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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후궁이면 모르겠으나.
작성일 : 22-02-04 17:05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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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자빈의 자리를 원합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끼익 소리를 내며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 중심에서 한 사내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거칠게 다가온다.

 

 “세자저하 드십니다.”

 

 첫 만남이었다.

 

 무심한 눈길을 내게 주던 하온은 나를 지나쳐 왕을 마주했다. 검푸른 빛을 띠는 용포가 휘날리며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를 닮아 날카로운 눈매는 오똑한 코와 어우러져 한층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아바마마.”

 

 하온이 입을 떼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모든 이가 하온을 주목했다. 나 역시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무맹랑한 동맹제안을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다른 나라의 여인이 세자빈이라니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뒤를 돌아 나를 똑바로 마주한 그는 누구보다도 강렬한 이미지를 풍겨왔다. 내뱉는 말 또한 그랬다.

 

 “후궁이면 모르겠으나.”

 

 나의 두 손이 꽉 쥐어져 붉게 물들었다. 나를 담아내는 갈색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신의 부름을 받은 땅이나 결코 평화롭지는 않은 나라, 가희국. 나는 그런 땅에 공주로 태어났다. 오래전 있었던 동일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패했고, 때문에 군신관계를 맺은지 꽤 많은 세월이 지나있었다.

 

 “더 이상의 공녀와 공물은 불가합니다.”

 

 “전하, 해결책을 강구해 주십시오. 동일국이 군신 관계를 핑계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인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대로 끌려가다간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지경입니다.”

 

 아바마마는 침묵을 이어나갔다. 공주의 신분으로 상참에 참석해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바마마의 시름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신하들의 말소리가 조금 줄어들자,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었다.

 

 “아바마마,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평소라면 입을 다물고 귀만 열어놓았을 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가희국에게는 굵은 동아줄 하나가 필요했고, 그 동아줄을 드디어 찾아냈기 때문이다.

 

 “온해국과 동맹을 맺으시죠.”

 

 그것은 바로 온해국. 광대한 땅을 가졌으며,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이점을 활용해 강대국으로 올라선 나라.

 

 “지금 온해국이라 했느냐?”

 

 “네. 신녀에 의하면 온해국 왕실에 신의 아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신의 아이라면...”

 

 “맞습니다. 저와 같은 존재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주변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하나 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신녀가 온해국에서 신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후 사람을 시켜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보니, 동궁이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여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합니다.”

 

 “동궁? 허면…”

 

 “네, 아바마마. 그 힘의 주인이 바로 하온세자라 합니다.”

 

 “허나 온해국 세자가 지금까지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는 말은 없었는데.”

 

 “신녀가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온해국은 그 힘을 기이하다 여겨 좋게 보지 않았을 테니까요.”

 

 내 입으로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단정지어 말하고 나니 일면식도 없는 온해국 세자가 조금 가엽게 느껴졌다. 같은 운명을 타고났지만 누구는 신의 아이, 누구는 빙괴로 취급받는 존재라.

 

 “다들 잘 아시겠지만, 신의 능력은 아름답기도 하나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헌데 온해국의 세자는 그 힘을 다루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덧붙인 설명에 아바마마와 신하들은 그제야 내 진짜 의도를 파악했는지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 힘을 완벽히 다룰 줄 아니, 이를 이용해 온해국에게 동맹을 제안할 것입니다.”

 

 

 …

 

 

 그게,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였다.

 

 “후궁이면 모르겠으나.”

 

 딱 보니 내 자존심을 건드리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경계를 품은 그의 눈동자가 나를 담았고 그 속에는 작지만 옹골찬 흔들림이 있었다.

 

 나는 네가 참으로 궁금했어. 같은 운명을 가졌으나 다른 인생을 사는 우리가 마주하면 어떨까.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송구하오나 후궁의 자리는 동맹의 표식으로 부족합니다. 세자빈 정도는 되어야 신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가희국이야 동일국의 지배 아닌 지배를 받는 처지이니 그리도 간절하시겠지요. 허나 온해국은 동맹을 맺을 이유가 부족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하온의 말에 나는 태연하게 되물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가 우스웠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네가 나의 동아줄이야.

 

 “저하의 말이 맞습니다. 가희국은 동일국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키고, 군신 관계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는 온해국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가희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텐데요.”

 

 “약하디 약한 가희국에게 우리가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라는 말입니다.”

 

 하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가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다 깔아놓은 판에 주인공이 제발로 찾아왔으니 나는 그를 이용해 여기 있는 모두를 설득해야만 했다.

