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천 공항을 빠져나오며,
한경일보 박동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준수. 이제 때가 되었어.
내일 터트려!
기사 출처, 비밀로 하고, 네 이름으로 터트리는 거야. “
“알았다. 기사 작성 끝내 놓고, 네 연락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내일 아침에 나가게 될 거야. “
“그래, 동훈아.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너는 독자들에게 싼타크로스가 될 거야. “
용인 현장은 자금이 동결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건축팀도 당분간 업무를 접고 임시 해체된 상태였다.
난 선화와 명동거리를 걷고 있었다.
구세군의 브라스 밴드가 울리는 캐럴의 장단에, 지나는 사람들의
흩어졌던 발걸음도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오빠, 성화궁 현장이 중단 됐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기다려야지. 스스로 무너질 거야.”
우리의 발걸음은 명동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사가 없는 시간, 성당은 한가롭다.
난 본당에 들어서며 손가락에 성수를 묻혀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우리는 뒷줄 좌석에 앉아 잠시 묵상했다.
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았다.
“예수여, 당신은 이 천 년 전 당신의 제자, 제레미아를 아십니까?
저는 시간의 공백을 넘어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비밀을 풀어 갔지요.
당신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평화는 정말 존재하는 것입니까?
살인과 전쟁이 난무하고 있는 이 세상에,
당신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당신은, 당신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가실 겁니까?
그저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악마들의 유희를 보고만 계실 건가요?
전, 아마겟돈이 도래할 때까지 여기서 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군요.
당신께서도 이제 당당히 모습을 보이셔야지요."
차범석은 이틀째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방안에 앉아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여기저기 돈 얘기를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연말이나 지나고 보자는 대답들뿐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정집사. 날세. 성화궁 현장은 어떤가?”
“보고 드렸잖습니까, 오늘부터 중단 했다고요.”
“아, 그래. 그냥 물어본 거야. 시간 있으면 나랑 얘기라도 좀 나눌 수 있겠나?”
“예, 그러지요, 목사님.”
은빛 벤츠는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 용인 인터체인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옆 좌석에 차목사가 타고 있었다.
“현장은 중단 했다며, 가보면 뭘 하겠나?”
“저보고 얘기 나누자고 하셨지요?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여기로 모신 겁니다. “
잠시 후, 나는 차범석과 솔멧 봉우리를 오르고 있었다.
“헉, 헉......”
나이가 있어서인지 , 차목사는 가쁜 숨을 뱉어낸다.
가끔씩 쉬면서 들이마시는 겨울의 찬 공기가, 찌들어버린 머릿속의 잔상들을 덮어버리고,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힘겨운 산행 끝에, 그는 솔멧 봉우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140 만평의 성화궁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사님, 이 광경 처음 보시지요?”
“흠. 그래. 여기서 보니까 정말 대단하군!”
“저것이 목사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이루려고 했던 야심의 결과입니다.”
차범석은 말없이 성화궁 현장을 응시하며 서있었다.
“목사님은 저곳에 무엇을 만들려고 하셨습니까?”
잠시의 침묵 뒤에 차범석이 대답했다.
“하나님의 궁전이지.”
“하나님의 궁전 입니까, 아니면 목사님의 궁전입니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목사님, 궁전이 지어지면 저곳에 들어가셔서 뭘 하려고 하셨지요?
나이 든 신도들을 저곳에 가두고 뭘 하려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그들의 장기를 꺼내, 뭘 하려고 하셨습니까?
그게 하나님 사업 인가요?
신학교 졸업하시고, 처음 목사가 되셨을 때의 꿈과 사명감이, 바로 저것이었나요?
전 내일 다시 중동으로 갈 겁니다.
거기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힘든 일 끝나고 저녁이 되면, 에페스 맥주를 마시겠지요.
그게 저의 꿈입니다.
목사님 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꿈이지만요. “
차범석은 말없이 서서, 현장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한경일보는 특종을 터트렸다.
“국내 최대의 종교단체, 국제 장기 밀매조직과 연계.”
-국내 최대의 신도수를 자랑하는 대광교회가 해외 장기 밀매조직인 L.O.P. 재단의
자금을 지원받고, 장기 기증 운동을 통해, 수집된 인체 장기를 밀매 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교회의 당회장 목사인 차범석 목사와 성화궁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최일권 장로는 ......-
한 시간도 되지 않아 4대 일간지가 받았고, 3대 공중파와 종편이 앞을 다투어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집에서 TV를 통해 기사를 접한 차범석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너져버린 자신의 가엾은 모습에서, 조각난 육체가 아직도 붙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파출부가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검찰청이라는 데요.”
차범석은 천천히 일어나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예, 차범석입니다.”
“차목사님? 서울 영등포 지청의 박상태 검사라고 합니다.
성화궁 사업 문제로 조사할게 있는데, 어려우시겠지만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예, 그러지요.”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절망의 늪 속에서 무저의 심연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은빛 벤츠가 경부 고속도로를 지나 용인 인터체인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주변의 산과 들이, 겨울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정문을 지키던 경비원이 벤츠를 보고 거수경례를 붙인다.
문이 잠긴 현장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우고, 그는 솔멧 봉우리를 오르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랐다.
아득한 절벽 밑으로, 거대한 성화궁 현장이 내려다보인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본다.
그를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나 겹쳐졌다간 다시 사라져 갔다.
드세기만 했던 아내와, 딸, 민정.
수표를 던지고 당회장 실을 박차고 나가던 최장로,
항상 내 비위를 잘도 맞추던 송여사,
뱀눈으로 나를 보며 따귀를 갈기던 김태식,
그리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건축팀 사람들······.
그는 회한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하얀 깃털이 되어 공중에 머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깃털을 밀어 올리고, 깃털은 다시 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사뿐히 대지를 밟았다.
다음날 차범석의 사체는 그의 은빛 벤츠가 세워져있던 현장 사무실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난 선화로부터 차목사의 자살 소식을 듣고, 대광교회로 갔다.
교회 정문엔, ‘관계자외 출입금지’ 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난 다시 차를 돌려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집주인을 만나 오피스텔을 정리했다.
이틀후.
선화는 나를 인천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오빠,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까?”
“글쎄, 너 시집가는 날은 와야겠지?”
“그래. 시집이나 가야겠어.
근데, 나보다 오빠가 더 급한 거 아니야?”
난 씩 웃으며 차 키를 선화에게 주었다.
“이거 받아. 네 결혼선물!”
선화는 차 키를 받아들며 활짝 웃었다.
난 안탈리아의 아부스 언덕위에 아일린과 함께 서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녀의 불룩해진 배를 보며 말했다.
“이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내가 먼저 죽으면,
아이의 목에 이 앙크 십자가를 걸어줘.
그리고 파피루스의 비밀을 들려줘. “
난 그녀의 목에 앙크 십자가를 걸어 주었다.
십자가에 박힌 흑요석이 진동했다.
아일린이 말했다.
“제레미아는 파피루스의 비밀이 여인의 몸 안에 있다고 했지요.
지금 제 몸 안엔 당신의 비밀이 있어요. “
난 그녀의 어깨를 당겨 가슴에 안았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샤프론 향기가 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