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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언더독
작가 : 김예담
작품등록일 : 2016.9.7

밤낮을 안 가리고 축구공을 차던 아이였다. 꿈을 품고 15살에 영국으로 떠나지만 4년 뒤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꿈을 접어야만 했다. 좌절에 젖은 그는 거친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에게 남겨진 건 고졸이라는 학력 뿐. 그러나 전혀 새로운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킥오프
작성일 : 16-09-07 13:00     조회 : 627     추천 : 2     분량 : 5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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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학원이라니……. 학원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다. 굳이 감독님의 선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돈이 필요했고, 나의 학력으로는 돈이 될 만한 일을 찾기란 힘들었다. 그런 내게 감독님은 손을 내밀었다. 제자가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게 어지간히 슬프신 모양이었다.

 

  사실 전문대라도 졸업해야 학원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쥐어졌다. 하지만 난 겨우 고졸이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인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감독님의 조카인 학원 원장은 나를 흔쾌히 허락했다. 영어라도 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감독님에게 전해들은 바 꽤 괜찮은 임금이었고 나로서는 가뭄의 단비였다. 괜찮은 임금이라 해도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소중한 기회였다. 단번에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지켜 들고는 하늘을 보았다. 기상청은 이런 하늘을 맑다고 생각하나 보다. 어디에서도 푸른 태양을 찾아볼 수 없고 청명한 하늘은 먹구름 저 너머에 숨었다. 혹여나 비는 오지 않을까 걱정됐다. 비 많이 내리기로는 영국만 못했지만, 그곳은 한국과 달랐다. 가랑비가 한 시간마다 내리는 영국과 달리 한국은 장대비가 날을 잡고 쏟아졌다. 우산을 가져왔어야 했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동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담뱃불을 붙이고 깊이 빨았다. 내뱉은 연기는 뭉게뭉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얼마나 더 내뿜어야 내 안의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질까.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담뱃불을 껐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금세 거칠게 쏟아졌다.

 

  이런 젠장.

 

  욕을 하며 저 너머 보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첫날부터 망조의 기운이 느껴졌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온몸으로부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젖은 몸으로 버스에 올랐고 젖은 몸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학원은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혹시 횡단보도 건너시나요?”

 

  버스에서 같이 내린 행인들에게 물었다. 물론 우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실례가 안 된다면 저 건너까지만 씌어줄 수 있으신가요?”

 

  세 사람에게 물은 후에야 겨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학원 옆 상가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들어 갔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쩌렁쩌렁 소리쳤다.

 

  바로 앞에 배치된 우산을 집어 들었다.

 

  “수건은 어디 있지…….”

  “에어컨 앞 진열대에 있어요!”

 

  혼자 중얼거리는 나에게 그녀는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건을 가지고는 계산대로 왔다. 주머니를 뒤지니 담배도 다 젖어있었다. 아까운 돈은 연기도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담배도 한 갑 주세요.”

 

  계산하던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이윤지. 이름이 예뻤다.

 

  “안녕히 가세요!”

 

  물품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는 거세게 몰아쳤다. 처마 밑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물기를 닦았다. 한결 쾌적했다.

  새 우산을 펴고는 몰아치는 비를 뚫고 학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첫날이 시작됐다.

 

  “아, 어서 와요.”

 

  문을 열고 원장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김시우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최장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내게 손을 뻗고는 인사를 건넸다. 힘이 느껴지는 악수였다. “앉으시죠.” 그리고는 소파에 앉았다.

 

  나이가 많아봤자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원장이라 하기엔 너무나 젊었다. 재산 많은 부모님이라도 둔 걸까? 그래서 저 젊은 나이에 학원 원장이 된 건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선 아우라가 풍겼고 나에게선 초라함이 흘렀다.

 

  “영국에서 바로 오셨나 봐요?”

 

  “네?”

 

  의도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하하, 농담입니다. 젖어 있으셔서요.”

  “아……. 기상청을 믿었다가 이 꼴이 됐네요.”

