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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향기가 남은 시간
작가 : 선양
작품등록일 : 2017.7.3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시점으로 다른 사람의 과거로 돌아가 사랑과 삶을 알아가는 이야기.

 
프롤로그 및 제 1화
작성일 : 17-07-03 15:27     조회 : 361     추천 : 0     분량 : 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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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가 남은 시간

 

 글쓴이: 박 선양

 “있지”

 “응?”

 “만일에 내가 죽는다면, 넌 뭐하고 있을 거야?”

 “뭘 하고 있냐니? 당연히....

 

 

  변함없이 죽지 말라고 소리치고 널 살릴 거야.”

 

 .

 

 “죽지 마!!!!”

 

 <<1화>>

 

  번뜩!

  눈이 떠졌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은 덜덜 떨고 있다. 15년 간 반복이 되어도 이건 참, 적응하기가 어렵다. 거기다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 번 더 그 장면을 보아야하니 40살 가까이 먹은 이 나이에도 두렵고 무섭다.

 

 “감정이 앞서 기억이 왔다 갔다 한 모양입니다. 향기 씨가 죽던 그 날까지 들어가지 못했네요. 다시 한 번 최면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15년 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20대 여자 살인사건이 오늘로 공소시효가 만료됩니다. 경찰 측에서는 유일한 목격자와 함께 범인의 흔적을 찾아보려 노력했으나...’

 

  평소 같았으면 손을 들고 ‘쉬고 싶다, 그만하자, 내일 하자’라고 했겠지만 방송에서 나온 말과 같이 내가 치료 받고 있는 이 사건은 오늘로 공소시효가 만료가 된다. 고로 오늘만큼은 몇 번이든 두려우면서도, 그리운 향기의 얼굴을 보러 가야한다.

 

 “최면, 시작합니다.”

 

  의사의 말과 동시에 익숙하듯 나는 눈을 감았다.

 

  바스락-.

  쏴아아-.

  비가 내리던 10년 전 풀 사이를 나는 있는 힘껏 뛰어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

 

  향기의 목소리가 아닌 한 남자의 목소리. 누군지 기억도 하나 나지 않는 남자. 이 남자만이라도 기억을 했다면 향기를 죽인 저 범인을 알아채고 나는 향기의 무덤에 가서 못 해준 말을 당당하게 하고 왔을지도 모른다.

 

  검은 우산에 조금은 늙은 손등. GA라고 적혀있던 우산. 그 앞에 쓰러져서 흐느끼고 있던 향기. 그 끔찍한 광경을 본 나는 정신이 희미해지고 울고 있던 향기와 눈을 마주친다.

 

  “죽지 마!!”

 

  내 큰 소리가 들리면 우산을 쓰고 있던 남자가 내 쪽으로 곧 고개를 돌리지만 그 얼굴은 보이지가 않고 누군가가 신고한 경찰 소리에 황급히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떠나버린다. 그리고 나도 향기의 묘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 또한 평범했을까’

 

  나지막한 향기의 말이었다. 살고 싶었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를 그 말. 쓰러지는 그 와중에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흐느끼고 아픔을 참으면서도 내게 건넨 그 말은 아직도 나를 둥둥 떠다니는 것 마냥 멍하게 만드는 말이다.

 

 .

 

  최면의 끝은 늘 이렇게 똑같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향기는 미묘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웃음과 향기의 말을 끝으로 그 날의 기억이 희미했다.

 

  “....”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향기 씨도 고마워 할 겁니다.”

 

  의사의 말에 그동안 나처럼 15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고생한 그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이 의사와 만났을 때는 아무 것도 잘 몰라 흐릿한 기억만 가지고 있던 나였다. 그래도 어른들의 다독임과 향기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나는 두 손을 꽉 쥐고 기억해내리라 마음먹었다.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마음을 함께하자고,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도 않는 일에 모두들 고개를 내저었지만, 나는 이 사람과 나의 기억력을 믿고 이 치료를 계속해서 받아왔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 방법만 한 것이 아닌 다른 방법 모두를 동원해서 해왔던 거니까. 다른 방법에서는 내가 본 게 맞느냐 라는 의문만을 제기했지만 이 방법은 내가 본 것은 맞다고 이해해줬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집었지만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켜내지 못한 마음에, 미안한 마음에 발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에도 늘 보았던 향기의 얼굴과 그 미소를 이제 정말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 결국은 아무것도 못했다는 공허함. 이 두 가지의 감정이 미묘하게 날 울리고 있었다.

