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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조국을 위하여, 아모르파티
작가 : 아강
작품등록일 : 2017.6.18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격정의 시대, 일제강점기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조선인 열사들의 삶과 사랑.
기억을 위해, 먼 미래를 위해, 처절한 운명마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전직 깡패 태섭, 문학소녀 연이,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조선인들의 이야기.

 
통보는 대체로 나쁘다.
작성일 : 17-06-18 15:05     조회 : 390     추천 : 0     분량 : 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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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라버니의 별세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편지에는 동생의 죽음도 같이 담겨 있었다. 옥사였다.

  두 눈알이 빠져있는 울 아버지는 편지를 읽는 내 앞에 서서 재차 물었다.

  “네 오라비가 뭐라던?"

  나는 이럴 때마다 태평스레 거짓말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이건 살생부 같은 것이었다. 오라버니와 동생의 죽음이 담긴 아주 잔인하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연아, 대체 뭐라고 쓰여 있디? 좀 말 좀 해다오. 평소보다 답이 좀 늦는 구나.”

  아버지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내 머릿속에선 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가 아프도록 부딪혔고, 그로인해 생긴 공명은 귓바퀴까지 돌며 나를 어지럽혔다.

  “별 거 아니네. 그냥 잘……지내고 있대요.”

  “정말이냐?”

  “다, 당연하지, 담이랑 일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네. 그동안 공부 때문에 연락을 못해서 죄송했대요.”

  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깊이 울려 퍼졌다. 메아리 같았다. 그렇다, 나는 또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말은 없던?”

  “……네 없어요, 그런 거.”

  “그럴 리가 없다, 용이 성격에 그럴 리가 없어. 이리 내 봐.”

  그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편지를 찾았다. 나는 덜컥 겁이나 종이를 등 뒤에 감추며 소리쳤다.

  “아부지가 가져가서 뭐하게! 아부지, 이거 읽을 수나 있어요?”

  일순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묘한 정적이 스쳐 지나갔다.

  "제가…… 너무 말이 심했어요. 하지만 정말 별 거 아니에요. 평소랑 비슷한 안부 편지 같은 거에요."

  “나도 그건 안다. 뭐 별 일이야 있겠니, 용이랑 담이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네가 안 읽어 주니까 그렇지! 그러지 말고, 계속 읽어봐. 애비 장님이라고 무시하는 게 아니면.”

  나는 또한 번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진짜로 별거 아냐. 그냥……, 미안하대요.”

  코끝이 찡하고 매워지더니, 금세 입안에 피 맛이 맴돌았다. 코피가 난 것도 아니었고, 입안이 터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힘겹게 꾸역꾸역 참은 눈물이, 내 속에서 피와 함께 역류하는 것이었다.

  “……그냥……, 공부한답시고, 아부지랑 나 소홀히 해서 미안했대요. 공부할 게 아직 너무 많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이해해 달래요.”

  “다른 말은 없디? 언제 돌아온다, 라든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아버지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발까지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가 잊을 만……할 때 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잿빛을 띠며 비를 퍼부을 것만 같았다.

  “에잇, 정 없는 자식. 일본에서 대체 뭐 배울 게 있다고, 담이 까지 데리고 가선…….”

  아버지는 내심 아쉬운 듯 애꿎은 땅을 발로 차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연이 너라도 여기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시간 좀 나면 네 오라비한테 연락 좀 자주하라고 답신이나 써서 보내라. 뭐 필요한 거 있는지도 물어보고. 아 참,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지 부터 물어봐야겠다. 생활비는 좀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그제야 나는 힘겹게 버티고 있던 두 무릎에 힘을 풀었다. 두 다리는 타악-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주 비참한 모습이었다.

  용이 오라비는 어렸을 때부터 꽤 똑똑하고 당찬 꼬맹이였다. 대대로 가난한 농민이었던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생긴 자랑거리였고, 그 기대는 항상 오라비의 어깨를 짓눌렀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불평조차 하지 않았던 오라비였다.

