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아득하게 웅성거림만이 가득한. 두려움이, 긴장감이, 막막함이 감도는 그곳에서 탁! 탁! 탁! 불이 켜지고, 귀가 터질 듯 커다란 음악소리가 온몸을 감싸면 그곳에 남는 건 터질 듯한 흥분과 짜릿함 뿐이다.
음악소리를 뚫는 함성과 자신을 비추는 조명은 스스로가 마치 환하게 빛나는 별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곧이어 알게 된다.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진짜 별을.
종종 가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대가 크면 클수록,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이 깊은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무대에 오르는 건, 무대에 올라야만 보이는 밤하늘을 잊을 수가 없어서 라고.
“어두운 공연장에서 우리 팬분들이 흔드는 응원봉 불빛이 말이에요, 무대에서 보면 마치 별처럼 보여요. 거기다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는 팬분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가만히 그걸 보고 있으면, 밤하늘의 모든 별이 저흴 사랑한다고 외치는 기분이 드는데… 와… 정말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에요.”
그 밤하늘을 잊지못해 가수들은 또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 별을 사랑해 가수들은 다시 노래한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오롯이 나만을 사랑해주는 밤하늘의 풍경. 얼마나 벅차 오르는 말인가.
그러나 현실에서 정생이 오르는 것은 빛나는 무대가 아닌 어두운 탑차요, 그가 보는 별은 당이 떨어지면 눈 앞이 핑 돌며 나타나는 별 뿐이다. 그 별은 어서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먹으라는 신호일 뿐, 사랑이나 응원 같은 다정한 말은 건네지 않는다.
“태, 태, 태, 태 택배가 왔어요~ 오~ 렌지색 쪼끼를 입고 잘~생긴 택배 아저씨가 신~ 나게~ 택배 가져왔습니다~!”
등판에 ‘로희택배’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쨍한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양손 가득 연갈색 택배 박스를 들고서 정생은 노래한다. 제목은 <택배 알람>이다. 작사 박정생, 작곡 박정생, 노래 박정생이다. 텔레비전 아이돌처럼 화려한 춤사위나 둠칫둠칫 흥겨운 반주는 없지만, 나름 하이라이트 부분도 있고 싸비도 있다. 정생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그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을 열리는 일도 다반사다.
“우와!! 택배 아저씨다!”
“재영아~ 택배 왔다!”
“와!! 그거 재영이 주세요!!”
한 번 담당구역이 정해지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변하지 않는 업무 특성상 이곳 연주동에서 정생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혹 새로 이사를 왔거나, 택배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주민들 정도? 처음 만났을 땐 중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직장에 취직하더니 아기부모가 된 경우도 허다하다.
“재영아, 아저씨한테 감사합니다~ 해야지!”
“아저씨, 감사합니다! 엄마! 재영이 감사합니다, 했어요!”
“그래, 그래. 재영이 이제 들어가서 언니랑 택배 뜯어. 칼 쓰면 안된다!”
“네에!”
재영이 엄마 주리도 정생에겐 아직 교복 입던 학생이다. 처음 일 시작할 때만 해도, 엄마 몰래 아이돌 굿즈를 주문하던 주리가 벌써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저씨, 여기 이거 드세요. 그리고 저 어제 티비에서 아저씨 봤어요! 아저씨 화면빨 진짜 잘 받으시더라~ 말도 잘하시고. 이러다 연예인 데뷔하는 거 아니에요?”
“어디, 전직 카시오페아 회원님 보시기에 가능성이 좀 있던가?”
“아유, 아저씨도 참.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노래 부르시네요. 멋있어요! 어릴 때, 아저씨가 제 롤 모델이었던 거 제가 얘기했나요?”
노래 덕분인지, 오랫동안 쌓아온 인연 때문인지 정생의 택배배달은 대부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한다. 근래 택배업무가 고객도 기사도 서로 마주치는 일 없이 문 앞에 두고 가는 일이 다반사인 걸 생각하면,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정생을 믿는다는 뜻이니까.
처음엔 삭막한 택배업무가 지루해 시작한 노래가 이제는 정생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최근에도 정생은 노래하는 택배기사님으로 종종 지역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뷰를 한다.
“자, 마지막으로~ 우리 노래하는 택배기사님께 꿈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질문의 의도는 뻔하다.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대답이나 앞으로도 열심히 택배업무에 노력을 다하겠다는 등의 대답으로 훈훈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의도를 알기에 정생은 ‘진짜 대답’을 모범답안에 숨겨 답한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우리 쌍둥이 여원이, 도원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행복하게 사는게 지금 제 꿈입니다. 그리고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아이돌이 되고 싶단 꿈도 있습니다.”
