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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구원해줘
작가 : 꿀크리스마스
작품등록일 : 2017.7.13

“방금 개새끼, 라고 저한테 욕을 한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미친. 저기요, 피해망상 있으세요?”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심상치가 않다.

정솔, 이 세상의 정의는 자본뿐이라 믿는 기업 사냥꾼.
절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나약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배반적인 동물이니까.

하리안, 강자에게는 아주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 없이 약한,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서하일보 사회부 기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엮어가는 알콩달콩 로맨스!

#사이다여주 #차도남남주 #스윗남서브남주

 
1 사건이거나, 만남이거나 (1)
작성일 : 17-07-13 23:28     조회 : 511     추천 : 1     분량 : 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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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건이거나, 만남이거나 (1)

 

 

  “하리안!!! 당장 튀어와!!!”

  적막했던 공간을 뚫고 캡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류더미와 모니터, 타자기에 집중하고 있던 리안은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숨을 깊게 쉬었다. 또 시작이군, 이라 생각했다. 공간 안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또 시작이군.

  리안은 얼굴에 인상을 팍 쓴 채로 자리에서 큰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나도 화났다, 이거였다. 얼마나 괴팍하게 일어났는지 의자가 쓰러질 정도였다. 옆자리 사람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의자는 넘어갔을 것이었다. 분노에 가득 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리안이 캡 앞에 당당하게 섰다. 캡은 지금 이 시선으로 널 쏴 죽이고야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리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왜요?”

  “아, 왜요? 아, 왜요오? 아주 내가 네 친구지?”

  “친구는 무슨. 캡이죠, 캡. 대빵! 그러니까, 왜요?”

  리안의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런 리안을 보며 캡의 분노 게이지는 상승할 뿐이었다. 두 사람의 뒤로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저러다 하리안이 정말 잘리는 게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캡인데 너무 건방지지 않느냐, 대략 이런 말들이었다.

  ‘캡은 하늘이요, 아버지다’ 라는 이 바닥의 룰을 깡그리 무시한 리안은 눈에서 독기를 빼지 않은 상태로 캡과 함께 눈을 부라리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킬이면, 캡 너야말로 진짜 킬시켜 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몰라서 물어? 이건 킬이야!”

  “이게 어째서 킬이에요? 육하원칙은 당연하고, 사실에 근거했고, 객관적 시선을 담았으며, 문장까지 깔끔하고 완벽한대요!”

  “아니, 전혀 완벽하지 않아. 처음부터 틀려먹었어. 서울기업이 들어가 있잖아! 너는 도대체 서울기업에 무슨 원수를 졌길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너한테 월급 주는 게 서울기업이야. 우리 신문의 최대 광고주라고! 몇 번을 말하냐, 가족은 건들이지 좀 말라고. 어?”

  “가족은 무슨 개뿔의 가족이에요. 전 이렇게 사회적으로 부조리한 가족 둔 적 없고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이런 개 같은 서울기업 따위의 행패를 고발하는 이 기사야 말로 사회부 기자가 써야하는 진짜 기사라고요!”

  “야, 이 새끼야!”

  리안과 캡은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있을 수 없다는 듯이 팽팽하게 접전 중이었다. 이런 광경이야 말로 서하일보 사회부 기자들의 하루 중 최대 가십거리,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연예부 기사보다도 재밌는 안주거리였다. 그 중에서도 오늘따라 캡은 더 완강했고, 리안은 좀 더 분노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현재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입사한 수습기자, 기, 김우진입니다! 여, 열심히…!”

  자신을 수습기자라고 목소리를 떨고 말을 더듬으며 소개하던 우진은, 자신의 포부를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선배기자가 나선 것이다. 선배기자는 수습기자에게 다가가 입을 틀어막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분위기 파악도 파악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재밌는 거리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수습? 그래, 그래. 반가워. 근데 지금은 그렇게 크게 인사할 때가 아니야.”

  “아,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괜찮아, 괜찮아. 자, 이제 좀 조용히 해봐.”

  선배기자는 수습기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수습기자는 난데없는 상황에 딸꾹, 딸꾹, 딸꾹질을 했다.

  명랑한 수습기자의 끝내지 못한 인사 때문에 슬쩍 시선을 옮긴 사람들과는 다르게 리안과 캡은 여전히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중이었다. 그리고 2차전을 시작했다. 캡이 입을 열었다.