  “365일을 만우절이라 착각하는 게 기상청이라죠.”

 

  그의 농담에 웃음을 내보였다.

 

  “아, 이렇게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팬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절 아시는 분이 드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네요.”

  “저 같은 사람은 당연히 알죠.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요. 여가 시간엔 오로지 축구에만 관심을 쏟아요. 축구 하는 건 물론이고, 축구 게임 하고, 경기 보고. 그만큼 축구를 좋아해요.”

 

 학원 원장이 게임도 하구나. 의외였다.

 

  “아,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인터뷰를 한 번도 안 하신 거예요?”

  “아……. 그게.”

  “불편하시면 굳이 안 말하셔도 돼요.”

  “그런 건 아닙니다. 음……. 원래 제가 인터뷰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하부리그에서 뛰었기 때문에 겨우 이정도로 인터뷰를 해도 되는 걸까? 겨우 하부 리거인데? 이런 생각도 있었고요. 일단 유명세를 치르기가 싫었어요. 먼저 상위리그에서 증명해보이고 싶었죠. 제 자신을. 결국 원하는 바대로 되지는 않았지만요.”

  “2부 리그여도 열아홉에 주전을 꿰찬 건 대단한 거 아닌가요?”

  “쉽진 않죠.”

 

  쓴웃음을 내보였다.

 

  착각이 들었다. 선수 시절에 한 번도 인터뷰를 응한 적 없던 나였다. 그때는 그런 게 어색했었고, 무엇보다 축구에 집중하고 싶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유망한 선수가 나타나면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때론 관심은 도가 지나쳐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린 선수에게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기기도 한다. 선수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전에 언론에 노출되고 유명세를 치르는 유망주들은 곧잘 패망의 길을 걷는다.

 

  그런 사례를 숱하게 봐왔다. 일찍이 축구 이외의 향락에 빠져 소리 없이 사라진 이들. 나는 그렇게 되기 싫었다. 그래서 더욱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결국 내 자신을 규정하는 건 나다. 남들에 의해 착각하거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길을 잃을 뿐이다. 항상 거울 보듯 스스로를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니다. 일개의 학원 선생으로 온 것뿐인데, 왜 지금 이런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인가? 이미 지나간 것들인데.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었나요?”

 

  말하고 싶다. 소리 지르고 싶다. 내 아픈 곳을 건들지 말라고.

 

  “죄송하지만, 학원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하나요?”

  “아, 참. 본분을 잊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음. 일단 하루 기준 7-8시간 근무 하고 기본급은 이백입니다. 또 비율제이기 때문에 수업의 학생 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급여도 오릅니다. 반대로 떨어지면 같이 떨어지고요. 학생당 5:5로 나눠가집니다. 이 점 불만 없으시죠?”

 

  불만 없기만을 바라는 저 말투 거슬린다.

 

  “아무리 학생이 없어도 기본급은 무조건 보장되는 건가요?”

 

  그는 이런 질문을 한 날 흥미롭게 쳐다봤다.

 

  축구에선 계약이 정말 중요하다. 그 선수의 위상이 계약금으로 인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수로서는 자신의 권리를 챙기는 것이고, 가치를 인정받는 지표다. 대부분 선수들은 전문가인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계약에 관한 모든 직무를 맡긴다. 그렇다하더라도 선수도 기본적인 계약 형태를 파악할 정도로 공부하는 게 좋다.

 

  해마다 많은 어린 선수가 악덕 에이전트들에게 피해를 입는다. 해외 진출, 프로구단 입단을 내걸며 접근하면 당사자와 부모님들로서는 귀가 현혹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기를 당해 축구를 포기해야하는 상황까지 내몰리는 건 부지기수다. 그러니 험한 꼴을 안 당하려면 공부는 필수다.

 

  “3개월까지는 기본급 이백으로 가지만 이후에도 평균 이하일 경우 백 칠십까지 깎이는 게 원칙입니다. 모든 학원이 비슷해요. 저희가 후하게는 아니지만 절대 낮게 쳐주는 건 아닙니다.”

