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의 시대
소금파는 소년이 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소년의 몸에 흐르는 왕족의 피가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하였을 거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종용했을 거라고 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제 생각대로 떠드는 이야기이다 물론 왕족의 피가 왕이 될 생각을 하게 했다거나 권력을 노리를 자들이 종용했을 것이라는 말도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소년이 왕이 된 것은 그 시대 때문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파열의 시대’라고 기록한 시대가 소년으로 하여금 왕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했던 것이다. 결국 시대가 사람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는데 우둔한 왕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왕은 즉위하자마자 숙신1) 정벌에 공이 큰 안국군2)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왕을 ‘쳐 죽일 놈’이라고 침 뱉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한낮이었다. 즉위가 끝난 후, 안국군은 조정은 장수가 있을 곳이 아니라면서 숙신으로 떠나려고 하였다. 안국군은 숙질간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호위무사 만 데리고 나섰다.
그날따라 뜨겁게 내리쏘는 햇살을 뚫고 약속한 주루에 도착한 안국군에게 비렁뱅이가 다가왔다. 비틀어어진 지팡이를 짚고 안국군에게 기어온 비렁뱅이는 동냥을 구걸하였다. 안국군은 비렁뱅이 막는 호위무사를 막았다. 안국군이 은굽을 줄 찰라 비렁뱅이의 칼이 배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살수들이 안국군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그때 안국군이 바닥에 흘린 피가 얼마나 붉었던지 며칠이 지나도 그 색이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왕은 개의치 않았다. 왕도 안국군이 뛰어난 장수이며 안국군이 없이는 국경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왕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안국군이 왕위를 위협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대신들은 국경이 위험하다느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느니 떠들겠지만 그것은 다 저 잘났다고 떠드는 소리일 뿐이었다. 왕이 생각해야 할 것은 누가 왕위를 위협할 만한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왕이 생각하는 건 오직 그것 뿐 이었다. 왕은 자신 만이 앉을 수 있는 용상에 앉아 사람들을 감시했다. 누가 왕위를 위협할 만한 덕망을 갖췄는가? 누가 왕위를 위협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가졌는가? 왕은 궁궐부터 변방까지 빈틈없이 감시했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으면 칼을 쳐들었다.
대신들은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며 중심을 잡아줄 것을 간언하였다. 그러나 의심의 늪에 빠진 왕에게는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왕은 더욱 거세게 칼을 휘두르며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죽여 버렸다. 나중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개조차도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다’고 회고한 시대가 된 것이다.
주석
1)숙신-고대 만주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 읍루, 말갈족이 숙신족의 후예로 추측된다.
2)안국군-서천왕 때 숙신을 격파한 달가가 받은 직위. 서천왕은 아우인 달가가 숙신을 격파하자 국방을 맡기면서 안국군(나라를 편안하게 한 사람)이라는 작위를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