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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끝의 시작
작가 : 갈색남자
작품등록일 : 2016.10.11

 
[끝의 시작] 1회 - 아득한 길
작성일 : 16-10-11 17:44     조회 : 493     추천 : 0     분량 : 5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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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의 시작

 

 

 

 

 

 

 1. 아득한 길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선 이 길을 반드시 지나쳐야 한다. 비포장 길 여기저기에 부스럼처럼 작은 차돌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분지분 소리를 낸다. 소로 입구에 일방통행 표지판이 보이지만 차가 나다니진 않는다. 몇 해 전, 휑하니 뽑혀져 있는 표지판을 다시 곧추 세워 놓은 적이 있었다. 패어진 땅을 좀 더 깊게 파고 나서 심지를 굳게 박아 놓았었다. 당시 동행했던 통장의 매제는 내 갑작스런 행동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누가 부러 뽑아놓은 것 같은데요?.”

  내 행동에 뜨악한 표정을 짓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난 미간에 모으고 말했었다.

 “소나무라도 길 주변에 심어 놓는 건 어떨까요?”

 여하튼 아직까지 저 표지판의 형틀은 남아있다. 표지판은 이미 내 등뒤에 있고 좀더 빠르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 외로 틀면 불빛이 하나보이고 그 길을 휘돌아 들어가면 슬레이트 재질의 원통형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곳을 지나치면 집 까진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나는 단내 나는 입가를 한번 쓱싹 훔치고 조금 느릿한 걸음으로 휑하니 달이 비추고 있는 소로를 걷는다. 한 걸음으로 길을 내처 달려오다가, 슈퍼라고 하기엔 볼품없고 구멍가게로 전락시키기엔 제법 구색을 갖춘 이 슬레이트 구조 건물을 지나칠 때면 으레 한숨을 돌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치 기력을 전부 소진한 복싱선수의 맥빠진 카운트 펀치 마냥 비척비척 길을 걷는다.

 골백번, 아니 환산해 보자면 거의 이천 번에 가깝게 이 길을 지나왔지만 이 염병할 버릇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했다. 마치, 금 두꺼비 숨겨놓은 옷궤에 자물통을 안 잠그고 나온 사람 마냥 단박에 산길을 올라오고 기묘하게 뻗어있는 작달만한 소로가 보이고 상호 조차 적요한 느낌이 드는 “박사 슈퍼”가 눈에 들어 올 때면 예의 그래왔던 것처럼 걸음을 반보 늦추고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어 한 모금 진하게 빨아 제친 다음 돼지 멱따는 소리로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린다. 유년기 보조가방과 플라스틱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닐 무렵에도 대로변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후 줄무늬가 아로새겨져있는 자주색 홈스펀 바지를 바투 걷어 올려 부치고 마치 단거리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 듯 미친 척 달리고 했었다. 아마 그때부터 일거다. 싸잡아 무어 에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참말로 이상스러운 것은 이 길을 지나쳐 갈 때면 어딘지 알 수 없는 기운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어떤 기운인지는 모호하지만 무언가 날 계속 잡아당기는 느낌이 있었다. 어딘지 모를 그런 요상한 상념에 빠진다고 할까? 여하튼 그건 어디까지나 습관이며 버릇일 뿐 그것에 다른 의미를 둔다거나, 왜 그런 버릇이 생긴 걸까 하는 의구심 따윌 가진 적 은 없다. 다만 내 범상한 마음속 작은 똬리를 틀고 굼실거리고 있는 무의식이 소리 없이 날 조정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다. 물론 이 역시 근거 있는 해답은 없었다.

 그때 그 시절, 보온도시락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차가운 보리밥을 꺼내 먹으며 즐거워했던 모습, 제기차기, 말타기, 양옥집 초인종 누르고 삽십육계 줄행랑, 치마를 올렸더니 미키마우스 인형 문형의 팬티를 보며 우린 웃고 계집아인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옷소매에 아교를 잔뜩 쳐 발라 놓은 듯 진한 콧물자국, 아 그때 그 시절, 생애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었기에 나는 쉬이 그것을 잊지 못한다. 부러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담배를 대신해 자주색 바지 깊숙이 쟁여놓은 눈깔사탕을 꺼내 입안에 우겨 넣었다는 것과 구색한 유행가 대신 음악시간에 그날 배운 동요를 낭랑한 음색으로 불렀다는 것뿐이다. 어찌 보면 소로는 내게 있어 우스꽝스럽지만 가파른 산등성을 전속력으로 오른 다음 쇠잔해진 육체에서부터 비롯되는 이름 모를 평온함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 들어오게 한다. 휑하니 불어오는 마파람처럼 그렇게 아주 맹렬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 불온한 놈은 나를 농무(濃霧)처럼 질척한 상념의 시제로 빠져들게 한다. 그런 점에서 소로는 아직까지 익숙하지가 않고 외려 생경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요사스러운 빛깔의 근원조차 불분명한 놈은 내 새된 과거를 상기 시켜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에서 가슴 가득 아늑히 느껴지는 안온함이랄까? 초행길에 접어든 사람이 가지는 그런 생경함.

