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사체
2015년 7월 23일, 며칠째 내리던 비는 어제 오후부터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태풍 ‘낭카’가 막 지나간 터라 한강은 상류에서 떠밀려오는 쓰레기들로 가득했고, 맑았던 강물도 흙탕물로 변해버렸다. 이미 나흘 전부터 통제가 되었던 잠수교는 여전히 차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고, 한강둔치에 잠긴 물은 오늘 아침부터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한강둔치가 폭우로 잠겨있을 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차 한 대가 물이 빠지면서 지붕부터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차 주변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었고, 그 주위로 사복을 입은 형사들과 ‘과학수사’가 적혀있는 감식반 경찰관들이 차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물이 다 빠지지 않은 상태라서 경찰차도 구급차도 올림픽 도로에 선 채, 신고를 받고 달려온 형사들은 현장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바짓가랑이를 허벅지까지 둘둘 말아야 했다. 차가 막히는 올림픽 도로의 한 개 차선에는 형사들과 감식반 경찰관들이 타고 온 차와 구급차까지 와 있던 터라 길게 차선을 막아서고 있었다. 차들이 개펄처럼 된 한강둔치로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송정수는 전날 경찰서에서 당직을 서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가 보험회사에 출근한 뒤라서 직접 밥을 차려 먹어야 했다. 정수는 아내가 하는 보험 영업을 그만 두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서울로 이사를 온 후에도 광주에서 하던 그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빈 그릇을 싱크대에 담그고는 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웠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당직을 서고나면 그 다음 날은 비번으로 쉬는 게 당연했지만 형사과장은 변사체 신고가 들어 온 현장에 담당 형사들만 보내는 것이 못미더워서 형사계장을 부른 것이었다. ‘젠장, 쉴 틈을 안주네.’ 정수는 투덜거리며 산타페 운전석에 올라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담뱃불을 붙이고는 시동을 걸었다.
‘아니 거기가 우리 관할이야? 송파구 관할 아냐? 젠장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는군.’ 비는 그쳤지만 인도(人道)의 보도블록은 흙이 파여서 엉망이었고, 군데군데 가로수가 넘어져 있었다. 잠실대교 아래 올림픽도로 갓길에 산타페를 대면서 정수는 또 한 번 투덜거렸다. ‘이런 젠장, 어떻게 내려가라는 거야?’ 정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렸다. 질퍽거리는 둔치에 발을 대는 순간 신고 있던 구두 속으로 흙탕물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니미럴, 뭐 하자는 거야?’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며 물에 반 쯤 잠겨있는 차 쪽으로 내려가자 먼저 와있던 형사들이 정수에게 다가왔다.
“계장님. 오늘 쉬셔야 하는데... 어쩝니까?”
“영감탱이가 방방 거리는데 안 올 수가 있어? 그런데 여기 우리 관할은 맞는 거야?”
“엄격하게 따지면 송파와 강동 경계랍니다.”
“그런데 왜 우리야?”
“우리가 일복이 많은 거죠.”
“사람이 죽은 거야?”
“네. 살인사건입니다. 목에 칼이 찔렸는데 칼이 목에 그대로 있네요.”
“피살자 신원은 파악된 거야?”
“아직 입니다.”
“국과수로 넘겨야겠군. 차에 지문은 나왔어?”
“태풍이 오기 전부터 차가 있었나 봅니다. 흙탕물 속에서 며칠 잠겨있다 보니까 건질만한 지문은 없나봅니다.”
“머리 좀 아프게 생겼군... 시체는 어디 있어”
“방금 구급차로 올라갔습니다.”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두지.”
“네. 백 형사가 그건 꼼꼼하게 잘 챙겼습니다.”
“일단 국과수에서 의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피살자 신원파악부터하고 한강둔치로 들어오는 도로에 설치된 CCTV 다 확인해봐.”
“네.”
“코란도 저차야?”
“네.”
“난 직원들이 타고 온줄 알았네. 색깔도 그렇고... 혹시 우리 회사 직원 아냐? 빨리 신원부터 확인해.”
피살자는 검정색 코란도를 타고 있었다. 대게 검정색 코란도는 형사들이나 관공서에서 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둔치를 빠져나왔다. 차가 눈에 익었지만 어디서 본 차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은 흔하게 타지 않는 차이지만 정수는 검정색 코란도가 머리에 남았다. ‘에이 저런 차가 어디 한 두 대야?’ 정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산타페가 서있는 올림픽도로로 올라왔다. 양말과 구두를 다 벗고 산타페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서 형사들이 하나 둘 올림픽도로로 올라섰다.
정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대신한 후 그대로 경찰에 눌러 앉은 케이스였다. 마흔 네 살의 나이임에도 계급 적체가 심한 경찰서에서 계장으로 있다는 것은 운도 좋았지만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강동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한 지도 5년, 그 전에는 광주광역시 서구경찰서에서 근무를 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 온 것은 순전히 자신이 지원해서 올라 온 것이었다.
