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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새 세상
작가 : 지니0
작품등록일 : 2022.2.13

'새 세상'은 핵전쟁 이후. 지구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두 세계, 화이트마타와 그레이마타. 그 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기적 문명의 실체를 그린 SF스릴러 작품이다. 인간 안에 내재된 자유와 존엄에 대한 갈망,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신인류의 음울한 단면 그리고 우생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선별해 종의 영속성을 추구한 설계자가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 그려보았다.

 
제 1 화
작성일 : 22-02-13 15:11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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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핵폭발 아포칼립스 이후, 지구에는 두 개의 문명이 존재했다.

 발달된 과학문명을 기반으로 로봇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도시국가, 그레이마타. 그리고 모든 게 부서지고 폐허가 되어버린 땅, 화이트마타. 화이트마타의 경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과 메마른 대지, 가파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설커스가 자리했다. 그레이마타와 화이트마타. 두 세계는 마치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이상과 절망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화이트마타에 사는 인간들은 그레이마타 시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인 땅에서 자란 식물을 먹었고,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을 사냥했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루고 사는 그레이마타 시민들에게 화이트마타 주민들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원시 동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이트마타 주민들은 그레이마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이기도 했다. 그레이마타 제반 시설과 기계설비, 유통과 통신에 필요한 광물인 니오븀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화이트마타였고, 유독가스와 곳곳에 추락의 위험이 숨어 있는 광산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화이트마타 주민들 뿐이기 때문이다.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화이트마타.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건축자재와 방수포, 나무껍질, 천으로 뒤덮힌 건물에서 간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칼시토와 그로스

 

 [그레이 마타. 칼시토의 집]

 

 먼지 낀 창으로 희뿌연 빛이 비치는 방안. 칼시토와 그로스는 나무탁자에 마주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뒤로 빼곡히 채워진 책장과 그림들이 보였고, 좁은 방 한쪽에는 색색들이 퀼트 이불에 감싸인 침대가 있었다. 7살 그로스는 곰 인형을 가슴에 안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를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그건 나쁜 짓이잖아요?”

 그로스가 따지는 투로 물었다. 순수한 어린아이만 보여줄 수 있는 천진난만한 눈빛을 하고서.

 "그래. 맞아.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을 괴롭히면 나쁜 짓이지."

 "만득이가 훨씬 어른인데…"

 "그래."

 "불쌍해요."

 "응."

 "거지라서 괴롭힘을 당하는 거예요?"

 "아마도."

 "나빠."

 "그래. 가진 게 없다고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건 정말이지 비겁한 짓이란다. 그런 인간은 나중에 꼭 벌을 받게 되지."

 "정말이요?"

 "그럼."

 "누가 벌을 주는데요?"

 "스스로가 끌어당긴단다."

 "부메랑처럼 요?"

 "그래. 악행도 부메랑과 같다. 반드시 처음 위치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로스는 칼시토의 설명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무조건적인 신뢰가 담긴 눈빛을 반짝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서 만득이는 어떻게 됐어요?"

 "만득이는 동네 꼬마들이 아무리 놀리거나 때려도 한 번도 울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어. 항상 웃고 다녔어. 제 몸의 반도 안 되는 꼬마들 뒤를 졸졸 따라 다녔지. 매일 아침 동네 어귀에 서서 아이들이 학교 길을 따라다녔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업이 끝난 아이들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했단다. 걷기 싫다고 업어 달라고 보채는 아이가 있으면 업어주기까지 했지."

 "나 같으면 미워서 안도와 줄 텐데."

 그로스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고 칼시토가 흐뭇하게 웃었다.

 "할아버지가 말했잖아. 만득이는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보살폈단다."

 "만득이는 착해."

 "맞아. 선한 인간이지."

 "만득이는 선물을 받아야 해요. 이만큼."

