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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프롤로그
작성일 : 22-01-02 15:23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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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질.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은 절대 내가 겁을 집어먹어서가 아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을 기다린 결과가 너무 끔찍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살기가 폴폴 풍기는 살벌하게 치켜뜬 적갈색 눈동자.

 

 인간 피 좀 빨았다고, 3000년 동안이나 불구덩이 속에 처박아 버리더니.

 

 그걸로도 모자라 내게 주어진 임무란 게 지구 정화였다.

 

 파로크.

 

 3000년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고귀한 혈통을 가진 내 이름이다.

 

 어이없게 듣도 보도 못한 사냥꾼이 찌른 말뚝에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모가지가 날아가 버린 그날 이후,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

 

 참혹한 현실이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

 

 지독한 살기로 똘똘 뭉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 임무는 뭘까? 헉헉. 너무 더워서 미칠 것 같아. 차라리 죽여라. 개새끼들아!’

 

 그렇게 절규하며 참고 또 참았는데.

 

 좀 더 멋지고 근사한 생을 기다렸건만.

 

 3000년이란 시간에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본성은 꺼지지 않았다.

 

 내가 어떤 놈인데.

 

 이래 봬도 젠다르시아 흡혈 가문 서열 1위였던 나다.

 

 그런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 하다니.

 

 눈동자 사이로 지독하고 섬뜩하고 냉혹한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시 씨부, 아니. 흠흠.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놈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 처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았다.

 

 살찐 돼지 같이 생긴 저 녀석의 임무는 매우 막중했다.

 

 무사히 지옥행을 끝낸 가련한 영혼들이 새로운 행성으로 환생하기 전 마지막으로 거쳐야 할 장소의 총괄센터장이었다.

 

 한마디로 포동포동 살찐 저 녀석에게 찍히면 다시 지옥행이란 뜻이다.

 

 ‘내가 참는다.’

 

 살기 가득했던 내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순한 양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만큼 순수하고 선량해 보였다.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의자에 엉덩이를 척, 걸치고 앉아 있던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씻고 봐도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녀석이다.

 

 거만해도 여간 거만한 게 아니다.

 

 골치 아픈 일은 딱 질색이라는 듯 표정을 구긴 그가 서류를 다시 앞쪽으로 휙휙, 넘기더니 조금 전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젠다르시아 파로크. 주요임무 : 지구정화 / 기한: 1000년/ 성공하면 7차원 상위정신계 입성. 실패하면. 흠.. 실패시엔 어떤 벌이 주어질지 아직 미정이다. 아 재수 없으면 악마한테 던져질 수도 있음을 참고 바란다. 이상.”

 

 말을 마친 그가 내 얼굴을 흘끔거렸다.

 

 두꺼운 안경알 속으로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완전 재수 대가리, 밥맛없는 녀석이었다.

 

 이번엔 주먹이 아니라 거만한 얼굴로 앉아 있는 녀석의 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리는 상상을 했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으허.”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자 녀석이 눈을 끔벅였다.

 

 “뭐?”

 

 “아닙니다.”

 

 냉큼 대꾸했다. 대충 입꼬리를 말아 올려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췄다.

 

 양쪽 등에 12개의 크고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녀석은 사실 알고 보면 지구 하나쯤은 통째로 아작을 내버릴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 어깨를 두른 채 종아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통이 넓은 옷자락. 그 사이로 보이는 허리춤엔 기이한 무늬가 새겨진 팔뚝만 한 길이의 검이 걸려있었다.

 

 그것이 장신용이 아니란 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건방진 모습을 보이거나 주어진 임무에 반항하며 거칠게 항의한다고 하더라도 녀석이 제멋대로 날 어쩌진 못할 거다.

 

 저 녀석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직책이었으니까.

 

 수상쩍은 얼굴로 날 쳐다보던 녀석이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병신 중에도 완전 상병신이었다.

 

 내 말을 믿다니. 바보, 머저리 같은 놈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서류를 응시하던 녀석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 무렵.

