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원. 17세. 연주고등학교 1학년 7반 15번. 키는 176이지만 성장기라 더 클 예정이고, 몸무게는 비밀이다. 장래희망은 패션 디자이너고, 특이사항이 있다면 엄친아다. 물론 도원의 어머니는 그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없었고, 아버지 박정생은 여자친구는 물론이요 여자사람친구도 없어서 정확히 말하면 엄친아는 아니다. 그저 키 크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데다 끼도 많고 성격까지 완벽한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남고생을 묘사하기에 엄친아보다 완벽한 말이 없어 사용했을 뿐이다.
“오늘도 완벽해!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게 최곤데 심지어 머리까지 좋아!”
그렇다. 도원은 거울을 볼 때나 옷을 입을 때, 시험공부를 할 때나 시험을 풀 때 등 모든 순간 스스로에게 취하는 나르시시즘이다. 거울을 보면 거울 속 자신이 너무 잘생겨서, 옷을 입으면 뭘 입어도 핏이 살아있는 스스로가 멋있어서, 시험공부를 할 땐 딴짓도 안 하고 집중해서 공부한 것이 대견하고, 시험을 풀 땐 남들은 찍을 때 다 답을 알고 푸는 자신이 경이로워서 취한다. 심지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고, 오히려 문제 상황에선 솔선수범해서 나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반장을 놓친 적도 없고, 학생회장도 했다. 스스로에 취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쾅! 쾅! 쾅!
“야, 박도원! 또 거울 붙들고 지랄하지 말고 어서 나와!”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이 부서져라 거친 두들김 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인 박여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여원. 도원과 쌍둥이 남매인 그는 도원의 천적이다. 아니, 쌍둥이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두 같이 했는데 어떻게 자신과는 이토록 다른지 모르겠다.
“셋 센다. 그 안에 안 열면 따고 들어간다. 하나! 둘!”
벌컥!
“야! 너가 깡패냐? 뭔 문짝을 딴대?”
“그럼 넌 거울중독임? 그렇게 하루종일 거울 보면서 맛간 것처럼 헤벌레 할 거면 화장대에 앉아 있던가, 손거울을 들고 다니던가. 너 때문에 지각할 뻔 한게 한두 번이야?’
“맛 가? 아니 그게 오빠한테 할 소리냐!!”
“오빠는 누가 오빠래. 접때 할머니가 내가 누나라고 한 거 잊었어? 어디 누나한테 말대답이야!”
여원과 도원이 화장실 앞에서 투닥거리고 있으니, 부엌에서 요리하던 정생이 달려와 그들을 말린다.
“둘 다 그만!! 너희 학교 안 갈 거야? 박여원, 넌 빨리 들어가서 씻고 박도원. 넌 어서 가서 옷 갈아입어!”
정생의 호통에 쌍둥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본 뒤 각자 할 일을 했다. 정생은 그 모습에 이제 고등학생인데 언제까지 싸울 거냐며 잔소리를 덧붙이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정생은 매일 아침 쌍둥이들과 자신의 식사를 차린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쌍둥이들을 위해 건강에 좋다는 잡곡밥을 안치고, 요리책을 보며 매일 다른 국을 끓이고 반찬도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식사를 차렸다. 새벽부터 부지런한 아버지 때문에 쌍둥이들은 이제껏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간 적이 없었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 때도 그랬다. 어른들이 피곤해도 부지런을 떠는 것이 어디 가서 엄마 없이 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해서라는 걸 쌍둥이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편식하는 일 없이 골고루 잘 먹고 있고. 그런데 요즘 아버지는 조금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단 평소와는 다르다.
“야, 박여원.”
“….”
“야!”
“….”
“야, 들리는거 알거든!! 야!”
도원의 외침에도 여원은 표정의 변화 없이 빠르게 걷는다. 도원도 여원의 뒤를 시끄럽게 따라오지만, 저 평판에 목숨거는 녀석은 큰 길만 나가도 금방 떨어질 터다.