  “다 때려치고, 결론만 말하면 이건 킬이야. 무조건, 킬이라고. 당장 자리로 돌아가서 서울기업이 한 착한 일, 기부, 선행! 이런 거나 쓰라고.”

  “캡은 그 노동자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사회에서 외면 받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그 약자들이 안쓰럽지도 않냐고요. 그런 그들의 실상을 밝히는 게 사회부 기자의 몫이라고요!”

  “잘난 하리안 기자님. 나도 사회부 기자고, 네 상사고, 네 캡이야! 알아들어? 서울기업 칭찬하기가 죽기보다 싫으면 닥치고 앉아서 인터넷 기사나 베껴 쓰던가, 실시간 검색어나 검색해. 그것도 싫으면 사직서를 쓰던지!”

  캡의 입에서 ‘사직서를 쓰던지!’ 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기자, 그만하세요. 캡도 진정하시고요.”

  “선배! 하지만…!”

  “하기자. 그만. 무례하게 말한 거 사과드려. 캡, 하기자가 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런 건데, 여기서 하기자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요. 사직서 쓰라는 말은 너무 하셨어요.”

  “하……”

  리안이 선배라 일컫고, 캡이 분노를 삭히며 한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한 사람. 서하일보 사회부에서 모든 이의 선망이 되는, 진울이 부드럽지만 근엄한 얼굴로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서진울, 신사의 전형이랄까. 무한 신뢰감이 가는 묵직한 언어와 목소리, 또한 몸에 배어있는 진한 매너들. 언제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업무능력에 후배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진울에게 묻고, 캡은 진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뿐만 아니라 서글서글한 외모에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인상까지. 묵직하고 근엄한 외모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또 그런 소년 같은 스윗함이 없다. 커다란 눈, 오랜 운동으로 빛이 나는 탄력 있는 피부에 건장한 몸매까지.

  하지만 그런 완벽한 진울에게도 단 하나의 씻을 수 없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하리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아주 오랫동안 하리안을 짝사랑 해온 유일한 사람’ 이라는 단점이지. 하, 저렇게 완벽한 놈이 무슨 변태적 취향이 있어서 하리안을 좋아해, 그것도 몇 년 씩이나.”

  “네, 네? 지금 저한테 마, 말씀하신…!”

  선배기자는 혼자 중얼거리다 여전히 딸꾹질을 하고 있는 수습기자가 움찔거리자 그제야 그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듯 했다. 수습기자는 자신의 밝고 경쾌했던 인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게 된 것 같아서 온 몸을 떨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 리안과 캡의 피 터지는 전쟁까지 목격한 터라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리기 직전이었다. 그런 수습기자가 안 되어 보여 선배기자는 그의 어깨를 감쌌다.

  “괜찮아, 수습. 우리에겐 늘 있는 일상이야.”

  “네? 매, 매일요?”

  “물론 네가 저런 일을 겪지는 않을 거야. 아주 정의로운 사회부 기자가 된다면 말이야.”

  “정의로운 사회부 기자라면…?”

  “아까 캡이 말씀하셨잖아. 발로 뛰지 말고,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기사를 베껴 쓰거나 실시간 검색어를 검색하라고. 캡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건 취재야. 아-주 소름끼치도록 싫어하시지. 이곳이 바로 서하일보의 사회부다. 반갑다, 수습!”

  수습기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한 사회부 기자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얼이 빠졌다. 이 선배기자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싶었달까. 하지만 선배기자의 말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팩트였다.

  “이 새끼야, 어디가!”

  “사회부 기자가 취재가지, 어딜 가겠어요?”

  “닥치고 앉아 있으라는 말 안 들려!”

  캡과의 전쟁이 끝난 리안은 자리로 돌아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 수첩, 필기구, 사진기까지 깨알같이 챙긴 리안은 서둘러 사무실 문으로 뛰쳐나갔다. 바로 사회부 기자의 목숨,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달가워할 리 없는 캡이었다.

  리안은 캡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무시하고 이미 사무실 밖으로 나선 상태였다. 홀로 남은 캡은 금방이라도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듯이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머리를 감싸 안았다. 캡의 입에서는 저 새끼, 저 새끼, 욕짓거리가 멈추지를 않았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습기자는 앞으로의 미래가 까마득해졌다. 아, 어쩌지. 이번 생은 망했나봐…, 라고 읊조렸다.

