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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당신을 위한 메이트
작가 : 여운
작품등록일 : 2016.9.30

25살 취준생, 김정연. 너무나 퍽퍽하고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아왔다. 꿈도 없고, 돈도 없고, 미래도 없는 평범한 백수다. 그런 그녀 앞에 특별한 사람이 나타난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남자, 한선율. 그를 만난 이후로 그녀의 삶은 매일이 스릴 넘치고, 생기 있고, 달달해진다. "당신 존재가 나한텐 드라마예요." "그럼 당신은 내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네요." 정연은 선율 덕분에 항상 배우고, 위로받고, 설렌다. "어쩌죠? 정연씨 얼굴과 마음, 뭐가 더 예쁜지 구별을 못하겠어요."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 말로 하면 안 들을 거예요?
작성일 : 16-09-30 20:34     조회 : 434     추천 : 0     분량 : 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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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빨간 하이힐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로등 불빛마저 드문 어둑한 골목길이다. 술에 취한 건지, 높은 구두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 여자의 발과 하이힐이 자꾸만 뒤틀리는 것이 위태로웠다.

 

 “흑....흡...끄억, 나쁜 자식, 더러운 자식!”

 

  여자는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리며 울먹거렸다. 진한 화장마저 번지게 하는 눈물을 삼키느라 시원히 소리도 못 지르고 작게 욕설을 뱉어냈다. 울음을 그만 마무하러 숨을 거칠게 쉬는데 뭔가 이상했다. 점차 사그라드는 끅끅거리는 소리 사이로 일정하게 남자 구두 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높은 하이힐 소리와 달리 둔탁하고 무게 있지만 또렷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생각해 보니 클럽에서 나올 때부터 저 구두 소리는 여자를 계속 따라왔다. 입구에서 친구와 헤어질 때 흰 셔츠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남자를 얼핏 봤던 것 같기도 하였다. 잠깐은 길이 겹칠 수도 있지만 벌써 이 으슥한 동네를 걸어온 지 20분 째였다.

 

 ‘아이씨, 이거 변태 새끼 아니야? 어떡하지...’

 

  여자는 이제 울음을 완전히 그쳤다. 티가 안 나도록 뒤를 살짝 돌아보니 키가 상당히 커 보이는 남자의 형체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거리는 5m도 되지 않았지만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자에게 허락된 것은 새어나온 가로등 불빛에 약간 드러난 바짓자락과 흑갈색 구두 뿐이었다. 여전히 구두 소리는 무섭도록 균일했다.

 

 ‘정신차려, 김정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눈을 부릅뜨며 땀으로 흥건한 손 안으로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쥘 때 저만치 ‘해운빌라’가 보였다. 이제 몇 발자국 더 가면 드디어 홈 스위트 홈이다. 정연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발을 빠르게 놀렸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서 빌라 1층 현관 키 앞에 도달했다. 그런데 뒤의 구두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고요한 밤공기 안에서 구두와 땅의 맞물림은 정연을 향해 다급하게 덮쳐왔다.

 

 ‘미치겠네,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는 거야?? 이 빌라 사는 사람인가? 아니지, 내가 여기 주민들 다 알고 있는데...... 비밀번호 누르면 따라 들어오는 거 아니야?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정연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은 울상이 되고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번호 키를 향한 덜덜 떨리는 손은 공포에 짓눌렸다.

 

 “저...”

 

  이때 남자의 손이 정연의 왼쪽 어깻죽지를 부드럽게 덮쳤다. 무색의 아득한 밤 안에서 무방비했던 정연의 어깨는 소스라쳤다. 온 신경과 감각과 전율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왔다.

 

 “으아아아아아악!!!”

 

  두려움에 잠식되어 묶여있던 정연의 모든 세포와 근육들이 한 번에 터져나왔다. 감당 못 할 수준의 공포에 이성이 마비된 그녀의 눈에는 지금 뵈는 것이 없었다. 정연은 온 몸으로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손에 집히는 모든 것으로 남자를 때리다 빌라 앞에 누군가 버리려고 내놓은 고풍스러운 액자를 들고 내려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극한의 상황까지 간 그녀의 힘은 엄청났다.

