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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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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1화 아찔한 첫날
작성일 : 22-01-31 17:16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4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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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머리야.”

 

 얼굴을 찌푸리며 신아가 잠에서 깼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이었다.

 

 “헉!”

 

 눈앞에 있는 얼굴을 본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제 과음한 탓인가.

 아직 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깜빡여봐도.

 

 “…….”

 

 길고 기다란 속눈썹과 가로로 긴 눈, 부드러운 콧날, 앵두 같은 입술, 가슴을 가리는 긴 웨이브 머리까지.

 신아가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듯 몸을 휙 돌렸다.

 

 ‘여, 여자?’

 

 이불을 꽉 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힐긋 고개를 돌려보고자 했지만.

 

 “……미쳤나 봐.”

 

 분명 긴 머리였다.

 신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29년을 살면서 남자만 만나온 신아였는데.

 지금 제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여자라니…….

 

 “!”

 

 술이 덜 깬 정신이 순간 번쩍 들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떨리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목이라도 축일 생각으로 냉장고 앞까지 걸어가 생수를 꺼내 마셨다.

 

 ‘제발 헛것을 본 것이길…….’

 

 그녀가 무심결에 등 뒤에 있는 거울을 확인했다.

 

 “푸헥!”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물을 거울에 뱉었다.

 술 마신 후, 다음 날의 몰골은 항상 저도 모르게 ‘누구세요’라고 물을 정도로 처참했지만,

 

 ‘머, 머리가 왜?’

 

 가슴까지 닿은 긴 웨이브가 한순간에 숏컷이 된 적은 없었다.

 인상을 찡그린 신아가 소매를 당기며 거울에 다가갔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뭐, 뭐야?”

 

 손을 더듬거려 목 주변을 만졌는데도

 분명 어제 목선이 드러나는 미니 원피스를 입은 게 기억이 나는 데도

 맨살 그 자체.

 

 ‘아……. 맞다.’

 

 낯선 장소, 낯선 침대, 낯선 사람.

 모두 조합해보니 결론은 한 가지였다.

 

 ‘워, 원나잇?’

 

 신아가 고개를 숙여 몸을 확인했다.

 허벅지 위까지 오는 원피스는 온데간데없고

 늘씬하게 빠진 종아리와

 단단한 허벅지

 그리고

 

 “엑?”

 

 여자인 자신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이 하체의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꿈인가 싶어 눈을 감았다 뜨고, 제 뺨을 세게 내려쳐 봐도

 

 “……미친 거 아니야?”

 

 꿈은커녕 현실임을 확인하는 꼴일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진짜인가?’

 

 속으로 몇 번을 되물으며 고개를 숙이면 묵직한 그것은 여전히 다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신아가 다급하게 거울로 향했다.

 

 “…….”

 

 후, 심호흡하고 눈을 떴다.

 물기가 주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린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있었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붓기 제로에 수렴하는 날렵한 턱선과, 높은 코, 잘 빚어진 얼굴을 살피던 신아의 눈이 점차 커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얼굴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을 확장한 채 소리를 질렀다.

 “……뭐야.”

 목소리와 함께 고요했던 침대가 조금씩 들썩였다.

 침대를 바라보는 신아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제발 일어나지 마라, 제발 일어나지 마.’

 간절한 마음과 달리 침대에 있던 여성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아가 아무 옷이나 집어 들었다.

 

 “…….”

 

 나체를 가리기 위해서였는데.

 서둘러 입은 와이셔츠를 잠그려고 보니, 이미 단추는 뜯겨 나가고 없었다.

 다 잠그지 못한 와이셔츠 사이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가슴 근육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눈앞에 널브러진 어젯밤 정열적인 정사의 흔적을 보자 신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격했으면 침대 끝에 걸린 브래지어와 달리 팬티는 저 구석까지 날아가 있었다.

 

 “!”

 

 몸을 뒤척이는지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아의 눈이 커졌다.

 금방이라도 데굴데굴 굴러갈 듯한 큰 눈이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아, 씨!”

 

 너무 아래를 신경 쓴 나머지 하필이면 지금 당장 보이는 게 검은 드로즈였다.

 저쪽은 가릴 이불이라도 있지, 지금 내게 있는 건 고작 드로즈 한 장뿐이었다.

 어쩔 수 있나.

 신아가 욕을 연신 내뱉으며 검은 드로즈를 집었다.

 

 “……누구시죠?”

 “…….”

 

 정중하지만 날이 선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드로즈를 챙겨입고 몸을 일으키려던 신아의 몸이 얼음처럼 단단히 굳었다.

 

 “누구신데, 제 방에서 왜 팬티만 입고 있습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아, 그게…….”

 

 하필이면 입까지 말썽이었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말에 신아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여기 있던 여자, 어딨습니까.”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인 게 분명했지만, 신아는 억울했다.

 여자라니.

 애초에 일어났을 때부터 여자는 그쪽밖에 없었다고.

 잠깐.

 두 눈이 번뜩인 신아가 고개를 휙 돌렸다.

 

 “!”

 “!”

 

 갑작스레 얼굴을 마주 본 두 사람 사이에 긴 정적이 흘렀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두 눈까지 크게 확장하고.