  그런 그에게 세 가지 아주 지독한 불행이 있었다면, 이런 지옥 같은 시대에, 가난한 집안에서, 정의롭게 살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얇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몇 초의 간격으로 슬그머니 떨어지는 빗방울은, 곧 천둥번개까지 동반하며 무서운 속도로 퍼부어질 것이다. 나는 좁은 마당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3년 전 오라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17살 때의 일이었다.

  “연아, 담아. 아버지를 부탁해.”

  그 때 오라비는 왠지 영영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

  “오라비, 어디 멀리 떠나?”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어서 괜히 몸을 비꼬며 물었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달의 울음소리 같은 침착함이었다.

  “미안해.”

  그는 우리에게 눈깔사탕 하나씩을 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평소와 다른 오라비의 모습이 불안하면서도, 빨간색 눈깔사탕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한입 가득 물었다. 그러곤 철없이 그를 올려다봤다. 오라비는 그런 나를 보며 잘생긴 눈썹을 휘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담이는 나와 달랐다.

  “난 이거 절대 안 먹어. 내가 모를 줄 알고? 오빠 지금 싸우러 가는 거잖아. 오빠 친구들이랑, 죽으려고 멀리 멀리 떠나는 거잖아!”

  그녀는 오라비가 준 노란색 눈깔사탕을 땅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사탕은 산산조각이 났다. 오라비는 가만히 나뒹구는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냐, 담아.”

  그는 주저앉아 깨진 사탕조각을 주웠다.

  “오빠, 나 이제 애 아니야. 17살이나 먹었고,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오빠 눈에는 아직 애처럼 보이겠지만, 남들 눈엔 사리분별은 하는 걸로 보일 걸?"

  “……담아, 난……”

  “눈 없는 아빠랑 같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글만 쓸 줄 아는 김연만 보고 지내라고? 나보고 정말 그렇게 부끄럽게 살라고? 오빠는 나를 그렇게 잘 알면서,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 떠날 생각을 했어? 내가 순순히 그걸 들어줄 것 같았어?”

  담이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오라비를 닮아 짙고 강직한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사탕을 오물거리며 그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데려가.”

  담이 기어코 내뱉은 말이었다.

  “그건 안 돼.”

  그러나 오라비는 단칼에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둘 사이의 정적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 씁쓸한 정적을 깬 것은, 오빠도 담이도 아닌 바로 나였다.

  “담아, 가고 싶으면 가. 아빠는 내가 챙길게. 난 괜찮아.”

  지금도 그 때의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꺼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왠지 담이를 보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사슴 같지만 강직한 눈, 작고 보드랍지만 하얘질 정도로 꽉 쥔 주먹……. 담이는 오라비를 따라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녀는 간절했고, 나는 순수했다.

  그리고 담이는 죽어서 돌아왔다. 아니,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무섭게 떨어지는 폭우 속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담이와 오라비를 보냈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지독히도 저주했다. 나는 오늘 이렇게도 허무하게 내 모든 형제를 잃었다. 정신이 아득해져갈수록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무거운 빗방울을 수차례 맞으면서, 난 뼈가 시릴 정도로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그렇다, 이게 현실이었다. 나라도 잃고, 가족도 잃고, 돈도, 먹을 것도 모두 다 잃어버린 지금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는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가관이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용이 오빠는 더더욱 아니었다. 비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깔끔한 검정색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문을 수차례 두드렸는데도 아무런 답이 없더라고.”

  그는 나를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검은색 우산을 쓴 채였다.

  “네가 연이 맞지?”

  그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맞췄다. 앞머리가 살짝 비에 젖어있는 채였다.

  “이건 뭐……너무 젖어서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겠군. 눈도 부은 것 같고.”

  그의 손이 엉망진창으로 얼굴에 달라붙은 내 머리카락에 닿았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인지 아주 서투른 손짓이었다.

  나는 뒤늦게 얼굴에 닿는 낯선 손의 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뺐다.

  “누구……세요.”

  “이제야 물어보는 거냐?”

  그가 삐딱하게 웃었다. 어느새 내 머리 위에는 그의 우산이 펼쳐져 있었다.

  “우태섭.”

  낯선 목소리로 듣는 낯선 이름이었다.

  “김용 친구.”

  그리고 그 낯선 자는 내가 너무도 그리워했던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아주 익숙한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거침없고 서글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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