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완성하다.
화려한 조명이- 켜진 연습실.
언뜻 보기에도 꽤 넓은 방이다. 뭐, 물론 여기 있는 아이돌들이 있던 전 연습실과 비교한다면, 작디작은 하나의 방 중 하나였지만. 어쨌거나 그곳은 사방이 거울로 덮여있어 춤추는 모습을 보며 자세를 고치거나 동작을 수정할 수 있었고, 한쪽엔 스테레오 스피커가 놓여있어 어떤 음악을 틀어도 방 전체가 쿵쿵대며 울렸다. 연습실 전체를 비추는 환하고 반짝이는 조명은 방 어디서든 서로를 비추어 오로지 춤과 노래에만 열중하게 도왔다. 페인트를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바랜 구석 하나 없이 전면이 새하얀 벽은 방의 분위기를 더 빛내준다.
그리고 연습실의 한 가운데,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명의 여인이 둠-둠-둠-하는 기본 박자가 들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한창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원- 투- 쓰-리 포!”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언니, 그게 아니라 팔을 더 위로 올리라니까요? 이렇게 쭉! 쭉- 뻗으라고요!”
“쭉-쭉-? 이렇게?”
“아뇨, 이렇게요. 원- 투- 쓰-리 포!”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두 사람. 미우가 직접 만든 창작 춤에 익숙해지기 위해 반복해서 같은 동작을 연습하던 다시가 실수를 하자 이를 빠르게 캐치한 미우가 다가와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준다.
“투- 투- 쓰-리 포!”
“근데 미우야, 네가 보여준 지금 이 부분 말이야. 박자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은데, 뭔가 한 박자씩 밀리는 느낌이야.”
“박자가요? 그런가? 음…”
“응 박자 세면서 내가 추는 거 봐봐.”
둥-둥-둥-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다시. 아이돌로 활동할 때도 춤 선이 예쁘기로 유명한 그녀였던지라, 걸친 아무 브랜드의 이름 없는 트레이닝복도 마치 무대의상인 것처럼 화려하게 느껴졌다. 또 방금까지는 새하얗기만 하던 벽도 정말로, 화려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손동작 하나하나는 들려오는 음악의 박자 전체를 지휘하는 것처럼, 그녀가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게 아니라 그녀의 손끝에서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음악이 이어지고, 미우는 춤을 점검한다기보다는 다시의 춤을 감상하는 편에 더 가깝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환청처럼, 그녀 귓가에 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순조롭게 춤이 이어지던 찰나, 다시가 방금 배운 대로 팔을 쭈-욱 뻗었고 크게 웨이브를 한 번 했다. 일반적인 춤에서의 부드러운 웨이브가 아닌 리듬을 살린 약간은 격한 웨이브였기에, 다시는 최대한 강렬하게 춤을 추고 허리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웨이브 후에 다시 동작을 이어가려고 하자, 그때부터 모든 박자가 하나씩 밀려 둥-둥- 박자가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어딘가 춤이 박자가 밀리고 있다는 말이다.
“어머, 정말 박자가 밀리네요.”
가만히 보고 있던 미우가 나서 음악을 끄고 말한다. 그녀가 보기에도, 웨이브가 조금 크게 들어가자 음악에 속도보다 춤이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역시 그렇지? 그럼 웨이브를 아예 빼버릴까?”
춤을 추다 멈춘 다시가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음… 그럼 너무 심심할 것 같아요. 전 웨이브를 아예 빼버리는 게 좀 아깝거든요. 우리 춤의 핵심 동작인데. 대신에 그럼 이렇게 한 번 바꿔볼까요?”
잠시 고민하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미우가 음악을 켜 이전 웨이브 부분을 튼다. 그리고 동작을 똑같이 이어가다 웨이브를 크게 춰야 하는 부분에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작고 느린 웨이브를 선보인다. 그러니까 아까의 역동적이고 빠른, 커다란 물결이 아니라, 조금 느린 대신 더 부드러운 웨이브를 탄다. 그러자 언제 박자가 언제 어긋났냐는 듯 이어지는 동작에서 모든 리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새로운 춤이 탄생한다.
“그래, 그게 훨씬 낫다.”
“그죠? 이래 봬도 제가 VERY에서 춤 담당이었다니깐요.”
“뭐? 하하-”
잠시, 연습실이 높은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그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연습하는 동안 이전의 아이돌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처음부터 모두가 이 허무맹랑한 계획에 동참한 건 아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기획사 대표인 지후부터 이 계획을 반대하고 나섰다.
“말도 안 돼. 그건 너무 무모해.”“대표님, 대체 왜요? 저희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노래가 없는데 무슨 안무를 만들겠다는 건데. 그리고 만든다고 해도, 그게 노래랑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면? 그땐 어떡할 건데?”
그는 단호히 NO를 외쳤다.
