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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
작성일 : 17-07-06 22:48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8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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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지겹다. 단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생이 된지 벌써 좀 지났다. 그러니까 10월이고, 1학기는 이미 지나가서 대충 적응할 법도 한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해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것 뿐이다.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다. 다들 기본적 예의는 아는 사람들이고 적당한 가식과 적당한 끝맺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어쨌든 그것 뿐이라는 거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집이었다. 붉은색 핸드백에 놈들이 곰팡이처럼 작게 달라붙어있는 것을 애써 모른척 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핸드백을 털자 동그랗고 새까맣게 생긴 것들에서 어린아이처럼 가녀린 손이 뻗어져나와 몸을 길게 늘이면서 매달렸다.

 

 어떤 것들은 목에 둘러진 갈색 스카프 끝에서 얼쩡거렸다. 단아는 문득 저것들이 내 목을 조르진 않을까, 생각을 하다 손으로 스카프의 먼지를 터는 체하며 놈들을 손등으로 매섭게 쳐내렸다.

 

 [난 네가 뭔 줄 알아]

 

 단아에겐 그들의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웅성웅성대며 모여있던 작은 괴물 중 하나가 불쑥 큰 소리를 냈다. 벌처럼 윙윙 작은 소리만 내던 것들이 순간 고요히 정적을 만들어냈다가 이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뭔데?][뭔데?][이게 뭔데?][뭐야?][알려줘]

 

 묵묵히 제게만 보이던 것들의 소리를 무시하던 단아는 횡단보도의 불빛이 녹색으로 변하자 입술을 깨물고 높은 굽 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당장이라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싶었다. 제발 좀 닥치고 꺼져버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입을 다물어 참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사람들이 가득한 한복판에서 비정상인 티를 굳이 내고 싶지 않았다.

 

 빠앙! 커다란 클락션소리가 들려와 단아는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에서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초록 불인데. 힐긋 곁눈질하자 신호등에 매달려있던 조그맣고 작은 검은 생명체가 둥그런 몸을 부풀려 저를 향해 [히히]하고 웃었다.

 

 [저 앤, '그것들의 여왕'이야!]

 

 신호는 처음부터 녹색으로 바뀐 적이 없었다. 환각을 형성하는 개체였던 모양이였다. 상황을 확인한 단아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단번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가까스로 사고의 발생을 피한 운전수가 소리 높여 욕설을 뱉어냈고 그녀는 머리 숙여 거듭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아무렇지가 않았다. 아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면, 조금만 늦었다면 연약한 몸뚱이는 육중한 트럭에 깔려 끌려갔을 지도 몰랐다. 상황이 위험했다는 게 이해는 되지만 몸은 두려움에 굳어버리진 않았다.

 

 죽을 지도 몰랐던 상황은 금세 잊혀졌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급괴물인 '렘'의 환각에 당했다는 사실에 깊은 곳에서부터 자존심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환각에 당하다니. 단아는 왼손 검지 끝으로 엄지 손톱 밑의 여린 살을 긁어 내리면서 눈을 치켜떴다. 스멀스멀 다시 모여드려는 것들을 정확하게 노려본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난 은퇴했어, 병신들아."

 

 우편함에 끼워진 서너 개의 우편물을 한 번에 잡아 빼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조용하다. 작은 공간에 갇혀 거울너머 펼쳐진 무한의 세상 속, 수많은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혀서 당장이라도 질식해버릴 것 같았다. 사방은 유리로 가로막혀 있지만 거울의 세계는 끝없이 똑같은 모습을 삼킨 모습으로 넓다. 단아는 저 무수한 자신의 투영체 중에서 하나씩 다른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 보곤 인상을 찡그렸다.

 

 그 속에서 언제쯤 한 번 보았던, 흐릿하게 잔상만 남은 새하얀 손이 손짓했다.

 

 [이리 와]

 

 또다시 괴물들이 만들어내는 환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개방된 외부보다 증세가 더 심각했다. 새빨간 피가 흘러 눈이 시린 색채 대비감을 만들어냈다. 하늘거리며 다가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머리칼을 쓰다듬는 여러 개의 손. 마치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태도에 기분이 더러웠다. 눈을 똑바로 뜨며 고개를 흔들었다.

