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별빛 떨어지는 13시에
작가 : 고쿠로상
작품등록일 : 2017.6.4

노재우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는다. 그는 그 화살의 힘에 이끌려 '하늘 위'로 떨어지게 된다. 떨어진 그가 눈을 뜬 곳은 수인족과의 전쟁이 계속되는 인류의 마지막 요새였다.

 
#1 추락
작성일 : 17-06-04 19:37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1013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 추락

 

 새벽 2시. 나는 아직 학교에 남아 있었다. 대학생의 특권이라는 녀석이다.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나는 일반적인 대학생이 아니다. 내 나이 18세. 평범하게 살아왔다면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뭐 하지만 이른바 천재라는 부류다.

 

 하여튼 나는 늦은 밤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학교에서 뻗었다거나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친구도 없거니와 술은 마셔본 적도 없다.

 

 "아... 슬퍼진다."

 

 내가 학교에 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학업의 일환이었다. 내 몇 안되는 취미이기도 한 천체관측을 위해서 학교에 남아 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별을 보기 위해서 학교에 남은 거다. 카메라 영상 촬영이라거나 기록지를 이용하면 직접 별을 보지 않고도 천체관측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눈으로 별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교수님의 천체망원경을 빌렸다. 연구실에 들어가서 그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가는 받았다. 이미 한달을 넘게 계속한 기행이었으니까 다들 이해해주고 있다.

 

 그런 경위로 나는 평소처럼 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눈에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별이 보였다. 혜성인 것인지 아니면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인지 알수 없었지만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만은 확실했다.

 

 새로운 혜성이라도 발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혜성을 학계에 발표하면 혜성에는 내 이름이 붙겠지? 그리고 노벨천문학상... 젠장 천문학에는 노벨상이 없잖아! 뭐 어때 대충 어딘가에서 상이라도 하나 주겠지. 그리고 9시뉴스에 내 이름이 보도되고 나는 일약 대스타가 되는 거야.

 

 그런 말도안되는 상상을 늘어놓고 있자니 그 물체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아주 작은 화살이었다.

 

 미지의 혜성같은 것을 기대하던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그것은 엄연히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였다.

 

 그 화살은 하늘에서부터 비스듬히 떨어져 내려왔다. 곡선궤도를 그려야 정상인 화살이 직선으로 정확히 나를 향해 내려오는 것이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면 당연히 그건 중간에 휘어서 내게 닿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계산과는 다르게 그 화살은 내 눈에 틀어박혀버렸다.

 

 피할 시간은 있었다. 공포도 느꼈다. 하지만 피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화살에 맞았다. 화살에 맞자마자 나는 알수 있었다. 이 화살을 맞으면 '떨어진다' 라고.

 

 눈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경쓸 새도 없이 나는... 하늘 위로 떨어져내려갔다.

 

 ...

 

 위와 아래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한 사람이 아래라고 느끼는 방향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에게는 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아래가 절대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사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이건 절대적인 개념이다. 지구가 끌어당겨서 사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물건이 떨어져 향하는 곳을 아래, 떨어지기 시작하는 곳을 위라고 정의한 것이다. 따라서 사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절대적이다.

 

 다시 위와 아래가 절대적이라면 어떨까? 하는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절대적인 위 아래의 개념이 존재한다면 아래에는 온갖 사물이 모일 것이다. 왜냐하면 떨어지니까.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니까. 심연. 즉 가장 아래의 세계(어비스)에는 온갖 것들이 떨어져 모일 것이다.

 

 이를 테면 세계라던가 하는 것들도 떨어지겠지.

 

 그래. 세계의 위에 세계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상할 것은 없다. 가장 아래에 있는 세계는 모든 것이 떨어져 목표로 향하는 곳이다. 그 어떤 것이 떨어져내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가장 아래세계(어비스)의 주민 '말데이안'은 생각했다. 높이 떠 있는 세계가 부럽다고. 그의 감정은 온통 질투로 휩쌓여 있었다. 누구보다 '하늘의 은혜'에 가까운 세계를 부러워해서 위(엘리시온)로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엘리시온으로는 갈 수 없었다.

 

 질투에 가득 찬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 밖에 없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도 가질 수 없게 하리라.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올렸다.

 

 8개의 세계에 7개의 화살을 쏘았다.

