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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네가 추락했으면 좋겠어
작가 : 단추씌
작품등록일 : 2020.8.26

카메라로 사람의 마음을 찍어 선으로 되돌려 놓는 천사 '미젤링', 삼지창으로 사람의 마음을 찍어 악으로 만드는 악마 '디블'

"네가 추락했으면 좋겠어."
"나도 당신을 위해 추락하고 싶어요."

서로 반대되는 두 종의 생명들

 
그럼 이젠 내가 줄까요?
작성일 : 20-08-26 16:13     조회 : 472     추천 : 0     분량 : 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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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허억..."

 

 미젤링은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끌고 붉은 벽돌에 기대앉았다. 이 이상 움직였다간 폐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하, 하아...하."

 "많이 힘들어 보이네? 도와줄까요, 내가?"

 

 어둠 속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백 년 전,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목소리였다.

 

 "꺼져, 디블. 하, 하아...."

 "정말? 정말 꺼져줄까?"

 

 미젤링 앞으로 디블의 얼굴이 훅 다가왔다. 한순간에 확 끼치는 향수냄새에 머리가 어질했다.

 

 "꺼지라ㄱ, 내가...!"

 "힘 다 풀린 다리로 걷어찰 생각 마요. 그쪽이 다치잖아."

 

 디블은 미젤링의 다리를 감싸안았다. 흰 피부엔 왠지 모를 상흔이 입혀져 있었다.

 

 "이건 왜 이래요? 나쁜 인간이 돌 던졌어요?"

 "닥쳐. 이게 다 네놈들이 포크 같은 삼지창 들고 찍은 탓이잖아."

 "하긴...그래서 다쳤겠네요."

 

 디블은 미젤링의 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뭐하냐, 내 다리 들고?"

 "제가 한 일 때문에 당신이 다치니까 좀 안 좋네요."

 "설마 네가."

 "왜요. 악마면 사랑도 못하나?"

 "네놈들의 사랑 방식이 웃기지도 않은 거라."

 "우리 방식이 좀 자유롭긴 하죠. 근데 그쪽들처럼 살면 좀 지루할 텐데?"

 "됐고, 비켜. 난 날아갈 테니까."

 

 미젤링은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 했다. 그러나 날개를 완전히 펼치기 직전, 디블은 두 손으로 날개를 접었다.

 

 "뭐하는 거야?"

 "여기 우리 종족 주 활동지인거 몰라서 그래요? 인간들한테 들키면 손가락뼈 하나까지 경매로 팔릴 걸요."

 "어쩌라고. 일단 너부터 안전하지 못한 애잖아."

 "여기선 인간들보다 차라리 내가 안전해요."

 "같지도 않은 소리 진짜...그만 좀..."

 "...!!!"

 

 순간 디블의 품 안에 안겨있던 미젤링의 몸이 휘청거렸다. 디블이 안아서 확인해보니 눈이 감겨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이게 무슨..."

 

 다리에 상흔을 입어 피가 난다 한들 천사라서 별로 타격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이 아무리 악해서 천사를 죽인다 한들, 천사는 천사니까. 신이 그들을 만들 때 어느 종족보다 강력하게 만들었다 들었다.

 

 때문에 미젤링의 기절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는 말이었다.

 

 "뭐야, 거기 누구야!"

 

 미젤링을 안아든 디블의 등 뒤로 불빛이 비춰졌다. 아마 어느 인간이 손전등을 켠 듯 했다.

 

 "누구야! 이봐!"

 "하아..."

 

 디블은 뒤로 돌아 인간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의 눈은 분노를 가득 담아 붉은빛이 넘쳐 흘렀다.

 

 "뭐, 뭐야. 아악...!!!"

 "그러니까. 악마를 분노하게 하지 마."

 

 쾌락을 주는 자가 분노하면 그게 고통이 될 수 있으니까.

 

 고통에 몸부림치며 무릎 꿇는 인간을 놔두고 디블은 날개를 펴 밤하늘을 날았다.

 

 -

 

 "으음..."

 "정신이 좀 들어요?"

 "지금 뭐하는...윽...!"

 "움직이지 마요. 보니까 다리에만 상처난 게 아니더만."

 "너랑 그게 무슨 상관...!!"

 

 미젤링은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다. 아무래도 옆구리가 욱신거리는 게 인간에게서 도망칠 때 무언가에 찔린 듯 했다.

 

 "가만히 있어요. 여긴 그냥 교회 근처의 집이에요. 악마도 교회 근처에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 진정해요"

 

 그 말을 하는 디블의 모습은 꽤나 진지했다. 미젤링은 이번 한번만 디블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단 몸의 안정이 먼저였으니까.

 

 "...야."

 "내 이름은 디블이에요. 모르지 않을 텐데?"

 "됐고, 내 카메라 어딨어."

 "지금 그걸 꼭 찾아야겠어요?"

 "모르는 척 하지 마. 내 카메라 어딨냐고."