정생의 대답을 주변의 모두는 센스 있는 농담이라고 말한다. 그럴 땐, 정생 또한 그저 멋쩍게 웃는다. 모범답안 역시 진심이었고, 거기에 장난처럼 끼워 넣은 답안 역시 진심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자식이 둘이나 딸린 아이 둘 싱글대디에게 ‘아이돌’이란 꿈은 이젠 누가 하라고 떠밀어도 거절할 꿈이었다. 철부지처럼 꿈을 쫓기엔 그는 나이 들었고, 지켜야할 가정이 있었다.
여느 날처럼 거래처에서 수거한 택배를 픽업해 터미널로 돌아오면,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이다. 그나마 쌍둥이 등교시간에 같이 출근해서 이정도지, 아니었음 쌍둥이 야자 끝날 때에나 퇴근했을 터다. 익숙하게 픽업 택배를 처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출근이다. 방을 돌며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정리 못한 빨래를 수거하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더 늦기 전에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 또 나중에 애들 간식으로 줄 쿠키도 구워야 한다.
가족은 3명뿐이고, 그나마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긴데 집안일은 끝없이 쌓이는지 매일 의아하다. 예전에 티비에서 본 어느 공포 영화처럼 집안에 나도 모르는 식구가 몇 명 더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옷장을 열어보지만 아무도 없다.
퇴근 후 한시도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 겨우 쌍둥이 야자 시간에 맞출 수 있다. 고등학생이라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도, 집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쌍둥이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정생은 익숙하게 앞치마를 매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든다. 파앗!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켜지면, 무심한듯 리모컨으로 번호를 누른다. 채널이 바뀌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는 아이돌이다.
“덤디덤덤~ 덤디디덤덤~ 덤디덤덤~ 덤디디덤덤~”
가끔은 포인트 안무를 따라 추며, 정생은 밀린 집안일을 시작한다. 그의 방엔 최신 아이돌 음악앨범부터 시작해 서태지, HOT, 젝스키스 시절의 앨범까지 온갖 아이돌들의 음악앨범으로 가득 차 있다. 택배기사 직업병처럼 가지런히, 순서대로 정리한 앨범들과 증정품으로 받은 포스터들, 굿즈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아이돌 역사 박물관에 온 기분이다. 정생은 이들을 소중하게 (방송에서 한때 유행하던) 거위털 먼지떨이로 소중하게 청소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이 나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자신의 무대에 오르는 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거기서 보는 풍경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듣고 싶지도 않다. 듣고 나면, 서글퍼질 게 뻔하기에.
바쁘게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띡! 띡! 띡! 하고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면 정생은 급하게 리모컨을 들어 뉴스 채널로 바꾸고, 현관으로 재빨리 발을 옮긴다. 정생이 현관 앞에 도착하면, 현관등이 켜지며 지친 표정의 쌍둥이가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아빠~ 우리 왔어여~”
“오구오구, 고생했다, 우리 쌍디들. 학교에선 별일 없었고? 애들이랑 안 싸우고, 공부 잘 했어?”
“넹~”
“얍얍. 아, 애들이 어제 티비에서 아빠 봤다고, 잘 생겼다고 전해 달래여. 글고 혹시 연옌도 봤냐고 하던데 봤어여?”
정생의 쌍둥이 남매 박여원과 박도원. 피로한 표정으로 하품을 연발하며, 방으로 들어간 여원과는 달리 도원은 재잘재잘 말이 많다. 엄마를 닮아 무뚝뚝한 여원과는 달리 정생을 꼭 빼 닮은 도원은 초등학생 때부터 쭉 반장, 부반장을 연달아 하고 기회만 되면 무대에 올라 상을 타온다. 부모의 한은 자식이 푼다고, 아이돌 연습생을 시켜볼까 했지만 도원은 연예인에는 관심이 없단다.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도, 그저 웃을 뿐이다.
쌍둥이가 집에 오면, 교복 블라우스를 모아 손빨래를 하고 텀블러나 물병을 씻어서 말리고, 마지막으로 건강에 좋다는 홍삼과 과일, 그리고 정성껏 구운 정생표 수제 쿠키를 각자 방에 갖다 주면 비로소 정생의 일과가 끝이 난다. 혹시 엄마 없이 큰다는 욕을 듣진 않을까, 빳빳하게 블라우스를 다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자유구나, 어깨를 돌리며 시계를 보면 어느새 밤 12시에 가까워진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선 어서 잠들어야 한다. 아이 둘의 싱글대디에게 취미나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은 사치다. 정생은 마지막으로 밥솥에 밥을 안치고, 쌍둥이에게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는 말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 뒤 잠을 청한다. 고단한 하루다.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반복되는 일상이다.
