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녀에 대해 수근거렸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말해 줄 용기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없는 건 용기가 아니라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동정과 연민의 눈빛이 아니라, 시시한 인생 속 어쩌다 얻어 걸린 재미로 인해 기대에 가득 찬 눈빛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욕 할 자격은 없다. 나라고 그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어느날 갑자기 돌던 괴이한 소문이었다. 정확한 출처도, 정확한 시기도 뚜렷하게 대답할 수 없을만큼 정말 갑자기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이 당사자 귀에까지 들어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만, 사실 이 조그마한 곳에서 도는 소문이 당사자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이상한거겠지. 분명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 현 쌤. 쌤은 어떻게 생각해? "
퇴근 전, 아이들 작품을 파일에 일일히 꽂아 넣다가 허리가 아파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우드득- 하고 귀를 울리는 소리에 괜스레 박하사탕을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것과 같이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들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뼈 소리 내는 거 좋지 않다던데... 아무렴 어때. 좋은 게 좋은거 아니겠어.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머지 작품들을 파일에 넣고 있는데 교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박쌤이 살며시 들어와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 질문을 나에게 한 의도는 불 보듯 뻔하지.
" 뭐를요? "
" 뭐겠어. 윤 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럼 그렇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궁금증인건지, 아니면 흥미로움인건지 둘 중 어느것인지 정확히 모를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쌤이 나에게 바짝 다가와 내 앞에 앉는다.
" 어.. 선생님, 거기 종이.. "
" 아! 미안 미안. 안 찢어졌어, 다행이다. 그나저나 윤 쌤 어떻게 생각해? "
반 아이의 작품 하나를 실수로 깔고 앉았던 박쌤이 간신히도 찢어지지 않은 종이를 탈탈 털며 나에게 건넨 뒤, 끈질기게 윤 쌤에 대해 물어본다. 어떠한 대답을 원하는 걸까.
"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어요. "
" 쌤 진짜 싱겁다... 어떻게 아무 생각이 없을 수가 있어? "
" 그냥 뭐... 워낙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어서... "
" 그래도 그렇지. 교사가 지금 불륜을 일으켰다는 데 그게 신경이 안쓰여? 가만 보면 현 쌤 참 재미없어. "
" 그치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거니까... "
" 당연히 사실이지. 사실이 아니라면 억울해서라도 들고 일어났겠지. 근데 지금 저렇게 아무런 제스쳐도 취하지 않고 뻔뻔하게 잘 다니고 있잖아. 진짜 잔인해... 교사라는 사람이 한 가정을 파탄내고... 정말 무섭다니까, 무서워. "
어느날 갑자기 돌던 괴이한 소문이었다. 윤 쌤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이의 아버지와 불륜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
" 대체 회식은 누구 좋으라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니까. "
급작스레 잡힌 회식에, 선약이 있던 많은 사람들의 눈쌀이 잔뜩 찌푸려지던 오후였다. 원장님도 참... 항상 본인 내킬 때 갑자기 회식 자리를 만드신단 말이야. 정말로 누구 좋으라고 있는 자리인지는 모르겠다만 ... 어차피 집에 가봤자 먹을 반찬 없는데 회식 자리가서 배 터지게 먹는 걸 그닥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나였기에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회식비 걷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건 참 좋은 것 같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은 다른 선생님들 그 누구도 모를테지만 말이다. 어수선해진 분위기 속에, 선생님들이 상사 눈을 피해 숙덕이고 있었다. 가만 보면 귓속말 하는 거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귓속말 하는 거 아니라고, 다른 친구들이 소외감 느끼는 행동은 하지 않는거라 가르치시겠지.
" 현 쌤. 걔도 회식 간대? "
통합보육이 끝나고,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 한 분이 슬쩍 물었다. 이제는 '윤 쌤' 이라는 호칭에서 '걔'라는 호칭으로 바껴버린걸까. 무례해도 한참 무례한 호칭을 들은 나는 '걔'라는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다시금 물었다. 걔가 누구예요?