 

 “으아아악! 아니, 왜 이래요?? 으악!!”

 

  남자는 손으로 정연을 막으며 뒷걸음질쳤다. 정연의 손에 들린 액자를 멈추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였다. 비명소리에 주변 빌라들의 불은 하나 둘씩 켜지고, 해운빌라의 주인아주머니가 뛰쳐 나왔다.

 

 “아이고, 무슨 일이야 이게?!”

 

  이때 액자에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던 검은 독수리 장식에 남자의 머리가 정통으로 맞았다. 남자는 머리에 손을 얹으며 비틀거렸다.

 

 “어머 얘, 너 선율이 아니니?”

 

 암막 속 흐릿한 손전등 빛으로 잔뜩 찡그러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아주머니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선율이요? 그게 누군데요? 이 사람 변태...”

 

  드디어 정연이 주춤거리며 액자를 멈췄다.

 

 “내 친한 친구 아들인데, 오늘부터 입주하기로 했어.”

 

 “뭐라구요??!”

 

  아주머니의 말에 정연의 눈동자는 혼돈에 빠져 흔들렸고, 그 속에서는 미안함과 또 다른 의미의 두려움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애써 불길하던 공기의 흐름을 외면했지만, 정연은 이제 자신이 대형사고를 친 것을 받아들였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두 손은 이미 공손하게 모아져 있었다.

 

 “당신...!!”

 

  남자는 서있기도 힘겨워했다. 잘 가눠지지도 않는 손가락이 거칠게 정연을 향했다. 삿대질을 한 채로 띄엄띄엄 내뱉어지던 말의 숨이 흐려졌다. 곧 무너질 탑처럼 위태로워 보이던 남자는가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순식간에 쓰러졌다.

 

 “어머나!”

 

 “어떡해!!”

 

  정연은 남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당황하여 부들거리는 손길로 남자의 몸을 흔들었지만,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정연의 손이 남자의 머리를 더듬거릴 때, 축축하고 끈적한 것이 묻어나왔다. 붉은색 액체가 정연의 손끝을 따라 섬뜩하게 흘렀다.

 

 “아줌마, 119좀 불러주세요!! 빨리!”

 

 

 

 

 

 

 

 

 

  진청바지의 다리가 흰 커튼 앞에서 바쁘게 배회했다. 정연의 손톱은 잘근잘근 물어뜯기며 혹사당하고 있었다. 즉시 119를 부르고 병원에 오기는 했지만, 혹시 심한 뇌출혈이면 어쩌나 불안하고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진찰을 기다릴수록 정연이 흰 복도 위에서 홀로 서성이는 속도는 빨라졌고, 미안한 마음은 걸음마다 불어났다. 지나가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모두 이제는 하다못해 팽이와 물아일체가 된 듯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정연을 한 번씩 쳐다보고 갔지만, 그녀는 지금 그들을 눈에 넣을 겨를도 없었다.

 

  “한선율씨 보호자 분?”

 

 드디어 차트를 든 의사가 커튼을 열고 나왔다.

 

 “네, 저요! 어떻게 됐어요? 심각...한가요?”

 