모든 걸 그만두고 자유를 찾고 싶기도 하지만, 쌍둥이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고, 문제집을 고민 없이 사주고, 다른 애들 부럽지 않을 만큼 넉넉히 용돈을 주며, 애들 대학까지 보내려면 이 고단한 일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로운 삶이나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꿈 같은 건, 정말로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터다. 뭐,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몸이 여러 개가 된다면 또 모를까.
다음날 아침, 언제나 그랬듯 새벽에 일어나 쌍둥이 깨우고, 밥 차려서 한 숟갈이라도 먹이고 등교시키고 나면 출근시간이다. 매일 아침 설거지를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고, 물을 채워 불리는게 고작이다. 가스 점검, 등불 점검, 수도꼭지 점검을 하고 집을 나서니 딱 정시 출근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와~ 알바애들이 이미 까대기 다 해놨으니까, 우리 정생정생 박정생이는 편하게 자기네 물건만 가져가면 되~”
“어유, 애들 고생했겠는데요? 도망간 애는 없었고요?”
“말도 마러~ 시작하고 10분만에 3명 도망 갔지.”
“그래도 이번엔 꽤 버텼네.”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요즘 시대에, 까대기 정도면 시간 대비 페이가 짭짤하잖아?”
대리점 점장 김운찬의 말에 정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둘러보니 앓는 소리를 하며, 어깨를 두드리는 장정이 여럿 보였다. 제대로 몸 안 풀면 내일 못 일어날 텐데. 박카스 몇 병 갖다 주자 싶어, 눈으로 숫자를 세고 있으니 김점장이 다시금 그를 부른다.
“아, 그러고보니 정생정생 박정생이 아직 이거 못 봤지?”
김점장은 제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본사에서 새로 지침이라도 내려온 건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뭔 문제라도 있었던 건지 불안한 표정으로 정생은 김점장의 모니터에 다가갔다. 모니터엔 ‘로희택배 창사 50주년 기념’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박힌 화려한 색색의 포스터가 띄워져 있다. 또 뭘 하는 건가, 무심하게 공지를 읽던 정생의 표정이 차차 굳어간다.
제1회 로희택배 올해의 택배왕 선발공고.
친애하는 로희 택배 임직원 여러분, 올해는 로희 택배가 창립된 지 50년이 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해…
시상내역
전국 1등: 본사관리직 승진(정규직) 혹은 그에 준하는 보상
서울시 1등: 해외지사 1년 연수 혹은 그에 준하는 보상
광역시 1등: 일주일 하와이 관광여행권 혹은 그에 준하는 보상
…
유의사항
시상내역에서 “그에 준하는 보상”의 경우, 도덕적 결격사유가 없으며 로희 그룹 내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선에서만 가능.
…
“이… 이게 뭡니까?”
“아, 뭐 별건 아니고 창사 50주년 기념 행사를 하나 봐~ 지금까지 창사 기념행사는 기념으로 고객들한테 뭐 해주는 그런 거만 했는데, 이번에 50주년이라고 회장님이 직원들한테도 뭐 해주자~ 그랬다나 뭐라나. 차라리 ‘택배 없는 날’ 이런 거나 만들어서 단체로 휴가를 주던가 하지. 윗사람들 생각들이 깨어 있는 듯 보여도 아직 꽉꽉 막혀 있다니까.”
김점장의 궁시렁거림을 듣는 듯 마는 듯, 정생의 눈은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로희 그룹 내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선. 이 한 문장에 담긴 가능성에 정생의 가슴이 빠르게 뛴다.
로희 그룹. 대한민국은 로희 그룹이 이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만큼, 거대한 대기업이다. 로희 그룹에는 정생이 속한 로희 택배뿐 아니라 강인호 사장의 로희 전자, 강인태 사장의 로희 화학, 그리고 후계 1순위로 거론되는 강로희 대표의 RH E&M(Rohi Entertainment&Media)가 대표적인 회사다. 이외에도 식품, 의약품, 패션 등의 모든 분야에 진출해, 오죽하면 로희 그룹 게임도 있을 정도다. (로희 그룹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를 찾는 술게임을 말한다. 비슷한 게임으로 백○원 게임, 김치 게임이 있다.)
그리고 RH E&M. 자체 케이블 채널을 비롯해 국내 최고의 연예기획사와 영화, 드라마, 음악, 광고 등 모든 미디어 분야의 자체 제작사 및 매니지먼트 회사를 보유하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괴물이다. 그 중 연예기획사 RHE(Rohi Entertainment)는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소속된,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누구든 꿈꾸는 꿈의 회사다.
만약 전국 1등을 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토록 궁금하던 밤하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 태, 태, 태 택배가 왔어요~ 오~ 렌지색 쪼끼를 입고 잘~생긴 택배 아저씨가 신~ 나게~ 택배 가져왔습니다~!”
