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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염라와 함께 춤을
작가 : REIRAI
작품등록일 : 2017.7.2

저승의 왕 염라대왕인 이현은 저승으로 잘 못 떨어진 혜율에게 자신의 충신을 다치게 한 벌로 대신 일을 하라 명하는데 "나 일 못해요!"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혜율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 자신에게“...머리 풀어헤친 모양이 처녀귀신인가 보군. 아니면 미친년이던가.”라고 말하는 촌철살인의 귀재이자 근엄하고 위엄있는 이현의 임시 신하가 된 혜율. 젠장할, 얼떨결에 "지상으로 올려보내주면 되잖아!"라고 약조하는 바람에 안그래도 복잡한 저승의 왕 노릇이 그 여자 때문에 더 복잡해져 버렸다!!

촌철살인의 귀재이자 자기애가 흐르다 못해 철철 넘치는 염라대왕, 이 현과 막말과 즉답의 대가 혜율의 좌충우돌 사랑이야기!

 
잘생긴 샌님과 처녀귀신
작성일 : 17-07-02 22:50     조회 : 427     추천 : 0     분량 : 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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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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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오후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 시간이 아니면 정원 산책도 하지 못 하는 신세인데. 그 마저도 열흘 후면 영영 사라질 운명에 처한 혜율은 깊게 한 숨을 쉬었다. 곱게 내려앉은 검은 빛의 머리는 찰랑거리다 못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마치 하나의 강을 이루듯 넘실거렸다. 고운 자태의 그 머릿결을 보자니 분명 귀한 집 규수임이 분명하였지만 그것 또한 옛날 일이 되어버린 그녀는 열흘 후 해왕국의 산 제물로 빛의 신에게 받쳐지게 된다. 혜율의 집안은 그리 못 사는 집안도 아니었지만 그리 잘 사는 집안도 아니었다. 양반이라는 명함을 내밀기엔 너무나 기반이 약해 정치적인 힘이 없었으며 부친 또한 권력 욕심이 없었다. 고명한 직책의 아비를 둔 것도 아닌 터라 그녀는 일반 백성들 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았을 뿐. 자신이 양반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물론 새 어머니의 그 사단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가씨!!!”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혜율을 다급하게 불러 세운 것은 자신의 몸종인 단아였다. 투박한 손가락이 불안하게 떨리는 것은 필시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음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그것이, 원래 열흘 후에 진행될 제사가 일식행사와 겹쳐 ..당장 내일로 당겨졌답니다. 마님께서 얼른 채비를 하고 궐로 입궐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열흘 후 있을 제사라고 해서 맘 놓고 있었는데, 이 놈의 하늘은 자신을 도와주지도 않는구나 싶은 혜율은 깊은 한 숨을 쉬었다. 제물이니 제사이니 가문이니.. 그런 것은 혜율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비가 살아있다면 분명 그녀가 이렇게 궐에 팔려가다시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지간히 나를 내쫓고 싶었나보군..”

 

 

 단아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혜율이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만치 보이는 가식적인 여인을 보기 전 까지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혜율. 이야기는 들었겠지?”

 

 “..네, 어머니.”

 

 “그래, 네가 희생해야지 우리 가문도, 너의 하나뿐인 남동생인 창아도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냥 가문과 재산을 창아에게 물리고 싶은 생각이시겠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기어코 삼킨 채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고개 숙이는 혜율이었다.

 애초에 새 어머니였다. 혜율의 친 어머니는 본디 혜율을 낳고 5살이 되던 날 돌아가셨다. 그리고 혜율이 8살이 되던 무렵 아비는 새어머니라며 지금 자신의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저 여자를 대령했다. 아직 어린 혜율에게 어미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성숙하게 자라온 그녀는 어미라는 존재가 그다지 쓸모 있진 않았다. 어미에 대한 추억거리도 하물며 혼난 기억도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그녀의 어머니는 안채에서 쥐죽은 듯 잠만 잤으니까. 그리고 몇 해 전 아비가 돌아가자 무슨 전래동화의 순리인 것 마냥 새어머니는 자세를 바꿨다. 그 전까지 하나뿐인 딸이라며 이리저리 챙겨주던 인간은 나라에서 산 제물을 바치는 집안에 돈과 벼슬을 준다하니 홀라당 그녀를 팔아 먹어버렸다.