 

 화살에는 '떨어지는 권능'이 깃들어 있어 화살을 맞은 7개의 세계는 추락해버렸다.

 

 7개의 세계가 어비스라는 세계에 추락해 합쳐져 버렸다.

 

 이것이 이 세계 어비스의 내력. 모든 것이, 하물며 그것이 동급인 세계라고해도, 떨어져 향하는 종착지. 어비스는 그런 곳이다.

 

 나는 그런 어비스에 떨어졌다. 눈에 화살이 박힌채로.

 

 눈을 떳더니 왠 화려하게 생긴 방 안 이었고, 나를 주워온 사람은 무려 한 나라의 국왕님이셨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해는 좀 되었나? 재우군."

 

 "네 뭐. 그런데 아저씨? 원래세계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우리도 모른다네. 자네를 원래세계로 돌려보내는 방법은 이 세계 모두의 숙원이지만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네."

 

 왕의 응접실. 화려한 소파와 탁자 그리고 휘향찬란한 조명이 있는 방에서 나는 금이 씌워진 도기잔에 담긴 차를 홀짝거리며 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세계 모두의 숙원?"

 

 "아까 말하지 않았나? 30년 전에 7개의 세계가 추락했다고. 그 세계들은 모두 원래 있던 곳... 엘리시온... 아니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다네. 그리고 그걸 찾게되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이 나겠지."

 

 "전쟁은 또 뭐죠?"

 

 "세계가 떨어지면서 합쳐졌다. 어비스의 풍요로운 땅은 한정되어 있다. 인간들 만으로도 포화상태인 어비스에 이세계인들까지 가세해 인구과잉상태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 말은 살아가기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인간종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연전연패해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한 상태지. 특히나 우리 로세니아 왕국은 지금 왕도만을 남겨둔 상태야. 농지는 완전히 약탈당했고 도시는 완벽하게 포위당한 상태일세. 비축한 식량은 넉넉하긴 하지만 최후에는 멸망할 수 밖에 없지."

 

 절망적인 상황을 입에담는 국왕 - 데인할트의 목소리는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조금은 체념한 듯 보이기도 하는 그는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그는 말을 고르고 골라 내게 질문했다.

 

 "자네가 살던 곳은 어떤 곳이었지?"

 

 그의 질문에는 분명 의도가 있다. 내게 전쟁이라는 상황을 타개할 만한 힘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리라. 당연히 내게는 그런 힘이 없다.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런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난 창문으로는 환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나도 그를 따라 하늘을 보았다. 하늘의 저 끝에는 아주 작게 그것이 보였다. 내가 살던 곳. 바로 지구가.

 

 처음에 물어보기는 했지만 사실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해 보인다. 그냥 저 위로 날아서 올라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의 문명수준을 생각해보건데 로켓이나 비행기가 있을리가 만무하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은 적에게 포위당해 멸망을 앞둔 도시다. 한가롭게 비행기를 발명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시간만 있다면 할 수 있지만.

 

 디젤엔진과 양력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천천히 공작기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연료? 그런건 대충 옥수수에서 추출하면 되.

 

 "자네. 잠깐 이걸 봐 주겠나?"

 

 그는 내게 촉이 없는 화살 한 자루를 내밀었다. 왠지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분명 나는 저걸 눈에 맞고 이 세계로 떨어졌다.

 

 "이건 분명히..."

 

 "그래. 자네 눈에 꽂혀 있던 것이지."

 

 나는 그 말에 내 양쪽 눈을 더듬어 보았다. 화살이 박혀있었을 터인 눈이 멀쩡했다. 어느 쪽 눈도 실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설마 화살이 박힌 눈을 치료했다는 의미일까?

 

 "다친 눈은 회복시킬 수 있었네. 아무리 인류가 벼랑끝에 몰렸다지만 그 정도 역량은 있어. 문제는 그 다음일세."

 

 그는 보여준 화살의 끝, 즉 화살촉이 있어야할 자리를 가리켰다.

 

 "이 화살은 말데이안의 화살이고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할 화살촉에는 '떨어지는' 권능이 담겨있었지."