다다다다.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달칵. 문이 열린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연갈색 택배상자를 든 정생의 손에 땀이 찬다. 서서히 열리는 문을 보며, 정생은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박정생.
“귀여운 꼬마 숙녀~ 택배 받으세요~ 친절하고 성실한 택배아저씨가 택배 가져왔어요~ 정할 정에 날 생~ 박정생 아저씨~ 로희 택배 택배 왕 투표해주세요~ 정할 정에 날 생~ 박정생 아저씨~”
어깨에 ‘박정생’, ‘투표해주세요’를 적은 어깨띠를 두르고, 문워크를 추며 정생은 택배를 건넨다. 처음엔 노래가 왜 끝나지 않지? 하고 의아하던 사람들도 곧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하루 1번, 택배배송문자에 딸려 있는 링크를 통해 투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한 표, 한 표가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쇼!”
올해의 택배 왕 투표는 담당 구역의 고객 투표와 소속 대리점 및 터미널 직원 투표를 합산한다. 물론 그동안의 업무량과 결근일수 또한 평가에 반영되어 결정된다. 이미 근속 17년의 정생은 이전부터 ‘이달의 성실기사’에 여러 번 뽑힐 정도로 우수한 직원이었기에, 정생은 고객 투표에 온 정성을 쏟았다.
“아빠,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여? 애들 말이 요즘은 택배 배달할 때 춤도 춘다던디.”
기존의 노래와 겸하는 택배업무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새로운 가사를 추가하고 춤까지 더하는 업무는 택배 하나당 소요시간이 상당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택배를 모두 배달하고, 계속 같은 춤과 노래만으로는 지루할까 간간히 새로운 춤을 연습하느라 정생은 집에 오면 집안일을 하던 중 잠이 들기 일쑤였다.
항상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서 자신들을 반기던 아버지가 앞치마도 못 벗고, 소파나 식탁 위에 엎드러져 있는 모습에 쌍둥이의 걱정도 늘어간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와, 지친 아버지를 침대에 옮기고 남은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하루가 잦아진다.
“자, 자~ 이거 드시고 하세요. 고생이 많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가 택배 배달도 수월하게 하고, 고객분들도 제때 택배를 받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박~ 정~ 생~ 정할 정의 날 생~ 박정생입니다~”
터미널 직원들과 대리점 동료들에게 피로회복 음료와 간식 등을 돌리며, 정생은 투표를 독려했다. 처음엔 무관심하던 직원들도 거듭되는 정생의 호의에 그를 응원했다. 물론 모두가 정생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징하다, 징해. 이건 뭐 대단한 감투 쓰는 일도 아닌데, 왜 저리 열심히야~”
“원래도 보통 놈은 아녔는디, 진짜 독하다 독해. 그렇게 1등이 하고 싶을까?”
“정생정생 박정생이. 내가 혹시 그동안 좀 섭섭케 했나? 그렇게 본사에 가고 싶어?”
주변의 비아냥거림과 눈치에도 정생은 투표 독려를 멈추지 않았다. 원래도 SNS에서 ‘우리동네 노래하는 기사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동네 인싸 기사님’으로 소소하게 인기를 얻었다. 물론 택배왕이 되기 위한 노력은 정생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크게 유명세를 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김점장의 정보통에 의하면, 유력한 우승후보는 남부산지사의 하성훈 기사와 북대전지사의 신미현 기사, 그리고 정생까지 셋이다.
남부산지사 하성훈 기사의 경우는 원래도 배달처리가 빠르고 깔끔한 편이었는데, 콘테스트가 시작되자 쿠○맨 저리가라 할 정도의 속도와 사진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탕과 함께 투표를 부탁한다는 쪽지를 택배박스에 올려 놓는 센스로 SNS에서 센스 있는 기사님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일처리가 빠른 지 아침마다 탑차 가득 택배를 싣고 가면서도 4시 전에 모두 비우고 오후엔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한다고 한다.
북대전지사 신미현 기사는 정생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기사다. 까대기면 까대기, 배달이면 배달, 심지어 픽업까지 택배기사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해낸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배달사고를 낸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택배를 던지지 않고 안전하게 배달한다고 들었다. 말빨도 좋아서, 최근 유○브에서 <택배언니>란 채널을 운영 중인데 얼마 전 구독자 5만을 넘어 실버 버튼을 받았다고 한다. 세 우승후보 중 가장 강력한 후보로, 로희택배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미현의 사진이 있을 정도다. 김점장은 정생에게 그가 아무리 노력한듯 미현을 이기기는 어려울 거라며, 전국 1등을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라고 했다.
그렇게 투표 기간인 약 한달이 지났다. 그리고 로희택배 창립 50주년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본사홈페이지에 ‘제1회 올해의 택배 왕’ 시상 결과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