 그로스가 두 팔을 크게 벌려 원을 만들었다. 칼시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 모두 만득이를 사랑했어. 가끔 짓궂게 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사랑한다면서 왜 짖궂게 대해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그래."

 "칫, 바보들. 그게 얼마나 쉬운데"

 그로스가 제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칼시토가 아이의 말을 되뇌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마음 속 목소리를 듣지 못한단다."

 "왜요?"

 "눈에 보이는 외양에 정신을 빼앗겨서 그렇다."

 "전 안 그럴 거예요."

 "그래?"

 "진 언니가 가르쳐줬어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되요. 이렇게요."

 그로스가 배꼽 아래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칼시토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이가 내쉬는 숨소리에 맞춰 잔잔한 공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칼시토?"

 "응?"

 "내일 또 작업하러 가요?"

 "아마도,"

 "저는 언제부터 가요?"

 칼시토가 눈을 떴다. 그로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글쎄, 넌… 아직 어려."

 "하지만…"

 그로스가 실눈을 뜨고 칼시토를 바라보았다. 레오 얘기를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레오가 자기와 동갑이라는 걸 칼시토가 모를 리 없었다. 레오와 그로스를 포함한 자이러스 마을의 아이들은 매일 폐 공장에 모여 칼시토에게서 역사와 수학을 배우고 있었다. 그로스는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나을 때도 있다는 걸 알 정도로 영리했다. 짐짓 아무렇지 않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럼, 이따 숙제 다하고 놀다 와도 되죠?"

 "어디로?"

 "저 번에 봐둔 동굴에 가 보려고요."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알아요. 근데, 오늘 저녁은 뭐예요?"

 "글쎄다. 아침에 먹다 남은 걸로 스프를 만들어 먹을까 하는데."

 그로스가 대번 인상을 구겼다.

 "으으윽…"

 칼시토는 못 본 척 방을 나섰다.

 

 

 :::

 

 

 라마

 

 [파리에탈 지역구. 의원의 집무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아침. 파리에탈 경찰서장 라마는 옷을 꺼내 입으면서 파리에탈 지역구 최고의원과 제1보육원장이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파리에탈 의원이 원장에게 물었다.

 "네, 현재까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성장이나 체력 발달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 보육원에 있는 그레이마타 기원 56기 출생 아이들 1백 5십 명 모두 성격 특성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인간 유형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5개 범주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 정신 발달 연구 분야의 박사이자 제1집단보육원장이 대답했다.

 "모두 배아시기부터 신경 형성을 조절하였고, 출생 후에는 정기적으로 흥분 교감 신경 전도 차단제를 투여합니다. 이런 예방 의학 덕분에 질병이나 폭력범죄 수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레이마타 구성원 모두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레이마타는 교육, 사회 질서, 의료 면에서 이상적인 단계에 다다른 셈이죠. 아 참, 이곳 집단보육원에서 출신 아이들이 유전적 특성에 기반한 전문화 교육이 잘 되어 실무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흠, 그러니까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완벽한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원장은 자부심과 긍지로 충만해 보였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습니까?"

 순간 원장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먼저 입을 벌리고 망설이다 대답했다.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반사회적 행위를 벌일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이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의원이 원장실 방에 설치된 모니터를 확대해 들여다보았다. 보육원 로비에서 5세에서 18세 사이의 아이들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로비는 가운데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 방사형 모양으로 오락실, 도서관, 댄스 실, 상담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라마도 영상을 통해 아이들을 보았다. 새하얀 단체복을 입고 비슷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 너무 완벽하고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아이들은 딸기맛 아이스크림이 주는 행복감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독사를 보면 피해야 내가 안전해진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인간으로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도시의 안정 중 무엇이 중요한가?'

 라마가 옷을 다 차려 입고 도우미 로봇 젠에게 물었다.

 "젠. 원장에 관한 영상은 이게 다야?"

 "127개 더 있습니다. 이것도 마저 틀까요?"

