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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부캐는 아이돌입니다
작가 : 강토글
작품등록일 : 2020.9.1

[아이돌물/아저씨/부캐/중년로맨스/힐링물/기사님은아이돌/훈훈물]

“박정생씨, 부캐라는 말 혹시 압니까?”

올해는 그야말로 부캐의 전성시대다. 부캐릭터의 준말인 부캐열풍은 지상파 예능에서 시작해 종편 예능, 인기 연예인들까지 퍼져, 처음엔 낯설던 부캐란 말이 이제는 일상처럼 쓰인다.

중년. 한때는 낯설던 ‘아저씨’란 호칭이 익숙해지고, 몸에 꽉 끼는 청바지보단 헐렁한 등산복이 편한 나이. 누군가 미래를 물으면 퇴직과 연금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나이. 젊은 날의 꿈이 이제는 술자리 안주거리로 전락해버린 나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지만 결코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나이.

물론 누군가는 중년에도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미래를 꿈꾸며 매일을 신나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 수많은 중년들에겐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캐(본래의 캐릭터)를 바꿀 수 없다면, 본캐를 유지한 채로 부캐를 하나 더 만든다면 어떨까.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본래의 직업, 생활은 유지한 채 그저 아쉬움으로만 남겨두었던 일들을 부캐로 할 수 있다면 지루하기만 하던 삶이 조금은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7화. 쌍둥이는 비밀을 알고있다(4)
작성일 : 20-09-26 02:48     조회 : 390     추천 : 0     분량 : 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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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둥이의 아버지 박정생은 비밀이 많았다. 겨우 마흔에 어쩌다 고등학교 1학년 쌍둥이를 둔 아버지가 되었는지, 자신들의 생모는 살아있는지 혹은 죽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서 뭘하고 살고 있는지. 쌍둥이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정생은 이에 대해 단 한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릴 적엔 엄마가 없는 게 서러워서 몇번인가 생모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립다거나 하는 감정보단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아버지를 저렇게 슬프게 만들었나 궁금했다. 매년 쌍둥이의 생일이 되면, 정생은 남몰래 방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본인의 생일엔 혼자 하루종일 훌쩍 어딘가 다녀왔다. 돌아온 정생의 점퍼에 묻은 짠내와 모래로 그의 행선지는 바다였단 걸 눈치챌 뿐이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최신 아이돌 노래부터 옛날 가요까지 어지간한 노래는 가리지 않고, 즐기는 정생이 유독 <잊혀진 계절>만큼은 학을 뗐다. 사실 이 사실을 안 건 최근이다. 어릴 때야 동요나 만화주제가말고는 관심이 없었고, 다른 노래를 들은 건 머리가 조금 커서. 때마침 유명 예능들에서 옛날 추억의 노래들을 자주 다룰 때였다. 그리고 어지간한 노래들은 모두 기억한다며 따라 흥얼거리던 정생이 유독 <잊혀진 계절>이 나올 때 만큼은 모른 척 자리를 피하거나, 이제 공부하라며 TV를 껐다.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정생은 본인의 생일이 10월 31일이라 어려서부터 너무 질리도록 들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정생의 미심쩍은 비밀들은 모두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 과거의 일이었다. 쌍둥이가 아는 한 정생은 자신들이 태어난 이후엔 딱히 비밀이랄 것을 만들지 않았다. 그 흔한 비상금 같은 것도 없었고, 언제나 쌍둥이보다 늦게 집을 나서서 일찍 집에 있었다. 몇번인가 주변에서 선자리를 주선해준 것도 같은데, 이렇다할 결과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또 택배기사란 직업이 그다지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쌍둥이가 기억하는 한 정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쌍둥이를 위해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 정생에게 비밀이 생겼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정생이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전전긍긍했는지 알기에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이제 자신들도 고등학생이고, 곧 성인이니 슬슬 정생도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랐다. 아직 40대 초반, 늦었다고 하면 늦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또 괜찮은 나이였다. 그래서 쌍둥이들은 정생의 비밀이 연애든, 연애가 아니라도 등산이나 조기축구회 같은 취미든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었다.

 

 아버지의 비밀에서 풍겨져오는 재벌의 향기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아직 젊고 잘생겼으니 불가능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진 신기하고 재밌었다. 드라마를 현실에서 보는 느낌도 들었고. 그러나 침대 밑 깊은 곳에서, 누가봐도 숨기는 게 분명한 상자 속에서 발견한 건 장르가 달랐다. 지금까진 평범한 주말드라마나 중년 로맨스코미디였다면, 상자를 여는 순간부턴 미스터리스릴러였다. 존재하지 않는 고등학교, 그 고등학교의 교복, 처음들어보는 이름의 남학생과 그의 신상정보. 이게 자신과 관계된 상황이 아니라면, 이 방의 주인이 자신들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아빠가 평범한 택배기사가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도원의 물음에 여원은 대답이 없다. 여원의 시선은 정생을 향한다. 금요일 오후라 기차 안은 북적댔고, 출발 직전에 끊은 표는 입석이라 도원과 여원은 열차 칸과 칸 사이의 통로에 서 있다. 사실 정생을 지켜보기에도 이 편이 나았다. 대체 언제 표를 예매한건지 정생은 좌석에 앉아 있었고, 쌍둥이는 그 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야. 박여원.”

 “왜.”

 “아냐….”

 

 도원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착잡하기는 여원이나 도원이나 마찬가지라 여원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남들은 불금이다 뭐다 신이 난 떠들썩한 기차 안에서 도원과 여원만이 침묵한다.

