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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과거를 산다
작가 : Lowe
작품등록일 : 2017.6.14

평소와 같이 잠이 든 주운은 꿈속에서 낯선 장소에 떨어진다.
처음에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조금씩 그의 삶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꿈속에 그곳이 과거의 '고구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청년의 고구려 적응기..

 
1
작성일 : 17-06-14 15:55     조회 : 361     추천 : 0     분량 : 8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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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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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나는 낯선 마을에 있다. 누더기를 입고 다니는 과거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처음 내가 나타났을 때 전속력으로 달리면 2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었다.

 

 현실의 내가 잠이 들면 꿈속에 나는 하늘에서부터 작은 마을로 떨어진다.

 

 하늘에서 등장한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 종교가 있는 곳이라면 신이라고 추앙받을 만한 등장이었지만 호랑이가 자신의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믿는 이들에게 나는 눈에 보이는 귀신, 딱 그 정도였다.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아줌마들은 일제히 자식들을 챙겨 집 안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궜고, 남자들은 집에 있는 뾰족한 것들을 모두 들고 나와 나를 둘러쌓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여기 사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과거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하다니.. 어느 나라를 가도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시절의 만화 속 주인공들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꿈을 꾸기 시작한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내 팔보다 두꺼운 밧줄에 묶인 채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꿈인 게 확실한데 너무 아팠다.

 

 마을 중앙에 자리한 집은 아마 족장의 집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 집의 외양간 같은 곳으로 끌려가 몇 대 두드려 맞고 있는데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80대 노인 정도를 기대했지만 평균 수명이 우리보다 현저히 낮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50대의 나이도 충분히 많아 보였다. 끌려올 때보니 마을사람 대부분이 20,30대였다.

 

 족장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살펴보더니 옆에 있는 남자들에게 무어라 지시했다. 족장의 말을 듣고 조금 망설이던 남자들은 족장의 호통에 찝찝한 표정으로 나를 결박하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감사합니다.”

 

 밧줄 자국이 선명한 팔을 부여잡은 채로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감사하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족장이 완벽한 발음으로 내 말을 따라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으로 봐서는 ‘감사하다’라는 단어는 여기서도 같은 뜻으로 쓰이는 언어인 것 같았다.

 

 행복해진 나는 내가 여기 오게 된 배경(잠들었는데 깨어났더니 여기였어요!)과 조금의 하소연(저 사람들이 줄로 묶고 때리고 막 그랬어요.)을 떠들어댔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때 밝아 졌던 족장의 얼굴을 어둡게 만들고 말았다.

 

 족장은 마을 남자들을 안심시켜 모두 돌려보내고 나만 데리고 초라하지만 마을에서는 가장 고급스러운 움막으로 나를 데려갔다.

 

 족장을 따라 움막에 들어오자 족장의 하인인지 아들인데 모를 남자가 차를 내왔다. 단번에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설명 할 방법이 없어 찻잔으로 손을 옮겼다.

 

 "꾀가"

 

 찻잔을 쥐기 무섭게 차를 내온 남자가 내 손을 쳐내며 말했다.

 

 "왜요?"

 "꾀가!"

 "뭐요? 마시지 말라고요."

 "꾀가!"

 

 사람의 모습을 한 동물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대궐"

 

 족장의 말에 그가 위협적인 행동을 멈췄다. 족장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고, 나보다 두 배는 더 큰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마셔도 되죠?"

 

 남자가 완전히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하고 물었다.

 

 "꾀가"

 

 아까 남자 보다는 상냥한 말투였지만 짜증나는 건 매한가지였다. 잠깐 고민하던 족장이 찻잔을 자기쪽으로 끌고 가더니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양손바닥을 서로 맞댔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거나 하루나."

 

 저걸 따라하기 전에는 차를 마실 수 없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자 족장이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꾀가라는 건 기도를 뜻하는 말인 것 같았다.

 

 "조아 도시마 하루나."

 

 족장의 말을 듣고 눈을 뜨는 그가 손을 아래서 위로 올렸다. 마셔도 된다는 신호였다. 기도를 아니 꽈가를 하기 전에는 뜨거웠던 차가 완전히 식어있었다. 목이 말라 단번에 잔을 비운 나는 컵 아래 지저분하게 깔린 여러 퇴적물들을 애써 못 본 척했다.

