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당연히 그녀에게 연락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연락할 리 없었다. 나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갔으니까.
6년 동안 그녀만을 열렬히 사랑했던 나였다.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운명이 있다면 그녀와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고 모든 것이 우스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녀는 내게서 꿈, 행복, 감정 그리고 돈. 모든 것을 가져갔다.
가족이라곤 하나뿐이었던 아버지는 자식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술주정꾼이어도 괜찮았다. 도박 때문에 빚을 지고 들어와도 괜찮았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가족으로서 남아있을 수만 있다면, 빚을 갚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눈물이 나지 않았고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더라도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지만 아버지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돈을 잃은 아들은 그에게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난 그들을 위해 희생했다. 내 인생이 밑거름이 되어, 그들의 행복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난 밑거름조차 될 수 없었던 걸까.
누구도 남지 않았다. 완벽하게 버려졌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잃었다. 복수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허무하고 속상했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가슴속엔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피부에 닿는 강바람의 숨결이 느껴졌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서서히 몸에 힘을 놓았다. 무엇도 잡지 않았고 누구도 날 잡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길 뿐. 바람에 밀려 다리 밑, 한강으로 떨어질 때도 눈을 뜨지 않았다. 물속에 잠겨 호흡이 막혀와도 뜨지 않았다. 고통에 잠겨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을 뜨지 않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