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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서사모아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20.9.22

1950년 7월 15일,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전쟁에서 패한 이들이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남태평양 환상의 섬, 서사모아 제도.
그곳에서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1화 - 다른 세계
작성일 : 20-09-22 23:34     조회 : 480     추천 : 0     분량 : 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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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4월 1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경찰, 및 우익 청년단의 탄압 중지를 내걸었던 제주도의 무장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관련자는 내부 고발로 인해 모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조선인민군의 기습남침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준비가 안 된 대한민국 국방군을 비웃으며 38선 이남으로 기갑을 필두로 맹공을 펼쳤다.

 또한, 새벽에 목포와 여수 일대에 많은 이의 인민군 특무대원들이 침입한다.

 

 1950년 6월 26일,

 UN안전보장이사회, 조선인민군의 남침 중지를 결의하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과 조선인민군은 이를 무시하다.

 

 1950년 6월 27일,

 조선인민군이 서울 인근 미아리까지 점령하자 서울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수원의 미군 맥아더 사령부 전방지휘소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오산으로 철수한다.

 대전으로 피난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차량이 의문의 폭파를 당함으로써 대통령이 서거하고 동승 한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이 순직한다.

 급히 전갈을 받은 이시영 부통령의 지휘 아래 대한민국 정부는 대전으로 피난한다.

 

 1950년 6월 28일,

 국군 내부에 잔류해있던 남로당계 간첩들에 의해 시흥지구전투사령관 김홍일 소장이 암살당한다.

 이후 부사령관 경성호 대령이 급히 임시인계하여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살아남은 국군을 모아 혼성 부대를 급조해 대치한다.

 

 1950년 6월 30일,

 김일성이 직접 고안한 ‘무자비 폭격’작전으로 인해 조선인민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전개되고 이로 인한 후방 차단의 위협을 걱정한 경성호 임시사령관은 1, 6, 8사단의 성공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후퇴를 결심한다.

 이후 조선인민군이 한강을 도하, 남하를 계속한다.

 5시간 만에 시흥과 수원이 점령당한다.

 심야에 오산의 미군 맥아더 사령부 전방지휘소가 기습에 대항했으나 화력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퇴각하다.

 

 1950년 7월 1일,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 특무대가 부산에 상륙하다.

 천안이 점령당하고 대한민국 임시수도는 대구로 변경되어 급히 피난한다.

 광주와 나주, 목포 일대에서 이현상의 빨치산과 침투해있던 인민군 특무대원들이 무장폭동을 일으켜 인근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해 공무원들을 살해하고 건물은 모두 불을 질러 전소시키다.

 또한, 주민들을 선동하여 무장해 5사단 20연대를 기습, 당황한 연대장을 살해하고 손쉽게 접수한다.

 

 1950년 7월 2일,

 신탄진 일대에서 미 24보병사단이 후퇴 중 인민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당하다.

 비슷한 시각, 목포와 광주에서 올라온 이현상 빨치산과 특무대원, 그리고 보충한 의용대원들이 대전을 공격한다.

 저녁에 페리 중령이 전사하고 사단장 윌리엄 딘 장군이 포로로 잡혔다.

 인민군이 신탄진을 넘으며 대전이 점령당한다.

 

 1950년 7월 5일,

 충청도가 조선인민군에 의해 점령당한다.

 대전에 입성한 이현상과 빨치산, 의용대원들은 반격에 대비해 경찰과 공무원을 학살하고 목을 베어 꼬챙이에 끼워 전시하는 등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1950년 7월 6일,

 미 8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최후의 보루로 부산을 사수하고자 한 낙동강 방어선이 전개되었다.

 조선인민군, ‘통일을 위한 7월 대공세’를 시작하다.

 

 1950년 7월 8일,

 조선인민군, 대한민국 국군의 최후 방어진인 낙동강 방어선을 맞아 고전하다.

 UN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조선인민군의 다부동 공세에 맞서 오키나와의 B-29 편대를 이용, 융단폭격을 시행하다.

 

 1950년 7월 10일,

 조선인민군 1군단이 마산을, 2군단은 영천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 부산을 공격하려는 ‘최후 공세’를 시작하다.

 이에 의해 다부동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328고지를 빼앗기고 대구가 위험해지다.

 

 1950년 7월 11일,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에서 국군 11, 12연대가 유학산을 공격하여 인민군 1,500명을 사살했으나 11연대 11중대가 지키고 있던 673고지가 기습을 받아 퇴각하다.

 15연대는 융단폭격의 영향으로 인민군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공격을 재개하여 낙동강 서안으로 인민군을 몰아내고 328고지를 탈환하다.

