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원균과 이순신
16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북방의 찬 시베리아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은 러시아 땅인 녹둔도… 21세기인 현대엔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불리는 조선 최북단의 동해바닷가였다.
당시엔 아직 간도(지금의 길림성과 그 주변)가 우리의 영토였는지라, 연해주 지역 남단도 조선의 땅이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두만강이 우리의 강역으로 확정된 건 일제가 간도를 중국에 넘겨준 간도협약이 일어난 1909년의 일이다. 이 지역은 당시엔 조선식 지명으로 녹둔도라고 불렀다.
그 간도바닷가의 지금의 꼭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였을 어느 땅…
‘휘익!~’
장쾌한 파공음이 하늘을 가르면서 날아가더니, 하늘을 나는 꿩 한 마리를 배를 꿰뜷어 땅에 추락시킨다. 그 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군관복을 입은 한 사나이가 말에 박차를 가해 그 쪽으로 쏜살같이 달리더니 꿩을 탁 공중에서 잡아 들어올린다.
‘짝짝짝~’
그 남자의 엄청난 무공을 보고,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
“잘했네. 이젠 자네의 활 솜씨도 나만 못지 않군. 이전 한 20년전쯤엔 나는 새는커녕 고정된 과녁도 제대로 맞히질 못해 나에게 배운 화살인데 말이야.”
“앗, 원균 형님.”
“오랜만일세. 이순신 아우.”
“형님도 바로 이 지역으로 부임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반갑습니다요.”
“그나저나 자네가 나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
“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요.”
“그때 자넨 나에게 활 쏘는 특훈을 받았었지. 하도 활 재주가 엉망이라 무과급제를 하려면 반드시 활 쏘는 심사는 합격해야 한다고 해서… 그 특훈을 받은 후에야 자네가 겨우 무과에 응시해 합격할 수가 있었지.”
“예~ 기억이 바로 어제 일인 양 새록새록합니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산에서 내려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멀리 오호츠크해의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면서 아주 장엄한 풍경을 이루는 타이가 숲 언덕 사이로…
그 날 저녁, 이순신은 자신이 잡은 그 문제의 장끼로 새구이(바비큐)를 만들어 영내에 준비된 화주로 원균과 술자리를 같이 했다.
“형님은 이번에 한양에 왔다갔다고 하시던데… 한양은 사정이 좀 어떻습니까?”
“어휴. 말 마시게. 엉망진창이야. 이건 나라를 이끄는 대신들이란 것들부터 맨 저희끼리 계집애들처럼 질투나 하고 모함이나 하는 꼬라지가 엉망일 수 밖에… 윤원형 때처럼 틀린 정치 때문에 백성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있으며, 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워 남해안엔 왜구가 막 준동하고 있다네. 하긴 뭐 여기 북방도 여진족이 준동은 별 다르지도 않지만 말이야. ”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군요.”
“나도 이번에 한양의 중앙관직으로 갈 기회였는데, 거기 가보니 꼴이 하도 엉망이라 속이 탈 거 같아서 거절하고 이 곳 함경도로 오길 자청했네. 나도 저기 가까운 종성부사로 와 있지. 그래서 여기 녹둔도로 자넬 보려고 올 수 있었던 것이고…”
“네.”
“우리 같은 무인들이 있어야 할 곳은 나라를 지킬 이런 국경지대인 변경이 아니겠나?? 무인을 가장한 정치꾼들이나 존재하는 대처인 한양에 있어서는 안되지.”
“네. 그렇긴 하지요.”
“말 말라구. 요즘 나라 사정이 정말 말이 아니야. 백성들 위한 정책을 고안해야 하는 조정에선 맨날 저잣거리의 왈자패(조폭)들처럼 맨날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면서 편가르기로 서로 모함하거나 딴지나 걸기 일쑤고…”
“역시, 소문은 들었지만 그랬군요.”
이순신은 갑갑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짜증이 나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우째 요즘 나라 꼴은 조선 역사상 희대의 간신배 윤원형이 정권을 잡고 있던 20여년 전쯤으로 다시 회귀해가는 듯싶었다. 나라 내부가 엄청 부패할 대로 썩어가고 있었다.