4년간을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다가 작년 여름에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했다. 출생은 경북 김천이지만 장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서 지방으로 옮겨 다니던 정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었다. 첫 사랑의 여자가 바로 아내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의무경찰에 입대를 하기 전까지는 건달처럼 살았었다. 그래서 지금도 팔뚝에는 조잡한 작은 칼자국이 여럿 있고, 팔과 허벅지에는 허접한 문신도 몇 개 있었다. 특히 허벅지에는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입한 서클에서 친구들과 함께 문신을 한 ‘달무리’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문신을 돈을 주고 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서로서로 해 준 것이기에 그 모양이나 글씨가 어디에 보여줄 수도 없을 만큼 허접했다. 그래서 정수는 땀을 뻘뻘 흘리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긴 소매 옷을 꼭 입고 다녔다. 의무경찰에 입대를 하고 난 후 ‘경찰’이라는 단어가 그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었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경찰이었기에, 의무경찰이 되고 난 후에는 만나던 폭력서클 친구들도 멀리했던 것이다. 중대장의 권유로 경찰에 말뚝을 박은 정수는 쉽게 말해서 개과천선한 건달이었다. 아마도 의무경찰로 입대를 하지 않았다면 호남을 휘어잡을 건달의 우두머리는 될 인물이었다. 순경이 되고난 후에도 상관을 잘 만났다. 상관은 정수를 변화시켰다. 조직을 아우르는 법, 범죄자를 다루는 법, 보고서를 쓰는 법 등 경찰관으로서의 기초부터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런 것들이 오늘의 정수를 있게 했다. 그만큼 정수의 노력도 한 몫을 한 것이지만 선배를 잘 만나서 변화한 것이기도 했다. 정수는 부하직원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웠고, 상사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과장도 그를 믿고 한강둔치로 보낸 것이었다.
정수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번이지만 쉬는 것을 포기하고 강동경찰서로 차를 몰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수돗가에서 발부터 씻었다. 흙탕에 빠진 구두를 물에 행군 후 양말도 신지 않은 상태로 구두를 질질 끌고 형사계로 들어섰다. 한강둔치로 나간 형사들은 하나같이 몰골이 형편없었다.
구두들이 모두 젓은 터라 다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녀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금방 오전시간이 지나갔다. 구내식당은 중복이라고 반계탕(半鷄湯)이 나왔다. 닭 반 마리를 끓여서 나온 반계탕은 힘을 쓰는 형사들에게는 간식정도의 양이었지만,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밥을 먹으러 가기를 꺼려하던 직원들은 모두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계장님. 이것 먹고 저녁때까지 못 버티겠습니다.”
“하하하. 나도 그래. 한 그릇 더 달라고 해.”
“에이 욕먹을 짓 안할 랍니다. 네 시쯤 빵이라도 사올게요.”
“나 돈 없어! 이달에도 자네들 땜에 적자야.”
“저희들이 얼마나 먹었다고 그럽니까?”
“그제 먹은 술값으로 한 달 용돈 다 날아간 것 몰라? 이 친구가...”
“그렇게 많이 먹었나요? 빵은 우리들이 사겠습니다. 하하하”
“겨우 빵으로 때우려고 하지 마!”
정수는 부하직원들과도 가끔 술자리를 하는 편이었다. 매월 월급을 받으면 부하직원들과 쓸 돈을 별도로 남겨두었다. 5급 공무원의 월급이라야 뻔하지만 그래도 가끔 부하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술을 사기도 했다. 보통은 소주에 삼겹살이 전부였다. 지하 식당에서 올라 온 정수는 자리에 앉자 김대식을 불렀다.
“김 형사. 피살자 신원파악은 된 거야?”
“네. 되었습니다.”
“둔치에서 찍은 피살자 사진이랑 신원 조회한 것 같이 가져와봐”
“네. 여기 있습니다.”
정수는 피살자의 사진을 보고는 놀라서 그만 사진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사진 속의 인물은 자신이 아는 인물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정확히 ‘묵향’이었다. 2년이 흘렀어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얼굴이었고, 모두가 그를 ‘묵향’이라고 불렀다.
“신원이 이거야?”
“네”
‘조정학. 1968년생. 이름이 조정학이었군, 베일에 쌓여있는 이 사람이 조정학이었어.’ 정수는 사진과 인적사항을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조정학, 뭐하는 사람인지 안 나왔어?”
“네. 일단 오후에 자택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방문하기 전에 4대 보험부터 확인해봐. 분명히 직장을 다니던가, 자영업을 하고 있다면 나올 거야.”
“네.”
“그리고 목에 찔려있는 칼은 어떤 거야?”
“이겁니다.”
김대식은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칼을 책상위에 올렸다.
“이건 사시미 칼이잖아.”
“네. 주로 조폭들이 쓰는 칼이죠.”
“이 칼 어디서 파는지 알아봐”
“네”
2년 전, 몇 번의 만남과 몇 번의 술자리에서 만난 그 남자가 조정학이었다. 무슨 원한이 있었기에 목에 사시미 칼을 맞고 죽었을까? 정수는 변사체로 발견된 한 남자와 2년 전 마지막에 만난 날이 기억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굽은다리역 사거리에 있는 7080노래주점에는 그 남자와 우는 여자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정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몇 몇의 사람들이 있던 그날, 이 남자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이 남자가 조폭이었을까?’ 자신의 신분을 좀체 드러내지 않던 남자였다. 그러면서도 돈은 비교적 여유 있게 쓰던 남자였다. 함께 있던 어떤 사람도 그 남자의 직업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수는 정확하게 2013년 2월의 기억을 더듬어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2012년 12월이었다. 우는 여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