 

 쌍둥이의 추측처럼 정생이 내린 곳은 서울역이다. 종착역이기도 하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서울이 목적지였던 터라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기차에서 내렸다. 통로에 있던 쌍둥이는 미리 내려서 사람들 사이에 숨어 정생을 기다렸다. 정생은 승객들이 대부분 내린 후에 거의 마지막쯤에야 내렸다. 쌍둥이는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척 하며 멀찍이서 정생을 쫓았다.

 

 “야, 박도원.”

 “왜?”

 “지금부터 길 안 잃어버리게 딱 붙어있어라.”

 “내가 뭐 어린애냐?”

 “그럼 어른임?”

 “아니 넌 꼭 말을 해도….”

 “안내방송.”

 

 여원의 말에 도원이 입을 꾹 다문다. 어려서부터 툭하면 길을 잃어 안내방송을 했던 터였다. 작년만 해도 졸업여행에서 길을 잃고 핸드폰 배터리까지 없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안내방송을 부탁했던 전적이 있었다. 정생에겐 말을 안 했지만, 같은 학교였던 여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떠오른 흑역사에 도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슬쩍 여원의 옷자락을 쥐었다. 여원은 그 모습을 하찮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다.

 

 “넌 아빠를 찾아. 난 길을 찾는다.”

 “앗! ‘뉴’가 계단을 거의 다 올랐어!”

 “…?”

 “아니… 원래 이런 작전할 때는 암호 쓰는 거랬어.”

 “난 스컬리.”

 “뭐?”

 “가자, 멀더.”

 

 아까와는 달리 만족스러운듯이 살짝 웃으며 여원이 말했다. 도원은 그 모습을 어이 없다는 듯 잠시 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스컬리!”

 

 뒤에 쌍둥이가 따라올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한 채, 정생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가볍게 들썩이며 택시승강장으로 향했다. 물론 또 택시를 탄다는 것을 깨달은 쌍둥이는 충격을 받았지만, 정생이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다행히 불금이라고 택시승강장엔 줄이 길었고, 잠시 시간을 확인한 정생은 고민하다 이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와…. 식겁할뻔. 너 거기서 ‘뉴’가 택시를 탔으면 어쩌려고 했어?”

 “따라서 타야지….”

 “지갑은 뭐래? 이건 지갑 얘기도 들어봐야한다.”

 “…힘들대.”

 “내 지갑도 그렇대….”

 

 쌍둥이는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인 그들이 용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나. 오늘만 해도 태리역까지 택시를 타지 않나, 갑자기 KTX를 타지 않나…. 생각해보면 틈틈히 카페나 편의점도 갔으니, 지갑사정이 좋을리 없었다. 슬쩍 저 멀리 있는 정생을 살핀 뒤, 쌍둥이는 하나 둘 셋! 하고 조심스레 서로의 지갑을 열었다. 고등학교 입학 축하 용돈을 두둑하게 받았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음 집에 돌아갈 차비도 없었다.

 

 “다음에도 택시면 어쩌지….”

 “셧업 멀더.”

 “에휴….”

 

 다행히도 정생은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택시를 잡지 않았다. RH엔터는 국내 최고의 연예엔터테인먼트답게 지하철역 도보 5분거리에 있었다. 물론 어정쩡한 지역이 아닌, 번화가 한복판에. 오죽하면 역이름이 ‘RH엔터역’일만큼 역 주변은 모두 RH엔터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굿즈샵이나 카페는 기본이요, 복합쇼핑몰에 백화점에… 모든 것이 RH엔터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듯 모여있었다. 물론 죄다 RH계열사다. 이곳은 거짓말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작은 도시처럼 보였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도 역시 오고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니 여긴 또 어디래….”

 “RH엔터.”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고….”

 “멀더, 정신차리고 ‘뉴’나 찾아.”

 “알았어, 스컬리….”

 

 도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정생을 찾았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불빛도 많아 찾기가 쉽지 않다. 도원은 하루종일 질리도록 본 ‘뉴’ 그러니까 RH스포츠 신상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사람들을 살핀다.

 

 “어? 저깄다!”

 

 도원은 여원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외쳤다. 그리고 여원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정생이 가볍게 몸을 풀며 RH엔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익숙한듯 자연스럽게 목걸이 카드를 꺼내 출입증을 찍고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에 쌍둥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야, 내가 뭘 본거지…. 꿈인가?”

 “멀더, 이건 현실이야.”

 “그놈의 멀더는 언제 끝나?”

 “….”

 “미안. 스컬리.”

 

 RH엔터에 호기롭게 들어가기엔 쌍둥이는 담이 작았다. 이미 해는 졌고, 밤거리는 시끄럽고 복잡했다. 쌍둥이는 RH엔터 정문 인근에 서서 정생이 나오길 기다릴 것인가, 여기서 돌아갈 것인가 결정하기로 했다.

 

 “이만하고 돌아가자.”

 “아니. 이왕 시작한거 끝까지 기다리자. 생각해보면 우리 야자 끝날 때쯤 아빠 항상 와있었으니까, 몇시간만 기다리면 될거야. 그때까지 여기 구경하면 되.”

 “그게 언젠 줄 알고.”

 “입구가 보이는데서 기다리면 된다니까? 이왕 서울까지 왔는데 좀 보고 가자고.”

 “야, 박도원.”

 

 쌍둥이는 언제 친했냐는 듯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작가의 말
 

 오늘로 길고 길었던 7화가 끝났습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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