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된 후, 2년여 후의 황해남도 곡창지대에 사는 정길준이란 30대 가장의 수기.
통일이 된 후, 농촌에서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남조선에서 온 업자들이 참 이상한 조건을 내걸었다.
"추수하고 난 후 볏짚을 가져오시오. 갖고 오면 소정의 수수료를 드립니다!!~"
이런 주제였다.
놀랍게도, 볏짚을 가져오면 무게수에 비례해 [화학비료와 바꿔준다]는 것이었다. 화학비료가 필요하지 않으면 돈으로 준댔다.
우리는 좌우간 볏짚을 추수하고 난 뒤에 가져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남조선은 그 볏짚으로 뭘하는가 알아봤더니 기가 막힌 일을 하고 있었다.
소와 말 등 먹이를 만드는 재료로 쓴댔다. 특수하게 미생물을 길러 거기에 혼합하고 약간의 옥수수가루 등 사료도 섞으면 마소에게 순 곡식으로 만든 여물보다 더 좋은 먹거리가 된단다!!~
저런 기술을 왜 우리 북조선 시대엔 몰랐을까??... 우리도 저런 기술을 깨우쳤다면, 곡식을 최대한 아끼고 볏짚을 동물사료로 적은 양으로 충분히 줄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과거 북조선, 아니 이젠 북한이라고 불러야지. 북한시절엔 [정말 볏짚조차 워낙 품귀여서 그것마저 서로 뺏기 쟁탈전이 벌어질 지경] 이었다.
지금은 볏짚을 남조선 축산업자가 소정의 물자나 돈을 주고 사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볏짚조차 우리 것이 아니고 다 당국이 빼앗아갔다. 북한시절엔 볏짚이 소비되는 데가 하나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 알다시피 공화국(구 북한)에선 나무가 없었다. 다 산들을 개간하고 땔감으로 나무를 베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를 만드는데도 볏짚에 엄청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 화학비료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자연산비료로 퇴비를 만드는데도 볏짚이 대량 소비되었다.
3. 위에서 말했듯, 사료로 곡식을 줄 처지가 안되므로 가축들인 소나 말 염소를 기르는데도 짚으로 사료를 대량 쓸수밖에 없었고(남한에선 현재 저런 발달한 화학 및 식료화 기술로 극히 적은 볏짚과 사료로도 가축들 먹이를 만들 수 있지만),
4. 쌀이나 보리 등 곡식들을 보관하는 데도 [마대]라는 것이 극히 부족했기 때문에 [가마니] 라는 볏짚을 짜서 만드는 자루로 곡식들을 보관할 수밖에 없어서 이 가마니를 짜는데도 볏짚이 엄청 낭비되었기 때문
등등이었다. 그러니 볏짚까지 품귀일 수밖에...!!
봉건시대인 조선때엔 그래도 볏짚을 위생실(화장실)의 뒤지로 쓸 수 있었지만, 북조선 시절엔 정말 그것도 없어서 못하고 물로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
볏짚...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이제는 화학공장에서 만든 튼튼한 마대가 많이 들어와 곡식을 담는데 가마니는 필요없다. 또, 화학비료에다 천연비료도 좋은 것이 많이 들어와 퇴비를 만들 필요도 없다. 종이도 남조선에서 좋은 것이 들어와 말똥종이(짚으로 만든 질 나쁜 종이)는 쓸데가 없어졌다.
볏짚이라는 게 이제는 돈으로 변하는 자원이 되었다. 공짜로 뺏기지도 않는다~
통일되고 나서 내 농토로 불하받은 토지에서 난 볏짚들... 아무쪼록 잘 챙겨두고 보관해두어야지.
'움메에...'
올해 봄, 남조선 측으로부터 무이자로 한마리 융자받아 사들인 소가 외양간에서 울부짖는다. 올핸 저 소를 이용해 논밭을 많이 갈아 텃밭도 어느 정도 일구었다.
다른 바보들은 남조선이나 평양 개성 원산 등으로 가서 도회지에서 살려고 난리지만, 난 아냐!!~~
어디서 살면 어때?? 풍족해질 기회는 이처럼 남들이 기피하는 곳에서 더 크게 많이 생기게 마련이야.
나는 앞으로도 여기 농촌에서 살면서, 남조선 측의 업자들의 필요한 자원 및 요구를 들어주고 재산을 크게 늘려나갈 작정이야. 통일세상에서 그래서 대지주가 되어 떼부자가 되어야지...!! 바로 그게 내 미래의 소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