 당장 의사 앞으로 바짝 달려간 그녀는 반가움과 불안감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니요, 머리는 겉만 살짝 찢어졌고요, 팔이랑 어깨 쪽에 약간의 타박상입니다. 하루 정도 푹 쉬고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의사는 간단한 목례를 하고 정연 앞을 스쳐갔다.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온 몸의 기운이 쑥 빠져나가고 안도감과 함께 서서히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다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병원 침대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선율이 머리에는 거즈를 붙이고 긴 속눈썹을 덮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창백하지는 않지만 흰 편의 건강해 보이는 피부는 광대뼈 부근의 시퍼런 멍을 가히 돋보이게 하였다. 찢어져 피딱지가 내려앉은 입가와 고됨을 보여주는 듯한 헝클어진 검정 머리카락은 깡패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해도 믿을 만한 몰골이었다. 정연의 죄책감은 파도처럼 밀려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를 애워쌌다. 그를 치한으로 오해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처음으로 무고한 사람을 심하게 폭행해 본 것의 충격으로, 정연의 자아는 가슴에 뚫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구멍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차마 선율의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서 정연은 고개를 푹 숙이며 시선을 돌렸다.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사람을 이렇게나 폭행하다니, 미쳤어 김정연. 넌 이 남자가 폭행죄로 경찰에 신고해도 할 말이 없다.’

 

  자책 속에 계속해서 자신을 담금질하며 혼자 상념에 빠져있던 정연의 큰 눈이 갑자기 두 배가 되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접촉에 온 몸의 감각과 근육이 경직되었다. 고개를 돌리니 선율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힘없는 손목을 거칠게 부여잡고 있었다.

 

 “당신... 뭡니까?”

 

  선율은 지금 정신이 아득했다. 눈을 뜨니 보이는 밝은 흰색 조명, 희미하게 맡아지는 소독약 냄새,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의사들의 목소리로 보니 이곳은 병원이었다. 자신이 지금 왜 여기 와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보니 아까 어떤 여자한테 말을 걸려다가 한참을 두드려 맞은 것이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이번에는 엄마의 절친하신 친구인 미숙 이모가 하시는 ‘해운빌라’에서 머무르려 짐을 풀었다. 홍대 클럽 앞에서 친구를 잠깐 만나 빌려주기로 했던 옷을 건네주고, 다시 빌라로 가는데 앞에 가는 여자와 자꾸 길이 겹쳤다. 으슥한 동네라 속도를 갑자기 바꾸면 무서워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그런데 여자가 해운빌라로 뛰어갔다. 같은 건물 사는 이웃이라니 반가워서 말을 걸려고 하였는데 여자가 엄청난 비명을 질러대며 주먹을 날리고 액자를 마치 무기처럼 휘둘렀다. 그 뒤로 한참을 피하다가 머리를 굉장히 세게 맞은 뒤로부터는 기억이 없다.

 

  상황 파악이 어느 정도 된 후 주위를 둘러보니까 바로 오른쪽에 한 여자가 서있었다. 어두워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곱슬기 있는 긴 머리와 아담한 체형이 분명 아까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던 그 여자였다.

 

  축 늘어진 손목을 세게 잡아채자, 여자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율은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들이 폭풍처럼 몰려온 놀라움으로 순식간에 흩어져버린 정연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만을 사이에 둔 채 오랜 정적이 흘렀다. 선율은 아직 정연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정연의 갈색 눈동자에서는 감정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놀랐던 눈빛이 차분해지더니 서서히 두려움으로 예열되었다. 그것은 죄를 뉘우친 채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가해자의 눈과 완벽히 같았다.

 

 “아까는 왜 그랬어요?”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선율의 목소리에, 이번에는 정연의 얼굴 전체에 의아함이 담겨 넘실거렸다. 그녀는 꾸중 받아야 할 아이가 꾸중을 받지 않아 어리둥절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율로서는 가려지지 않고 꾸밈없이 드러나는 솔직한 눈빛에 목소리가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감정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눈동자에는 미안한 마음이 항상 깔려 있었고, 선한 눈매의 끄트머리가 죄책감으로 떨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잘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아이만큼이나 천진한 그녀의 모습은 화를 내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대답 안 할 거예요?”

 

  선율은 계속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서 멍하니 있는 그녀를 재촉했다. 하지만 전혀 다그치는 말투가 아니라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을 정중히 부탁하는 신사적인 말씨였다.

 

 “그게...”