 "너무 많군. 최근 2년 내 것만 골라서 보내줘."

 "네. 라마. 지금 막 보냈습니다."

 라마가 손목에 찬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근데 어째서 사건 현장 영상은 없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라마는 의아했다. 보통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 영상을 먼저 받아볼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네. 그리고 라마. 차는 주차장 출입구 바로 앞에 대기 시켜 놨습니다. 바로 츨발하시면 5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실 겁니다."

 "고마워, 젠."

 "별 말씀을 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라마가 현관 문을 열고 나서자 젠이 스르르 움직였다. 거실과 현관 사이 자신의 충전 스팟으로 들어갔다. 젠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그러자 집안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소등되었다.

 

 

 :::

 

 

 화이트마타 주민들

 

 [화이트마타. 광산 지대]

 

 끝도 없이 이어진 협곡은 안개에 싸여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용 같았다. 협곡을 따라 화이트마타 인근 마을에서 나온 주민들이 거대한 굴착 로봇기계가 파낸 암석더미에서 구슬 알갱이처럼 반짝이는 돌멩이를 주워 담고 있었다. 주민들은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모두 낡은 옷을 입고 조잡해 보이는 마스크와 스카프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다.

 20대 건장한 청년 로튼의 모습도 보였다. 암석을 파헤치다 흙무더기에서 주운 곰 인형 하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적어도 100년은 되어 보였다. 한참을 털어내고 어깨에 매고 있던 천가방 안에 넣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오색빛깔의 머리띠를 한 카파가 다가왔다.

 “이거 방금 주웠는데, 어때, 근사하지?”

 그가 가죽 끈을 목에 걸고 피스를 외치는 록 가수처럼 손가락 세 개를 세우며 포즈를 잡았다.

 “개 목걸이 아냐?”

 카파가 화들짝 놀랐다.

 "뭐?"

 “완전 어울리네.”

 카파가 못마땅한 얼굴로 가죽 끈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손목에 감았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개폼을 잡기 시작했다.

 “나 레아 같지 않냐? 춤, 노래 다 되는…”

 "여자 아냐?"

 "성전환했대. 지난 주에"

 카파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근데 저것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100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 그늘 아래 헥터와 그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녀석이 바지 속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게 얼핏 보였다.

 “저렇게 모여 있다 그레이 놈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로튼은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다 다시 작업을 몰두했다.

 “헥터 패거리들 말이야, 너무 해이해져 있단 말이지. 지난번에 설커스 마을 애들하고 패싸움 벌인 것도 그렇고, 지하창고에서 빙(ice) 훔쳐서 빨다 들킨 일도 그렇고, 사촌 동생만 아니면…”

 “너는 저 나이 때 얌전했냐? 괜히 싸움판에 끼어서 얻어터지고, 여자라면 사족 못 쓰고 앞뒤 안 가리고 들이대기나 하고…”

 “여자? 내가 언…”

 로튼이 넌지시 그를 쳐다보았다. 카파가 발끈했다.

 “야, 그땐 네 여자 친구인지 모르고… 새끼, 너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죽을 때까지 안 잊어. 내가 화장실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언제쯤 나가줘야 네가 덜 무안해 할까….”

 로튼이 킥킥거리자 카파가 그의 배에 펀치를 날렸다.

 “이 자식이, 내가 이번에 무아(종합격투기. 무에타이, 주짓수,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를 조합한 무술의 일종) 테스트 통과했는데, 어디 한 번 붙어볼래?”

 로튼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챔피언인 나한테? 너 진심이냐?”

 “예전 카파가 아니라고. 이젠 절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좋아. 대신 이기는 자가 공동 샤워장 일주일 이용권 갖기.”

 “콜!”