“우리 같은 무관들로서는 그저 묵묵히 우리가 맡은 국방의 임무나 잘 해내면서, 백성과 나라를 편하게 하는 도리밖에 없어. 외적들이나 잘 막아내는 도리 밖엔 없다 그 말이지.”
“…”
이순신은 아무런 말이 없이 긍정의 뜻으로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어느 하나도 원균의 말은 틀린 게 없었지만, 무거운 현실이 짓눌린 게 너무나 갑갑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도 원균도 지금껏 평탄하고 편안한 벼슬살이를 한 건 결코 아니었다.
원래 속물 소인배들이 날뛰는 부패한 세상에선 제대로 된 정신 가진 사람들일수록 험난하고 힘드는 인생만 살기 마련인 법이다.
벼슬이라고 30대 후반에 고작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은 함경도 지방의 종9품직인 하급군관 동구비보의 비장 자리… 그나마 오래 하지도 못하고 파직당했었다. 워낙 강직하고 깨끗한 성격인 탓에 남들(특히 상관들)하고의 인간관계에 너무 소홀했던 것이 벼슬을 오래 지키지 못한 이유였다. 뇌물이나 편법을 모르고, 또한 인사관계에 원칙만 강조하다 보니 상관들도 그를 미워해 오래 벼슬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당시나 현대의 세계나 마찬가지지만, 능력이나 성과보단 대인관계가 한층 더 출세 및 개개인의 영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지사여서 오직 직무에만 충실했던 그는 출세와 담을 쌓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벼슬 떨어진 지 거의 십 년 만에 다시금 용케 이 녹둔도의 우두머리 벼슬자리 만호인 종 5품 벼슬 직에 기적적으로 등용되었지만, 여기까지가 순신 자신의 운과 실력의 한계로 영원히 이 춥고 미개한 변경에서 폭삭 늙다 죽어야 할 팔자 같다. 그나마 여기에 등용된 것도 자신의 어릴 적 친구인 유성룡이 판서 벼슬에까지 오른 탓일 뿐이다. 그가 조정에 천거해서 벼슬자리에 다시 오를 수 있었을 뿐~
“이보게 순신.”
“예?”
“지금으로서는 우리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네. 조정이 썩어가든 말든, 우리는 군인이자 나라를 지키는 방패로 본분만 잘하면 되겠지.”
“예. 그야 그렇지요…”
원균은 아까 산에서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듯 이런 넋두리를 이었다.
썩은 요즘 사회에 대해 불평을 가져봐야 별 수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무식하고 미련한 사나이는 아니었다. 마지못해 원균의 이론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균도 역시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강직하고 직무에만 충실한 무관이라, 그 역시 순탄하고 좋은 보직에서 근무를 한 건 아니었다. 그도 뒤늦게나마 뛰어난 무술과 학식을 갖췄으면서도 겨우 미관말직으로 벼슬에 나섰고, 이처럼 많은 성과를 거둔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치른 공 때문에 근년에야 겨우 남해안 고을의 현령자리로 나섰으나 그나마 금방 좌천되고 부령부사로 다시 이 여진족 가까운 고을의 현령자리로 쫓겨온 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녹둔도에선 얼마 전에 많은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세력 있고 이 근처에선 제일 악명이 높은 야인이라 불리는 여진족 족장 우을기내가 수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大騎兵集團으로 공격해와서, 자신의 부하들이 수백 명이나 전사했던 것이다. 이순신이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대패하자 직속상관 이일은 화가 나서 그의 벼슬을 뺏고 백의종군하는 졸병으로 만들어버렸으나 얼마 안가 그는 지략을 짜내 우을기내가 지배하는 촌락을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가 그의 목을 베어옴으로서 애써 얻었던 녹도 만호 벼슬을 겨우 되찾았다.