 

 "원효대사 보다는 낫네"

 

 내가 차를 다 마신 걸 확인한 족장이 손뼉을 치자 예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찻잔을 치웠다. 눈빛만 봐서는 나도 같이 치우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족장이 눈빛을 한 번 주자 조용히 사라졌다.

 

 "운작로"

 

 잠깐의 침묵 뒤에 족장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그는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아, 운장로라고요? 저는 권주운이에요. 권주운"

 "저는건주에요건주?"

 "주운이요! 권주운"

 "주니어건주?"

 "그냥 권주운요'"

 "그냐건주요?"

 "권! 주! 운!"

 "건주운?"

 "하.. 주운, 주! 운!"

 

 성과 이름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성을 과감히 버렸다. 족장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이해했다는 것과 자신이 내 이름을 알아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만족한 것 같았다.

 

 잔뜩 신이 난 족장은 벽에 기대어 있던 석판들과 날카롭게 갈린 뗀석기를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아! 그림이요? 이걸 왜 생각 못했지. 이거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나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달리 10분 정도 지났을 때 족장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었고, 내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림은 친근한 소통 방식이었지만 문제는 부족을 넘어 허접한 내 그림 실력이었다. 족장이 스스로 그린 그림을 보며 한숨을 쉬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해석이 필요 없는 동정의 표시였다. 혹시 몰라 꾀가를 한글로 적어봤지만 족장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꾀가 하루나.”

 

 앞에 놓인 석판을 치운 족장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었다. 다리까지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유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 몸은 삐걱대기만 했다. 결국 편하게 앉아 두 손을 모은 나는 족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금씩 퍼져 움막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까 찻잎을 먹기 전에 했던 꾀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족장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움막 안을 채우는 소리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자 목을 타고 공기가 배 아래까지 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입으로 숨을 내쉴 때는 몸 안에 무언가가 숨과 함께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 감은 두 눈은 어둠과 마주했고, 이내 정신이 몽롱해졌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나는 다시 ‘현재’에 와있었다.

 

 에어컨이 달린 천장, 내 몸을 덮은 이불. 눈을 떴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울의 작은 원룸, 4년의 자취생활을 고스란히 보낸 곳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하지만 괴리를 느끼는 머리와 다르게 몸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머리맡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뭐야.”

 

 명령도 없이 움직이는 몸에게, 낯선 현재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토요일 10시. 꿈이었어?”

 

 꿈속에서는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지만 꿈에서 깨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꾀가…!!”

 

 머릿속에 스친 단어가 침대에 누워있던 나를 일으켰다. 얼른 휴대폰을 고쳐 잡고 검색 창에 [꾀가]를 검색했다. [꾀가 많은 여우]. [꾀가 많다] …. 검색에 나오는 것들은 많았지만 정작 원하는 결과는 없었다.

 

 “되게 리얼했는데… 어!?”

 

 체념하려던 순간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구려 시대의 유산 발견. 한글과 흡사한 고구려어!? 학계를 뒤흔들다.]. 기사의 제목만 봐서는 꿈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기사의 내용에 굵은 글씨로 칠해진 글자가 시선을 끌었다. 기사를 클릭하니 더욱 놀라운 내용들이 쏟아졌다.

 

 [오늘 아침 8시, 충청북도 충주시 유물산포지에서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이 발견되었다. 석판에는 기괴한 그림과 함께 한글로 보이는 “꾀가‘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고구려 시대의 언어가 현대의 언어와 완벽하게 다르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던 학계에 이번 발견은 커다란 변화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추가적인 발견은 없는 가운데… 석판은 용산한글박물관에 옮겨질 예정이다. 5월 15일 구본석 기자]

 

 “뭐야. 꿈 아니었어? 아니야. 우연일수도 있잖아.”

 

 갑자기 온몸에 털들이 곤두섰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박물관은 토요일에도 정상 운영이었다. 대충 씻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1시간. 용산까지 가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물관에 들어서자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인사를 건네셨다. 가슴팍에는 안내원 최두호라는 명찰이 보였다.

 

 “천천히 둘러봐요.”

 

 “혹시 고구려 석판 지금 여기 있나요?”

 

 도착하고서야 전화로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쪽으로 들어가면 돼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안내 받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유리로 된 원기둥 안에 들어있는 석판이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석판의 크기는 조금씩 커졌고, 그에 따라 내 두 눈도 빠르게 팽창했다.