 그러나 우측에 벌어진 간격으로 인민군 특무대가 침투하여 가산성을 점령하다.

 

 1950년 7월 12일,

 새벽에 인민군 특공대가 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백선엽 준장이 암살당하고 전 전선에서 공세가 시작되다.

 국군 1사단이 급히 반격에 나섰으나 패배하고 사단은 궤멸하다.

 

 1950년 7월 13일,

 대구와 영천, 마산이 점령되다.

 조선인민군 고건호 소장이 이현상이 대전에서 한 짓과 마찬가지로 대구에서 저항했던 국방군 참모진과 경찰, 공무원들의 목을 꼬챙이에 끼워 태평로에 전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다.

 

 1950년 7월 14일,

 낙동강을 넘은 조선인민군이 부산을 목전에 두다.

 UN군,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에게 부산 철수를 요청하여 승인을 얻다.

 ‘뉴 코리아 플랜’이 개시되다.

 

 1950년 7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한다. UN군과 모든 미군이 부산에서 철수하다.

 조선인민군 남일 대장이 부산에 입성하다.

 김일성은 소비에트 연방의 까레야공화국 서기장의 직위를 갖고 한반도의 통일을 선언한다.

 

 1950년 7월 16일,

 숨어 게릴라 전술을 펼치던 모든 전 대한민국 국군의 무장해체가 선언되다.

 이시영 부통령 등 전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이 체포되어 평양으로 북송되다.

 

 1950년 7월 18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인 남일 대장,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군 잔당을 소탕할 ‘남조선 섬멸전’을 개시한다.

 

 1950년 7월 19일,

 제주도로 도망쳤던 마지막 전 대한민국 국군의 ‘서귀포항쟁’이 시작되다.

 

 1950년 7월 21일,

 3일 만에 인민군이 서귀포시를 통째로 불바다로 만들며 서귀포항쟁은 막을 내렸고, 동시에 ‘남조선 섬멸전’이 종결되다. 이제 대한민국 국군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김일성은 국호를 까레야공화국에서 한반도 통일 독립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수정할 것을 소련에 건의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를 승인하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인민의원 선출을 위한 8.12 인민 총선거 준비를 시작하다. 김일성은 소련의 승인 아래 조선노동당을 탈당하고 공화국 임시 서기장 겸 인민 총선거 선거관리위원장이 되다.

 

 1950년 7월 24일,

 전국 300개 선거구가 확정되고 최고인민회의 인민의원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다. 후보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25세 이상 인민으로 제한되었다. 정당은 현재 존재하는 조선로동당, 조선사회민주당, 조선공산당으로 세 정당이며, 무소속 후보자도 선거구 내 선거권을 가진 인민의 10%가 동의하면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음을 선포했다.

 

 1950년 7월 28일,

 나흘간 이루어진 후보자 등록으로 전국 300개 선거구에 총 727명의 후보자가 등록하였다. 등록 수로는 조선로동당 300명, 조선사회민주당 207명, 조선공산당 184명, 무소속 36명으로 많은 인민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50년 8월 12일,

 제1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총선거가 실시되다. 공화국 임시 서기장이자 선거관리위원장인 김일성의 선포로 전국 300개 지역구에서의 최고인민회의 인민의원 선거결과가 발표되었다.

 총 300선거구, 조선로동당 247석, 조선사회민주당 38석, 조선공산당 13석, 무소속 2석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조선로동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1950년 8월 14일,

 제1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다. 초대 의장은 전 조선로동당 당수이자 현 제2호 선거구 인민의원인 김두봉이 선출되었으며, 상임위원장은 전 국방장관이자 현 제4호 선거구 인민의원인 최용건이 선출되었다. 또한, 제1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공화국 헌법을 개정안을 가결함으로 국가주석직을 신설하여 이에 김일성을 임명하였다.

 

 1950년 8월 15일,

 광복 5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다. 경복궁에서 김일성 주석의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친 한 청년이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켰다.

 김일성 주석은 죽지 않았으나, 왼쪽 고막이 터지고 오른쪽 눈에 파편이 박혔으며 왼손 하삼지가 유실되는 부상을 입다. 경호원, 및 수행원 2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다.

 

 1950년 8월 20일,

 “다시금 아침의 영광을!”이란 김일성 주석의 구호 아래 폐허가 된 한반도 전역의 재건계획이 실행되다.

 전국에 총기 사유 금지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이시영 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전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과 군인, 경찰, 관료들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가결한 ‘정치범 인민 재사회화법’에 의해 ‘인민정치교화소’에 수용되다.

 

 1950년 8월 30일,

 이현상 등 남로당 잔류 빨치산이 내란음모 혐의로 인하여 인민정치교화소에 수용되다.