" 아 윤 쌤 말이야. 걔도 회식 가? "
어깨를 으쓱인 채 다시금 청소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스쳐였겠지. 꽤나 많은 선생님들이 나에게 윤 쌤에 대해 묻곤 한다. 삼삼 오오 모여 윤 쌤 욕하기 바쁜 사람들 속에 나만 섞여있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이 툭 던지는 질문들일까. 워낙 남 일에는 신경쓰지도 않고,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는 타고난 성격 덕에 어쩌다 형성된 윤 쌤 안티클럽엔 들어가고 싶지도, 들어 갈 생각도 없었다. 불륜을 일으킨 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내가 알아서 뭘 하겠는가. 싱거운 내 반응이 떨떠름한건지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 옆에서 유유히 자리를 뜬 선생님이었다. 내가 같이 욕을 해주길 바랬던 걸까 저 사람은. 신경쓰고 싶지 않기에 신경쓰지 않을 뿐인데 왜 굳이 항상 찝찝한 감정을 느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말이다.
회식 장소인 어린이집 근처 고깃집에 모여 앉아 원장님의 간단한 기도와 함께 식사는 시작되었다. 회식자리는 싫어도 고기는 맛있단 말이지. 허기졌던 배를 채우며 기분 좋게 먹고 있는데 나의 빈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주던 박 선생님이 날 보며 씩 웃는다.
" 한 잔 해야지. 짠! "
내일 당직이라 술은 안마시고 싶은데... 라는 내 말을 툭 끊어내더니 " 쌤은 참 재미없어. 쌤만 출근해? 그냥 마셔~ " 라며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말씀 하시던 박 쌤이었다. 누구 좋으라고 회식하냐는 박 선생님 어디 가셨나 싶다. 이미 본인은 충분히 즐기시고 계신 것 같단 말이지... 짠! 하고 마주치는 잔 소리가 고깃집을 웅웅 퍼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고기 굽는 소리, 그리고 잔 부딪히는 소리. 충분히 어수선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여러번의 잔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하나의 잔만 부딪혀지지 않고 있다는 걸 말이다.
본인이 마시질 않는건지, 마시지 못하게끔 분위기가 조성되어진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건이 터진 이후, 첫 회식이었기에 이렇게 다 모인 장소에서 대놓고 소외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떠한 감정이라고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안쓰러움인지, 안타까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들이었다. 나는 머리 아픈 일은 질색이었다. 누군가의 일에 나서고 싶지도, 나설 마음도 없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 쌤. 쌤은 왜 안마셔요. 같이 짠 해요. "
그 소문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은 나와 상관 없는 일이었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준 건 없지 않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욕하든, 욕을 하지 않든 그것 또한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안쓰럽지도, 불쌍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냥 내 일이 아니기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난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 이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나 조차도 해석하지 못할 감정이 들었다. 지금 저기 앉아 있는 저 여자가 가여운건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에 대한 분노인건지...
" 됐어요. 전 안 마셔요. "
용기 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홀로 비어있는 맥주잔에 맥주를 채워주고 같이 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이 행동을 하는데에 있어 용기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내 행동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어쩌면 본인들은 나름 유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분위기가) 잠시나마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그 정적 사이에서 약간은 날카롭게 들려오던 윤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 냅둬, 쌤. 그냥 쌤이나 마셔. 뭘 챙겨, 본인이 안마시겠다는데.. "
" 그래, 그래. 냅 둬~ "
분명히 들으라고 이야기 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척 하고 있지만 들렸을 그녀의 모습도 보였다. " 그럼 짠 만 해요. 마시지는 말고. " 그녀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맥주잔에 살짝 짠을 한 뒤, 잔에 든 맥주를 남김없이 마셨다. 서서히 취해갔던 것 같다. 마시고 있는 이 술에 취해가면서도 자꾸만 어떠한 감정인지 모를 것들이 내 속에서 너무도 뚜렷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 날 부터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