박여원. 17세. 연주고등학교 1학년 3반 14번. 키 165에 몸무게는 비밀이고, 장래희망은 경찰이다. 어릴 때부터 예쁜 외모랑 끼로 주목받던 도원과 달리 체육대회 시즌에만 인기가 있다. 별명은 체육대회 치트키. 종종 지금이라도 태릉에 가는 게 맞지 않냐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 박여원이 있는 반이 무조건 체육대회 우승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달리기면 달리기, 배구, 농구, 축구, 야구, 태권도, 수영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한다. 또 힘도 세서 어지간한 성인남성과도 팔씨름으로 지지 않는다. 정생의 경우 고등학교 입학식 날 3판 3승으로 이겼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운동만큼은 아니지만 공부도 잘해 현재 경찰대를 준비하고 있다.
“야, 나랑 얘기 좀 해.”
아침에 겨우 떨어뜨렸나 했더니,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도원이 나타났다. 도원은 평소 여원이 종이 치면 급식실로 전력질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물론 여원의 눈에 이마는 땀에 젖고, 숨을 헐떡이는 도원의 모습은 상당히 꼴보기 싫다.
“밥 먹고.”
“그냥 오늘은 나랑 먹어.”
“…미침?”
“하아, 진짜 중요한 얘기라 그래.”
진지한 도원의 표정에 여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원이 하는 행동이 모두 하찮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도원은 자신을 골탕먹이겠다고 이렇게 귀찮게 할 사람은 아니었다. 뭔 일인지는 몰라도 남매가 상의할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뭔일인데.”
식판을 들고 나란히 급식을 받으며 여원이 묻는다. 그와중에 그들이 쌍둥이인줄 모르는 급식을 배식해주는 여사님들은 커플이냐는 둥 짓궂게 장난을 친다. 친탁한 도원과 외탁한 여원은 겉으로만 보면 남매처럼 보이지 않으니, 오해할만 하지만 그때마다 얼굴이 굳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사님들의 말에 쌍둥이는 동시에 “아닌데요.”를 외치곤 자리로 간다.
“야, 박도원. 뭔일이냐고.”
여원의 물음에 도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므린다. 이내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여원에게만 들릴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야, 아빠 요즘 이상하지 않냐.”
“…그걸 이제 앎?”
“넌 어떻게 알았는데…?”
“밥.”
도원은 어이 없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여원은 그런 도원이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쌍둥이는 서로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밥이라니, 이 운동광의 뇌는 근육으로만 되어있는 건가. 도원은 여원이 한심하다. 그리고 여원은 자신은 진작 눈치챈 아버지의 변화를 이제야 알아차린 도원의 무식함이 한심하다. 하루종일 거울만 보고 있느니 주변을 못 보는 거겠지.
여원이 정생의 변화를 알아차린 건 정생이 RH엔터의 연습생 정바른이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평소였으면 갓 지은 잡곡밥에, 아침에 새로 끓인 국, 그릇마다 가지런히 담긴 반찬과 후식으로 준비된 과일이 아침 식사였는데 그날은 달랐다. 국이 어제 저녁에 끓인 국이었다. 덜 떨어진 도원은 모르고 먹는 눈치지만, 아침마다 나던 도마 칼질 소리가 그날따라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왠일일까, 택배왕이다 뭐다 고생하시더니 이제 피로가 몰려오는 건가. 그날 여원은 대수롭지 않게 그 일을 넘겼었다. 오늘 끓인 국이면 어떻고, 어제 끓인 국이면 어떤가. 맛있으면 되는 것을.