 

 “와.. XX"

 

 한글박물관에서 파괴된 한국어를 사용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지금 내 기분을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았다. 원기둥 안에 석판에는 내가 그린 하늘(하늘을 그리려고 했던 흔적)과 삐뚤삐뚤한 글씨(돌로 써서 그렇지 원래 저 정도로 악필은 아니다)로 적힌 ‘꾀가’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와.. XX"

 

 내 입에서 똑같은 감탄사가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사실 하루 종일 저 말만 내뱉어도 지금의 기분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내가 그린 평균 이하의 그림과 한글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쓰여진 글자가 그려진 석판이 박물관에 전시되다니. 갑자기 같이 전시 돼있는 유물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아니다, 정보 수집이 먼저였다. 석판의 뒤쪽을 보니 고구려 시대에 남겨진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과 벽화들이 잔뜩 늘어서있었다.

 

 “도움이 안 되겠는데…”

 

 분명 고구려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라고 적혀있었지만 토기와 익숙한 찻잔을 제외하고는 모두 왕실의 물품으로 내가 갔던 작은 마을에서는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물건들뿐이었다. 언어 쪽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며,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그저, 고구려 시대에 사용된 언어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겨진 벽화와 관계토대왕비를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주장이며…”

 

 고구려 방(따로 이름이 없어서 이렇게 부르겠다) 끝에 있는 기계가 내가 찾고 있는 고구려어에 대한 정보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공식적으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오후 3시 반. 꿈을 꾸기엔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똑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었다.

 

 “젊은 사람이 역사에 관심이 많나 봐요?”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안내원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하긴 남들은 한 시간도 채 못 버티는 박물관에서 그것도 고구려 방에서만 두 시간이 넘게 있었으니 역사에 미친 학생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네, 혹시 고구려 때 사용했던 언어에 관한 책 같은 건 없나요?”

 

 “우리말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신라어를 제외하고는 백제어, 고구려어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어요. 박물관에 있는 것들도 정확한 정보보다는 생활환경을 보여준 게 전부지요.”

 

 “아, 그래요? 혹시 저 석판에 무슨 변화가 있으면 저한테 전화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석판에요? 그래요.”

 

 “여기로 전화 주시면 돼요.”

 

 할아버지가 건넨 2G 휴대폰에 내 번호를 입력한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직접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덜기 위해 연락책을 만든 나의 영리함에 혀를 내둘렀다.

 

 “여기 역사청년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주시면 돼요.”

 

 “재미있는 분이네요.”

 

 “아! 그리고 도와주시기로 하셨으니까. 하나 알려드릴게요. 저기 석판에 적힌 글자요. 기도라는 뜻이에요.”

 

 굉장한 비밀을 알려줬지만 할아버지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박사님들도 아직 못 밝혀냈는데.”

 

 “못 믿으실 수도 있겠네요. 조만간 제 말을 믿게 되실 거예요.”

 

 뭔가 신비한 힘이라도 가진 것 같은 우월함에 심취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나 할 법한 인사를 건네고 박물관을 나섰다. 오늘밤에 무조건 어제 꾼 것과 같은 꿈을 꿔야한다. 그리고 이 결심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다음 역은…”

 

 버스 안내 방송을 자장가로 삼아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또 하늘에서부터 마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나를 묶어 족장의 집으로 다시 배달해주었다.

 “주운!”

 

 마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족장이 움막에서 뛰쳐나오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가 내 뺨을 두 대 정도 때린 걸로 봐선 아마 내가 도망쳤다고 생각했나보다. 이번에는 나를 끌고 온 사람들의 증언이 족장의 의심을 풀어주었다. 하늘을 한 번 가리키고 나를 가리키는 걸로 봐선 다시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해와 밧줄은 풀렸지만 붉어진 뺨은 계속 욱신거렸다.

 

 “치이부두, 치이부두.”

 

 뺨을 부여잡고 있는 나를 족장이 걱정스럽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미안하다고요? 그럼 한 대만 때리지 그러셨어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았는지 족장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다시 움막으로 들어온 나는 석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진 석판을 가지고 저번 꿈에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구름과 꾀가가 적힌 석판이었다. 뗀석기를 든 나는 조심스럽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최대한 신중하게 썼지만 돌로 쓰는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잡해 보였다.

 

 “운작로, 티냐허사! 티냐허사!”

 

 글을 다 씀과 동시에 내 몸통만한 팔을 가진 대궐이라는 남자와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자 세 명이 움막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취가 하루나.”