 

 그러니까 말데이안이란 녀석은 7개의 세계를 추락시킨 것도 모자라 내가 살고 있던 지구마저 떨어뜨리려 했었다는 거다. 그런 와중에 내가 기적적으로 그 화살을 맞아 나 혼자만 떨어졌다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 니 몸에서도 그 화살촉은 찾을 수 없어. 화살은 네놈 눈에 꽂혀 있는데, 화살촉은 없다면 그건 무언가 이상하지. 그래서 조사해본 결과 그 화살촉은 이미 네놈과 동화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세계단위의 질량을 떨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권능이 내 몸에 흡수되었다는 뭐 그런건가? 애초에 세계라는 게 뭐지? 평행우주론에서 말하는 하나의 우주를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너는 분명 '테라' 에서 떨어졌다고 했지? 그렇다면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니가 가는 게 아냐. 테라를 떨어뜨리면 된다. 그리고 떨어뜨린 테라로 돌아가면 되."

 

 "예?"

 

 "못 믿겠으면 직접 해 보던지. 자. 간단한 마법으로 이 화살을 부양시켜보겠네. 한번 떨어뜨리고 싶다고 강하게 소원해보게."

 

 국왕의 손에 쥐여있던 화살이 두둥실하고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던 마법의 상식은 없었다. 주문이나 영창도, 지팡이도 없이 국왕의 사념만으로 마법이 발동되었다.

 

 "뭘 놀란듯이 그렇게 쳐다보고 있나? 다른 세계에 왔다면 다른 능력과 문물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얼른 떨어뜨려보게."

 

 그런가? 하고 나는 잠시 저 화살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상상...

 

 -툭

 

 함과 동시에 화살은 아무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보았나? 이게 자네의 고유권능이야. 몸속에 흡수되어 버린 권능이 자네를 떨어뜨린 것이지. 그리고 그 결과 자네는 다른 것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능을 얻었다. 참으로 간단하지 않나?"

 

 "말도 안되..."

 

 "말도 안되지 않아. 자. 그럼 이제부터 본론이네만..."

 

 "자... 잠깐만요. 어차피 아저씨가 무슨 부탁을 할 지는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로써도 그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죠."

 

 그의 부탁은 간단할 것이다. 수인족을 막아내는데 도움을 달라. 그것말고는 다른 부탁은 있을 수 없다.

 

 "현명하군."

 

 "천만에요. 하지만 제 목표는 원래세계로 돌아가는 거에요. 언제까지고 여기서 전쟁을 할 수는 없어요."

 

 국왕 데인할트가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실 그는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한참을 고민하는 척 하더니 미리 준비해둔 답변을 전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인류의 마법은 아직 쇠퇴하지 않았네. 지난 30년간 오히려 하나의 지평을 더 열 정도로 발전했지. 그러니 자네에게 마법을 알려주겠네. 그렇다면 자네는 그 마법으로 원래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우리는 그 동안 자네의 협력을 받겠네. 어떤가?"

 

 깔끔한 거래다. 더 이상 이견은 없을 것이다. 나는 데인할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하는 문화는 세계가 달라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좋아요. 그럼 그 마법은 아저씨가 직접 가르쳐주시나요?"

 

 "아니. 마법을 가르치는 건 내가 아냐. 그리고 지금 자네가 마법을 배울 것도 아니지. 먼저... 계약조건을 달성해야지 않겠나? 이 도시가 약탈당해 모두 죽어버리면 그 누구도 자네에게 마법을 알려줄 수 없다네."

 

 "..."

 

 살짝 속았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엘리제! 엘리제를 데려오너라!"

 

 국왕은 응접실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곧장 누군가가 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약간 짧은 머리의 소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길게 째진 눈매에는 강한 눈빛이 담겨 있었고, 주황색의 머리카락은 불꽃처럼 타오르듯이 솓아있었다. 한마디로 인상이 강렬한 여성이었다. 가죽으로된 코르셋을 겉옷 위에 걸쳐 몸을 완전히 조이고 있었는데 그것 외에는 완벽하게 움직이기 편한 복장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에는 아주 가느다란 세검이 꽂혀있었다.

 

 "엘리제. 여기 신병이 있다. 데려가서 교육시키도록 하거라."

 

 "예 아버님."

 

 그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 앉아있던 내 뒷덜미를 붙잡고 나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힘이 쎈지 나는 그녀에게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날 왕궁 밖의 연병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작은 검 하나를 집어 던졌다.

 

 "자... 잠깐만 기다려. 너, 저 아저씨에게 아버님이라며? 그럼 공주님인거 아냐? 그런데 어째서 날 끌고 이런델 온거야?"