 

  병원을 나서면서 몇 명의 간호사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문 앞까지 나와 있던 의사선생님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고마웠다 라는 말을 남긴 채 나는 병원을 나왔다.

 

 부재중 전화 7통

 

  전화기를 보니 김재철 형사에게 7통이나 되는 전화가 왔었다. 아무래도 경찰서에 오라는 신호인 듯 했다. 문자를 보니 3시까지 와달라는 문자다. 향기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만큼 경찰들도 15년 간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수사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물증과 증거들이 부족하니 많은 한계를 부딪쳤고 그들도 믿는 것은 내 기억력 하나였으나 그마저도 실패했으니 허탈감은 나와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곧장 가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툭툭-.

 

  차에 탐과 동시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비가 내리던 날만 되면 향기의 그날이 떠올라 발작을 일으키곤 했었는데 지금 역시 몸이 떨리긴 하지만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떨림이 익숙해진 것이다. 지금처럼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를 트는 것처럼 말이다.

 

  ‘15년 전 사건이 아직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를 않아 가해자를 잡지 못했는데요.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약 9시간 정도 남은 건데 범인의 자백이나 경찰의 수사가 계속 진행되어 체포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매우 희박한 건 사실입니다.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1분 안에 잡힌다던가, 1시간 전에 잡힌다던가, 뭐 이런 것들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다만 유일한 목격자인 태수 씨가 기억을 해낸다면 가능한....’

 

 지직-

 

  라디오의 잡소리와 함께, 다리 앞 신호가 걸렸다. 그리고 나 역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말에 중요한 곳이 걸렸다.

 

 기억.

 

  해내지 못했다. 저 사람들의 기대감도 기대감이지만 나 역시도 15년 안에는 당연히 기억해내겠지 싶었다. 그래서 이 허탈감은 더욱 큰 것일지도 모른다.

 

  빵빵!

 

  또한 더 이상 향기를 보지 못하는 것도. 내 기억 속에서는 늙지 않고 늘 아름다웠던, 어디론가 튈지 모를 거 같았던 그 사람을 못 보는 것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막상 최면에 걸리면 힘들고 빨리 끝내고 싶지만 잠깐이라도 좋았던 향기와 나를 보면 또다시 기다려지곤 했던 것을,

 

  빵빵!

 

  “너는 알고 있을까.”

 

  멍청하게 신고가 바뀐 걸 모르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감정을 부여잡고 천천히 속력을 내었다. 눈물이 가득 찬 모양이다. 밖이 뿌옇게 보이는 것을 보면. 마치 향기를 만나러 갔던 첫 날 아침, 그 병원에 올라가면서 쌓였던 안개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병원 창문에 아슬아슬 하게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향기가 문득, 다른 때와 다르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앞에 그 안개 속에서 다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향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나와 처음 만났던 그때와 같은 병원 옷차림으로 휘파람을 불며 똑같은 그 말을 하듯 입을 벙긋거렸다.

 

  ‘어디 가’

 

  내 앞에 있는 것이 헛것, 그것이라면, 그것이 아니라면…. 동공이 커진 나는 운전 중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핸들에 손을 떼버렸다. 그리고 향기의 몸짓에, 얼굴에, 표정에 홀린 듯 그녀에게로 다가가려 몸부림을 치려했다. 그러나 이상하리도 핸들을 떼고 난 다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갸우뚱하는 향기에, 그 모습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빵빵!!

 

  내게 다가오는 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아이를 만질 수 있다면, 그 날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을 할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으니까.

 

  “향기야, 가지마..”

 

  쾅!!

 

  문득 네가 내 앞에 있었음에도 옛 너와 나의 대화가 내 귀에 들려왔다. 주변의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 커다랗게.

 

  ‘태수야, 지금 넌, 내가 어때 보여?’

  ‘....’

  ‘미친 거 같니?’

  ‘넌 정말, 변하지를 않는구나.’

