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은 용호는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전화를 건 상대는 김예인씨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과거 23년 전에 있던 별장 화재사고에 대해 묻고 싶다 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지만 23년 전 별장 화재사고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사고였다. 그리고 자신도 그때 의문점이 많은 사고로 기억해 나름 조사를 해보았지만 화재사고 당시 불길이 커 증거가 될만한 물건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23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사고였다. 또한 자신이 다룬 기사 중에 용호의 가슴을 조이는 기사로도 남아 있었다.
선배. 곧 퇴근 시간이네요.
진경이 말을 걸어왔다.
응. 그런데 누굴 만날려고.
웬일이에요? 항상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시는 분이. 심지어 회식도 안 오시잖아요.
그럴 일이 있어.
용호는 퇴근하기 위해 옷을 챙겼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대국민 담화 발표 취재차 청와대까지 다녀온 용호는 평소보다 더 피곤함을 느꼈다.
잘 있어. 내일 봐~
네. 내일 봬요.
용호는 차에 몸을 실었으며 생각을 했다. “김예인” 이라는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은 누구길래 23년이나 지난 지금 그 사고에 대해서 궁금해할까?
용호는 오전에 있었던 전화를 상기시켰다.
오늘 아침
김예인씨. 저기 죄송한데 저는 정치부 기자지 사회부 기자가 아니에요.
23년 전 ○○군 별장 화재사고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네?
용호는 자신이 들은 내용이 순간 잘못 들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말한 그대로입니다. 기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저녁 8시쯤 만났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그리고 곧바로 문자 알림 소리가 울렸다. 문자 내용은 만날 카페 주소가 적혀 있었으며 오래된 신문과 이용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오래된 명함이 찍힌 사진도 같이 왔다.
용호는 차를 주차해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이름은 애상이었다. 카페 주인분이 가수 “쿨”의 팬인지는 모르지만 카페 이름이 애상인 게 어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니 실내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평범한 카페였으며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카페에는 그림이 많이 걸려 있어 이 카페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용호는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그림을 감상했다. 작은 화랑에 온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문을 하고 돌아와 앉아 마지막 그림을 보고 있는 순간 어느 한 여성분이 앉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친구랑 방금까지 있었는데 데려다주느라 늦었어요.
괜찮습니다. 이름이 김예인씨 맞죠?
네.
저한테 무슨 용건이 있어서 보자 했습니까?
말씀드린 데로 23년 전 ○○군에 발생한 화재사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왜 궁금한지 여쭤보고 싶네요.
예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저 역시 알려 줄 수 없어요.
그 사고는 감춰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단지 그게 전부입니까?
네.
그럼 이렇게 하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도 그 사고에 대해서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연락받았을 때 굳이 무시해도 되는 연락이었지만 그 사고라면 얘기가 달라져 저를 이곳에 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예인씨가 생각하는 진실이 정말 있다면 저는 기사를 쓸 겁니다. 물론 “김예인” 이라는 이름도 기사에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부분을 허락해 준다면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드리죠.
예인은 고민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처음 만나 보았지만 기자가 이렇게 무서운 눈매를 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다.
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래요. 그 사건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신혼부부가 화재사고로 죽은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수사본부가 설치돼 당연히 방화사건으로 조사됐고요.
용호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예인 역시 용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당시 경찰이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사람이 3명이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죠?
이름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박현욱 임철진, 김상혁 이렇게 3명이었습니다.
예인은 아는 이름이 나오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상규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기자를 만나러 간다 했을 때 상규도 당연히 같이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인은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자신을 도와준 상규에게 미안했는지 그만 집에 들어가 쉬라 했다. 상규는 같이 가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이 예인이라 정의를 내린 순간부터 상규는 자신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말만 하고 결정도 혼자 하는 예인에게 한마디도 못 한 상규는 그저 예인과 지하철역까지 따라갈 뿐이었다.
하.. 왜 예인이 앞에서 내 모습이 안 나오지?
혼자 말을 한 상규는 답을 아는 듯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저번에 먹다 남은 소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