  “그 원칙이란 게 법적 제도 안에서의 원칙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통상적인 관행입니다. 왜, 마음에 안 드시나요?”

 

  나는 말을 아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아! 무엇보다 시우씨가 유념해야할 건 여긴 영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더 유념해야할 건 부탁받아서이지 능력을 보고 뽑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더더욱 유념해야할 건 이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언제나 실력 있는 선생을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에요. 고졸 뽑는 학원 없습니다. 영국에서 5년? 큰 메리트도 아니에요. 원어민이 아닌 이상 말이죠. 더 이상 귀한 대접 받던 유망한 축구 선수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하는 사회인이란 걸 유념해두길 바래요.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선배로서 말하는 겁니다.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방심한 틈에 역습을 당했고 한 골을 먹었다. 화가 났지만 화낼 수 없었다. 다 맞는 말이다. 고졸이고 실패자인 내게 적선해주겠다는 데에 시비를 걸고 있었던 거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건 아니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지? 이렇게.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언제 이런 꼰대가 된 건지……. 착각과 혼동을 해서는 안 된다. 거울 속의 날 제대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처지를 잘 알아야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좀 한 것 같네요.”

  “저희가 기싸움 하려고 마주한 게 아니잖아요. 서로를 돕기 위해서지.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털고 일어나야하지 않겠어요? 초심을 가지고 시작 하셔야해요. 아직 시우씨는 젊으니까.”

 

  어쩔 땐 거울 속의 비참한 날 부정하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도 있는데 이곳은 그럴 여유조차 주질 않는다.

 

  “조건에 동의하겠습니다.”

 

  시원하게 패배했다.

 

  “좋습니다. 아, 학원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뭐든 물어보세요.”

 

  내일부터 중2와 고1을 맡기로 했다. 다른 학년들 역시 학생 수가 늘어나면 새로운 반을 개설할 예정이고 점차 내가 더 맡아가는 식이었다. 그렇다. 굳이 새 선생을 뽑을 필요도 없었던 거다. 참……. 고맙지만 쓰고 쓰다.

 

  원장을 따라다니며 다른 학원 선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거의 다 여선생이다. 선생의 수는 10명 안팎이 되는 듯했다. 그나저나 영어 선생은 나만 남자인가?

 

  “아! 언제 시간될 때 축구 같이 해요.”

 

  마지막으로 건넨 원장의 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치고 학원을 나왔다. 빗줄기는 멈춰있었고 외로운 먹구름만이 하늘에 가득했다. 우산은 고새 쓸모없어졌다.

 

  집주변 강 둔치로 향했다. 빗물이 흥건한 벤치를 휴지로 닦고는 사 온 맥주를 마셨다.

 

  “축구? 시간나면 축구를 같이 하자고? 아무리 축구를 그만뒀다지만 너랑 축구할 짬이 아니야 내가! 동네 축구가 나 같은 클래스랑 축구를? 꿈 깨라!”

 

  답답한 마음에 냅다 소리 질렀다. 술이 더 끌려서 맥주 세 캔에 치킨 두 마리를 사고는 집으로 향했다.

 

  한창 사춘기를 맞은 동생들의 식성 덕에 치킨은 눈 깜짝할 새 없어졌다. 한 마리는 더 사와야 했었나 싶다.

 

  “숙모, 내일부터 학원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씻지 못했던 젖은 몸을 씻고 나오고는 말했다.

 

  “웬 학원?”

 

  외숙모는 치킨 잔해들을 치우시고 계셨다.

 

  “영어 선생으로 학원에 채용됐어요. 임금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래. 열심히 해 보거라.”

 

  열심히…….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되는 걸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여태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걸까. 그랬던 걸까. 최선을 다했었다고 믿었다. 아니, 최선을 다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대체 왜일까. 정말이지 알고 싶다.

 

  다사다난한 하루가 지났다. 지친 몸을 바닥에 뉘이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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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ㅇㅇ 16-09-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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