  ‘....변해?’

  ‘너한텐 그동안 내가 뭐였던 거야?’

 

 

  ‘사람. 너는 내게 있어 유일한 사람이었어.’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내렸다. 어찌나 세차게 내리던지 앞에 내 눈물인지, 안개인지 모를 만큼 뿌옇게 보일 정도로. 또한 마찬가지로 그날도 넌 내 옆에 있었으며, 나 역시 네 옆에 있었다. 비록 네게는 결국 손이 닿지는 않았지만, 그날처럼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흘리고 있던 내 피 사이에서도 피보단 너를 보았음을. 헛것임을 알면서도 현실이라고 허언증 마냥 되새겼음을. 그만큼 아직까지도 널 사랑함을 나는 그날도 그를 느끼며 다시는 뜨지 못할 눈을 감아버렸다.

 

  눈은 감겨있지만 숨 쉬는 것은 느껴진다. 맥박소리다. 그 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딘지도 모르고 또 그걸 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의문도 아무런 놀라움도 없다. 고요하다. 그저 언제까지고 이렇게 편하게만 있고 싶다. 40년 그 세월동안 가장 편하게 있는 순간인 것 같다.

 

  ‘아니야. 편할 것 같아서 죽으려는 게 아니야.’

  ‘그럼?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던 거 아니야?’

  ‘응,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는....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밝지 않을까 싶어서.’

  ‘죽으면 천당 간다 뭐 그런 걸 믿는 거야? 죽으면 그저 어둠뿐일 텐데.’

  ‘어둠보다도 더 어두운 게 나니까. 어둠만큼 밝은 게 어디 있겠어.’

 

  ‘그럼, 그럼 말이야. 네 세상이 어둠보다 더 밝은 세상이 된다면 넌 죽지 않을 거야?’

  ‘그건,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거야. 어둠보다 밝은 세상은 살아 있으라는 신호니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이 상황에서도 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어둠보다 더 밝은 세상. 어둠이 아닌 다른 색의 세상. 희미하지만 빛이 있는 세상. 그게 향기가 말한 살아있으라는 신호라면 아무런 의문도, 놀라움도 없이 고요했던 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빛나고 있는 지금은, 나는 죽지 않았다 라는 뜻인 것일까. 이상한 잡음도 들려온다. 코끝에서 숨 쉬는 것도 느껴지며, 희미했던 빛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알람소리마냥 들리는 소리다. 옛 시계인 거 같다. 우리 집엔 그런 시계가 없는데 말이다. 있어도 향기와 있었던 시대였을 거다. 잠깐, 시계의 소리가 들린다는 건, 정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정말이다. 난 살아있었다. 그 날로 죽은 줄 알았던 내가 향기를 마지막으로 죽을 줄 알았던 내가, 살아있다. 그것도 몸에 하나도 붕대가 없는 상태로. 보아하니 아직 만지지 않은 머리 쪽만 다친 듯 했다.

 

  “하-.”

 

  실소가 터졌다. 다행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까까지는 정말 죽은 것 인줄 알고 그를 받아드리려 했는데 그마저도 나는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아마 그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어둠 속에서도 향기와의 대화를 회상시킨 거보면 향기가 나를 살려준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무것도 해주질 못했는데.

 

  몸은 일으킬 수 있을까. 얼마나 누워있었던 걸까. 천천히 한번 몸을 일으켜봤다. 생각보다 몸은 무겁지 않았다. 침대에 일어나 발을 바닥에 내려 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꺼림직한 마음에 마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여기, 어디지?”

 

  병원이 아니었다. 옛 아파트처럼 생긴 30평정도 되어 보이는, 어찌됐건 내 집은 아니었다. 또 머리를 만져보니 붕대 하나 없고 손바닥도 멀쩡했다. 손바닥. 잠깐, 이 손바닥 뭐지?

 낯설다.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처음 보는 손금에 없던 점에 40살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젊은 살결.

 

 띠리리리- 띠리리리-

 

  다시 한 번 더 울리는 전화 벨소리. 전화기는 아주 옛날에 쓰던 핸드폰이었다. 마치 15년 전 쓰던 폰이다. 15년 전. 옛 아파트, 옛 전화기...