 

 "신병이라며? 실력을 한 번 보려고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네녀석의 말대로 공주라는 입장이다. 존댓말을 써라."

 

 귀염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여자구만. 생긴건 이쁘장하지만 이런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나고 자란 여자일터이니 여자다움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게 당연한가?

 

 "미안하지만 난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서 존댓말 같은 건 쓸 생각이 없거든?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국왕 아저씨는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다. 그러니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계급사회에 순응할 생각은 없다. 나는 이 나라의 사람도 아니니까.

 

 "약해 빠진 게 건방짐은 하늘을 치솟는 군. 검을 주워라. 맨 손인 녀석을 벨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그녀가 내던진 검을 주웠다. 군데군데 녹슨 곳이 보이는 묵직한 검이었다. 핏자국이 묻어서 몇 명의 생명을 거두어 갔을 것이 보이는 검. 그 생명의 무게가 느껴지는 검이었다.

 

 "그런 검으로 이길 수 있겠어?"

 

 그에 반해 그녀가 든 것은 아주 얇아서 한번 맞부딪히는 순간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아주 연약한 검이었다. 마치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내가 든 검과 부딪히는 그 순간 그녀의 검과 함께 몸도 반토막날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내가 먼저 네놈의 목을 꿰뚫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적어도 동귀어진은 할 수 있겠지."

 

 "흥. 어디 멋대로 해봐."

 

 그녀의 도발에 약이 오른 나는 곧장 검을 들고 가로로 길게 휘둘렀다.

 

 -탓

 

 그녀는 살짝 뒤로 물러나 내 검을 피해버리더니 자신의 검을 찔러왔다.

 

 "우습군. 검을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

 

 그녀의 검의 끝이 내 목에 닿을 듯이 다가와 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가 딱 2cm만 더 검을 찔러 넣었다면 나는 바로 즉사했을 것이다.

 

 "..."

 

 "다시 해볼텐가?"

 

 그녀는 검을 거두며 날 도발했다. 다시 한 번 더 하면 이길 수 있다. 고 나는 생각했다.

 

 내게는 고유권능이 있다. 방금 전 국왕아저씨가 알려준 그것이다. '떨어지는' 권능이다. 그녀의 검을 바닥에 떨어지게 한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이대로 인정할 수 없어. 나는 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여자애라서 봐준거야."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군. 태어나서 검이라곤 잡아본 적도 없는 녀석이 기세는 좋아."

 

 그리고 그녀는

 

 "검은 왼손으로 아래를 잡고 왼손의 엄지와 검을 오른손으로 감아쥐는 거야."

 

 라고 친절한 충고까지 덧붙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말대로 검을 잡았다. 확실히 손에 쥔 검에 들어가는 힘 자체가 달라졌다.

 

 "하아아아앗!"

 

 나는 권능을 사용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검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마법인지 뭔지가 내 권능에 저항한 모양이었다.

 

 -탓!

 

 그리고 아까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내 코앞에 그녀의 검이 내밀어졌다. 이번에는 눈이다. 그녀의 검이 2cm만 더 길게 파고들었다면 나는 눈이 꿰뚫려 한쪽 눈을 잃었을 것이다.

 

 "할 말은?"

 

 "...졌습니다."

 

 "좋아. 이제는 조금 말을 듣겠군."

 

 나는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네녀석이 떨어뜨리는 권능을 사용하는 것 쯤은 알고 있었어. 아버님과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 그렇다면 대응하는 것 정도는 10살 먹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이야."

 

 열살 먹은 어린아이가 검에 하얀 광채를 두르거나 할 수 있는 세계인가요 이곳은?

 

 "대화를 엿듣다니 취미가 참 고상한데?"

 

 "도발하려고 하지마. 당연히 내가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니가 안일한 거니까."

 

 "읏..."

 

 말문이 막혀버렸다. 비장의 무기였던 권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나니 남는 것은 탈력감 밖에 없었다.

 

 "여기는 지옥같은 세계지만 저 괴물들만 몰아내고나면 살아가기 나쁜 세계는 아니야. 더군다나 네녀석의 권능은 꽤나 쓸만하니까 이 세계에서도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겠지."

 

 "그 말은 나보고 이 세계에 남으라는 뜻이야?"