 

 1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알림소리가 난 것도 그와 동시였고 비현실적인 작은 공간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현관 문고리를 잡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지도 몰랐다. 그런 게 보인다는 자체가 약해졌다는 증거야.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보이는 건 문제가 아니다. 저런 게 겁도 없이 찝적대는 게 문제였다. 결국 '그들'과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왕의 증표를 낡은 천에 둘러서 벽장에 처박은지도 꽤 되었다는 이야기다. 단아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핸드백을 집어던지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편물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식탁에 올려 진 액자 속엔 불과 몇 년 전의 제 모습이 들어있었다. 자신을 제외하고도 넷. 다섯 명의 고등학생이 친근하게 엉겨 붙어있는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환하게 웃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남은 건 딱 하나.

 

 사진 속 모습을 보자니 속이 울렁거려 액자를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여왕의 징표와 함께 벽장에 쳐 넣어버리려다가 식탁에 자리 잡게 된 액자는 항상 덮였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기분을 돌릴 겸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우편물을 하나하나 뜯었다. 두 개는 제 오빠의 것이고 하나는 자신의 것이었다.

 

 ㅡ계속되는 사태에 대해 검찰의 입장은….

 

 '주 단아 귀하'

 

 자신 앞으로 온 마지막 편지봉투를 뜯자 고급스러운 느낌의 짙은 녹색 편지봉투가 하나 더 들어있었다. 걸핏 봐서는 무슨 초대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단아는 식탁 앞 의자에 앉으며 그것을 돌려보았다.

 

 ㅡ그렇기 때문에 환성기업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될 예정이며….

 

 방금 뜯은 하얀 봉투를 다시 들었다. 수신인은 분명히 적혀있는데, 발신인은 없다. 그렇다면 우체국을 거친 게 아니라 직접 우편함에 꽂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의아함에 눈썹을 휘며 봉투에 든 편지를 꺼냈다. 편지도 역시 같은 녹색이었다.

 

 -MS.CLUB-

 

 곱게 접힌 편지지에 금빛으로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일정하게 떠들어대던 텔레비전소리가 자신과 완전히 격리된 것처럼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웃음소리는 아주 익숙했고 좁은 공간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손을 흔드는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건 지독한 환각을 가장한 현실이었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며 텔레비전소리보다 커져간다. 더 이상은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형체도 보이지 않는 불청객들에게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계속 이런 식으로 깝치면 듀비에의 지하에 처박아버리겠어!"

 

 지긋한 환각과 함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어느 샌가 그녀는 자신이 손톱을 신경질적으로 물어뜯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변한 건 많지만 그때의 버릇은 여전하다. 이렇게 꾸물댈 필요는 없었다. 조금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폈다. 두 겹이나 포장한 것 치곤 내용은 간단했다.

 

 [우린 곧 만나게 될거야, 나의 여왕님]

 

 뻔뻔한 자식! 편지지를 쥔 단아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런 식으로 연락을 취해 올 줄은 몰랐다. 도대체가 어떤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순히 오랜만이니까, 보고 싶어서라는 것은 불충분한 이유였다.

 

 왜냐하면 그러기엔 너무 많은 선을 넘어버렸다.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들은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벽장 안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자신이 뿌리 내린 일은 어느 샌가 너무나 커져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제멋대로 여기저기 퍼져나가 지독하게 흉터를 남겼다. 아프다고 소리칠 수도 없이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인내해왔다.

 

 결국 결과는 이거다. 솔직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봐, 나는 좋은 대학도 들어갔고 번듯이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이 겨우 아물어 갈 때에 누군가로부터의 편지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에게 다시 새 상처를 내고야 말았다. 단아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응, 무슨 일이야."]

 "…."

 

 익숙한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입을 떼어 말을 하려는데 순간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혼란스러웠다. 아니, 지금 제 감정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주 단아, 무슨 일이야."]

 

 대답이 없자 금세 상대방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미스테리클럽에서 편지를 보내왔어"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상대방이 운전 중이었는지 수화기너머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거친 욕설이 뒤를 이었다. 그녀의 욕설이 멈출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자 단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좀 만나자, 너 어디야?"