그날을 기점으로 종종 전날 끓인 국이 아침으로 올라왔다.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있으시고, 아침마다 식사를 차려주시는 게 어딘가. 게다가 매일 다른 국을 끓여주시는데 얼마나 정성인가. 고맙게 먹어야지. 그렇게 감사히 며칠을 먹는데, 그 다음엔 밥이 바뀌었다. 새벽마다 해주시던 밥을 전날 밤, 주무시기 전에 만들기 시작하셨다. 밥 이후엔 반찬 가짓수가 바뀌고, 그 다음엔 과일이 단순해졌다. 물론 그때까지도 도원은 거울에 빠져 사느라 아버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도원이 정생의 변화를 깨달은 건 교복이었다. 정생은 매일 매장에 걸려있는 것보다 각이 선 칼각으로 블라우스와 바지를 다리미질 해줬는데, 최근 각이 약해졌다. 다리미질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다리미질도 안 하고, 빨래도 그냥 세탁기에 대충 빨아 입는 학생들도 많은데 일일히 손빨래에 다리미질까지 하는 건 정말 항상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화는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가끔 각이 잘못 되거나, 정말 주름만 겨우 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단순무식한 운동광 여원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지만, 장남으로서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냥 요즘 택배일 너무 많아져서 그런 거 아님?”
“아니, 지금이 추석이나 설도 아니고 아빠가 택배일 조금 늘어났다고 그럴 거 같지 않아.”
“뭔말을 하고 싶은데.”
“아빠… 혹시 연애하나?”
혹여 누가 들을새라 입을 손으로 가리며 도원이 말했다. 그저 정생에게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이제 고등학생이니 피곤하시겠거니 덤덤하게 생각하던 여원의 눈이 커진다. 여원의 반응에 도원은 힘을 얻어 말을 잇는다.
“생각해봐. 아빠가 요즘 보면 머리스타일도 좀 바뀌고, 몸도 좋아졌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썬크림. 갑자기 화장대에 못 보던 썬크림이 생겼음.”
“!!!”
여원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여원이 밥을 다 먹기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란 뜻이다. 생각해보니 최근 갑자기 정생이 피부관리에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원래 모든 일에 부지런한 아버지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 특이 하긴 했다.
“그리고 생각해봐. 아버지 요즘 집에도 늦게 오시는 거 같음. 보면 우리 올 때 거의 맞춰서 부랴부랴 집안일하시는 거 안 느껴져?”
“인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산 여행 좀 이상하지 않아? 인터넷 찾아보니까 우리 그날 머문 호텔 1박에 몇백만원이래. 렌터카도 비싼 차였고. 아무래도 뭔일이 있긴 있는거 같아. 동의?”
“어 보감….”
쌍둥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부산은 그때도 말은 못했지만, 의심스러웠다. 그냥 그 호텔의 일반 방이었어도 신기했을 텐데, 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VVIP실이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혹시 아버지가 남몰래 로또 1등이라도 당첨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야, 근데 그 정도 선물을 줄 정도면 재벌2세 그런거 아님?”
“인정….”
“재벌2세가 아빠를 어떻게 알고 만나?”
“택배 배달하다가 만났다거나…?”
“태리시에 재벌이 삼?”
“… 넌 왜 뼈를 때리냐.”
“직접 알아볼까?”
여원의 말에 도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알아봐. 아침 8시반 등교에 밤10시에 집에 가는데. 우리가 집에 있을 땐, 아빠도 집에 있잖아.”
“야자 튈까?”
“교문 앞에 정승쌤 서 있는거 몰라?”
“쌤이 잡기 전에 빨리 뛰어버리면?”
“응~ 자퇴각.”
얄밉게 입을 내밀며 깐족대는 도원에게 여원이 주먹을 쥐어보인다. 힘이 가득 들어가 부들거리는 여원의 주먹에 도원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야, 그러고보니 담주 월욜이 개교기념일 아님?”
“아 맞네.”
“그날 각인가. 아빠는 모르시지?”
“어. 나도 잊어버림. 그날이 각이네.”
쌍둥이는 의지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택배기사로서의 정생의 스케쥴이야 뻔하니, 둘은 아침에 학교 가는 척 나와서 정생을 따라다니기로 결심한다. 전부를 따라다니는 건 불가능하고 금방 들킬 테니, 정생이 출근하면 다시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정생이 퇴근할 때쯤 회사에서 숨어 기다릴 계획이다.
“야, 근데 진짜 재벌2세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