 

 “취가 대궐.”

 

 족장의 말에 대궐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 쪼 이바이! 그흐 취가!”

 

 “다! 취가 대궐!

 

 “하~ 도. 취가 하루나. 우티아 쪼.”

 

 “도도.”

 

 족장이 긴 한숨을 내쉬고 무어라 말하자 대궐이 나를 들어 밖으로 데려갔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족장을 바라봤지만 족장은 내가 들고 있던 석판에 집중하는 척 시선을 피해버렸다. 꿈에서 깨고 싶어 연신 볼을 꼬집었지만 아까 맞은 뺨만 더 아팠다.

 

 “대궐! 라이가!”

 

 마을을 지키는 나무문 앞에 도착한 대궐이 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기 이름을 왜 계속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오는 것 같았다.

 

 “우이”

 

 대궐의 바로 뒤를 따르던 남자가 나에게 활과 화살 통을 건넸다.

 

 “아, 어디 가는데? 야 대궐! 어디 가냐고.”

 

 현실이라면 말조차 붙이기 어려운 상대였지만 꿈속이라는 환경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대궐? 하~”

 

 앞장서던 대궐이 어이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2미터는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치우부두!”

 

 대궐이 손을 들기 무섭게 입에서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대궐.”

 

 내가 생각했던 뜻이 맞았는지 대궐을 포함한 네 사람이 웃으며 다시 숲속으로 걸어갔다. 이미 마을은 멀어졌고, 나는 그들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런 선택을 내린 과거의 나를 온힘을 다해 원망해야했다.

 

 “우티아, 라거.”

 

 갑자기 자세를 낮춘 대궐의 어깨 너머로 쉬고 있는 호랑이가 보였다. 네 사람이 무기를 고쳐드는 걸로 봐선 호랑이를 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이렇게 리얼한 꿈에서 호랑이한테 물려 죽으면 진짜 죽지 않았을까. 내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궐이 들고 있던 창을 호랑이에게로 던졌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창은 빗나갔고, 단번에 가장 약한 구성원을 알아본 호랑이는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서른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삶의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호랑이는 그것보다 빨리 나와 가까워진다.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기도 전에 호랑이가 나를 덮쳤다. 양발에 눌린 어깨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다가온다. 버둥거리던 내 다리가 호랑이의 소중한 부위를 걷어찼다.

 

 호랑이가 펄쩍 뛰어오르며 내게서 떨어졌다. 기회를 잡은 네 사람이 들고 있던 창으로 호랑이를 제압한다. 정신을 차린 호랑이가 발버둥쳤지만 거리를 벌린 네 명은 사람보다 맹수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호랑이의 공격을 피하며 창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호랑이의 마지막 포효가 산속을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새들은 하늘로 날아 올랐고, 모든 동물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먹이사슬의 최강자는 죽는 순간까지 화려했다.

 

 확인 사살을 마친 네 사람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대궐을 제외한 세 사람이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내게로 몸을 돌렸다.

 

 "호허, 호허!"

 

 "감사하다"

 

 "오! 캄사다!"

 

 그들이 내 말에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호허라는 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표정이나 행동으로 봐선 나쁜 말 같진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넸지만 내가 감도 잡지 못하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자 대궐에게 돌아갔다.

 

 네 사람은 나를 묶었던 것과 같은 밧줄을 땅 아래 펼쳤다. 일렬로 늘어진 밧줄 위로 호랑이를 옮긴 후 밧줄의 끝을 묶자 해먹 같은 모양이 되었다. 사냥꾼들의 팔에 난 힘줄이 밖으로 나올 듯 팽창했다.

 

 "으아"

 

 힘찬 기합과 함께 호랑이의 죽은 몸이 바닥에서 멀어졌다.

 

 "취가"

 

 대궐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말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긴 탓에 온몸을 덮고 있던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어깨 쪽에 호랑이의 발톱에 의해 찢겨나간 옷 사이로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평생 흘려본 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피였다. 다행히 내 뇌는 주인의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피 난다고!"

 

 방금까지 호랑이와 싸운 용맹한 용사는 버스에서 이상한 잠꼬대와 함께 눈을 떴다. 어깨의 상처는 지워져있었다.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손에 들린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피를 흘리는 나를 방치한 대궐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학생, 지금 어디에요?"

 

 안내원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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