 설사 아무리 지루한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평상시에도 그 톤과 그 빠르기로 수업을 하신다면 안 졸텐데.

 

  선생님의 분필에 헤드샷을 당한 정환이가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나는 내가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와 정환이의 벌겋게 이마가 물이든 모습이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교과서로 시선을 옮겼다.

 

  교과서 안에서는 시그마와 리미트라 불리는 녀석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이 요상한 수학기호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내 수학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행렬. 난 행렬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난 평생 너만 바라볼 거야, 행렬아. 시그마도 리미트도 함수도 절대 보지 않을게.

 

  행렬과의 평생의 의리를 선서하며 혼자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수포자의 변명이 맞다. 그래도 수학책 첫 번째 행렬이 너덜거린다는 건 어느 정도 노력은 해봤다는 거 아닐까?

 

  “그래서~ 이 공식을~ 여기에~ 대입을 하는 거야~”

 

  선생님의 말끝이 늘어짐에 따라 나도 점점 다시금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답이 24. 알았어? 이해 안 되는 사람?”

 

  이해가 되냐고?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나!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해가 될 리가.

 

  그렇다고 손을 드느냐? 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스무 명이 넘는 우리 반 수포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의리의 사나이들이 따로 없었다.

 

  “다음 문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다시금 느릿하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셨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있으면 이 지루한 수학시간이 끝난다는 생각에 조금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

 

  나는 눈을 깜빡였다. 누구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주 입고 다니는 추리닝 차림의 여학생이 탐험하듯 학교 건물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수업시간일 것이 뻔한 학교의 창문을 훔쳐보기도 하고 절대로 올라가서는 안 되는 조각상 위에도 올라가며 수위아저씨나 선생님들이 보면 기겁할 용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며, 여학생은 그렇게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여학생의 행동에 괜히 웃음이 배어나왔다. 그렇게 잠시간 보고 있는데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문득 고개를 들은 것인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난 이날 처음,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추리닝 차림의 녀석은 어딘가 모르게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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