 

 “이, 이게 지금 무슨…….”

 

 먼저 입을 연 상대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 앞에.

 그것도 상반신을 탈의한 남성의 얼굴이 자신과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냥 닮은 수준이 아니라, 거푸집에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왜 내 입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제 입에서 나온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대가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수현이 무심코 내린 손을 바라봤다.

 부드러운 살결과 살구색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

 

 “……여, 여자?”

 

 누가 봐도 여자 손이었다.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온 상대가 거울로 향했다.

 믿기지 않는 듯이, 눈썹부터 눈, 코, 입 하나하나를 손으로 확인했다.

 손에 닿는 감촉이 너무 생생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 그니까 이게…….”

 

 지금 거울 속 여자는 알고 있는 여자였다.

 알아도 너무 잘 아는.

 9년 전, 헤어진 첫사랑이 눈앞에 있었다.

 등을 홱 돌리며 신아를 바라봤다.

 

 “너 뭐야.”

 “…….”

 “네, 네가 왜…….”

 

 그는 뒷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하지만 신아는 뒷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

 

 다음 생에는 돈 많고, 잘생기고, 미래 걱정 없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왜 네가 내 얼굴을, 아니 왜 내가 네 모습인 건데.”

 

 하필 그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도 원수현이라니.

 이제는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리더’, 진영 그룹 ‘부사장’라는 말이 더 익숙한.

 

 “설명해봐, 이신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

 

 어젯밤 9시, ‘진영’ 식당

 

 또각또각.

 식당 로비에 신아의 구두 소리가 가득 울렸다.

 최고급 일식당이란 명성에 맞게, 고급지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 괜히 입었나……’

 

 자꾸만 올라가는 치맛단을 내리며 신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짧은 원피스와 구두.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옷이었지만, 한 달만의 데이트라 신경 쓴 신아였다.

 

 “예약하셨습니까?”

 

 무전기를 귀에 찬 직원이 신아에게 다가왔다.

 

 “아, 조필담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즐거운 식사 되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미닫이문으로 된 프라이빗 공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드르륵.

 신아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먼저 와 있었던 필담이 신아를 향해 손을 들었다.

 신아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음식은 미리 시켜놨어.”

 

 필담이 물을 홀짝이며 신아를 훑어봤다.

 그의 시선이 유독 신아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얼굴을 만지며 신아가 물었다.

 

 “넌 잘 지냈나 보네, 얼굴 편 거 보니?”

 “나 이번에 스카우트 제의받았거든. 내일 모레부터 출근…….”

 “아직도 비서인지 뭔지 그 일 하는 거야?”

 

 필담이 신아의 말을 싹둑 잘랐다. 물잔을 집으려던 신아의 손이 허공에 붕 떴다.

 

 “그게 왜?”

 

 신아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피며 필담을 바라봤다.

 

 “남 수발드는 일하는 걸 좋아할 남자 친구가 세상 어디에 있어?”

 “야.”

 “이제 곧 결혼도 하는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다른 일 찾아.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신아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술을 움직이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직원의 등장과 함께 두 사람 사이의 무거운 정적이 깨졌다.

 식탁 위에 음식이 하나둘 오르자 필담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음식 세팅을 마친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한 후, 방을 빠져나갔다.

 

 “어서 먹어.”

 

 필담이 허겁지겁 회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아가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먹는 게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처먹는 거로 보이는 순간, 그 연애는 끝난 거라는데.

 이제 곧 결혼을 앞둔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괜히 죄스러워 신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너희 회사 좀 너무하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한 달간 야근시키는 회사가 어딨어. 너희 회사 다니는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큼직한 프로젝트는 지난달에 다 끝났다던데, 너희 부서만 그렇게 일이 많은 거야?”

 

 탁.

 

 필담이 젓가락을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기분 좋게 밥 먹는 사람한테 꼭 회사 이야기를 해야겠냐?”

 

 먼저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이 누군데.

 여기서 싸워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고 판단한 그녀가 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미안. 얼른 밥이나 먹어.”

 “에이! 이미 밥맛 다 떨어졌는데, 무슨 밥을 먹으래.”

 

 필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아가 눈을 깜빡이며 필담을 올려다봤다.

 

 “어디 가?”

 “담배 하나 태우고 온다.”

 

 필담이 뒷주머니를 더듬거리며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한 손에 쥐었다.

 

 “여기에 나만 두고?”

 

 진짜로 나갈 모양인지, 필담이 신발을 구겨 신으며 미닫이문을 열었다.

 

 “야, 조필담!”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신아가 텅 비어버린 앞을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웬일로 휴대폰은 놓고 갔대?”

 

 테이블 위에 놓인 필담의 휴대폰이 반짝이며 소리를 냈다.

 평소 회사 일이 바쁘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 휴대폰을 집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아의 걸음이 멈췄다. 휴대폰 화면을 보는 신아의 눈이 송곳처럼 가늘어졌다.

 

 “백주희?”

 

 화면에는 ‘인턴 백주희’라는 글자가 둥둥 떠 있었다.

 연인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신뢰라고 생각해 필담과 사귄 4년 동안 단 한 번도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던 신아였다.

 

 그런데 사람 감이라는 게…….

 신아가 저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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