 

 

 “..네,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니 맘껏 즐기려무나.”

 

 

 어느 누가 자신의 딸이 죽을지도 모르는 산 제물이 된다는데 저리도 웃고 있을까. 자신이 계모여도 딸이 가는 마지막 날 밤에는 우는 척을 하리라 생각하는 혜율이었다. 곱게 단장을 마친 혜율은 새어머니의 마지막말을 곱씹어 봐도 어이가 없으며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당장 입궐하라 해놓고 마지막 밤을 맘껏 즐기라니. 저 어미란 작자는 자신이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까. 아니, 분명 기쁨에 겨워 말이 헛 나왔으리라. 내일이면 이 집도 이 가문도 나라에서 내려질 벼슬과 제물이 모두 자신의 것이 될 터인데 기쁘지 않을 수야 있겠는가.

 

 

 ‘내가 계모였어도 당신보다는 나았을 거야.’

 

 

 딸이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감에도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어미의 방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내리 저었다. 수수하게 땋아진 머리카락은 밤하늘 마냥 반짝 거리는 연꽃모양의 머리띠와 매우 잘 어울렸다. 궐로 입궐한다지만 제물의 용도이기에 그리 화려한 복장은 아님에도 꽤나 예뻐 보였다. 감청색의 치마에 수놓인 나비문양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었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옷이었다. 그리고 원판 불변의 법칙인 마냥 어여쁘게 찍어 바른 분은 안 그래도 하얀 얼굴에 화사함을 끼얹어 살아있는 인형으로 보일 정도였다. 만약 그녀가 나라에 팔려가지만 않았어도 좋은 명문가의 안주인으로 시집을 잘 갈 수 있을 정도였다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 그냥 산 제물신세인데.

 

 

 “단아야, 내가 없어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모셔다오. 창아는 아직 어리지만 새어머니께서 잘 보살펴야 주시겠지... 나머지 두 분은... 너가 꼭 챙겨드리렴.”

 

 “아무렴요. 주인어른께 입은 은혜가 얼마인데 .. 아가씨 몫까지 제가 꼭 챙겨드립죠. 부디 건강하셔야합니다. 아셨죠?”

 

 “...그래.”

 

 

 궐에서 조금 먼 이 곳까지 행차하신 궐 가마를 타자 이제야 자신이 제물이 되었다는 것에 실감하는 혜율이었다. 조금은 무섭지만 이미 벌어졌고 일부의 계약금을 받아 이미 배불리 먹은 새어머니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누군가 이 가마를 습격해서 구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 자부했지만 혜율은 생각했다. 자신은 심청전의 효심 가득한 심청이도 계모에게 구박받고 결국 부잣집 원님과 결혼하는 콩쥐도 아닌, 이도저도 안 되는 양반집의 딸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구세주나 원님 같은 사람을 바라진 않았지만 - 혹여나 하는 싶은 마음은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어미나 아비가 도와주지 않을까. 라는 바보 같은 생각 말이다.

 

 

 “도착하셨습니다. 이제 가장 안 쪽 안채에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궁녀들이 도와주실 것이니 불편한 것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가마에서 내리자 4~5명 정도의 궁녀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머리의 가채와 옷의 색깔을 보아하니 일개 무수리나 궁녀가 아닌 상궁들임이 분명했다. 세자빈 후보로 온 것도 아니고 궁녀 후보로 온 것도 아니고 제물로 궐에 입궐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외간 사내라도 만나 사랑이라도 나눠봤으면.. 이라고 짧게 탄식하는 것도 잠시 안내 받은 궁은 버려진 듯 허름하였지만 간판에 보인 ‘혜연궁’이라는 단어가 이 곳이 예전에는 누군가의 처소로 쓰여 졌음을 알게 해주었다.

 

 

 “...보기보다 허름하네요.”

 

 

 혜율의 안 좋은 습관 중 하나였다. 자신도 모르게 뱉어지는 속마음. 그것은 때때로 다른 이들을 당황케 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더 당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혜율이었지만 그녀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 저 그게...”