이순신은 그때 실패하면 자결해버리거나, 아니면 군복을 벗고 낙향해 두 번 다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는 시골선비로나 살아갈 참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아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자신의 뺏겼던 관직을 되찾았던 것이다. 이순신이 모든 전투에서 전승한 장수란 말은 이걸 봐도 역시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도 이때 생전 첨이자 마지막으로 대패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비록 여진족 대추장 우을기내를 자신이 얼마 전 죽여, 이 녹둔도 지역은 오랜만에 조선인들만의 평화를 되찾은 듯싶지만 그것도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아들 니탕개가 복수를 다짐하면서 흩어진 부족을 규합해 반드시 쳐들어오겠다고 이를 가는 판이니 말이다.
“나도 자네처럼 작년엔 여진족 마을을 공격해 공을 세웠지. 그때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 숲 속 미로의 끝에 그 놈들 마을이 있을 줄 누가 알았나? 우리 멍멍이가 없었다면 그때 불귀의 객이 될 뻔 했지.”
원균은 바로 옆에 수족처럼 항상 데리고 다니는 풍산개를 어루만지면서 이처럼 밝힌다.
이름은 멍멍이… 극히 개다운 평범한 이름인 이 개는 여기 처음 부임했을 때, 영내에서 어떤 군관이 기르던 개였는데 그가 전역해 고향에 돌아가면서 부대에 군견으로 기증하고 간 족보 있는 풍산개였다.
멍멍이는 매우 영리하고 코와 귀가 밝은 개다운 뛰어난 명견이라서, 그때 원균이 대낮에도 거의 햇빛이 비치지 않는다는 남만주의 울창한 자작나무 밀림 속에서 여진족 마을을 찾아내 안내해준 개였다.
그때. 멍멍이가 알려준 여진족 마을을 기습해 조선변경을 툭하면 침입해 부녀자를 강간하고 백성들을 납치해가며, 곡식이며 재물을 닥치는대로 취탈한 악명 높은 또 다른 여진족 추장인 통호개를 목 베어 큰 전공을 세운 적이 있었다.
최근, 조선 건국 이래 단 한번도 조용한 적이 없던 이 여진과의 국경지대가 요즘 들어선 눈에 띄게 적어도 표면적으론 평화로워진 건 이 두 장수의 여진족 토벌 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계속 힘쓴 덕에 여기 북방만큼은 불과 십 년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평온해지지 않았나? 그 우을기내 대추장을 사살했기 때문이지.”
“네…”
“나라가 그나마 엉망인데, 조선 건국 이래 북방이나마 우리 노력으로 평화로워진 거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그나마 하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원.”
“여진족들이 요즘은 조용한데, 물론 이것도 하긴 일시적이겠죠??”
“그야 당연하지. 이거야 자네와 내가 얼마 전 우리 군대를 이끌고 우을기내를 처치하고서 남만주 일대를 싹 정벌해 여진족의 씨를 일단 말린 탓일 뿐이지. 곧 야인 놈들 인구가 다시 늘어나 세력만 회복되면 옛날보다 더 난리를 필걸??”
“역시 그렇겠죠?”
“그럼~ 이보게 순신, 이것도 분명 태풍전야의 고요일 건 뻔해. 최근 저쪽 북만주에선 여진족들이 누루하치라는 젊은 추장 아래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네. 아무래도 우리에게 패하고 도망친 남만주 일대 여진놈들도 그들 휘하로 들어간 모양이야. 그들 잔당을 흡수해 최근 흑룡강 일대에서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는군. 아무리 길게 잡아도 십 년 이내엔 여진 애들이 우을기내 시기 이상의 힘을 회복할 거야~”
“그 참 큰일이군요.”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들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하네. 벌써 몇 년 전에 그 우을기내 휘하 여진족 일만 명이 국경을 넘어와 함경도를 거쳐 강원도 외곽까지 진출해 많은 약탈과 분탕질을 한 전례가 있잖은가?? 이번에도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면 안되니까 말이지.”
순신은 한때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몇 해 전의 여진족 야인전사들의 조선 전면침략 때를 떠올리면서 치를 벌벌 떨었다.