 ["너네 집 근처야. 선생님 좀 뵙고 돌아가는 길이었거든."]

 "이리로 올래?, 얼마 안 걸리면 내가 밖으로 나갈게. 아직 저녁 안 먹었지?"

 ["그래, 지금 바로 내려와."]

 "알았어."

 

 통화를 끊고 단아는 불안정하게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바닥에 내팽겨 쳤던 백을 다시 어깨에 메곤 식탁위에 엎어진 액자를 다시 똑바로 세웠다.

 

 두 명의 여학생과 세 명의 남학생이 나름대로 잘 찍혀보겠다고 엉켜있는 모습이 우습다. 몇 년 전의 자신은 중간을 차지하겠다며 안간힘을 쓰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래, 이랬던 적도 있었지. 단아의 시선이 한참이나 그 액자에 머물렀다.

 

 '걱정 마, 넌 나에겐 여전히 '너'일 뿐이야'

 

 잊고자 했던 그 말이 떠올라 한층 더 침울해졌다. '과연 그럴까. 나는 여전히 '나'인 걸까.' 지긋하게 들여다본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이 미웠다. 정말 치를 떠는 배신감에 지겹도록 울어도 봤고 공허함에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도리어 찾아오는 건 미칠듯한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젠 그들이 싫은 건 아닐지도 몰랐다. 다만 다시 그때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 것뿐이었다.

 

 MYSTERY CLUB

 

 액자 하단에 새겨진 그 글자를 바라보자니 가슴이 먹먹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텔레비전을 끄고는 평소에 아끼던 구두를 마구잡이로 눌러 신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은랑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작은 괴물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단아는 지금 건드리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얼쩡거리는 괴물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자신은 사냥꾼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교복을 입은 채 괴물을 해치워나가는 일상이 평범한 것이었고 그 끝이 해피엔딩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여느 소설의 결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선언한 것도 그녀 자신이었다. 모여들고 모여드려는 검은 것들이 언젠가는 자신을 갉아먹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평범해."

 

 그녀는 주문처럼 되뇌이듯 스스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거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 편을 아직까진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 평범하신 분이 렘을 모피처럼 휘감고 있는 게 인상적이 구나."

 

 담담하게 전해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단아의 바로 앞에 멈춰선 스파크의 운전석에 있었다. 그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단아의 주변을 메웠던 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기세로 맹렬하게 파괴되는 몸체에 괴물들이 울부짖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넌 판타지세계였으면 성녀로 추앙받았겠다, 얘."

 

 단아는 제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희미하게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냉랭했다.

 

 "웃음이 나와? 내가 그러고 다니지 말랬지."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은랑의 운전은 거칠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손톱으로 톡톡 건드려 가며 주기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가 애써 갈무리하다가를 반복했다.

 

 "누구인 것 같아?"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은랑이 입을 열었다. 흘끔 옆을 보니 조수석에 앉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손톱을 물어뜯다 못해 살점까지 물어뜯을 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만 좀 해! 그녀는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며 단아를 진정시켰다. 단아는 내적 공황상태에 빠지면 손톱을 못살게 구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었다. 좀 괜찮아졌나 싶더니, 근래에 들어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단아는 답답한 듯 끄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목에 맨 스카프를 풀고 숨을 몰아 내쉬었다. 신호를 받아 스파크가 멈춰 섰다. 은랑은 단아가 받은 녹색 편지를 살펴보고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보통이라면 이런 건 단순하게 치부하고 버릴 테지만 'MS.CLUB' 이라는 문구를 사용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다섯 명 뿐이라는 것이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천은랑과 주단아, 그리고 그들.

 

 "모르겠어. 하지만 마제윤은 아닐 거 같아"

 

 단아의 대답엔 은랑이 잠시 생각하는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부정하진 않아." 그녀는 거칠게 핸들을 꺾으며 절대로 희미해지지 않는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광대나 문지기 중에 하난데…. 솔직히 광대는 원래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아무렇게나 해댔으니까. 문지기야 좀 그럴수도 있는 녀석이잖아….뭐.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머리 아파 죽겠어..여왕이고 나발이고 때려 치운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여왕을 찾아대는 거야"

 

 단아의 신경질적인 말에 은랑이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가 전혀 상관없는 말을 내뱉었다.