 

 -이크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녀석이 독심술이라도 부리면 큰일이니까.

 

 뜨거운 불구덩이 맛은 이제 사양이다.

 

 삐까번쩍.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황금 벽을 쳐다봤다.

 

 천계의 공직자치곤 너무 화려한 방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녀석에 대한 증오를 누그려 뜨렸다.

 

 ‘받아들이자. 그냥. 으이구.’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편이 훨씬 더 속이 편했다.

 

 내 뒤론 다른 영혼들이 길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적게는 수백 년 에서 길게는 수만 년까지. 지옥에서 지옥을 오가며 환생을 준비하고 있는 가련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멋지고 근사한 곳에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겠지?

 

 당장 그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전생보다 더 형편없는 생이다.’ 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럼 난 영웅이 되는 거다...

 

 “흠.”

 

 그래도 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얌전히 나름 비명을 삼켜가면서 묵묵히 지은 죄를 참회하고.. 완전히는 아니고.

 

 흡혈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인간 피를 마셔야 한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잘못을 뉘우치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흔들었지만.

 

 얼떨결에 심장에 말뚝이 박혀 죽어서 뭔가 억울하긴 했지만.

 

 무턱대고 거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걸 빠르게 간파했다.

 

 3000년 전의 기억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어느 멍청한 인간 영혼이 자신 앞에 떨어진 불구덩이 지옥행에 대해 발악하며 저항하다가 악마가 대기하고 있는 지옥으로 인정사정없이 내던져지던 일.

 

 -휙!

 

 -으앗!

 

 그걸로 끝.

 

 후에 지옥을 관리하는 놈들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그 인간 영혼은 매일같이 쥐어 터지다가 끝내 악마들이 먹이가 되어 완전소멸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헐.

 

 “질문 있나?”

 

 서류 뭉치를 들고 있던 녀석이 물었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녀석을 향해 눈동자를 돌렸다. 쌍욕이 터져 나오려 했다. 혀가 근질거렸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뜨거운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어도 본래 가지고 있던 성품은 변하질 않는다.

 

 “파로크?”

 

 내가 대답이 없자 그가 아예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가 팔로 허공을 휘휘 저으며 다음번 환생 대기자를 부르려 할 무렵.

 

 잽싸게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다른 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 허여멀건 볼 위를 스쳤다.

 

 직책과는 달리 머리 회전은 느려터진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굴림을 당한 영혼이 어떤 몸으로 어떤 세계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최종적으로 알려주고 완성된 서류를 다시 윗대가리에게 건네주는 중요한 일을 하는 고위 존재치곤 머리가 너무 나쁘다.

 

 그래서 안 되는 거다.

 

 내가 알고 있던 악마 새끼들만 봐도 머리가 매우 비상했다.

 

 지옥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기 전.

 

 근 800년간 인간들 목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던 내가 만난 악마들을 보면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갔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절로 이마에 주름이 갔다.

 

 얼마나 더 쉽게 말해줘야 알아먹으려나.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위대한 젠다르시아 흡혈가문 서열 1위인 내 안에 존재하는 폭력성이 불끈 치밀어 올랐다.

 

 저놈을 그냥 확!

 

 그러나 다행히도 천계 공직자의 면상이 내 주먹에 얻어터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 다른 방법?”

 

 내 말을 알아차린 녀석이 물었다.

 

 살짝 기대하는 얼굴로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

 

 적갈색 눈동자 속에 머물러 있던 적대적이고 저항하는 빛을 슬쩍 거둔 채로.

 

 그러나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대답은 그런 내 기대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리고 말았다.

 

 “없다. 다음!”

 

 “뭐라구요?”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발밑이 뻥 뚫렸다.

 

 “으악!

 

 입에서 쏟아져 나온 거친 목소리.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무한한 공간. 검푸른 구멍 사이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사람 살.. 아니 흡혈.. 살려.. 내라 이 .... 놈들아!”

 

 목소리가 텅 빈 허공을 향해 메아리쳤다.

 

 ...

 

 그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개 박살 난 지구였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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