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언어!
2030년 1월 1일 드디어 2030년대의 새해가 밝아 왔다. 2028년에‘몰리샤’의 대통령인 쌤이 선언을 하였던 것처럼 오늘은 기존의 표기법과 더불어 한글이‘몰리샤’의 공식 표기문자로 사용이 되기 시작하는 첫날 이었다.
어제 우리는 2029년 마지막 날을 가족과 같이 보내기 위하여 4,000미터가 넘는‘코키’산의 중턱 산장에 와서 하루를 지내고 새해 아침 일찍 산 너머로 떠오르는 2030년의 새로운 해를 맞이하였다. 그랬더니 큰 손녀‘하나’(하나님의 나라)와 둘째인 손자‘하준’(하나님의 준비하심)이 그리고 작은 손녀‘하영’(하나님의 영광)이가 너무너무 좋아하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들 가족을 이곳에 남겨 놓고 아내와 나는 한국으로 떠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모두에게 그리고 모든 일에 결과적으로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아들 가족과의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몰리샤’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코키’산으로 온 것이고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크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년 해돋이를 구경하고 호텔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보니 신문에는 새해에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내용이 오늘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문자와 함께 한글이 동시에 사용을 하게 된다는 내용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늘 당장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만드는 문서가 있거나 기존의 문자로 만든 문서가 다 사용이 되어 새로 인쇄를 할 경우에는‘몰리샤’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인쇄를 하여 사용을 하게 될 테지만 기존에 만들어진 문서들은 여전히 그대로 사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언론이나 신문도 당분간은 알아서 선택을 하여 사용을 하게 됨으로 우선은 당장 기존의 문자가 상당수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한글로 바뀌게 될 것이고 한글이 전면적으로 사용되게 되는 2035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한글로 표기하는 문자의 양이 더욱더 많아져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5년 후인 2035년 1월 1일이 되면‘몰리샤’내의 모든 문자는 비로소 전면적으로 한글로만 표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한글의 위력은 비로소 그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신문에서는 우선 맛 뵈기로 일부의 내용이‘몰리샤’의 말을 소리 나는 그대로 한글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문자로 된 글 보다 한글로 표기된 문자가 확실히 내게 가깝게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니 아이들도 마치 이상한 한국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이렇게나 분위기가 달라지다니!”
나는 현지의 신문에 한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만약에 신문의 전면이 한글로 기록이 된다면 비록 언어는 다른 언어 이지만 마치 한국에 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심히 감개가 무량 하였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나 둘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오래전에 가지고 왔던 책들로부터 시작하여 그동안 쌓아 두었던 문서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무슨 물건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간단하게 살자고 들면 별 물건들이 없이도 살기에 충분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사용을 하고 소유를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인가를 사용하다가 어느새 인가 한 쪽 구석에서 잠자는 신세로 전락한 물건들이 꽤나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지않아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그 동안 삶을 같이 해 주었던 현지의 친구들과 사역을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식사를 하자면서 저녁마다 돌아가면서 식사에 초대를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그 동안의 고마움을 표현 할 수 있었고 간단하지만 나를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선물을 준비하여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부탁 하였다.
그리고 2월이 끝나갈 무렵에 마지막으로 소망학교에 가 보았다. 그동안 아들 선교사가 학교를 많이 바꾸어 놓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변할 수 없는 학교의 기본적인 틀은 여전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의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쪼끄만 하던 아이들이 벌써 청년들처럼 커 있는 친구들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보는 조회를 통하여 여전히 애국가와 주가 그리고‘몰리샤’의 찬가와 더불어 교가를 부르고 손을 모아서 교장선생님을 따라 한목소리로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 세상을 책임지고 나가게 될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씩씩 하게 느껴졌다. 이어서 내가 이곳을 떠난다고 아이들이 준비한 송별 공연으로 춤과 노래를 불러주었고 나는 그런 아이들이 고마웠다.
마지막 순서로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하여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라면서 간단하게나마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회교도 지역인 이곳에서 아들 선교사가 이어서 사역을 계속 함으로 변화를 시켜가야 하기 때문에 너무 종교에 대하여 반감이나 거부감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자칫 향후의 사역자체에 큰 문제나 장애가 올 수 도 있는 상황이기에 조심하면서 나 개인의 신앙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어도 이제까지 25년여의 시간을 함께 해온 이곳 소망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 정도의 영적인 영향력은 주고 싶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니까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졸업생들이 와 있다가 내게 감사의 선물을 주었다. 처음 학교를 연지가 27년 전의 일이니까 그 때 공부를 하였던 친구들이 그 사이 모두가 커서 벌써 아빠요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영적으로 훨씬 더 마음이 열려 있었다. 이것이 그 동안 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교를 열고 운영을 하며 가르쳐 온 보람이며 작으나마 복음적 열매가 아닌가 생각을 하며 인사말을 끝마쳤다. 그리고 학교를 나오는데 모두들 문 밖까지 나와서 눈물로 송별을 해 주었고 나의 눈에서도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학교를 나와서 가까운 곳에 있는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아이들의 집을 몇 집 찾아가 보았다. 대부분은 남자 아이들은 일을 하러 나가서 집에 없었고 기독 가정에서 수술을 받고 결혼을 하여 생활을 하는 집에 가 보았다. 문을 두드리니 두 살 된 아기를 안고 나왔다. 세 명의 아이가 더 있는데 둘은 학교에 가고 한 아이는 방 안에서 잠을 잔다고 하였다. 수술을 통하여 몸이 건강해져서 이렇게 가정을 이루고 멋진 엄마로 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부디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도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양육하라고 부탁을 하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준 후에 그 집을 나서니 갑자기 한줄기의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기를 시작하였다.