가사도 없고, 멜로디 조차 없는 노래의 안무를 도대체, 어떻게 짜겠다는 건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아무리 잘나가던 최정상급 아이돌들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진짜 안무가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안무를 너희 스스로 직접 짜는 건 무리야. 물론 너희가 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리스크가 커.”
“그래도요 대표님, 한 번쯤은 기회를 주셔야지 않겠어요?”
“언니 말이 맞아요. 저희 진짜 잘 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이미 무모한 걸 뻔히 알면서도 도전하겠다고 다짐한 일.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대표 지후에도, 다시와 미우는 지지 않고 자신들은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얘들아. 한 달 안에 곡이 온다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보자. 안 되겠니?”
지후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라는 듯, 한 글자 글자에 힘을 주어 단어를 내뱉었다. 그의 반응에 미우가 살짝 당황한 듯, 다시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이 굳건했다.
“대표님. 많고 많은 아이돌 중에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망가진 아이돌들이 재도전할 수 있게 해주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지.”
“다시 도전하는 것도 분명 좋지만,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허락해주세요.”
“노래 완성까지 한 달을 기다리는 건?”
“올해 안에 데뷔라고 하셨죠. 한 달은 너무 늦어요. 다른 멤버 영입에 도움도 안 되고요. 그동안 저희 감각도 익혀야죠.”
결국,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지후가 고개를 젓는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은 그가 곁에 있던 미우를 바라본다. 그녀의 표정 역시, 다시 못지않게 단호하다. 아니, 어쩌면 다시보다 그녀가 더 강하게 자신들에게 안무 짤 권한을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표정에 이내 지후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는 포기했다는 걸 알리는 것처럼 한숨을 쉬며 책상에 앉는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선 깊은 고민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말로 이 아이들에게 노래 없이 안무 먼저 맡겨도 괜찮은 걸까?’
사실 노래를 제시간에 받지 못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였다. 그는 한때 잘나가던 기자였고, 어릴 적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왔기에 소속사를 세우고 사람을 찾고 하는 일에 일정 금액을 사용하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소속사를 새로 짓는 데에 모아둔 돈을 다 탕진하게 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아이돌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선 집안이 자신을 위해 따로 모아둔 돈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 이게 그가 가진 전부였기에 그는 돈을 제대로 분배해서 현명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노래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후 그들을 도와줄 안무가조차 구하지 못해 계속해서 모든 일정이 딜레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금까지 자신을 믿고 새롭게 데뷔를 준비하는 미우와 다시에게 말하기에는 조금 겁이 났다. 그녀들 역시 소속사를 탈퇴할 때 모아둔 돈을 거의 잃었고, 그를 도울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뜻, 두 사람이 직접 안무를 짤 것을 이야기하니 고마운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으로 그로서는 이를 쉽게 허락할 수 없던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지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말 노래가 없어도 가능하겠어?”
“저 VERY 뮤잖아요~ 춤신춤왕! 못할 게 뭐 있어요?”
걱정 반 미안한 마음 반으로 물은 지후가 미우의 말에 안도의 미소를 슬며시 지어 보인다. 미우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가득한 웃음이 보인다.
“대표님, 저희만 믿으세요. 정말 잘해 낼 거라고 확신해요.”
“하… 미안하다. 너희한테 이런 걸 시키고 싶었던 건 아닌데. 정말 멋지게 데뷔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어렵구나.”
결국, 자기들을 믿으라는 다시의 말에 미안함을 이기지 못한 지후가 고개를 떨군다.
“대표님!”
“아냐, 괜찮아. 나는 곡이 정확히 언제쯤 오는 건지 확인해 볼 테니까, 가서 기본 안무부터 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완성된 곡 도착하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렇게 그들은 사무실에서 나온다. 긴장 속에 있던 탓인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서로를 눈 맞춰 바라보는 두 사람. 사무실에서는 당당히 안무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쳤지만, 사실 노래도 없이 안무를 완성 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표정에서는 원하는 바를 이뤘다는 성취감이나 기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그들 눈동자를 가득 채우고 있다.
“미우야,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무거워진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다시가 먼저 말을 꺼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미우.
“언니, 저 안무 만들고 연습하는 건 정말로 자신이 있지만… 노래가 없다는 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녀의 말에 다시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다. 이를 바로 알아챈 미우가 한숨을 후- 하고 내뱉고는 금세 표정을 바꾼다. 안무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다시에겐 자신이 의지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근데, 한번 해보죠, 뭐. 성공하면 대박이고 못해도 춤 연습하고 얼마나 좋아요?”
밝게 웃으며 마치 별 거 아닌 일이라는 듯이 말하는 미우. 그녀의 밝은 표정에 마음이 조금은 놓인 다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래, 한번 해보자.”
“네- 좋아요!”
그들은 어떻게 안무를 만들어야 아무 노래가 와도 들어맞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련된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그들의 황당하고 미숙하고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이 ‘노래를 모르는 곡의 안무 짜기’ 계획은 도전하겠다는 생각과 다시 아이돌로 돌아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