 

 천사가 인간계에 내려오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정화.

 

 사람들의 마음에 악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미젤링은 그들의 심장 부근을 카메라로 찍었다. 셔터가 눌리고 악이 피어난 심장이 카메라에 담긴 순간, 해당 사람의 마음은 정화되어 다시 본래의 선으로 돌아왔다.

 

 "여기, 침대 옆 협탁에 놔둘게요"

 "...그러던가."

 "아무리 사람 마음 정화시키는 게 임무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 지역을 들어올 생각을 해요?"

 "나도 가기 싫었어. 근데 어린애까지 악에 물들까봐 걱정돼서 간 거야."

 "하긴...그 지역은 애어른 할 거 없이 다 찍고 다니긴 하죠."

 "너네 악마들은 삼지창 들고 다니면서 찍는다며?"

 "그렇죠. 아무래도 그게 편하니까."

 "...촌스러워."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가 편해야 인간들을 괴롭힐 수 있으니까."

 

 디블은 촌스러운 방식이란 걸 순순히 인정했다. 삼지창을 들고 다니는 게 무겁긴 했지만 몇백년 전부터 내려오던 방식이었고, 인간의 심장을 관통하려면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너넨 삼지창 들고 다니면서 찍으면 바로 악으로 변해?"

 "뭐...그렇죠? 관통하는 순간 검게 물들어요."

 "...진짜 악마새끼다."

 "칭찬 고마워요."

 

 아무리 공격해도 디블은 왠만하면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응대하는 게 전부였다. 어쩌면 그게 미젤링이 디블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저렇게 웃으면서 사람 심장 찌르고 다녔겠지 싶어서.

 

 "그나저나 어떻게 다친 거에요?"

 "뭐가?"

 "상처 말예요. 그쪽이 그렇게 정신 놓을 정도면 꽤나 심각한 거겠지 싶어서."

 "설마...너..."

 "안 벗겼어요. 그냥 보이는 부분만 피 닦아준 거지."

 

 미젤링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 없는 줄 알았더니 너도 선이란 걸 아는구나?

 

 "그건 아니고, 악마가 다친 천사 몸에 닿는 순간 화상 입어서요."

 "...뭐? 너 그럼 나 여기까지 어떻게 데려왔어?"

 "그냥 내 몸 데이는 거 참고 데려왔죠. 거기서 죽게 둘 순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천사인데."

 

 디블은 그렇게 말하며 입고 있던 클로크 밖으로 손목을 살짝 내비쳤다. 흰 피부에 빨간 화상 자국이 얼룩덜룩하게 새겨 있었다.

 

 "...괜찮."

 "이 정도야 뭐. 더한 것도 겪어봐서요."

 "아니, 진짜 심각해 보여."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니...그게..."

 

 미젤링은 디블의 손목 쪽으로 손을 뻗었다. 클로크에 다 가려져 있었지만 손목이 어디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도 심한 화상이었다.

 

 "...!!!"

 "그렇게 걱정돼요 내가?"

 

 순간 클로크에서 손이 튀어나오더니 미젤링의 팔을 잡고 당겼다.

 

 "야, 너...!"

 "걱정되냐구요, 내가."

 "손 떼, 너 화상 입잖아!!"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살갗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미젤링의 코를 찔렀다. 디블의 손이 화상에 먹혀 들어가는 게 뻔히 보였다. 아무리 악마라지만 고통이 그리 달갑진 않을 듯 했다.

 

 "손 떼라고! 너 진짜 이러다 죽는다고!"

 "내가 악만데 죽어봤자 지옥밖에 더 가요?"

 "그게 아니잖아!!"

 "내가 원한 대답도 그게 아니었어요. 내 손 따위나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고."

 

 디블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화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손 하나 잃을 것 같은데도 전혀 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악마의 멘탈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건지 경이로웠다.

 

 "대답해줄 테니까 떼."

 "아뇨, 지금 해줘요."

 "아니. 떼고 얘기해."

 "그렇게 긴 말도 아니잖아요."

 

 타들어가는 제 손을 모르는지 디블은 굳건했다. 진짜 모조리 다 타버릴 것 같은데도 디블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미젤링만을 응시했다.

 

 "...걱정돼. 됐어?"

 "응. 그거면 됐어요."

 

 디블은 그제서야 손을 놓았다. 놓은 손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 재로 뒤덮혀 있었다. 저 재를 다 털어내면 새하얀 뼈가 보일 것만 같았다.

 

 "..."

 "울어요 지금?"

 "너 이 미친 새끼야! 그거 어떻게 복원하려 그래!"

 "울지 마요. 어차피 지옥에 별의별 거 다 파니까..."

 

 평생 뼈라고는 보지도 못한 미젤링이라 디블의 손이 너무 가여웠다. 도대체 저 잿더미 손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다시 제대로 손을 쓸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울지 마요. 안아서 달래줘야 할 것 같잖아."

 "...안기만 해. 진짜 죽여버릴 거야. 진심이야."