그때, 거의 일만에 달하는(실제론 아마 7천 정도로 추정) 여진족들이 북방의 수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백두산과 종성 사이의 두만강과 압록강 사이의 아주 적게 깊은 강이 흐르지 않은 지역에다 가장 배치군사도 적은 곳… 바로 그 가장 허술한 국경지대를 예고 없이 수많은 기병으로 밀고 불시에 쳐들어와 함경도 남단이 몽땅 그들 손에 석권되고 강원도 북방 일부까지 유린당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순신 자신도 이일 장군 휘하의 군관으로 편입되어 원균과 함께 종군해 야인 무리들을 무찔러 큰 공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녹도 만호로 승진되었던 것이다.
기병은 역시 기병으로 무찔러야 효과가 있었다.
그 때에 조선군이 그렇게 고작 일만도 안되는 여진 야인들에게 맥없이 당하고 도 하나를 거의 뺏겼던 이유도 알고 보면 그들 대부분이 기병이었고, 조선은 반대로 그 지역을 지키는 기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비록 조선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순신은 역시 국경방비는 물샐 틈 없어야 한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중앙군에서 기병을 대거 보내준 후에야 전세는 역전되어 야인들을 도로 압록강 너머로 쫓아낼 수 있었다. 조선군들은 기병의 힘으로 승리를 결국 쟁취했던 것이다.
하긴 여진인들은 어디까지나 약탈이 목적이었지, 조선의 땅을 뺏고 싶다는 야심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분탕질만 한 후엔 제 풀에 물러갔다는 이유도 그들을 물리친 원인이긴 했지만~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니 이순신도 원균도 둘 다 맘이 너무나 착잡하고 괴로웠다.
여진의 전면침공을 받아 온통 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던 함경도 지역의 마을들…
팔다리가 잘려진 채 길거리에 산야에 막 뒹굴고 있던 수많은 백성들~ 온통 불타고 무너진 채로 남은 마을의 집들과 폐허로 변한 민가들…
그 끔찍한 군상들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그는 그 참상을 목격한 후, 거의 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가위에 눌리는 악몽을 꾸는 참이었다.
‘녹둔도… 거기서 생사를 함께 했던 동료와 부하들을 모조리 여진 야인 놈들 손에 죽이고 나 자신을 얼마나 책망했던지…’
앞서 설명했듯 원균과 함께 여진족을 대규모로 토벌하기 직전, 여기로 여진인들이 전면공격을 감행해와서 모든 경비병력이 거의 모두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순신도 사람이어서 어떻게 할 수 없었는지 당시에 조금 야인들이 조용한 척 하자 나사가 풀려 술을 마시고 경계를 게을리하다가 그렇게 큰 봉변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백의종군도 그때 그 처벌로 당하게 된 것이었다. (이순신 평생의 유일한 패전)
하지만 이내 능력이 뛰어난 이순신은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힘을 보태 시전부락을 함락시키고 여진족의 대추장 우을기내를 사살함으로서 그 해 말엔 다시금 만호벼슬을 되돌려 받았다. 그 때, 졸병으로 전락한 그를 선봉에 세워 공을 세우도록 천거한 사람도 이 원균이었다.
이순신은 그때 두 번 다시는 경계를 허술히 하지 않겠다고 자기자신에게 굳게 입술을 깨물면서 다짐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나선, 약 일 년여 정도의 세월이 흐른 터였다.
바로 이 당시가 서기 1588년 9월 하순… 조선반도에선 아직 따뜻할 시기지만, 여기 녹둔도 지역은 벌써부터 영하로 떨어지고 가끔씩 눈발까지 흩날리기 시작했다.
