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리턴즈 프롤로그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자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득했다. 셀리아 공녀는 바람부는 창가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여인은 창문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잎을 지켜보았다. 아름답다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얼굴, 셀리아는 경국지색은 아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미인이었다. 아직도 사교계에서는 셀리아의 첫 등장이 회자되고는 했다. 정열의 불타는 드레스를 입고 온 셀리아는 그날의 주인공다웠다.
그러나 그 때의 생기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지금 고요에 잠긴 표정이었다.
“셀리아.”
그녀의 뒤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노먼제국의 마르도프 황자. 빛나는 금발을 한 그는 셀리아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셀리아는 인기척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자님."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셀리아는 마르도프 황자와 마주섰다. 한뼘은 더 큰 그를 셀리아는 올려다 봐야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그를 셀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담고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아무 생각도 안합니다.“
마르도프 황자는 그러나 셀리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속내를 쉽게 내비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마르도프는 그런 셀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녀를 이해하고 있었다. 셀리아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르도프는 그런 셀리아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셀리아. 정말, 해야겠습니까?”
“무얼 말이죠?”
마르도프의 평소와는 다른 표정을 보고 셀리아는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는 셀리아를 묵묵히 도와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일지 대충 짐작을 한 셀리아는 고개를 쌩하니 돌렸다.
“저를 말리려고 하지 마세요. 제 결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르도프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 감정이 연민인지, 안타까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르도프는 지금 셀리아를 말리지 않는다면 후회할거란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오직 복수만을 위해서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어요. 저에겐 이제 선택권은 없습니다.”
셀리아의 눈에 붉은 안광이 비쳤다. 그녀가 계속 복용하고 있는 변신약의 부작용이었다. 셀리아는 자신의 수명을 깎아가며 매일밤 약을 마셨다. 그녀의 말처럼 이젠 선택권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달리는 말에 올라탔다.
“그렇지 않아.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어.”
“아니요. 이제 그들을 파멸시키지 않고는 전 살 수 없어요.”
마르도프는 셀리아의 섬뜩한 안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셀리아의 노력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마르도프였지만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을 알기에 쉬이 그래라 말하기 힘들었다.
"더이상 착했던 데이아나 달린은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은 셀리아 베르네르크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다. 단호한 셀리아의 태도에 마르도프는 말문이 막혔다. 셀리아, 아니 데이아나는 사선을 넘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복수를 할 것이다. 그녀를 죽인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