 

 “제물한테 돈 쓰기 아까웠겠죠. 넘치는 궁궐들 놔두고 이...ㄸ.... 크흠!”

 

 

 혜율은 황급히 입을 닫았다. 더 이상 입을 열었다간 목구멍까지 올라올 수많은 욕들이 난무할 것만 같았다. 고운 자태에서 험한 말이 나오면 안 되지. 보기 흉하잖니. 자기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위를 살피던 혜율이 처소에 발을 내딛었다. 스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혜연궁은 귀신의 집 같은 모양새였다. 급히 청소하고 정리하였지만 하루만 쓸 것이라 그리 깊이 청소하진 않았나 보다. 천장 구석구석 남아있는 거미줄과 닦은 듯 보이지만 어중간하게 남은 먼지들은 매캐한 냄새까지 풍겼다. 아무리 제물이라지만 대우가 너무 허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끼익’거리며 바람에 나부끼는 낡은 문은 정말로 음산하다 못해 마을 주위에 널리고 널린 흉가보다 더 흉흉해 보였다. 창호지는 금수들이 와서 긁어 놓았는지 제대로 발라져 있는 것이 없었고 그나마 혜율이 하룻밤 묵을 방 한 칸만이 온전한 모습으로 혜율을 반기고 있었다.

 

 

 “이 곳은 신관정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음의 기운이 강하여 웬만한 사람들도 잘 찾아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일이 당장 일식 행사가 있어 모든 궁궐들이 가득 차...”

 

 

 ‘거짓말. 그냥 하룻밤 지나면 우물에 집어던질 사람인데 굳이 잘해줄 필요 있나 라는 생각이겠지.’

 

 더 이상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을 말이라 여겼던 혜율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리 저었다. 그리곤 목욕을 하고 싶다는 핑계로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내일을 준비하는 척 자신의 맘을 다잡았다.

 

 

 ***

 

 

 밝지 말아야할 아침이 밝았다. 너무나도 강렬한 저 태양이 달에 의해 가려질 때 그녀는 신관정이라는 우물에 던져질 것이 분명했다. 신관정. 신과 인간을 잇는 통로라 하여 붙여진 그 우물은 예부터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들을 그 속에 던져 제를 올리는 문화가 있었다. 물론 그 우물에 산 사람이 들어간 적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제사에 신이 신부를 받치라는 공포를 한 것도 아닌데 때 아닌 처녀를 받치라는 왕의 명에 꽤나 높은 직책의 사람들은 당황스러웠다. 새로운 권력들을 견제하기 위함인 것인지 아니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매개체로 쓰일지는 아무도 몰라 고위 관료들은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물론 일개 평민들이야 제물과 벼슬을 준다는 말에 혹 했을 터 이지만 애초에 나라에서 요구한 제물의 조건은 양반이여야 하며 처녀여야 했다. 양반의 기준에는 혜율의 집안처럼 정치적 기반이 없어도 되었으며 몰락한 가문이어도 양반이라는 직책이라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집안의 강요로 제물이 된 여인은 스물 명 가량 되었지만 몇 명은 왕의 후궁으로 몇 명은 야반도주를 몇 명은 자결을 감행하기로 남은 사람은 혜율 혼자였다. 왕의 후궁으로 궁궐 암투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야반도주를 도와줄 사내도 없었을 뿐더러 자결할 용기도 없었다. 그냥 저냥 생각해보니 어찌할 선택이 없었으니 제물이 되어 진짜 빛의 신의 제물이 되든 죽든 배 째라 식의 마음이 강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단아하게 땋았던 머리에 어울리던 장식인 머리띠는 빼버리고 어디서 꺾어 왔는지 모를 하얀색 꽃을 머리에 꽂아주었다.

 

 ‘무슨 동네 미친년도 아니고. 나보고 살아있는 국화라도 되라는 것인가.’

 

 

 예쁘게 보일 맘도 없었지만 자신을 사람 아닌 취급을 하니 속이 상해 입술이 그만 삐죽 튀어나왔다. 심지어 옷은 하얀색 소복이다. 자칫 보면 꽃 달고 있는 미친 처녀귀신의 모양새였다. 머리는 풀어 헤치란 말이 없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 꼬락서니를 하고 우물에 뛰어들어 진짜 빛의 신에게 간다면 빛의 신이 기겁하고 이 나라에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라 혜율은 자부했다.