 

 “온해국에 빙괴(氷怪)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빙괴를 길들여드리지요.”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가 갖고있는 패가 그리 약하지는 않은듯했다. 안 그래도 날카롭던 하온의 인상이 더욱 차가워진다.

 

 “빙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온해국은 신을 믿지 않는 나라기에 저하의 힘을 그저 괴물이라 여겼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전하?”

 

 “…”

 

 “하오나 세자 저하께서는 아주 특별한 분이십니다. 신의 아이이자, 그 능력을 몸에 품은 이.”

 

 하온은 나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눈빛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나는 너의 빈이 되어야만 하는데.

 

 내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왕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온해국에서 이따금씩 나타난다는 빙괴가 세자를 뜻하는 게 맞았던 모양이다.

 

 “허나 능력을 다루지 못하시는 걸 압니다. 힘을 다스릴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기도 하죠.”

 

 “일개 공주 따위가 목숨이 아깝지 않나보군.”

 

 입을 다물고 있던 하온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이빨을 드러냈다. 왕도 내가 꺼내고 있는 말이 왕권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걸 눈치챈 탓에 진지한 표정으로 수염을 만졌다.

 

 그래. 세자가 얼음을 뿜어내는 괴물이라니 어느 누가 환영하겠는가. 결국 괴물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불만이 터져나올거라 예상했으니 지금까지 쉬쉬하며 지내왔겠지.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운명과도 같은 사람이다. 하온을 진정한 왕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네. 그러니 이 곳에 저를 바치는 것이지요. 소인이 세자저하께서 온전히 힘을 다룰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간곡한 청과 같았으나 이를 전하는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그러니, 전하. 가희국의 동맹 제안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대체 무슨 수로.”

 

 그때, 한 층 낮아진 하온의 목소리가 나를 옥죄어왔다. 기분탓인지 그의 주변에서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다짜고짜 가희국의 공주라며 온해국 궁정을 찾아와서는 세자를 능멸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군.”

 

 “…”

 

 “무슨 자신감으로 나를 다스리겠다, 그리 말하는 것이냐.”

 

 기분탓이 아니었다. 하온의 오른손에서 조금씩 투명한 얼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결정체는 순식간에 뻗어나 기다란 창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성격도 급해라. 아무리 내세울 것 없는 작은 나라라지만 그래도 공주인데. 첫방문부터 창을 들이미는 탓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얼음창의 끝은 금방이라도 내 목을 관통할 것만 같았다.

 

 미세한 틈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 때문에 나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목에 창이 들어온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나라는 잔상이 남는다.

 

 나를 비추는 저 잔상 속에서 드러나는 공포. 나만이 너의 그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어.

 

 “저도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언제 자신을 죽음으로 삼킬지 모르는 힘.”

 

 평범하지 않다는 건 곧 남들과 다른 것. 남들과 다르다는 건 곧 낯설다는 것.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철저히 배제시킨다.

 

 “감히 한 나라의 세자인 나에게 죽음을 거론하다니, 지금 제정신이 아니구나.”

 

 “세자 저하께서는 제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운명이지요.”

 

 나는 하온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위협을 가하지만 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그를 보며 운명임을 직감했다.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상황이야.

 

 “저는 불을 다룰 수 있고, 세자 저하께서는 물을 다루시어 서로가 상극이나, 이는 오히려 약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내 목에 겨눈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창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눈을 살짝 깜빡이자 창끝이 조금씩 불길에 싸여 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완벽한 조화입니다. 더 이상 괴물이 아닌 신이 되세요. 저하.”

 

 “…”

 

 불길이 사라진 뭉툭한 얼음을 손가락으로 툭 만졌다.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놀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온이 창을 들고 있던 손을 조금씩 내렸다.

 

 하온은 자신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을 숨기려 애썼다. 자신의 능력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신이 되라니. 빙괴라 취급받던 내가 신이라고?

 

 하온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자신의 나라보다 몇 배는 더 큰 온해국이었다. 그 중심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당찬 포부를 밝히는 이 여인은 대체 뭐지?

 

 더 이상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하온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이만하면 되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끝났어.

 

 “전하, 신중히 고민해주십시오.”

 

 왕좌에 앉아 내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왕에게 여유롭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연회 끝 자락에 동맹에 관한 결정을 내리겠다. 그동안 마련된 거처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가희국 사신들을 부족함 없이 모셔라.“

 

 “예, 전하.”

 

 고개를 숙였다. 당의 안에 가려진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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