 카파가 두 주먹을 쉭쉭 흔들며 요란스레 발재간을 부렸다. 반면에 로튼은 조용히 자세를 잡고 공격에 대비했다. 카파가 상체를 돌려 무에타이 식 발차기를 날렸다. 로튼은 허리를 제쳐 가볍게 피했다. 다시 카파가 반대 방향으로 다리를 뻗으려는 순간 펑, 하는 폭발 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이 일었다. 불과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로튼과 카파는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몸을 낮추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라 납작 몸을 엎드렸다. 연기 속에서 깃발 같은 물체가 공중에서 펄럭이다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레이마타 관리직원 4명이 폭발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가장 먼저 로튼과 카파가 폭발 지점으로 달려갔다. 뒤이어 사람들이 그들의 뒤로 몰려들었다. 10살 남짓한 꼬마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아이의 한 팔은 떨어져나갔고 한쪽 다리 무릎 뼈 부위가 뒤틀린 상태로 등허리에 깔려 있었다. 지뢰 폭탄이 아이의 몸뚱이를 찢어놓은 것이다. 너무나 처참한 그 모습에 화이트마타 주민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선글라스를 쓴 관리 책임자가 말했다.

 “뭐야, 씨… 아직 꼬마잖아.”

 현장 주변을 돌아보고 온 다른 직원이 말했다.

 “이상 없습니다.”

 “물건은 다 그대로고?”

 “네.”

 책임자가 바닥에 침을 뱉고 쓰러진 아이를 한 발로 툭 건드렸다. 아이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재수 없게…”

 선글라스가 중얼거렸다. 로튼은 꼼짝하지 못했다. 카파는 차마 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때 몰려든 사람들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레오! 레오!”

 그가 아들의 곁으로 달려가려하자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책임자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얼른 눈에 안보이게 치워버려.”

 로튼이 홱 그를 쳐다보았다.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선글라스의 멱살을 잡았다.

 “너, 너 뭐야… 이 새끼가 미쳤나?”

 선글라스가 허리참에 찬 진압봉으로 팔을 뻗으려 했지만 로튼의 성난 주먹은 그보다 빨랐다. 한 대, 두 대, 석 대. 로튼은 선글라스의 입술이 터지고 고막이 찢어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성난 로튼은 얼음벽을 깨뜨리고 달리는 전차 같았다. 굶주린 맹수처럼 눈빛은 날카로웠고, 앙다문 입은 천년의 비밀을 안고 묻힌 암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로튼의 주먹이 스쳐간 선글라스의 턱주가리는 렉킹 볼에 부딪힌 것처럼 아스라졌다.

 그렇게 선글라스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화이트마타 노동자들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에 당황했다. 그들 모두 쓰러진 관리자와 십여 명의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무릎이 꿇린 채 붙잡혀 있는 로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성을 찾은 로튼이 직원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자 상황은 금세 역전되었다. 직원들은 군홧발로 로튼을 짓밟았고 전기진압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카파를 비롯한 자이러스 주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발만 동동 굴렸다. 그들의 뒤에서 쓰러진 레오의 아버지가 아들 품에 안고 흐느꼈다.

 “아, 안 돼. 내 아들, 레오….”

 로튼은 양손으로 얼굴을 막고 잔뜩 구부린 자세로 폭행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모두가 일시에 돌아보았다. 직원들도 휘둥그레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직원 한 명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이러스 마을 주민들 틈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는 정적이 감돌았다. 헥터의 무리들 중 한 명이 실수로 총을 발사한 게 분명했다. 들키는 순간 어떤 보복이 이뤄질 줄 몰랐다. 찰라의 순간 카파가 로튼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카파가 갑자기 사람들을 헤집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그레이마타 직원이 소리쳤다.

 "야, 저 새끼야. 잡아!"

 3명의 관리자들이 우르르 카파의 뒤를 쫓았다. 근처에 있던 정찰기가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 로튼은 그 틈을 타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헥터와 아이들은 저 멀리 굽이 진 협곡을 향해 달려가는 카파의 뒷모습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내 먼지구름이 그의 흔적을 완전히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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