 

 "정답이다. 니가 원래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몰라. 하지만 우리에겐 네녀석의 권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원한다면 집도, 재산도, 반려도 우리가 준비해주지. 저 성벽 밖의 사람같이 생긴 괴물들만 막아다오."

 

 그녀는 군데군데가 허물어져서 수많은 건축가들이 바쁘게 보수하고 있는 성벽을 가리켰다. 성벽에는 수 많은 병사가 늘어서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병사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 그럼 그 연약한 신체부터 단련해볼까? 그런 근력으로는 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나오지 않아. 그리고 속도가 나오지 않으면 힘도 약하다는 뜻이다. 내가 검을 들어 네녀석의 검을 막으면 검을 부숴버리고 날 베겠다는 발상은 좋지만..."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정도로 힘이 약해서야 무게 1kg의 내 검도 부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훈련을 해야한다고? 어이 있어봐, 난 원래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에 들어간 초 엘리트라고? 몸 쓰는 건 내 전문분야가 아니야. 물론 군인이라면 어느정도 체력은 있어야겠지만 난 군인인 것도 아니고 잠깐 전쟁을 도와줄 뿐인 이방인이라고.

 

 "수긍하는 눈치군. 그럼 팔굽혀펴기 100개. 시작해."

 

 전혀 아닌데요?

 

 "앙?"

 

 "꾸물거리지 말고 시작해라!"

 

 나는 마지못해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40개정도 하고나니 온 몸에 땀이 서리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으으으으으윽! 평소에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라고 하면 이렇게... 헥 헥... 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그럼 이어서 윗몸일으키기 150개다. 내가 정한 횟수를 채우면 오늘은 쉬게 해주지. 중간에 실패하면 다른 운동으로 이어갈거야."

 

 "일단은 따라주겠어..."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30개 정도 했더니 복근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 고 비명을 질렀다.

 

 "다음엔 달리기다. 연병장 20바퀴. 쉬지 말고 뛰어!"

 

 정신이 없다. 반항적인 태도를 보일 생각도 못하고 바로 다음 지시를 따르기 시작했다. 연병장은 무지막지하게 넓었다. 나 말고도 수 많은 병사들이 육체를 단련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쟁을 준비하는 병사들. 전쟁터의 한복판. 몇 일 걸러 한 번씩 침공해 올 것이다. 쉬는 시간 따위는 없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늘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며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좀 더 빨리 뛰어! 수인족들은 가볍게 달려도 네녀석이 전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빠르다!"

 

 어느새 엘리제가 내 옆에서 달리기 시작하며 나를 격려했다. 나는 속도를 높이면서 물었다.

 

 "수인족들은 언제 공격해들어오지?"

 

 "모른다. 너는 상대가 언제 공격해올거라고 예고라도 하고 쳐들어올 것을 기대하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뭐... 적어도 어제까지는 적이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겠지만 지금부터는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달리는 속력을 높였다.

 

 그녀의 페이스를 맞춰 달리는 것은 사실상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이.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가빠지는 기색조차 없었다.

 

 나는 연병장을 한 바퀴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져 버렸다.

 

 "팔 벌려 뛰기 1000회 실시!"

 

 그녀는 가차없이 바로 다음 동작을 지시했다.

 

 "처... 천번?"

 

 -퍼억!

 

 그녀는 곧바로 내 배에 펀치를 꽂아 넣었다. 가뿐 숨에 충격까지 더해지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바닥에 쓰러졌다.

 

 "얼빠진 소리 내지마! 닥치고 하라는 데로 해!"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서 팔벌려 뛰기를 시작했다.

 

 "이제 조금 좋은 표정이 되는 군."

 

 악에 가득찬 내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고? 변태다. 그녀는 분명 사디스틱한 변태가 분명해.

 

 "힘드냐?"

 

 "아아! 힘들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는 않아. 네녀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저기 아무 힘 없는 병사들이 살아남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전쟁이란 건 한 두 사람이 강하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네녀석은 인류의 희망이야. 네놈의 그 권능 그건 공성전에서는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네녀석이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남으면 수백 수천명의 목숨이 살아남아."

 

 나는 여전히 팔벌려 뛰기를 하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나는 내 권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기껏해야 화살 한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능력. 이 능력이 수백 수천의 목숨을 살릴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 #1 추락 2017 / 6 / 4 330 0 1013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