  한동안 바람이 불어오는 베란다에 헤엄치는 것처럼 움직이는 커튼과 그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발씩 베란다로 몸을 움직였다. 내가 보는 그 바깥은 확실하게 2017년의 서울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맥박소리가 또 내 온몸을 휘감았다. 향기의 그날을 본 것과 같이 몸이 떨려왔다. 나는 이 상황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확인해보아야 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그제야 나는 바람에 날리던 달력에 눈을 돌렸다.

 

  달력에 적혀있는 2001년. 2001년 9월. 정확히 향기가 죽은 지 7개월 전이자, 2001년 9월 17일. 내가 향기를 처음 만난 날. 2001년 9월 17일 아침 8시 12분. 내가 향기와 마주치기 50분 전인 날이었다.

 

 쨍그랑

 놀란 마음에 옆에 있던 작은 화분을 떨어트렸다.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말도 안 돼...”

 

  누가 꾸민 것이다. 내가 기억이 나지 않자 과거의 세트장에 나를 보낸 거라 생각했다. 그래 맞다. 더 이상 안 되니 이렇게라도 기억해내라고 나를 납치하고 만든 경찰의 계획일 것이다. 내 이 젊은 손등도... 손등?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확인했다.

 

  “너, 누구니?”

 

  내가 아니었다. 얼굴을 마구잡이로 뜯어보았다. 내 얼굴에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은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피부였다. 아니, 다른 사람의 피부지만 나였다. 다른 사람의 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2001년. 이 사람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생각을 해봐도 어이없음과 알 수 없음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화장실 바닥 물에 옷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바닥의 물이 있다는 건 이 사람은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혼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축함이 느껴진다는 건 나 역시도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내가 다른 사람의 몸에 정확하게 정착했음을 알려주는 걸 의미하는 것이겠지.

  대체 왜. 왜, 하루 자고 나면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잠시, 정말 하늘에 신이 있다면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오류가 생긴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디 가’

 

  향기의 부름일까.

 

  "어찌됐건 간에 미친 거지. 결국“

 

  둘 다 무엇이든 결국은 내가 미쳐있다는 증거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내 목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다시 한 번 자보는 것.

 

  첫 번째 의문이 정답이라면 어둠을 통해 나는 다시 죽거나, 원래 세계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선 먼저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고, 똑같은 자리에서 잠이 오길 기다렸다. 다만, 방해 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꺼버릴까 싶었다. 그래도 얼마 안 있음 제 풀에 지쳐 그만하겠지 싶어 놔두었으나 줄기차게 전화는 계속해서 와댔다. 결국 출혈된 눈으로 나는 그 핸드폰을 찾아다녔다. 아침부터 뭔 전화를 저렇게나 하는 건지. 출근시간이라 해도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는 것을. 30분 안에 잠들어 내 몸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충분한 것인데 말이다.

 

  신문 밑에 열심히 울려대는 핸드폰을 집어든 나는 바로 꺼버리기 위해 배터리를 분리시키려했다. 다만 ‘응급상황’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응급상황이라니. 혹 내 이기심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전화를 받게 된다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이기심과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의 포기. 미안하지만 나는 약간의 망설임을 통해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시켰다. 우선 돌아가는 것이 먼저이니. 잠깐, 돌아가는 것이 먼저라니. 여기는 향기가 살아있을지 모르는 2001년이다. 이것이 꿈이거나 누군가의 음모가 아니고 하늘의 오류나 향기의 부름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어둠으로 가지 않고 향기를 한번 보고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 번이라도 보고만 갈까.’

 

  침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머리는 미쳤느냐고 나무랐지만 마음은 이미 이 상황자체도 미친 것이 아니냐고 한번정도는 보고 올 수 있다고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래, 한번만 보고 다시 자고 나로 돌아간다고 해도 늦지 않지 않을까. 하루정도는, 이왕 이렇게 온 거 하루만큼은. 그 아이를 한번만 더 만날 수 있다면 목숨마저 바꿀 나 아니었는가.