 

 

 

 혜연궁을 따라 뒤의 산으로 올라가니 낡은 사당이 보인다. 그래도 관리는 하는 것인지 무성한 잡초와 나무들 사이, 그 사당만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은 매년 있는 행사 같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나라에 우환이 있을 때만 사용하던 터라 그 주변은 당연히 우거진 숲일 수밖에 없었다. 낡은 사당 너머에 금줄이 쳐져 있는 채로 보관되어 신관정. 그 앞에 이미 모든 식의 준비를 끝마친 왕이 서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하얀 소복을 입었지만 그 위엄은 미친년 같이 보이는 자신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미 해의 절반은 달의 그림자에 묻혔고 스산한 바람에 비추어지는 소린 소름끼치기 까지 했다.

 

 

 “난간에 서도록 하라.”

 

 도승지가 다가와 혜율에게 식의 순서를 알려주는 동안 왕은 기도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관적이진 않았지만 난간에 서자 보이는 끝도 없는 우물. 그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혜율은 알지 못했다. 깊은 수면이 있는 것인지 뼈 가죽만 앙상한 동물들의 시체가 있을지 아니면 정말로 신계로 통하여 빛의 신에게 가 있을지.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저 우물을 통해 떨어지는 순간 자신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신의 이름, 운명, 존재 자체가 소멸됨이었다. 수많은 양반들이 제물과 벼슬을 탐내도 쉽사리 자신의 딸들을 내놓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으리라.

 

 

 “신이시여.. 신이시여... ! 부디 우리를 구원하여주옵소서..!!”

 

 

 왕의 기도가 시작되자 완벽하게 해를 가린 달의 그림자 아래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부는 바람은 무언가를 암시하듯 한동안을 그렇게 스산하게 울고 있었다.

 

 

 “뛰어 내리 거라!!”

 

 도승지의 말이 시발점이 되어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순간 떠오른 것은 자신을 팔아버린 새어머니도 이미 죽어버린 아비의 모습도 아닌 자신이 평생을 그리워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친어머니가 그려짐이었다. 주마등처럼 뿌옇게 지나가는 기억들 속에 어머니는 없었다. 차라리 자신을 낳지 않았으면 자신이 이렇게 죽었을 리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어머니 죄송해요.’라는 말을 남길 정도의 효심 가득한 위인이 아니었다. 원망을 토해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리라.

 

 뒤에서 누군가가 밀어 내듯이 떨어진 혜율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꺄아악!!!”

 

 자의로 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왕과 그 신하들이 자신을 어떤 취급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제물이 필요했고 그 제물은 말 그대로 제물이지 나라를 구할 영웅 따위가 아니었다.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 듯 떨어지고 있는 혜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타닥’ 거리는 소리나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어딘가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죽어가는 과정이라 그리 생각했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죽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언젠가 서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던 혜율은 자신이 다시 눈을 뜨게 되면 아마 죽었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혜율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땋았던 머리는 어느새 인가 풀려 산발이 되어있었다. 꽂아놓았던 꽃은 왜 그리도 단단히 박혔는지 제 모습을 유지한 채 정말 미친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득하게 펼쳐진 아래를 보자 평정심을 유지하던 혜율도 끝이 없음을 보곤 한탄스러웠다. 고작 18살이었다. 혼기가 가득 찬 이 나이에 연애도 못해 보고 죽는 꼴이라니. 이상하게 배알 꼴린다. 만약 자신이 진짜 빛의 신으로 가게 된다면 신이라도 꼬셔서 이 나라에 저주를 부으리라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있을 찰나 짙게 깔린 어둑한 구름 사이 보이는 커다란 산들이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얼음과 불로 뒤덮인 산들 사이 검은색의 무리들이 보였지만 그 것은 한 참후의 일이었다. 태양이 없고 어둑한 안개만 가득한 하늘은 마치 짙은 어둠과 같았다. 그리고 저 아래에 보이는 낯익은 갓모양이 왜인지 울컥하여 안간힘을 써서 잡고야 만다. 잡은 동시에 지상으로 안착한 그녀는 무언가 폭신한 느낌에 의아했지만 일단 자신이 땅에 굴러 떨어져 상처 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일까. 라는 본질적인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자신의 앞에 어둑한 그림자가 보이자 고개를 들어 보인다. 꽤나 미남같이 보이는 사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딱 봐도 옷의 모양새하며 쓰고 있는 갓의 크기를 보아하니 높으신 분이여도 아주 높으신 분이 틀림없다. 자신과 같은 검은색의 머릿결이지만 혜율과는 다르게 윤기가 있다기보다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짙은 어둠과 같은 머릿결은 고상하게 보이기까지 했으며 그 아래에 햇빛을 보지 않아 타지도 않은 하얀 피부에 매끄러운 턱 선이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제물만 아니었다면 꼬셔서 연애라도 하고 싶을 정도의 이상형이었지만 일렁이듯 불타오른 붉은색의 눈빛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아.. 저...”