 

 1950년 12월 21일,

 서귀포에서 무기 밀수업자가 체포당하여 수용소로 보내지다. 밀수업자는 미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닌가, 의구심을 들게 했다.

 

 1950년 12월 24일,

 25일로 넘어가기 전 심야에 평양의 주석궁을 향해 폭탄 차량 돌진 테러가 발생하다. 이 테러로 주석궁 경호원 17명이 다치고 35명이 사망하였으며 주석궁 1층 입구가 전소되다.

 

 1951년 2월 21일,

 일본에서 숨어 지내던 대한민국 잔당세력이 무장테러집단으로 오인되어 처벌되다.

 

 1951년 6월 25일,

 주석궁에 폭탄차량 돌진 테러가 발생하다. 주석궁 경호원 9명이 죽고 26명이 다치다. 주석궁 검문소가 전소하다.

 

 1951년 8월 15일,

 광복 6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일성 주석의 아들 김정남과 김정일이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사망하였고, 같은 시각 전국의 많은 기념행사장에서 폭탄과 총기를 불법 입수한 청년들이 대거 체포되다.

 김일성 주석,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최고인민회의는 이를 승인함에 따라 전국의 모든 불법 총기 및 폭발물 소지자와 유통, 제조자를 색출하기 시작하다.

 

 1951년 8월 19일,

 김일성 주석의 아들 김정남과 김정일의 장례식 도중 폭탄 차량 돌진 자살테러가 발생하여 영정 차량이 전소되고 수행원과 장례지도원, 및 경호원 45명이 다치고 14명이 사망하다. 김일성주석은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부상을 당하다.

 

 1951년 9월 9일,

 전국에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약 14만 4천 명이 체포되다.

 전 인원 ‘인민 재사회화’ 판결로 인해 인민정치교화소에 수용되다.

 김일성 주석, 전국에 “폭력분자 색출에는 밤낮이 없다!”등 살아남은 전 대한민국 저항세력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리다.

 

 1951년 10월 1일,

 근 한 달간 약 20만 명의 폭력분자가 체포되다.

 신고자에게는 후한 포상이 주어졌다고 한다.

 

 1952년 1월 1일,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주장하며 이시영 전 대한민국 부통령과 생존한 전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과 오찬을 가지고 수용소에서 출소시켰다.

 또한, 미국에 화해협정을 제의하다.

 

 1952년 2월 29일,

 교토회담이 개최되다. 본 회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평화유지 회의에서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화해협정에 체결함으로써 평화의 시대를 선포하다.

 

 1952년 5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린이날 행사를 일본의 문화교류사업을 통해 조일 어린이날 합동행사가 대마도에서 개최되다. 행사에 참여한 김일성 주석은 ‘こどもの日’라고 적힌 문구와 함께 일본 어린이를, 마찬가지로 행사에 참여한 히로히토 일왕은 ‘어린이날’이라고 적힌 문구와 함께 조선 어린이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는 등, 교토회담이 정말로 이루어진 듯한 동북아 평화를 알리는 행사가 되었다.

 

 1955년 8월 12일,

 제2회 최고인민회의 인민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 총 300선거구에, 조선로동당 262석, 조선사회민주당 28석, 조선공산당 9석, 무소속 1석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또 조선로동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1955년 8월 15일,

 제32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종신 국가주석제가 건의되었고, 찬성 293, 반대 7, 기권 0의 결과로 가결되어 김일성 주석은 종신 주석에 등극하다.

 

 ...

 

 1988년 9월 17일,

 나고야를 누르고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소비에트 연방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조미평화협정 등을 이유로 ‘화합과 전진’의 대회 이념을 두었으며, 소련의 공산권과 미국을 주도로 한 자유 진영이 동시 참가해, 총 160개국이 참가하여 ‘동서화합을 통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90년 8월 13일,

 제8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총선거가 실시되다. 늘어난 인구에 따라 총 450개 선거구로 확정된 첫 선거가 되었다.

 총 450개 선거구 중 조선로동당이 422석, 인민민주당이 18석, 자유인민당 9석, 무소속 1석으로 조선로동당이 압승을 거두어 8연속 제1당을 기록한다.

 

 1991년 12월 27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해체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국이 아닌 자주 독립국이 되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그의 셋째 아들이며 당시 주석대리이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정수가 제195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 되다.

 

 2002년 5월 31일,

 과거 슬픈 역사가 있는 두 나라가 ‘새천년, 새 만남, 새 출발’이라는 구호를 걸고 2002 조일월드컵을 개최한다.

 

 

 그리고 현재...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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