당시는 소빙하기(14세기에서 18세기까지 지속, 17세기 초중반에 전성기)가 절정에 가까워 지구가 많이 식어 굶주리는 나라가 많았을 시점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당연히 풍년이 들기 어려운 기후대로 지구 자체가 변해가고 있었다. 농작물은 추위에 무지 약하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 초기인 15세기 초반부터 이때까지 약 이백년 간 여진족들이 자주 조선의 변경을 수시로 약탈하였던 이유도, 이때쯤 만주는 툰드라 기후로 변해 농사를 짓기 어려워 이 곳 원주민들인 그들이 굶주리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순신이 오늘 꿩 사냥을 나간 것도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이때쯤 산짐승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짧은 여름 동안 많이 먹어 살을 찌워 가장 먹기 좋은 상태였고 또한 자신은 물론 부하들에게 사냥을 명해 긴 겨울 동안 병사들의 단백질 보충을 시킬 고기를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멧돼지나 사슴들은 수확철이 되면 막 산에서 내려와 밤중에 백성들이 어렵게 지어놓은 농사를 해치고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막 파헤쳐 못쓰게 하므로 이들을 솎아내야만 할 필요도 함께 작용하였다. 그래서 농번기가 끝나고 겨울 초입쯤엔 반드시 부하들을 동원해 한바탕 산짐승 사냥을 해댔다. 동물 사냥이라면 활재주의 좋은 실험장도 되고, 맹수들을 사냥하는 일은 아주 뛰어난 병장기 다루는 전쟁 연습도 되기 때문이었다.
아주 강력한 맹수인 곰이나 호랑이를 사냥에 동원된 병정들이 잡으면, 가죽은 나라님께 진상되지만 웅담이나 발바닥, 몇몇 종류의 값비싼 한약재감 내장은 본인들이 가지게 해주었다. 고기는 그리고 영내에 육포나 소금절임으로 비축되어 기나긴 겨울을 나는 병정들의 육식용 김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사슴의 육포나 멧돼기 고기절임은 병사들에게 아주 인기인 영양 간식거리였다.
고기뿐 아니라, 이순신은 이 때 녹둔도에 커다란 屯田(병영용 논밭)을 두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병사들은 농사를 짓는 일에 돌려 군량을 대부분 자급자족하게 했다.
대장간도 병영 내에 별도로 설치하여, 바깥 사회에서 쇠 다루는 기술이 있는 자가 입대하면 이들 보직을 그리 돌려 창칼과 기타 무기들을 만들게 했다. 물론 이것만은 국가공인을 받아야만 하는 병장기를 만드는 일인지라 대대적으로 할 수는 없었지만…
이순신은 이때 녹둔도 주둔 군관 시절부터, 이처럼 [나라에다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자신들의 힘으로 장만해서 살아가자]는 원칙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후일~ 이순신은 남해바닷가에서도 이때 배운 철칙을 잊지 않고 반드시 재현해내 나라의 지원이 전혀 없는 속에서도 군대를 이끄는 방법을 배웠던 것인데…?!
“만호 나으리, 분부대로 이웃마을을 습격하는 멧돼지 떼를 병력을 동원해 모두 잡아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멧돼지는 어디 있느냐?”
“예~ 저기 병사들이 지고 옵니다요.”
보니까 수십 명의 병사들이 영차영차 하면서 잡은 멧돼지들을 통나무에 다리를 거꾸로 묶어 지고 오고 있었다.
“많이도 잡아왔구나!!~”
이순신이 보길, 무려 열 두 마리나 되었다.
“원래는 잡은 게 모두 열다섯 마리인데, 다 갖고 오기도 힘들고 영양부족에 시달린 그곳 백성들이 몇 마리만 나눠달라고 하여 세 마리는 거기다 그냥 놓고 왔습니다요.”
“그래. 잘했다. 그 곳 백성들도 얼마간은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
이순신은 멧돼지를 모두 해체하여 가죽과 쓸개는 읍내 한약방에 갖다 팔아 군량미로 쓸 곡식과 바꾸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고기절임으로 만들라고 했다. 보관이 어려운 갈비나 뒷다리는 그 날 저녁 병사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모든 걸 자급자족하는데 힘쓰게 하고, 특히 이 근처에 풍부한 유일한 자원인 목재와 산짐승 포획에 앞장서 그래도 조선 병영 중에선 제일 살림이 넉넉하고 좋은 음식을 수시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다 보니 이 춥고 모든 것이 나쁜 녹둔도 지역으로도 남방의 병정들이 지원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판이었다.
녹둔도, 조선 최북단의 여진족과의 최전선에서는 이렇게 다사다난한 일이 생기면서 이 지역의 두 책임자인 이순신과 원균은 나름대로 제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