 여러 정황을 따져보기 이전에 내가 왜 그런 버릇을 갖게 됐는지 진위를 따져보면 볼수록 아연해지는 골치와 더부룩한 속내가 역겨운 토악질을 해댈 뿐이다.

 이윽고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담배 한 개비를 미쳐 다 태우지 못한 시간에 집은 이미 저 언덕 끝에 달려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집은 작은 반딧불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 멀리 끄무레하게 불빛이 비치는 곳은 바로 우리 집이다. 돌아오지 않으리라 셀 수 없이 다짐했건만, 이 시각, 어스름이 걷히고 도깨비 발톱 같이 까무룩한 밤이 찾아오면 가사도 명확치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매번 그랬다. 오늘도 난 어깨 죽지와 장딴지에 힘을 뺀 채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기분이 좋을 이유도 없었고 또 그다지 기분이 나쁠 이유 역시 없었다. 여전히 모든 사물은 어제 그대로의 모습으로 눈앞에 어른거린다. 대문 앞 튼실 하게 테이핑을 해놓은 분리수거물의 포즈 또한 어제와 같다. 종이와 폐 휴지더미가 일반쓰레기 더미에 지친 몸을 기대고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

 난 헛기침을 한번 해 보이며 쓰레기더미를 정렬한다. 조금 손을 까불자 철옹성처럼 봉해놓은 줄 알았던 봉지가 맥없이 찢어졌다. 음식 찌꺼기가 들어있는지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이런 염병할...』

  난 누구 에라 할 것이 욕을 한번 걷어 올려 부치고 나서 손을 한번 쓱싹 털었다.

  모든 것이 어제 그대로인데, 쓰레기 봉투 네가 세상을 깨뜨려 놓았다는 듯,알 수 없는 분연함이 치밀어 찢겨진 봉투를 단단하게 묶고 다시 또 단단히 포박시킨다.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은 어제 그대로였고, 어제 느낌 그대로였으며 난 여전히 세상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밤엔 군불이 꺼져 방문 틈 사이를 뚫고 스멀스멀 기어 들어온 냉기로 가득 찬 방안 허망하게 솟구치는 담배연기는 금세 기류에 융화하며 춤사위를 버렸다. 갈지자로 뻗어나가는 연기를 보며 바닥종이에 괴발개발 썼던 시 구절을 떠올려 보려 미간에 힘을 모은다. 그러나 이내 입을 맵게 다물고 고개를 돌린다. 작은 철문 바로 상단에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문패 하나가 보인다. 자의 획이 떨어져간 모습은 꼭 알아보기 힘든 고대문자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쨌든 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난 언제나 그렇듯이 알알한 상념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을 느낀다. 부식되어 곳곳이 찢겨진 철문이 바로 냉담하고 무정한 현실과 소통하는 세계다. 어머니가 생각나고, 쉐쉐 거리는 심약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떠오르고 삼수생 남동생 혁성이가 눈에 거슬린다. 또 오늘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난 다시 집 앞에 당도했다. 다시금 누추하고 볼품없는 얼치기 한 명이 철문을 초점 잃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란 놈은 어찌된 놈인지 현실에서의 도피도 발악적인 일탈도 꿈꾸질 못한다. 나란 놈은 워낙 못났다. 빌어먹을 유행가도 떠오르지 않는다.