 

 

 *

 

 

  솔은 최고의 신문사 대한일보 기지 앞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뉴스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굳이 뉴스를 시청하기 위해 대한일보 앞에 서 있던 것은 아니었고, 작정을 하고 보도되는 뉴스의 시간을 기다렸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던 길에 대한일보 기지가 있었고, 우연히 모니터에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솔은 꽤나 진지하게 집중했다. 그 진지한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두훈기업은 결국 부도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주식 추락과 함께 드러난 뇌물수수 및 비자금 비리가 터진 사건이 타격이 컸습니다. 두훈기업의 부도, 김현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모니터 속 앵커의 말을 시작으로 화면이 넘어갔고,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두훈기업은 최근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코스닥지수가 물결을 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주식 추락과 함께 회장의 뇌물수수 및 비자금 비리가 터졌고 주식은 더욱 곤두박질 쳤다.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었던 두훈기업이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 뉴스의 주요쟁점이었다.

  솔은 뉴스의 내용에 집중하며 여전히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 걸 웃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때, 옆에서 조소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

  솔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난데없는 욕설이라니. 화면에 꽂혀 있던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근원지를 쳐다봤다. 거기에는 리안이 서있었다.

  흰색 민무늬 반팔 티셔츠에 슬림한 검정색 슬랙스 긴바지, 신발 역시 검정색 스니커즈에 커다란 사이즈의 아이보리 색 에코백을 왼쪽 어깨에,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다. 누가 봐도 편한 움직임만을 위한 패션 스타일이다. 갈색의 풍성하고 긴 웨이브 머리는 모두 올려 쫑긋이 묶은 포니테일. 거추장스러운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겠다는 듯 앞머리 없이 잔머리만 조금 삐져나와 있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맨 얼굴이지만 매끄러운 피부에서는 물광이 느껴진다. 눈썹 또한 짙고 풍성해서 숱만 치면 그 뿐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쌍꺼풀이 없는 동그랗게 쭉 찢어진 고양이 눈, 얼굴의 선들은 고운 듯 진하다.

  아무리 편한 옷을 입고 있어도 감춰지지 않는 뛰어난 몸매를, 솔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옆에 서서 진한 욕설을 내뱉은 목소리의 근원지가, 이 젊은 여자란 말인가. 솔은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내뱉은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리안의 표정을 보며 단순히, 호기심이 일었다.

  “저한테 한 말입니까?”

  “?”

  솔과 같이 모니터에 시선을 꽂은 채로 온 집중을 하던 리안이 고개를 돌려 솔을 쳐다봤다. 이건 또 뭔 개 같은 자식이야, 라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눈치챈 솔은 조금은 불쾌감을, 덧붙여 여전히 조금은 호기심을 느끼는 중이었다.

  “누구?”

  리안은 대답하기도 하찮다는 듯이 되물었다.

  “방금 개새끼, 라고 저한테 욕을 한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평소였다면 솔은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하거나, 신경 쓰지 않거나. 어쨌든 리안에게 말을 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안에게 말을 건 이유는 첫째, 솔과 리안이 시청하고 있던 뉴스는 솔과 관련된 일이었고 둘째, 그걸 리안이 알 리가 없으며 셋째, ‘개새끼’라는 욕이 나올 뉴스가 아니었고 마지막으로 넷째, 리안이 좀 예쁘장하게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솔에게 여자란, 그저 그냥 가벼운 그런 존재였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솔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주면 여자들은 좋아했고, 금세 솔에게 사랑에 빠졌다. 물론 솔은 그들에게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여자를 좋아하거나 밝히는 솔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귀찮게 하기에 반응해 준 것일 뿐.

  그러니까 솔은, 리안 역시 그런 관심의 하나로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리안의 대답이란,

  “미친. 저기요, 피해망상 있으세요?”

  그러니 당황스러울밖에.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짜증나는 것은 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안은 캡에게 깨지고 나서, 한 시민단체의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가던 길이었다. 우연히 대한일보 기지를 지나던 중, 슬쩍 훔쳐본 모니터에 두훈기업의 기사가 보도되고 있었다. 두훈기업에 대한 일이라면 리안 역시 취재를 했던 사건이었는데, 캡의 반대로 초반부터 접을 수밖에 없었다. 리안이 대한일보 기지 앞 모니터에 보도되고 있던 두훈기업의 뉴스를 지켜보던 것은 그 이유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리안이 딱 싫어하는, 재수 없는 스타일의 남자가 이상한 말을 걸어오다니.