 

 "파스타나 먹을래? 아니면 고기?"

 "…고기는 냄새 배여"

 

 은랑의 물음에 단아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은 이내 동시에 피식 웃고 말았다. 단아가 은랑의 손에 들린 편지를 낚아채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저녁 메뉴나 정하고 있다니. 우리도 참 대단하다."

 "어쩌겠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저번에 갔던 데 가자. 며칠 전에 점심 먹은 데 말이야."

 "어."

 

 어깨를 한 번 으쓱한 은랑은 신호가 바뀌는 것을 보고는 페달을 밟았다. 좀 전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부드러운 운전이었다. 단아는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은랑의 목에 걸린 로켓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생일선물치곤 지나치게 큰 파장을 가져온 물건이었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시계가 뚜껑부분인 로켓목걸이의 내부에는 말도 안 되게도 용이 잠들어 있다. 진짜로, 용. 어쩐지 우울한 기분이 되어 입을 열었다.

 

 "이봐, 용의 무녀님. 이걸 보낸 사람이 누구던 간에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말대로 나는 '무녀'지, '여왕의 대리인'이 아니야"

 "그래…. 그렇지."

 

 은랑은 풀이 죽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친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말고 다시 받아들이는 게 어때? 그 때의 일 때문에 그러는 건 알지만 전체적으로 너한테만 손해야."

 "난 더 이상 여왕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싶은 생각 없어"

 

 싸늘한 단아의 대답에 은랑은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네 알량한 자존심일 뿐이겠지. 그런 식으로 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나한데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지금 나한테 장난해?"

 "네가 계속 그러니까 싸구려 렘들이 엉켜들잖아. 여왕의 권능만 있으면 애초에 그럴 일이 없잖아! 지금 니 상태가 얼마나 병신 같은지 알기나 해?"

 "야! 천 은랑!..꺄악!!"

 

 끼익. 아스팔트와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

 "…. 아, 진짜."

 

 두 말 할것도 없이 은랑의 실수였다. 단아와 말싸움을 벌이느라 열을 내는 바람에 운전에 집중하지 못했고 정말 운이 나쁘게도 코너를 돌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접촉사고가 난 것이었다.

 

 "아..진짜 미치겠네"

 "재규어…. 망했다."

 

 차종을 구분하는 기준이 크기와 색상뿐인 단아와는 다르게 은랑은 단숨에 차종을 알아차리고는 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흐릿한 연녹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칼이 손 안에서 마구 엉켜들어왔다.

 

 "재규어? 비싼 차야?"

 "지랄맞게 비싸"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단아의 물음에 간결하게 대답한 은랑은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끄으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단아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여왕의 권능만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미리 알았겠지"

 "또 그 이야기야?!"

 

 씩씩 거리던 단아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후우, 하고 숨을 몰아 내쉬곤 차분한 눈으로 사고를 낸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계속된 말싸움은 무의미하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러는 중에 새까만 재규어에서 장신의 사내가 내렸다. 창밖을 우울하게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짜증나게 잘생긴 얼굴, 좀 익숙한 거 같지 않아?"

 "너랑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중 인거 같은데…. 저 사람이 억소리 나는 부자에 이름이 안수혁이라면 정확하겠지."

 "…내 생각엔 맞는 거 같다"

 

 지척에 다가와 운전석 쪽의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키 큰 사내를 보며 단아가 목에 스카프를 둘둘 매며 말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은랑은 단아의 채근에 못 이겨 창문을 내렸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창문을 내리고 사고를 낸 장본인이 떨떠름하게 한 말에 키 큰 사내는 눈썹을 휘며 인상을 찌푸렸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에게 낯익은 얼굴인 탓이었다.

 

 "그것 참 우연이네요 이렇게 다 만나고…."

 

 조수석에 앉은 까만 머리칼을 가진, 마찬가지로 낯익은 얼굴의 주인공이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팔랑이자 그는 낮은 한숨을 뱉어내며 이마를 짚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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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5) 2017 / 7 / 26 284 0 4382   
14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4) 2017 / 7 / 26 272 0 4301   
13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3) 2017 / 7 / 26 249 0 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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