 심호흡을 해보며 문을 조심스레 밀자 심한 마찰음에 일순 소름이 돋는다. 안방 불은 꺼져 있고 혁성이 방 역시 어스레하긴 마찬가지다. 새벽「두시 십분」괘종시계를 핼끔 쳐다봤다. 교묘하게 분침을 덮고 있는 시침을 멀끔히 한번보고 나서 노루발로 사분사분 걸어 문풍지가 갈기갈기 찢긴 내 방문을 열고 기계적인 동작으로 스탠드 불을 밝히자 협소한 방은 한눈에 들어찼다. 어제 그대로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제와 달라진 건 없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혁성이도 내 방을 방문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내가 방에서 목매달고 죽는다 한들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는 적어도 내 몸이 썩어 진한 악취가 풍겨 나왔을 때 그러니까 사후 사나흘이 지나 염습을 치를 시기를 놓쳐버린 그 때쯤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속옷 가지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개켜지지 않은 주황색 솜이불도 거치적거리고, 그 옆에 재생과 되감기밖에 작동되지 않는 구식 카세트가 있었으며 그 바로 옆에 정렬되지 않는 노래 테이프들이 제각기 춤을 추고 있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읽을 만한 책도, 날짜가 많이 지난 신문도 없다. 이 방안에서 무엇인가 눈요기를 찾는다는 건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비키니를 빼 입은 늘씬한 여자를 찾는 것과 맞먹는 일이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담배를 태우고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아무렇게나 누워서 내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오늘 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모로 누웠다가 정(正)자로, 대(大)자로 눕기를 반복하다가 ‘끄응끄응’ 신음소리도 내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험하게 뜯어보기도 한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벌써 새벽 4시였다. 시계를 보자 갑작스레 정신이 혼몽해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정신이 시각을 확인하면서부터 어떤 기운에 이끌렸는지 모를 피로가 밀려왔다. 만일 지금 시간이 세시였다면 난 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그렇지만 시침이 늦은 새벽으로 향해 있으면 쌩쌩하다가도 괜한 피로감에 빠져든다. 기이한 현상이다. 만약 시계가 없었더라면 영원히 잠들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해볼 정도였으니. 세탁한지 일 년도 훌쩍 넘겨버린 주황색 이불을 부여잡자 피곤은 곤죽이 되어 어깨와 팔 다리 몸통을 무겁게 감싸 안는다. 알알한 흥취에 빠져 가만히 눈을 떴다가 감아 본다.

 「박 하 군」

 이름 석 자가 흑판에 새겨진다. 손을 누가 까부는지 모를 일이지만, 너의 이름을 누군가 백묵으로 적고 있었다. 하군 이가 떠오른다. 하군 이가 내게 웃어 보인다, 내게 손짓을 한다.

 난 얼른 미간에 힘을 모으며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쳐 보인다. 혼미한 정신에 이것저것 떠올려 본다. 내일은 또 어디서 무엇을 할지 확연치가 않다. 또 어디서 설운 눈자위를 비비고 있을까. 부나비처럼 도심을 걷고 있을까. 아니 멸시받는 각다귀처럼. 그래, 내일의 일을 미리 짐작해 보는 일 만큼 아연해 지는 건 없다. 다만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끈끈하게 점철시켜온다. 갑갑증을 느끼게 하는 그 무형의 덩어리는 차츰 선명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눈을 감고 그려본다. 007가방을 한 손에 다른 한 손엔 고급브랜드의 코트를 팔걸이에 올려놓고 도심 속에 아니 군중 속에 빛나고 있는 나를…그러나 곧 감은 눈을 세차게 뜨고선 망연한 시선을 누런 천장에 회갈색 빛을 띠고 달려있는 형광등에 가져간다.

 잠시 동안 형광등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자 빛의 잔영은 내 각막에 인두를 찍어 잠시 동안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지만 빛줄기가 그대로 붙박여 있다. 난 또 다시 골똘한 상념에 젖어든다.

 ‘난 그럴 수 있어. 암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난 할 수 있어! 난 취직할수 있어.’

 공막 하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황량하고 적막하고 그래서 으스스 온몸이 냉기로 가득 차는 그런 기분.

 ‘그래 일자리를 구하자, 어서 빨리 돈을 벌어 이 동굴 같은 방안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스르르 눈이 감겨 왔다.

 『지지지 지직 지직』

 라디오 주파수가 제대로 맞질 않았다.

 공중파 라디오 방송을 들을 요량으로 얼결에 손을 뻗었지만 제대로 주파수를 맞추질 못했다.

 눈을 뜨고 라디오 주파수를 제대로 맞춰야만 한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지직 지지직 삐이이이이』

 거북살스런 소음이 귓전에 거슬린다.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이제 어둠이고 고요다

 종내는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누군가 내 방을 방문했다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감은 눈은 도시 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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