 "어차피 더 이상 못 닿으니까 안심해요."

 

 디블은 이번엔 진짜로 미젤링에게 닿지 않았다. 그저 울고 있는 미젤링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타들어간 손에 많이 놀랐는지 미젤링의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많이 놀랐나봐요?"

 "미친 새끼...내가 그렇게 떼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그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하...진짜..."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네요. 딱 백년만인가?"

 "..."

 "그때 우리 참 좋았는데...그쵸?"

 "아니...그땐 내가 미쳤던 거야."

 

 처음 인간계에 내려와 마주한 다른 종족이 너라서. 그래서 끌렸던 거야. 순간의 호기심에 잠시 이성을 잃고 본능만 앞세웠던 거야.

 

 "미쳤긴 했죠 그때 당신."

 "..."

 "근데 있잖아요. 백년 전에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

 "악마들만 사랑을 갖고 노는 줄 알았더니 천사도 갖고 놀 줄 알더라구요."

 "..."

 "그때 깨달았죠. 진짜 거지 같구나..."

 "..."

 "그래서 그 이후로 사랑 갖고 노는 짓은 안 해요. 진짜 너무 거지 같아서 악마인 나조차 역하더라구요."

 "...네가 퍽이나."

 "안 믿기죠? 근데 진짜 그래요. 지옥에서 가장 매력적인 악마였던 나인데 어느 순간 순애보가 되니까 매력 없어졌다 하더라구요."

 "..."

 "얼굴, 몸매, 성격, 그 밖의 다른 매력들...뭐 하나 바뀐 게 없는데 그거 하나 바뀌어서 매력이 반감된다고. 컨셉이면 좀 바꾸라고들 많이 하던데."

 "..."

 "근데 진짜 컨셉 아니고 그때 너무 거지 같았던 거 알아요?"

 "...알고 있어. 그런 거 진짜 거지 같단 거."

 

 다른 천사들도 사랑 때문에 속앓이 한 걸 본 게 한두번이 아니거든.

 

 "근데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랑을 다 갖다주더니?"

 

 난 사랑이 그렇게 크고 풍족한 건 줄 처음 알았잖아.

 

 "감당 안 될 정도로 사랑해줬잖아요, 나."

 

 감당 못해서 그 마음 쥐고 울 뻔한 게 한두번이 아닌데.

 

 "그런데 왜 갑자기 나 버렸어요?"

 "...갑자기 그딴 추억팔이가 나오는 이유가 뭐야?"

 

 왜 그때 일을 꺼내서 다시 회상하게 해, 왜.

 

 "내 죄책감 건드려서 뭐 하려고?"

 "뭐 할 생각 없어요. 그냥 묻고 싶은 거지."

 

 그때의 나한테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어요?"

 "..."

 "생각해보면 나 그때 순애보처럼 당신만 바라봤는데."

 "..."

 "응? 말해봐요. 왜 날 버렸던 거야?"

 "...없어."

 "네?"

 "이유가 없어. 그냥 싫어져서 버린 거야."

 "...!"

 "네 말마따나 이 세상 사랑 다 긁어서 주니까 줄 수 있는 게 없던데."

 

 사랑에 미쳐서 존재하는 사랑은 다 긁어 모아 너한테 바쳐서.

 

 "사랑이 고갈된 관계에서 뭘 바래."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바랄 수 없는 관계가 좋을 리도 없고...그래서 그냥 버렸어."

 

 그 관계에 싫증나서.

 

 "버리니까 후련하더라."

 

 줄 상대가 없으니까. 내가 없는 게 티나지 않잖아.

 

 미젤링의 입꼬리 한 쪽이 비릿하게 올라갔다. 이상하게 디블 앞에만 서면 악해졌다. 한때 제일 사랑했던 이의 마음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미친 듯이 후벼파고 있었다.

 

 "어쩐지...그 시기에 유독 사랑이 모자라다 싶었어요."

 

 사랑이 악마가 뚫기 제일 힘든 장벽이었거든.

 

 "그거 때문에 골머리 썩던 악마도 그 시기엔 없었고."

 

 모든 지옥이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댔었죠 아마.

 

 "다 당신이 가져갔기 때문이었구나..."

 

 덕분에 사랑에 흠뻑 젖어봤어요 나.

 

 "근데 미젤링."

 "..."

 "당신 마음에 그때 이후로 줄 수 있는 사랑이 없어요?"

 "...없어."

 "반 조각도?"

 "아예."

 "그럼 이젠 내가 줄까요?"

 "뭐?"

 

 미젤링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냐, 흔들리지 마. 쟨 악마야. 언제 네 뒤통수를 칠지 몰라.

 

 "당신이 다 긁어가서 없어진 사랑. 그거 내가 갖고 있는데."

 "..."

 "내가 다시 되돌려 줄 수도 있어요."

 

 미젤링 쪽으로 몸을 숙인 디블은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나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아찔했다.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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