 

 

 일단 사내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왜인지 무거운 압박감이 입을 다물게 했다. 분위기가 그러했고 왜인지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목이 댕강하고 잘려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소속의 죄인이지.”

 

 “네?”

 

 

 죄인이라니. 제물로 받쳐진 것도 서러운데 영웅으로 모시지는 못할망정 이제는 죄인이란다. 기가 차 헛웃음이 나온 혜율이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소리시죠.”

 

 

 ‘댁들이 날 바치라고 했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 스스로 장하다 신 혜율! 거리며 스스로를 다독거리자 뭔가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들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어느 소속의 죄인인지 물었다. 그리고....”

 

 내리깔던 사내의 붉은 색 눈동자가 그녀의 치마 아래를 향했다. 그제 서야 자신이 무언가를 깔고 있음을 깨달은 혜율이 자신의 치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짐의 귀한 내관을 그만 깔아뭉개는 것이 어떻겠는가 싶은데.”

 

 “...앗, 죄송.”

 

 황급히 일어나 쓰러진 내관의 상태를 보던 혜율이 수많은 이들의 비명을 듣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만, 죄인이라며. 설마 여기 저승이야?’

 

 

 

 사방을 둘러보아도 불에 타는 산과 얼음이 서려 있는 빙하 같은 산.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비명소리에, 이어 보이는 참혹한 형벌의 모습에 혜율은 차라리 ‘자결할걸 그랬다.‘ 라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다급하게 깔고 앉아 있던 내관의 옆에 서서 고개를 숙여보지만 어쩐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사내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보고 싶은 맘이 컸다.

 

 그래, 여기가 저승이라는 것은 분명 떨어지면서 어딘가 부딪히거나 도중 기압에 못 이겨 심장이 멈춰서 죽었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저승으로 떨어질 줄 알았음 새어머니나 왕에게 욕이란 욕은 다 퍼붓고 오는 것인데 “아쉽네.”라고 작게 웅얼거리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봐도 높으신 샌님 같은 사내는 정말 잘생겼다. 오똑한 코하며 매끄럽게 이루어진 이목구비는 어떻게 저 작은 얼굴에 붙어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눈부신 미모에 일렁이는 붉은색의 눈동자는 자신이 본 어떠한 보석들 보다 밝고 빛났으며 예뻤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사나워 보이긴 했지만 그것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오히려 저 매력적인 얼굴에 내려앉은 눈썹과 눈매였다면 너무 순둥이처럼 보여 사람이 바보 같아 보일 것이다. 겨울철의 동백꽃마냥 붉은 입술이 입을 열어 움직이려 하자 혜율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일단 높은 샌님이지 않은가. 혜율은 속으로 참 안타까워했다. 저 잘생긴 얼굴이 지상이 아닌 저승에 썩어지고 있음이 첫 번째요. 죽고 나서 저런 얼굴을 봐도 자신은 꼬실 수 없음이 두 번째요. 곧 저 잘생긴 얼굴을 볼 수 없음이 세 번째 이유였다.

 

 

 “...머리 풀어헤친 모양이 처녀귀신인가 보군. 아니면 미친년이던가.”

 

 

 젠장. 잘생긴 샌님한테 저런 소리를 듣게 하다니 그 놈의 왕을 기필코 저주하리라 외치며 속으로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는 혜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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