 

  정연의 입은 벙긋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벌어지지도 못했다. 사실 선율과 눈을 마주했을 때부터 말문이 막혀버렸다. 처음의 몽롱함과 미세한 분노가 걷어진 그의 눈동자는 삶도, 바다도 담고 있을 정도로 깊었다.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으로 빛났고 한없이 깊지만 끝이 보이는 바다처럼 맑았다. 또한 선율의 눈빛은 따뜻한 옷을 입은 바위처럼 믿음직하면서도 온화하여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였다. 눈빛만으로도, 그는 특별했다. 그런 선율이 지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길로 정연의 안색을 살피고, 눈을 관통하고,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에도 침묵을 지키는 그녀 앞에서 그의 인내심이 점점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조바심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선율이 더 이상 기다리기 전에 빨리 대답을 해야 했다.

 

  정연이 드디어 입을 벌리면서 목에 힘을 주었을 때, 선율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고 이마에 갈매기 자를 그리는 주름이 잡혔다. 그는 순식간에 침대 위로 정연을 당겼다. 여전히 잡혀있던 정연의 손목은 완전히 선율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당황스러운 충격에 휘청거리던 그녀의 몸이 선율 위로 넘어졌다. 정연의 손은 선율의 가슴 위로 올려졌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턱을 간질이고 서로의 속눈썹이 한 올씩 보일 만큼 두 사람은 가까웠다. 정연과 선율의 몸은 완전히 밀착했다. 불안정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연이 떨어지지 않도록 선율은 그녀의 허리에 가볍지만, 흐트러짐 하나 없이 손을 올렸다. 정연의 첫 마디가 채 나오기도 전이었다.

 

 “미안해요. 그쪽 가까이로 가고 싶은데, 움직이기엔 몸이 좀 불편해서요.”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선율이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주변 사람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는, 그녀만을 향했다. 제법 무례한 행동을 했음에도, 그의 음성만은 하나 뿐인 왕자님께 프로포즈를 받는 공주가 된 것 같은 환상을 일으킬 정도로 다정했다. 너무 놀라 소리 지르려 벌어지던 정연의 목구멍을 저지하기에 충분하였다. 곧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봄바람이 살랑거려서 그녀의 머리칼마저 간지럽혔다.

 

 “아니요, 저 때문에 다치셨는데요. 죄송합니다.”

 

  정연은 선율의 몸에 있는 상처들만을 눈에 담고 애써 일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 특히 고요하도록 푸르른 그의 눈과 너무 가까웠다.

 

 “드디어 말했네요.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선율의 입가에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 사실 약간 입 꼬리만 올린 것이 다였지만, 물결치며 휘어지는 눈매, 흰 얼굴을 더 환하게 하는 청량한 음성, 연분홍빛 생기를 담는 입술은 정연을 향해 터져서 심장을 톡톡 건드렸다.

 

 “이, 이제 이것 좀 놔주실래요?”

 

  정연이 볼이 발그레 해진 것도 모른 채 허리에 얹혀 있는 선율의 손으로 눈짓을 하며 말했다. 이 남자를 만난 뒤로는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정연의 삶에 끼어들어 자리한 특별함에 그녀는 지금 잔뜩 움츠러들었다. 이 신비롭고 잘생긴 남자가 또 무슨 일을 할지 아직 설렘보다는 낯설음이 더 큰 정연의 방어 본능이 작용하였다.

 

 “그러게......”

 

  선율은 손에 더 힘을 주더니 아예 한쪽 팔 전체로 꽃잎이 이슬을 품듯 정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왜 대답을 일찍 안했어요. 말로 하면 안 들을 거예요? 어린애도 아니고.”

 

  선율은 장난기 품은 눈을 정연과 맞추었다. 하얀 수란 꽃 같던 그는 지금 흰 장미였다. 다만 가시 대신 물길이 솟아나와 정연의 마음을 감싸고, 간질이며 틈을 찾아 파고들었다. 그녀가 끝까지 잠길 때까지, 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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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말로 하면 안 들을 거예요? 2016 / 9 / 30 435 0 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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