  쌍꺼풀 없이 가로로 찢어진 듯 하지만 커다란 눈매와 빛이 나듯 촉촉한 눈동자. 높은 콧대와 턱선 및 목젖이 도드라져 남자답지만 선이 고운 얼굴은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깨끗하게 정돈 된 눈썹에, 색이라도 입힌 듯 유난히 붉은 입술.

  아닌 듯 보이지만 한 눈에 보아도 값이 꽤 나가는 명품 브랜드의 위아래로 딱 떨어지는 수트 차림에, 슬림하지만 탄탄한 몸매가 감춰지지 않는다. 왼손에는 어디선가 억 소리가 난다고 들어본 적 있는 고가의 깔끔한 스타일의 손목시계가 보일 듯 말 듯 차있고, 검정색의 앞머리가 긴, 전체적으로 매끈한 스타일의 머리 모양이다.

  조금 더 간추려 말하자면 솔은, 어떤 여자든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거기다 외모까지 준수한 이미지였다.

  ‘저런 고급스러운 수트와 고가의 손목시계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약자들을 착취해야 얻을 수 있는 거야? 딱 봐도 힘없는 사람들 피 쪽쪽 빨아먹게 생겼잖아. 저 반반한 얼굴로 마음 약한 여자들은 얼마나 괴롭혔을 것이며. 정말이지 재수 없어.’

  하지만 문제는 리안은 이런 이미지의 남자들에게 아주 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약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정의로운 사회부 기자 리안에게 강자, 사회적으로 ‘갑’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에게 가지는 편견이랄까.

  “지금까지 당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녹취했다면, 당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가능했을 것 같은데, 아쉽군요.”

  솔은 예상치 못한 리안의 적대적인 반응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도되고 있던 뉴스를 보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던 솔이었기 때문에 그 감정의 깊이는 더했다.

  “지금 누가 누굴 고소한다는 거예요?”

  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약간의 감정 싸움을 일으키기에 원인이 충분했다.

  “저한테 욕을 하시고, 피해망상이라며 조롱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저 뉴스를 보고 혼잣말을 한 거고요,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쪽이고요.”

  “저 뉴스를 보며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개새끼라는 욕이 나올 수 있는 겁니까?”

  이쯤 되니, 솔은 진심으로 순수하게 궁금해져서 물었다.

  “저거, 딱 봐도 기업 사냥꾼들 짓이잖아요. 멀쩡한 회사, 부도내고 몰락시키는 게 개새끼들 짓이지, 그럼 뭐예요?”

  솔은 쏘아대는 리안의 말에 잠시 놀랐지만 표정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지금 저 간단한 뉴스를 보며 기업 사냥꾼을 떠올렸다는 말인가. 일반인이라면 쉽지 않았을 텐데?

  “저 뉴스에서 언제, 기업 사냥꾼 이야기가 나왔죠?”

  “딱 보면 알지, 딱 보면. 몰라요?”

  물론 솔은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멀쩡한 기업이 경영이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서 부도가 날 리는 없다. 더군다나 두훈기업은 내수도 제법 탄탄했다. 그런 기업이 갑자기 주식이 요동치는 것에는 분명 어떤 개입이 있었을 것이고, 인수합병이니, 주식이니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개입이 기업 사냥꾼의 짓, 아니 일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솔은.

  더군다나 두훈기업이라면 솔이 직접 사냥한 기업이 아니었는가. 그러니 당연히 알 수밖에.

  그런데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반인으로 보이는 리안이 그 사실은 안다는 것에 솔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솔은 짙은 눈동자로 리안을 깊이 있게 관찰했다.

  도대체, 뭐하는 여자지.

  리안은 그런 솔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리안은 이 새끼가 뭐하는 수작이지, 싶은 생각이었고 이런 갑질하는 놈에게는 절대로지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그때,

  펑!

  리안과 솔의 뒤로 이 도시를 날려버릴 것 같은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공기는 진동했고, 폭발음 뒤에 순간의 적막이 흘렀고, 곧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안과 솔 역시 폭발음이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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