 

  생각을 끝낸 나는 이미 누구의 옷인지도 모를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집의 문을 통해 나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갑자기 쓰러져버린다던가, 향기를 만나면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간다던가, 문 앞은 어둠뿐이라던가. 소설을 너무 많이 봐왔는지 풍부해진 상상력에 현재 손잡이만 계속해서 잡고 있다. 현재 시각 8시 35분. 한 번의 큰 숨을 내쉬고 나는 문을 열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연 결과, 우선 나는 멀쩡히 그 사람 몸이었다. 손등을 보아하니 말이다. 또 아파트 복도에 잘 서 있기만 했다. 어둠 따위는 없었고 쌀쌀한 공기만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신기한 한 가지. 문을 열자마자 뿌연 안개 속에 보이는 그 병원이 바로 앞까지는 아니더라도 15분정도의 거리로 보일만큼 가까운 위치였다. 산이라서 조금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들도 아까웠던 터인데…

 

  밖으로 나와도 아무 일이 없는 것을 보고 잠시 긴장이 풀어졌지만 몇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 다시 온 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니 말이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걸어가고 있음에도 자꾸 사람들이 나를 흘겨보는 거 같았다. 이 세계에 동 떨어진 것 같은 느낌. 나 말고 지나가는 사람 역시도 나를 이렇게 느끼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몸을 감싸 안았다. 정말 병원이 가까움에 감사했다. 아마 멀었더라면 이미 주저앉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얌전히 침대에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과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을 하다 보니 벌써 병원 앞까지 와 있었다. 현재 시각 8시 58분. 심장의 박동소리가 점점 커진다. 있을까, 없을까. 이 상황자체가 누군가의 조롱일까. 두 손을 강하게 주먹 쥐었다. 누군가의 조롱이어도 상관이 없다. 있어주기만 한다면.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웃어주기만 한다면……. 없지만 말기를.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야! 정우진!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한 여자가 내게 툭-치며 꽤 사납게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향기를 만날 수 있는데 내 길을 막아선 것이다. 이 여자, 뭐하는 여자인가. 나도 모르게 상황의 틀이 바뀌니 감정이 매서워졌다.

 

  “내가 전화하는 건 다 응급이니까 받으라고 했지? 지금 병원 상황 네 환자 때문에 장난 아니라고!”

  “환자?”

  “그래, 네 환자! 일단 들어…….”

  “꺄아아악! 저기 봐요!”

 

  “휘이이이-(휘파람소리)”

 

  한 여자가 말을 걸고부터 이상하리만큼 정신이 없다. 아니, 없던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살아있는 사람인지, 그저 향기에 대한 생각으로 왔는데 무언가 머릿속이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한 여자의 비명소리에, 잊을 수 없는 휘파람소리에 알 수 없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인 적이 없음에도 이 사람이 곧 의사라는 것을 첫 번째로 깨달았으며

 

  “향기야, 내려와! 담당 선생님 오셨어!”

 

  이 사람이, 지금 내 눈을 의심하면서도, 살아있음에 다행함을 느끼는 향기의 담당 선생님이라는 것을 두 번째로 깨달았다. 담당 선생님이라는 말에 내게로 눈을 돌리는 향기. 분명 그녀다. 내가 15년 전에 보았던 창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 보는 향기의 자세는 그때처럼 불안했으며 여전히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또한 태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정우진이라는 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호기심보단 멍한 눈빛, 아무 생각이 없는 고독, 숨겨 있을 분노와 외로움이었다.

 

  “만났다…….”

 

  그 아이의 멍한 눈빛보단 아직 살아있고 내 마음처럼 살아 움직이는 아이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으로 몸이 떨려왔다. 뿌연 연기 속에서,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는 병원 창문에 비스듬히 앉아 내려다보고 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 향기를 나는 또다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여자에게 네 환자부터 살피라며 억지로 끌려가던 도중 향기의 입 모양이 ‘어디 가’라는 말과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변하는 것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건, 그곳엔 향기뿐만이 아닌, 향기를 만나러 처음 이 병원으로 오는 과거의 나, 태수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내 과거를 보기 1초 전의 나는 얼음과도 같았다. 동공은 커져있었고 표정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향기를 보며 놀라고 있는 과거의 나, 태수에, 그 뿌연 연기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의 추억이 시작되는 그 부분을 보고 있던 난,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그 둘의 미래를 알기에 슬픈 아련함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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